코리아 사도행전(17) 아펜젤러 선교사(8)
정동제일교회
1887년 아펜젤러는 학교에서 드리던 예배를 분리해 새로 구입한 한옥을 ‘벧엘교회’라 이름 짓고 공개적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후 새 예배당이 필요해졌다.
1892년에 오늘날 명동 성당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아펜젤러는 건축이 시작되는 명동 성당을 보면서 꿈을 가졌다고 한다. 우리 교회도 저 천주교 성당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건축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 뜻이 이루어졌다.
미국으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얻게 되어 붉은 벽돌로 고딕 양식의 예배당을 짓기 시작하여 2년만인 1897년에 완공시켰다. 이 예배당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정동제일교회 벧엘 예배당이다.
정동제일교회에서는 아펜젤러 선교사를 도와 프랭클린 올링거(Franklin Ohlinger, 한국명 무림길) 선교사가 목회하였다. 1903년에는 최병헌 목사가 최조의 한국인 담임 목사로 시무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정동제일교회에는 최병헌 목사의 지도 아래 관료층과 지식층이 대거 출석하였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성경 번역
선교사들은 한글 성경 제작 출판이 조선 선교에 무엇보다도 긴요한 일임을 확신하고 성경의 번역과 출판에 힘을 썼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성경번역을 공동적으로 하였으며 그들의 첫 작품은 1887년에 출판된 『마가의 전한 복음서 언해』이다. 이 책은 개항기 개신교인 이수정이 4복음서 중「마가복음」을 풀이하여 1885년에 간행한 책 『신약 마가전 복음서 언해』를 수정 보완한 것이다. 원래의 이수정 본은 한문과 일본어 성서에서 번역한 것으로 오역과 애매한 표현 등이 많았던 것이다.
아펜젤러는 1890년에 로스가 번역한 『예수성교 누가복음 전서』를 수정한 『누가복음젼』을 편찬하고, 이어서 마태복음 번역을 시작하여 1892년 1월 20일에 『마태 복음젼』을 발행하였다. 『마태 복음젼』은 언더우드와 스크랜턴이 시작한 작업을 아펜젤러가 이어받아 완성한 것으로 이수정 번역본이나 로스 번역본을 수정한 것이 아닌 국내 오리지널의 한글 번역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893년에는 성경번역을 위한 기구를 재편성하였는데 그는 이 기구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여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 후에 그들이 번역한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1895년에 간행하게 되었고 1897년에는 『골로새서』, 『베드로전·후서』가 나왔으며 1898년에는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신약 전부가 출간되었다. 그리고 성경 번역에 착수한지 13년만에 신약성경 전체가 완간되었다(1900년). 그런 가운데 안타깝게도 1902년에 아펜젤러가 순직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어 언더우드는 구약 시편 번역을 끝내고 아펜젤러가 이루지 못한 창세기 번역까지 맡게 되었다.
구약성경은 1910년에 번역이 완료되어 1911년 4월 2일 출판됨과 동시에 신구약의 합본성경 「셩경젼셔」가 간행되었다. 성경 번역 사업에 관한 한 미 본국 교계로부터의 자금 지원 등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선교사들은 조선을 깨우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노력을 다하였고 그런 결과로 계획된 사역을 완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