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거 해제를 하루 앞둔 8월20일 불영사 천축선원에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수행납자들의 정진이 이어졌다. |
가을이 온다는 입추를 지나 날씨가 서늘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를 불과 3일 남겨둔 지난 20일에도 무더위는 지칠 줄 모르고 기승을 부렸다.
올해 유난히 더웠던 여름 안거 해제를 하루 앞두고 울진 불영사 천축선원을 찾았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비구니 선원 가운데 한 곳인 불영사 천축선원은 해제를 앞둔 들뜬 기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통팔달. 서울부터 부산까지 3시간이 못 미칠 정도로 전국이 1일 생활권이지만 불영사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다. 여름 휴가철이 지나 뻥 뚫린 도로를 바쁘게 달려도 족히 5시간은 걸렸다. 교통이 발달한 좋은 세상이지만 불영사는 조금은 불편한 곳이다.
때문에 이곳에 위치한 천축선원은 ‘동해 제일 수행도량 중 하나’라고 일컫는지 모른다. 그 정도로 불영사는 수행을 위한 더없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일주문 주변에는 사하촌이 없다. 흔하다는 식당도 1곳이 전부다.
일주문을 들어간다고 바로 전각을 만날 수도 없다. 불영계곡을 따라 1.2km를 걸어야 겨우 전각 지붕을 만날 수 있다. 사찰을 감싸 도는 계곡과 우뚝 솟은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불영사는 그 자체가 수행도량이었다.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651) 의상스님이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의상스님은 이곳의 산세가 인도의 천축산을 닮았다고 해서 천축산이라 이름 짓고 사찰을 세우니 구룡사가 그것이다. 이후 불영사 경내 연못에 부처님이 비친다고 해서 불영사로 고쳐져 지금에 이른다.
정진 후 포행을 하고 있는 선원 수좌들. |
지금도 연못인 불영지를 바라보면 서쪽 산 소나무숲 사이에서 불쑥 솟은 바위가 물에 비치는데, 합장하고 있는 부처님에게 예경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는 듯해 신기하다.
유난히 긴 여름을 보내고 있는 불영사 천축선원에는 이번 하안거에 20명의 니납자(尼衲子)들이 방부를 들였다. 외호대중 20명도 함께 정진하니 모두 40명 스님들이 참나를 찾기 위한 여정에 들었다.
천축선원이 본격적으로 문을 연 것은 지난 1996년이다. 1970년대부터 선원은 있었지만 협소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현 주지 일운스님이 인재 불사한 결과다. 일운스님은 이외에도 수많은 불사를 진행했는데 그 이유는 오로지 “수행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다.
역사는 길지 않지만 천축선원은 엄격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백장청규와 같은 철저한 청규가 선원을 이끈다. 계율이 청정해야 수행도 분발한다는 가풍이 발휘된 결과다. 천축선원은 하루 10시간씩 정진한다. 용맹정진하는 날이면 12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대부분의 음식재료는 직접 씨 뿌리고 거둘 정도로 자급자족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선방 수좌들도 대중 울력이라는 또 다른 수행에 매진한다. 산문에 들어서면 절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다. 외부와의 접촉도 금지된다. 휴대전화 통화는 당연히 안 된다.
외부에서 전화가 오더라도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납자들에게 전하지 않는다. 일부 노스님을 제외하고는 오후불식 한다. 선원 안에서는 일체 묵언이다. 선원 담장 밖으로 목소리가 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특히 해제 3일전부터는 경내 전체가 묵언한다. 지나는 길에 말을 건네도 스님들은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불영사는 언제 어디서든 수행하기 원하는 대중 누구나에게 열려 있다. 그래서 여름과 겨울 안거 외에도 봄 가을 산철에도 선원 문을 열고 있다. 재가불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불영사 수행가풍은 재가불자와 함께 한다는 것이다.
불영사는 해제 3일 전부터 재가불자들도 함께 정진한다. 이번 안거에도 100명이 넘는 재가자들이 모였다. |
하안거와 동안거 해제 3일전에는 산문을 열고 재가자들에게 선원을 개방한다. 벌써 20년이나 된 불영사의 전통이다. 이번 하안거에도 100명이 넘은 불자들이 정진하고 있다. 물론 천축선원에서 스님들과 같이 하는 것은 아니고 설법전에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해제일 스님들과 해제법회에 참석해 함께 회향한다. 안거 정진하는 재가불자들의 가슴에 ‘오후불식 묵언수행’이라 적힌 표찰이 눈길을 끈다.
철저한 계율을 바탕으로 출재가자가 모여 수행하는 전통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는 불영사. 하지만 전통을 고수하고 지키는 데만 매진하지 않는다. 변화된 환경과 시대적 요구에도 호응하고 좀 더 나은 수행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는 곳이 불영사다.
재가수행자들에게 간화선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사례다. 초기 화두선을 들게 했지만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목도한 불영사는 염불선으로 변화를 줬다. 사찰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지속적인 수행을 하기를 바랐던 불영사가 마련한 배려다.
이는 주지 스님의 철학에서도 나타난다. 주지 일운스님은 “사람들은 과거 혹은 미래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지만 바로 지금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지금을 잘 살지 않으면 인생을 놓치므로 항상 집중하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주 동민스님도 “수좌로서 공부에만 매진하다보니 남을 이해하는 자비심이 부족했었다”며 “불영사에서 정진하며 자비 실천을 함께 하면 공부가 더욱 무르익는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았다”고 말했다.
보리만 중시하거나 중생 구제에만 매진하지 않고 양 수레바퀴를 같이 굴리며, 지금 바로 여기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있는 불영사. 동해 제일 비구니 수행도량이라는 별칭이 왜 어울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수행 후 포행에 나서고 있는 재가불자들. 불영지를 배경으로 가운데 위쪽에는 부처 바위가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