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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3일 일요일
거북터를 뒤로하고 바라본 영장산
경기도 광주시와 성남시에 걸쳐 있는 영장산(靈長山)과 문형산(文衡山)을
오르기로 한 일요일이다.오전 9시쯤 오산역을 출발하여 수원역에서 환승을 한 후에
영장산의 들머리가 있는 이매동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쯤이니 대충 한 시간이 소요된 셈이다.
이매사거리에서 돌마고교로 향하는 도로를 따르다가 삼거리 갈랫길에서 좌측으로
돌마고 이정표를 보고 도로를 이어가다보면 돌마고교 정문 앞을 지나게 되고
곧바로 "쉘르빌" "힐하우스" "케슬" 등의 이름이 붙어있는 신축빌라들이 부락을
이룬 고샅을 지나게 된다."하우스"와 "집" 그리고 "힐"과 "언덕"의 차이는
무엇인가? 한글표기를 하면 촌스럽고 싸구려 티가 나고 외래어 명칭을 갖다 붙이면
값지거나 품위가 있어보인다는 착각을 혹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변모하는 추세에 맞추고자 동조하는 풍조가 대세라면
어쩔 수 없다 하겠다.그러나 외래어 발음을 무조건 한글로 표기를 한 모습은
사실 국적이 애매모호한 유령같은 언어만을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이름의 빌라건물들의 고샅을 뒤로하고 비탈을 오르면 능선자락에 닿게된다.
허름하고 낡은 농막이 들머리 숲길의 양편에 을씨년스럽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다.
숲길에 들어선 뒤 얼마지나지 않아 산치성장소에 닿게 된다.전신주 네 개를 정방형으로
세워 2m가량의 높이에 사각의 지붕을 달아놓은 괴상한 모양새의 구조물이다.
구조물 앞으로는 커다란 참나무가 범강장달처럼 우람하게 서있는데
그 앞쪽에는 산치성(山治成)에 대한 유래를 알리는 안내문이 보인다.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곳 참나무의 유래는 300년 전 이무기가 승천하려다 훼방꾼에 의해 마을의 불운이
오기 시작하여 마을 주민의 뜻을 모아 그 이무기를 위해 웅장하며 성대하고 화려한
승천위무 위령제를 지내주었더니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면서 젯상주변은 온통 용이 토하는
피로 물들었다고 한다.
그 후 백발의 노인이 꿈에 나타나 위령제 덕분에 승천하게 되었으니 그 덕으로 식생활에는
큰 어려움이 없도록 할 것이나 300년 전에는 큰 인물이 없고 이 후에 큰 인물이 나올 것이라 하고
홀연히 사라졌다고.다음 날 위령제 장소에 매화나무 2그루가 솟아있어 정성껏 가꾸게 되었고
마을 이름도 이매(二梅)마을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 후 이매1동 소수 원주민이 단기 4292(1959)년부터 매년 음력 9월 3일을 기일로
이매 1동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산치성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는 내용이 안내문에 담겨있다.
커다란 참나무 그늘을 벗어나면 왼쪽 산자락으로 차들이 꼬리를 물고 오고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 능선의 땅속으로 자동차도로용 터널이 지나가는 거다.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차량들의 분주한 왕래가 끊임이 없다.연회색 운무에 휩싸인 도시의 건물들,
엷게 내려앉은 아침 낭만의 안개라면 좋으련만 요즘 기상예보에 줄곧 오르내리는 미세먼지로
인한 운무라서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하다.
널직한 산길 오른쪽에 정자쉼터가 서두르지 말고 쉬엄쉬엄 가라한다.삼거리 길목에
산길안내를 책임진 이정표가 종지봉과 둘레길을 주지시킨다.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갈마들며 꾸며놓은 오르막 산길,굵은 통나무 계단이 오르막을 견인한다.
첫번째 오른 멧부리는 종지봉이다.운동시설물 두어 종류가 세워져 있고 다리품을
덜어줄 벤치도 두어 개 등산객을 기다린다.
종지봉을 뒤로하고 두번째 봉우리 매지봉을 향한다.산길은 널직하고 후덕스럽다.
도시근교의 멧덩이가 대개 그렇 듯이 입산객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기 때문일터,
도시들의 점증하는 인구의 요구에 숲은 시나브로 사라져 가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매지봉의 생김새도 종지봉과 엇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비교적 얕으막하고 밋밋한 멧부리는
참나무 등의 수목들이 조망을 가로막고 있다.진창의 산길이 간간이 발길을 잡는다.
보름명절이 지나고 우수가 지났으니 계절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철,겨울의 흔적을 걷어내려는
작업이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얕으막한 봉우리 두어 곳을 넘어서면
안부사거리에 이른다.솔밭쉼터,왼쪽으로는 원적정사와 성남아파트로 향하는 산길이고
오른쪽의 하산길은 새마을연수원으로 향하는 산길이다.
널직한 오르막길,급경사라고 볼 수는 없는 비알이지만 산길 양쪽으로 로프가 설치돼있다.
안전사고를 방지한다는 의미보다는 산길이 더 이상 넓어지기만 하는 현상을
애써 방지해보려는 최소한의 산길보호 방책이다.
소나무 숲 그늘을 빠져나오면 철구조물 꼭대기에 산불감시초소 옆을 지나가게 된다.
2층높이의 초소에는 산불감시원이 지키고 있고 주위의 산무리들을 모두 조망할 수있는
일급의 전망대 역할도 담당하는 곳이다.초소에 오르면 방명록이 기다린다.
영장산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지척으로 다가서있고 문형산은 운무 탓에 진회색 실루엣으로
모습을 대신한다.다소 기름하고 밋밋한 모습의 영장산 멧부리 한복판에는 정상 빗돌이
세워져 있고 이정표와 벤치 그리고 삼각점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해발 413.5m.
시각은 11시 20분 정도를 가리키고 있으니 이매역에 도착한 시각이 10시쯤이므로 대략
1시간 20분이 걸린 셈이다.이 곳에서 산길의 진행방향은 왼쪽의 내리막길을 따르면
남한산성 방면으로 이어지는 산길이고,문형산이나 불곡산을 오르려면 우측의 내리막 산길을
따라야 한다. 영장산의 멧부리를 뒤로하고 우측으로 내려서는 산길은 다소 가파른 경사를
보이는 산길이다. 커피한잔으로 목을 적신 후 시나브로 내려 선 안부쉼터,거북터다.
젊은 사내 둘이 쉬고 있는데 대뜸 문형산 방향으로의 산길을 물어본다.
산 이름은 들어보았고 어디 쯤에 있는 것인 줄은 아는데 어디로 어떻게 가는 줄은 모른다고.
오늘은 휴일이고 날씨도 궂지않았으니 또 다른 입산객들을 만나면 물어 볼 기회는 종종 있을게다.대충 자료들은 살펴보고 왔기 때문에 걱정스럽지는 않지만
확실한 정보가 현장에서는 필요하기 때문이다.영장산 정상에서 문형산으로의 산길은
초행이므로 선등자의 조언은 무엇보다 귀중한 사전 정보가 된다.
묻는 사람은 잠깐 바보가 되지만, 묻지않는 사람은 평생바보가 된다는 중국 격언이 있다.
묻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어리석고 멍청한 일이라고 여겨서는 과객들에게는 오랜시간
어려움을 각오해야만 한다.이따금 진창의 산길이 나타나곤 한다.
혹한기 냉혹함의 흔적을 걷어내고 따사롭고 평화로운 생동의 계절을 맞아들이기 위한 몸부림,
꽃망울을 잔뜩 머금고 있는 생강나무의 소리없는 꿈틀거림이 전해지는 산길이다.
길섶에. "성남시계등산로"표시판이 간간히 눈에 띤다.산길은 평지길이나 별반 다름없이
넉넉하고 푸근하게 이어지며 가뿐숨을 바라지도 않고 서두르기를 부추기지도 않는다.
삼거리 안부,곧은골고개.왼쪽으로. 보이는 산길은 광주시 곧은골을 가리키고,
맞은 쪽 직진방향은 태재 고개로 이어지는 산길임을 알린다.
언 땅이 봄볕에 녹아내려 질퍽거리는 진창을 어렵사리 빠져나오면 뽀송뽀송한 산길이
반갑다.산길 왼쪽으로 다리품을 풀어줄 정자쉼터가 입산객을 기다리고,쉼터를 뒤로하면
철망으로 둘러쳐진 울타리를 만난다."강남3000"골프장의 울타리다.
이제부터 산길은 왼편에 골프장 울타리를 끼고 이어진다.출출한 허기가 밀려오고
헛헛함이 솟아나는 속을 달래야 한다.허기를 달랜 두 사내(용석이,나)들은 곧바로
삼거리 길목에서 머뭇거린다.일곱사거리 고개,이정표를 살펴보면 해발 348m의
고개이고 우측은 태재고개를 가리키고 직진방향은 문형산에 도달할 수 있는 산길이다.
문형산을 적시하지 않은 까닭에 확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 산행중인 노부부를 만나고서야 직진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문형산 멧부리의 기암괴석
골프장 울타리와 오른쪽의 산비탈에 들어 선 전원주택들의 울타리 사이의 비좁은 산길을
들짐승처럼 빠져 나간다.전원주택 울안에서 개짖는 소리가 요란하다.쫓기 듯이, 도망치 듯이
그 곳을 빠져 나오면 바로 삼거리 차도,왼쪽으로는 골프장 입구를 지나서 고산리로
향하는 도로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길은 신현리 방향으로 향하는 길,문형산을 오르려면
도로를 막바로 횡단하면 된다.
언덕이나 다름없는 숲을 빠져나가면 이내 사거리 고개로 이어진다.새나리 고개,
오른쪽으로는 신현리 방향이고 왼쪽으로는 고산리로 이어지는 길이다. 문형산은
도움닫기발판 모양의 넓은 널판지를 깔아놓은 맞은 쪽 산길로 이동을 하면 된다.
산길은 수렛길과 다름없이 널직하고 완만하게 이어진다.
신작로를 닮은 널직하고 완만한 오르막의 산길은 시나브로 정자 한채가 자리잡은
능선에 오른다.우측으로 부엉바위를 가리킨다.밋밋한 능선을 100m가량 따르면
돌탑 1기와 그 앞으로 "일출단"이라고 쓰인 검은색 빗돌이 세워져 있다.일출맞이 장소로
적임지인 모양이다.문형산의 정수리를 오르려면 정자쪽으로 되돌아 가서
고산리(3.4km)방향을 따라야 한다.문형산의 멧부리에 이르는 산길도 밋밋하기는 마찬가지다.
일출단에서 정상주변까지 높낮이가 비슷비슷해서 세개의 봉우리들 중에서 어느 것을
정상이라고 대접을 한다해도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우리라. 문형산의 정상에는
거대한 타원형의 바위 둘이 서로 몸을 맞대고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해발 497m,
검은색 빗돌이 세워져 있고 비석 뒷면에는 문형산의 명칭에 대한 유래가 담겨 있다.
내용을 훓어보면,고려 말, 어느 예문관 대제학이 이 지역으로 내려와 이 곳에 머무르면서
마을 주위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이 산을 문형산文衡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문형(文衡)이라는 뜻은 조선 시대 때 대제학을 달리 일컫는 말인데
시대적으로는 고려 말이 아니고 조선시대가 아니었을까?
문형산 멧부리를 뒤로하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우측으로의 내리막 산길은 문형리로 향하는
산길이고 직진방향은 추자리를 가리킨다.수렛길을 닮은 넉넉한 숲길은 까다롭게 오르내림을
이끌지도 않으며 진창으로 얼룩져 까치발을 강요하는 무례함도 없이 차분하고
고즈넉하게 발걸음을 이끈다.
괴물처럼 산등성이를 차지한 송전철탑을 지나면 발품을 덜어 줄 벤치가 지친 산꾼을 기다리는
봉우리를 내 놓는다.따스한 물로 목을 적신 후 가랑잎이 무성한 내리막길로 발길을 돌리면
머지않아 또 다른 송전철탑이 앞을 가로막는다.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멧덩이 하나가
턱밑으로 다가온다.곧바로 가풀막으로 변한 산길을 올려치면 서너 평의 공터에 곱게 단장한
소나무들이 주변을 장식한 해발 277.8m의 두리봉에 오른다.
조금 전 넘어왔던 문형산의 멧덩이가 어느사이 까마득하고 아슴푸레하다.
이정표는 날머리인 고산리가 1.06km라고 넌지시 속삭인다.
시나브로 산길은 산자락을 낮추어 가면서 이속의 숲에서 세속으로
늙은 두 사내(용석이,나)의 등을 슬그머니 밀어댄다.
첫댓글 길동무는 아니보이고...ㅉㅉ
호젓한 문형산 쯔려밟고 갔구만
산이 있어 삶의 의미가 풋풋
그래도 초로의 인간 세상이여...
흙먼지 없는 맑은 하늘 구경이 그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