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시겠지만, 국립국어원이 지난 8월 31일자로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으나 그동안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았던 ‘짜장면, 먹거리’ 등 39개를 표준어로 인정한다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반가운 일이지요.
그동안 규범과 언중들의 실제 말글살이 사이에 적잖은 차이가 있어 이로 인해 생겼던 언어생활의 불편이 상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국립국어원의 이번 발표가 참으로 반가운 일이지요.
그래서 되짚어 봅니다.
‘짜장면’과 ‘먹거리’ 등 민중들의 입말로는 변함없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정작 제도권 안에서는 비표준어라는 이름으로 홀대를 받아왔던 말들이 새로 표준어로의 자격을 획득하기까지의 25년 지난 세월을 되짚어 봅니다.
2002년, 안도현 시인이 한 권의 동화책을 펴냈다. 제목인즉슨 ≪짜장면≫.
‘아뿔싸! 천하의 안도현 시인이 맞춤법도 제대로 모르시나?’
그런데 알고 보면 그게 그렇지 않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어떤 글을 쓰더라도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표기하지는 않을 작정이다. 그것도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짜장면이라고 쓰면 맞춤법에 맞게 기어이 자장면으로 쓰라고 가르친다. 우둔한 탓인지는 몰라도 나는 우리나라 어느 중국집도 자장면을 파는 집을 보지 못했다. 중국집에는 짜장면이 있고, 짜장면은 짜장면일 뿐이다. 이 세상의 권력을 쥐고 있는 어른들이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배워서 자장면이 아닌 짜장면을 사주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하자면 안 시인은 ‘짜장면’을 놔두고 굳이 ‘자장면’을 표준어라고 우기는 우리 어문정책에 어깃장을 부린 것이다.
그건 그렇고, 안 시인의 바람대로 우리는 이제 정말 우리의 아이들에게 ‘자장면’이 아닌 ‘짜장면’을 사줄 수 있게 되었다.
국립국어원(원장 권재일)이 ‘짜장면, 먹거리’ 등 그동안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았던 39개 단어를 비로소 표준어로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짜장면'을 '짜장면'이라고 아무 거리낌 없이 입으로 말하고 글로 적었다. 그러던 것이 1986년 ‘외래어 표기법’이란 것이 생기면서 국립국어원이 ‘짜장면’을 버리고 ‘자장면'을 표준어로 삼으면서 사달이 난 것이다.
자장면이 표준어가 됐던 것은 한자말 ‘작장면(灼醬麵ㆍzhájiàngmiàn)'의 초성 'zh'를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된소리를 피해 'ㅈ'으로 적기로 한데서 비롯된다. 또, 사전에도 통일돼 있지 않으므로 '짜장면'을 굳어진 외래어로 볼 수 없다는 것도 ‘자장면’을 표준어로 정한 다른 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정은 우리네 말글살이의 실제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어서 규정이 만들어진 1986년부터 지금까지 25년 동안 ‘자장면’은 관청의 공문서나 신문ㆍ 방송에서만 겨우 제자리를 지켰을 뿐, 여러 언어 대중은 일상의 말글살이에서 ‘짜장면’만을 줄기차게 고집했었다.
심지어는 이 같은 규정이 만들어진 것은 '된소리 발음이 어려운 지역 위원들이 다수였기 때문'이라는 근거가 불분명한 소문이 나돌기까지 했다.
안도현 시인뿐만이 아니었다. 동화작가 이현도 그의 동화 <짜장면 불어요!>에서 중국집 배달원이 아르바이트 소년에게 하는 말을 통해 ‘자장면’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었다.
"야 인마, 자장면이 뭐냐, 자장면이? 불어 터진 면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짬뽕은 짬뽕인데, 왜 짜장면만 자장면이라는 거야?"
이처럼 글 쓰는 것이 직업인 문인들조차 ‘짜장면’의 자리에 ‘자장면’이 들어선 것에 크게 반발하는 가운데 네티즌들도 다음 카페에 '짜장면되찾기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해 ‘짜장면’의 복권운동을 벌일 정도였으니, 표준어 ‘자장면’의 체면이 영 말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국립국어원이 지난 8월 31일자로 ‘짜장면’과 ‘자장면’을 복수표준어로 인정한다고 함으로써 ‘짜장면’과 ‘자장면’의 25년간 지루한 자리다툼은 ‘짜장면’에도 표준어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이에 대해 9월 1일 ‘진보신당’이 박은지 부대변인을 통해 내놓은 논평이 걸작이다.
“보수적인 언어정책의 피해자였던 '짜장면'이 드디어 표준어가 아니라는 누명을 벗고 사면복권된 느낌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는 언어는 생물처럼 변화하고 진화한다는 당연한 진실을, 그리고 이를 결정할 주체는 국가권력이 아니라 언어대중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국립국어원은 이후에도 적극적인 국민의 언어 실생활을 반영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언어정책으로 화답하기 바란다.”
아무튼 이제 ‘짜장면’도 어엿한 표준어가 되었으니, 우리네 말무리(言衆)는 이제부터는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짜장면’이든 ‘자장면’이든 그저 마음 쏠리는 데로 쓸 일이다.
‘짜장면’과 더불어 이번에 표준어의 자격을 획득한 ‘먹거리’도 그동안 많은 시빗거리를 낳은 단어의 하나다.
‘먹거리’를 표준어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던 사람들은 이 단어가 조어법을 어기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를테면 “의존명사 '거리'는 (명사 뒤에 붙거나 어미 ‘-을’ 뒤에 쓰여) 내용이 될 만한 재료를 일컫는 것이므로 동사 어간 '먹-'과는 결합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았으니, “의존명사 '거리'가 동사 어간 '먹-'과는 결합할 수 없다”는 규칙은 통사 규칙일 뿐, 조어는 얼마든지 통사 규칙과 무관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만일 조어가 반드시 통사 규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면 ‘늦가을, 뛰놀다’와 같은 소위 비통사적 합성어가 어찌 성립될 수 있겠느냐”며 따졌다. 따라서 '먹거리'가 조어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는 것은 '늦가을, 뛰놀다'는 반드시 '늦은 가을, 뛰어놀다'로만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는 억지라고 힐책했다.
‘짜장면, 먹거리’ 말고도 이번에 새로 표준어로 인정한 항목은 크게 세 부류, 모두 39개 단어다.
그 첫째가 이미 표준어로 규정된 말 이외에 같은 뜻으로 많이 쓰이는 말이 있어 이를 복수 표준어로 인정한 경우이다. 지금까지 ‘간지럽히다’는 비표준어로서 ‘간질이다’로 써야만 했으나 앞으로는 ‘간지럽히다’도 ‘간질이다’와 뜻이 같은 표준어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복수표준어로 인정된 말은 ‘간지럽히다’, ‘토란대’, ‘복숭아뼈‘ 등 모두 11항목이다.
둘째는 이전에 표준어로 규정된 말과는 뜻이나 어감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를 인정하여 별도의 표준어로 인정한 경우이다. 이를테면 ‘눈꼬리’는 ‘눈초리’로만 써야 했으나 ’눈꼬리‘와 ’눈초리‘는 쓰임이 다르기 때문에 ’눈꼬리‘를 별도의 표준어로 인정하였다. 이렇게 별도의 표준어로 인정된 말은 ’눈꼬리‘, ’나래‘, ’내음‘ 등 모두 25항목이다.
셋째는 ‘짜장면’과 같이 실제의 말글살이에서 표준어로 인정된 표기와 다른 표기 형태도 많이 쓰이는 경우로, ‘짜장면’ 말고도 ’택견‘, ’품새‘가 원래의 표준어인 ‘태껸’, ‘품세’와 함께 복수표준어가 된 것이다.
다음 표는 <새로 추가된 표준어 목록>이다.
지금까지 ‘외래어는 된소리로 표기하지 않도록 한 규정’에 따라 ‘짜장면’을 버리고 ‘자장면’을 고집해 왔던 국립국어원이 이번에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하였으니까 하는 말인데, ‘짜장면’처럼 말글살이의 현실에서는 기존의 표준어와 달리 쓰이고 있는 다른 외래어들 가운데에도 ‘표준어’ 자격을 부여해 줄만한 것이 없는지 찾아보았으면 한다. 예컨대 ‘배지(badge)와 버스(bus)’ 같은 외래어 말이다.
실제의 말글살이에서 ‘badge’를 ‘배지’로, ‘bus’를 ‘버스’로만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국회의원들이 저고리 깃에 달고 있는 그것을 ‘금빼찌’ 또는 ‘금뺏지’라고는 해도 ‘금배지’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나는 글을 쓸 때, 표기법에 따라 ‘배지’라고 써놓고도 아무래도 어색하여 굳이 괄호를 치고 그 안에다 ‘badge’라는 영어단어를 적어 넣는다.
버스도 마찬가지. 사람들은 대부분 ‘뻐스’를 타지 ‘버스’를 타지 않는다.
그리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한다’는 원칙에 따라 지방 말은 그 말이 아무리 아름답고 뜻이 웅숭깊어도 사투리로 홀대하는 우리의 어문정책도 한 번 돌아보았으면 한다.
일반적으로 특정한 사투리는 그에 대응되는 표준어가 있어서 그에 따라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실상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경상도 사람들이 잘 쓰는 '칼컷다'나 ‘새첩다’의 경우, '깨끗하다'와 ‘예쁘다’로 바꾸면 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가 않다.
경상도에서는 '깨끗다'는 말을 쓰면서도 '칼컷다'는 말도 달리 쓰고 있는데 이는 두 단어의 기능 부담이 다르다는 증거가 된다. 말하자면 '칼컷다'의 경우는 '시원하다, 깔끔하다'와 같은 경우에 쓰이는 단어이고 '깨끗하다'는 '청결하다, 맑다'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이다. 만약에 이것이 같은 의미와 환경을 가진다면 굳이 구분되어 쓰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새첩다'와 '예쁘다'도 그 쓰임새가 다르다. '새첩다'는 '귀엽고 앙증맞다'는 뜻으로 물건이나 사물에 주로 많이 쓰이고, '예쁘다'는 원래 '어여쁘다'에서 변한 말로 얼굴이 아름답다는 뜻으로 사람에 자주 쓰이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조롱박이 예쁘다'보다는 '조롱박이 새첩다'가 더 알맞은 표현이 되는 것이다. 만약에 경상도 말 ‘새첩다'를 모두 '예쁘다'로 대응 시키면 다양한 말맛이 모두 사라진다.
어디 경상도 말뿐이랴. 전라도 말에도, 충청도 말에도, 강원도 말에도, 또 경기도 말에도 예쁘고 아름답고 고운 말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혹 이들 말들 중에 표준어 반열에 올릴만한 말은 없을까. 그리할 수만 있다면 그만큼 우리의 말글살이가 넉넉해 질 텐데….
국립국어원이 이번에 ‘새로 추가된 표준어’를 발표하면서 앞으로 “언어 사용 실태 조사 및 여론 조사를 통하여 국민의 언어생활에 불편한 점이 없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그 결과를 규범에 반영함으로써 국민들이 국어를 사용할 때에 더욱 만족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계획”이라는 말도 덧붙였는데 그 말을 믿고 기다려 볼 일이다 싶다.
◆ <새로 추가된 표준어 목록> 파일
새로 추가된 표준어.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