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라>라는 제목의 책을 집어 들고는 단숨에 읽어내려 갔습니다. 두 권으로 된 이 책은 1959년생인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奧田英郞)가 쓴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이제 초등학교 6학년생 지로(二郞)이지만, 정작의 관심의 인물은 그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上原一郞)입니다.
우에하라 이치로는 한때 진보운동권의 전설적 맹장이었고, 아시아 공산주의 혁명공동체의 일원이었지만 이제는 아나키스트가 되어 토교의 어느 가난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품에서 얌전하기만 한 일본인의 상식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을 보게 됩니다.
그는 기존의 체제가 담아내기 어려운 강한 야성을 가지고 국가주의와 미국의 패권체제에 대해 강렬한 반감을 품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이미 시대에 맞지 않는 한 물 간 혁명세대의 유산쯤으로 취급하고 있지만 그는 매우 당당한 모습으로 자존심을 꺾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지켜내고 있었습니다.
소설은 이제 곧 열두 살이 될 일본 소년 지로의 눈을 통해서 본 세상과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한때 다른 세상에 대한 진보의 꿈을 꾸고 살았던 한 사나이의 좌절하지 않고 또한 타락하지 않은 단단한 삶을 목격하게 됩니다.
1960년대 일본은 이른바 안보투쟁으로 격렬한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미국과 일본이 군사동맹을 맺어 과거로 돌아간다는 상황에 치열하게 반대한 세대의 운동은 그러나 우파세력의 반동적 대응으로 실패하고 맙니다. 오늘의 일본은 그 운동의 실패가 가져온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일본 진보 운동은 파산했고 침몰했습니다. 남아 있는 운동들은 조직 유지 자체에 힘을 쏟는 이상한 운동으로 변질하거나, 또는 이탈자들은 기득권을 쫓아 이전의 운동을 낡아빠진 유물처럼 대했습니다. 주인공 우에하라 이치로는 이런 현실에서 별종이 분명했습니다.
사실 그는 오키나와 섬 출신으로 미군기지 반대 투쟁에도 나섰고, 학생 때에는 걸출한 활동으로 일본 공안당국의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대가 바뀌어 대부분이 일상의 소시민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는 오늘의 일본은 도대체가 틀려먹었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고, 저항의 기회를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도, 세상의 눈치를 이리 저리 비굴하게 보지 않고 자신의 양심과 뜻대로 살아가려고 담대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 우에하라 이치로의 모습이 단연 가슴에 파고듭니다. 애초에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아들 지로는 아마도 점차 그 아버지의 세계에 눈을 떠가게 될 겁니다.
우에하라의 가족은 결국 토쿄를 떠나 오키나와 섬 밑에 있는 이리오모테 섬으로 갑니다. 책 제목대로 남쪽으로 간 겁니다. 모든 국가주의적 질서와 구속을 벗어나 공동체적 생활을 사랑하는 사람들 속으로 떠났습니다. 문명의 기만과 작별한 겁니다. 내일은 이 이야기를 해드리지요. 세상에서 사는 방법은 한가지만은 아닌 겁니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