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향한 열정과 도전에는 끝이 없다.
미용 프랜차이즈. 산업화의 기수 박 준 원장
'박준뷰티랩'의 박준(마산면출신)원장은 아름다움과 미용업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 뜨거운 열정으로
오늘도 도전한다.
당시, 흔하지 않은 남자미용사로 1972년 미용업계에 입문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35년간
동종업종에 20~40대 혈기 왕성한 청춘을 불살랐다.
언제나 도전하는 박 원장은, 평범함을 거부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 언제나 한발 먼저 개척한다.
박 원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 정상 헤어 디자이너이다. 개인의 높은 인지도는, 미용업계의
선두주자인 박준뷰티랩의 수직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머리를 자르는 미용사로 시작하여 기업형 종합미용사업으로 발전시킨 벤처사업가이다.
정상의 위치를 고수하고 머무를 수 있는데도 결코 주저앉지 않는다. "미용사업수준에서
글러벌 미용산업으로 한 단계 더 발전시킬 때가 왔다. 미용업계 선두주자라고 하지만, 이제야 돈을
벌 수있는 미용산업이 눈에 보인다"며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하고 박차를 가한다.
2007년 무한경쟁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 박준뷰티랩은 또 다시 도전한다. 수십 년간 응축된
파워에너지를 바탕으로 'POWER 2007' 세부전략과 목표행동지침을 설정했다. 교육과 영업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보완.정비하는 과감한 조직개편을 하고 공격적인 업무를 수행하기위해 본사를 3월 초
확장 이전하고. 미용과 관련된 전문제품을 생산하는 산업화체계로 다각화한다.
국내는 물론 중국 등 동남아에 수출하는 대규모 생산.수출한다는 일환이다.
박 원장은 미용사업뿐만 아니라 성공사례를 후진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벤처기업가 특수신분으로
2003년 원광대학교 생활과학대학 뷰티디자인학부 정교수로 임용되어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 근무지인 서울과는 원거리인 전북 익산지역이라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나 말끔하게 정돈된
캠퍼스와 호기심이 가득 찬 학생들을 위해 1주일에 8시간씩 이론과 실무를 강의하고 있다.
오늘에 우뚝 솟기까지 박 원장의 삶의 조건은 언제나 최악이었다. 박재식(박준의 본명)은
마산서초등학교(14회)를 졸업하고 1964년 서울에 상경했다. 장사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신념으로. 가난을 물리치기위해 달걀판돈 500원을 모아 고향을 떠났다.
많은 힘든 일들을 거치고, 1972년 종로2가 YMCA미용실을 우연하게 구경하다 미용업계에 입문했다.
그 당시 '남자가 하지 않는 일이고, 안 좋은 조건이기에 도전했다'. 어려운 여건일수록 도전 하는
그의 도전정신을 엿보게 한 대목이다. '남자의 직업선택으로 여성들의 눈초리가 심했으나 그럴수록
잔인하게 노력했다'고 회상한다. "과정이 어려울수록, 본인의 노력여부에 따라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신념으로 박 원장은 오늘도 도전한다.
실력있는 남자미용사로 인정받고.알리기 위해 1980년 국제미용대회에 참가하여 한국남자최초
입상한다. 미용실력뿐만 아니라 경영자로서의 수업을 쌓은 박 원장은. 미용업계 입문한지 10년만에
명동에 1982년 '미용타운'을 개장했다.
주머니사정이 넉넉하지 못했고 경영에 대한 노하우도 적은 상태였으나 젊음 하나만을 믿고 겁없이
뛰어들었다. 80년대 미용실은 남자가 출입하기에는 불편한 시대였다. 그러나 남성전용 미용실을
운영하여 호황을 누려, 지금의 '박준뷰티랩'의 밑그림을 그리게 했다.
'박준미장'은 강남 청담동시대를 1995년 열었다. 당시만해도 미용업계에 주목받는 지역이 아니였지만 나름대로 가능성을 보고 과감하게 종합미용타운을 개장했다.
압구정동은 젊음의 거리로 급부상하고 사옥맞은편의 청담성당은 박준미장을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토양이 되어주었다. 박준미장은 미용실뿐만 아니라 피부관리실, 메이크업실, 의상실을 갖추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 과정을 한 곳에서 소화할 수 있도록 구성하여 고객이 찾아오는 마케팅전략을
구사했다. 청담동의 박준미장이 본궤도에 오르자 사업확장은 필연적이었다.
박 원장은 외국의 선진미용사업을 견학하는데도 소홀하지 안 했다. 외국계 프랜차이즈장점만을 살려 한국적인 프랜차이즈문화를 준비했다. 프랜차이즈 기본요건을 이미 갖춘 박준미장은 (주)P&J 법인체를 설립하고 프랜차이즈사업을 시작했다. 국외뿐만 아니라 국내 100여 개의 가맹점을 개장해
동종업계타사와는 분명하게 획을 그었다.
더 높은 곳을 향한 미용실무의 달인 박 원장은 이론을 쌓는데도 게을리하지 안 했다.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숙명여대 경영대학원, 서울대학교 AIP 최고산업과정을 수료하고.
'미용닥터'라는 칭호를 받는 영국유학까지 다녀왔다.
박 원장의 도전성공수기는 1997년 변창립아나운서가 진행하여 인기리에 종영된 MBC 다큐멘타리
'성공시대'로 극화하여 전국에 방영됐다. 미용전문업종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박 원장은
"정작본인자신이 여성화될까 두려워, 남성의 상징인 수염을 기른다"고 수염에 대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황폐화되지 않은 청정지역인 해남에서 태어난 것에 감사 드린다. 고향의 우수성을 전국에
홍보하겠다"는 진한애향심으로 "고향사랑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겠다"고 다짐한다.
자그만한 학교로 변해버린 마산서초등학교 모교에 도서관을 지어주고 도서를 기증한 옛 추억도
떠 올린다.
박준뷰티랩은 사회사업에도 활발하다. (사)사랑의책나누기운동본부의 병영도서관 건립과
도서지원사업을 후원하고 있다. '다 자녀 가정 지원사업'일환으로 헤어 시술, 전 품목 할인혜택도
제공하고있다.
언제나 한발 앞서가는 박 원장은 쉬지 않고, 또다시 높은 파고(波高)를 향해 오늘도 돌진한다.
첫댓글 참으로 대단한 향우님이십니다. 괜시리 제 어깨가 다 으쓱해 지는 군요. 모쪼록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업체의 선두자리를 영원히 고수하시길 빌어봅니다.
선배님 정말 자랑 스럽습니다..
성공시대에서 봡습니다...자랑스럽지요...존경도 스럽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