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56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94% 이상을 한족이 차지하고 있으며, 장족, 회족, 묘족, 만주족 등 55개의 소수민족이 나머지 6% 정도를 차지한다.
그 중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조선족은 약 200만 명이며, 이들 대부분은 연변 조선족 자치구에 살고 있다.
우리가 이번 여행을 간 장가계시의 인구는 약 153만 명 정도이며 20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총인구의 69%가 토가족, 백족, 묘족 등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토가족이 93만 명으로 제일 많고, 다음으로 백족이 10만 명, 묘족이 2.7만 명 살고 있다.
여기서는 토가족과 관련된 얘기를 해 보고자 한다.
버스가 장가계시에서 35km를 달려 무릉원 시내를 통과하는 가로엔 야자수가 죽 늘어서 있고, 양쪽엔 나지막한 2층 집들이 죽 늘어서 있다.
이들이 모두 토가족이다.
그런데 55개 소수민족 중 가장 오지에 살고 있고 문화가 뒤떨어져 있는 이 토가족이 이젠 거꾸로 잘 사는 부족이 되었다고 한다.
그 비결은 한국인 때문이라고 하는 설이 있다.
이젠 돈을 많이 벌어서 아래층은 점포나 다른 용도로 쓰고, 2층은 침실로 사용한단다.
2층을 침실 및 거주 공간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습도가 높은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난방시설이 없기 때문이란다.
제목에도 나와 있는 <아줌마 천 원, 아저씨 천 원>의 얘기는 이렇다.
우리가 가는 장가계 전역에서 한국인과 토가족 상인들과 한바탕 전쟁하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가 무릉원 입구 주차장에 서자마자 키가 작고 얼굴이 동글동글한 토가족들은 죽 몰려들어 '천 원, 천 원'을 외쳐대기 시작한다.
그 토가족 일부는 벙거지 모자 세 개에 천 원을 외치는가 하면, 또 다른 일부는 현지에서 생산한 귤, 땅콩, 군밤을 비닐봉지와 바구니에 담아 들고 천 원을 외친다.
가계 앞을 오면 민속공예품인 가방, 주머니, 앞치마 등도 모두 천 원이다.
물건 안 사는 사람은 매표소까지 100m를 마구 뛰어야 한다.
케이블카를 내리고 관광을 할 때나, 관광을 끝내고 버스를 탈 때나, 버스를 내려 매표소로 갈 때나 할 것 없이 일단 토가족을 피해서 100m 경주하듯이 도망을 가야 한다.
그들에게 마음 약한 면을 조금만 보이면 떼거리로 몰려든다.
어른, 아이, 할머니, 그리고 아주머니 할 것 없이 한 봉지, 두 봉지씩 들고 달려든다.
한 봉지를 사 주면 물러나겠지 하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한 봉지를 사면 두 봉지를 사라고 하고, 두 봉지를 사면 세 봉지를 살 때까지 달라붙는다.
이쪽 아줌마한테 한 봉지 사면 어느새 저쪽 아줌마가 달려와서 또 매달린다.
이 때 쓰는 표현을 '찰거머리 같다.'라고 하면 딱 맞을 것 같다.
우리가 산 정상에서 케이블카를 타려고 줄을 서 있는데, 마침 가랑비가 오고 바람마저 부는 쌀쌀한 날씨라서 비옷이 필요했다.
그 때 어느새 나타났는지 한쪽에선 비옷 두 개에 천 원을 외치고, 돌아서면 또 한쪽에선 비옷 세 개에 천 원, 네 개에 천 원을 외쳤다.
그 천 원 주고 산 우의는 한 번 입고 산을 내려오면 이리 찢어지고 저리 찢어져서 두 번 다시는 못 쓰고 버려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비가 오는 날은 비옷 장사를 빼고는 좀 덜하지만 화창한 날은 그들과 실랑이하다 여권도 지갑도 잃고 미아가 되는 경우가 있다 하니, 중국 가는 분들은 바짝 긴장을 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 일행이 비가 와서 빨리 버스를 타려고 오르고 있는데도, 몇 명의 토가족 어린이는 우리 일행의 허리에 찬 지갑보따리를 잡고 사라고 매달리다가 그 분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버럭 지른 적이 있었다.
물론 소리 지른다고 물러날 그들이 아니었으므로 우리가 일단 피하는 것이 장땡이었다.
우리 일행이 아닌 어떤 관광객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다.
"무릉원이 제일 심했고, 황룡동굴도 죽 늘어선 점포 앞을 나 혼자 시속 30km로 달렸어요. 한 번 달라붙으면 100m까지 따라 오는데, 끈질기기가 찰거머리 같았어요. 말이 통하나 답답하기만 했죠."
황룡동굴 앞에서도 참외보다도 더 큰 유자를 세 개에 천 원이라고 외치는 바람에 최재원 단우님은 호기심에 사려다가 혼쭐이 난 적이 있다.
수도 없는 토가족이 한꺼번에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 날 유자 천 원에 세 개짜리를 2천 원 어치나 샀다가 먹을 수 없어서 그냥 다 버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나도 산 정상에서 '천 원, 천 원' 하는 외침을 외면하지 못 해 군밤을 사서 버스를 타고 보니, 모두가 밤 봉지를 들고 있어서 일행 모두가 폭소를 터뜨린 적도 있었다.
듣자하니 장가계뿐만 아니라 시안, 계림등 어디서든 이 천 원의 마케팅이 대단하단다.
한국을 떠날 때 이퇴계 선생이 그려진 천 원권 3만 원만 바꿔 가면, 올 때까지 지겹도록 사용할 수도 있다.
달러 교환도, 중국 돈도 필요 없다.
이 광경을 보고 어떤 이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퇴계 선생이 장보고 다음으로 중국을 점령했다. 퇴계 선생은 성리학의 대가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중국을 통치하고 있다. 위대한 한국은행권, 위대한 천 원권, 더 이상 돈 걱정은 하지 마시라."
이렇듯 산이나 강이나 어딜 가나 천 원이면 만사 오케이인 것이다.
그래서 오로지 '아줌마 천 원, 아저씨 천 원'하는 막무가내식 떼에 안 넘어가려고 신경 쓰다 보면, 관광은 어디가고 없고, 버스를 타고 나면 어지러워서 머리만 멍하기만 하다.
여행이 끝나고 우리나라에 돌아온 지도 벌써 사흘이 지났건만 아직도 내 머리에 선명하게 남아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그 '아줌마 천 원, 아저씨 천 원' 하는 메아리밖에 없는 것 같다.
아이고, 머리야.
2007년 4월 26일
멋진욱 김지욱 서.
첫댓글 호호 저는, "아줌마 예뻐~" "아줌마 맛있어~" 하는 반토막 우리말도 기억에 남는당. 그리고 순박하게 활짝 웃던 비옷파는 아가씨. 그 웃음 다시 보고싶네.
맞아요. 저에게도 천원에 대한 에피소드가.... 그중 두가지 -> 하나 : 부채 5개 천원에 낼름 사서보니 10m 후방에서는 6개 천원, 20m 후방에서는 8개 천원... 속 엄청 시리데요. ㅎㅎㅎ, 둘 : 로렉스 시계 5개 천원, 이게 왠 떡이야? 선물용으로 냉큼.... 귀국하며 세관에게 뺏기고 (가방에 넣고 왔는데 카메라에 다 나오데요. 나 참!) 한개는 그냥 돌려주길래 좋아라 차고 다녔는데 알고보니 '로락스' ㅋㅋㅋ 일주일 후 고장...
궁금해요? 궁금하면~~오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