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축구부 신고식 上 해병대 축구부 숙소는 용산구 한남동에 있었다.
축구선수 가운데 유난히 해병대 출신이 많은 것은 68년 1?21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육·해·공·해병대 가운데 복무기간이 24개월로 가장 짧았기 때문이다.
이이우 박수일 조중연 이회택 노흥섭 박수덕 유기흥 고봉우 등 50세 중반 이후의 연령층 가운데 유난히 해병대 출신이 많은 것도 그 까닭이다.
예나 지금이나 군 팀에 입대하면 우선 기본군사교육을 받은 뒤 소속팀으로 배치받는다.
그리고는 각 군의 전통을 살린 독특한 신고식을 거쳐 군팀의 일원이 된다.
그러나 군대는 엄연한 계급과 군번이 질서를 유지하는 기준이 되는 사회임에도 축구팀은 계급이 아닌 고교 선후배가 서열의 기준이 됐다.
장순필 대한축구협회 경기위원장이 하사 시절인 71년 무더위가 시작된 7월 원흥재 조한흥이 3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치고 한남동 숙소에 합류했다.
이때 해병대 팀에는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전무가 상병이었고 주장은 백남건이었다.
해병대 축구팀 숙소는 직할 경비대 내에 있었지만 선수들이 영양식을 해야 한다는 부대장의 배려로 식사는 특별 계약한 영외 식당에서 했다.
장하사는 신병교육을 시킨다며 원흥재 조한흥을 데리고 김학훈 상병과 함께 영외 식당으로 가 취기가 돌 정도로 막걸리를 마셨다.
그리고는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2차 신고를 하기 위해 4홉들이 소주 2병을 들고 부대로 향했다.
장하사 일행은 부대로 가는 길이 오르막이라 힘이 든 데다 배가 부르도록 마신 막걸리 술기운이 돌자 외환은행의 김정남(울산 현대 감독)의 처갓집 담장 밑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장하사는 ‘짝빼기’ 유인갑 감독이 이런 모습을 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짝배기’ 유감독은 평소 선수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웬만한 잘못은 눈감아 주지만 한번 걸렸다 하면 왼손으로 요절을 내기 때문에 선수들은 유감독의 지시를 하늘과 같이 따랐다.
공식회식이 없는 한 숙소로 술을 갖고 오지 말라는 것도 유감독의 지시사항 중 하나였다.
<계속>
/ 김덕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