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극복 : 변나명용 – 한창수 목사 >
고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변장된 축복이다. 인생은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참 복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 없이 잘되는 것이 가장 무서운 저주라는 말이 있다. 고난은 우리의 겉옷, 화려함과 겉치레를 다 걷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게 한다. 욥은 느닷없는 고난 가운데 자신의 실존적인 현재를 깨닫고 난 후에 고개를 들어 시선을 하나님께 두었다. 사방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비치는 한 줄기 희미한 빛은, 캄캄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오직 작은 그 빛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고난은 내가 잃어버린 것에 집중하기보다 캄캄한 중에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해주는 축복의 순간이다. 비행기가 밤에 착륙할 때 기장은 캄캄한 땅과 하늘을 바라보면서 어디가 길인지 찾지 않는다. 공항에서 보여주는 활주로 유도등, 유일하게 환한 그곳에 집중한다. 기장이 ‘어? 낮에는 환하게 잘 보였는데 그 길들이 다 어디 있지? 안 보이네’ 하면서 낮에 보았던 길을 찾으려고 하면 추락하고 말 것이다. 캄캄한 밤에는 오직 활주로만 보면 된다. 고난 중에는 보이지 않는 캄캄함에 막연한 희망을 걸지 말고, 유일하게 보이는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고난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어둡게 하고 보아야 할 하나님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활주로의 유도등 같다.고난당한다고 생각될 때는 그분을 생각하고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찾고 그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륙한 비행기의 엔진에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회항하여 비상착륙을 해야 한다. 그런데 막 이륙한 비행기는 그냥 착륙할 수가 없다. 비행을 위해 엄청난 양의 연료가 양 날개에 가득한데, 비상착륙 하는 과정에서 그 무게로 사고가 나거나 폭발이나 화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 이륙한 비행기는 활공 상태로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연료를 버리는 작업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연료를 다 버리고 기체를 가볍게 한 후에 최대한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탑승한 승객들은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쿠션 같은 것을 안은 채 자세를 최대한 엎드려 낮춰야 한다. 숨 막히는 위기감 속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착륙을 하기 위해 비상활주로로 내려가기 시작하면 ‘무사히 착륙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함께 비상활주로를 비추는 빛이 구세주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루아침에 온갖 고난이 예고 없이 몰려왔을 때 욥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납작 엎드려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 인간 존재의 가장 밑바닥 본질을 드러내며 겸손해졌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예배했다. 욥은 고난당했을 때 즉각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욥의 인생 날개에 가득 채웠던 모든 연료를 버리고 하나님이라는 비상활주로로 달려와 엎어졌다.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기도’다. 기도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 본질의 낮음, 자신의 흙 됨과 하나님의 궁극성,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기도는 자신을 가장 낮추고 하나님을 가장 높이는 것이며,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이심을 철저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기도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고 위대한 창조주이신지를 고백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곧 예배다. 욥이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표현은 그가 엎드려 기도했다는 의미다. 고난이 변장하고 오는 축복인 이유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성경이 욥기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는 메시지는, 고난은 우리의 무릎을 하나님 앞에 꿇게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물질과 세상 권력 앞에, 자기 자존심 앞에 꿇었던 무릎을 하나님께 꿇게 하는 은혜가 고난의 이면에 숨어 있다.
고난은 우리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연단하는 용광로와 같다. 금의 순도를 나타내는 단어는 ‘캐럿’이다.
캐럿은 중동지역에서 나는 콩과 식물의 한 종류인 ‘캐럽’(Carob)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9세기 중동지역에서는 말린 캐럽을 한 손에 쥔 정도를 기준으로 금이나 소금 등의 물건을 교환했다. 캐럽이 무게를 재는 기준이 됐던 것이다. 캐럽은 보통 어른의 손으로 쥐면 24개가 잡히는데, 순도가 가장 높은 99.99퍼센트의 순금을 24K라고 표시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했다. 18K는 24분의 18 정도의 순도이므로 75퍼센트가 금이고 나머지 25퍼센트는 다른 금속이 들어 있다는 의미가 된다. 고대에는 금을 정제해서 제련할 때 주로 녹여서 금의 순도를 맞춰냈는데, 요즘처럼 순도를 측정할 기술이 없었다. 그때 금 제련사들이 사용하는 금의 순도를 감별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녹은 금에 자기 얼굴을 비춰 보아 자신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일 때까지 녹여내는 것이다. 선명하게 잘 보이면 순금이고, 흐리게 보이거나 안 보이면 불순물이 많이 섞인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나님의 용광로인 고난은 그 속에 우리를 넣어서 하나님의 얼굴이 비칠 때까지 우리를 녹이시고 태우시고 낮추신다. 고난이란 연단을 통해 찌꺼기는 없애고, 깎을 것은 깎고, 버릴 것은 버리도록 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그 인격에서 찾으신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는 거울과 같다. 세상의 고난은 고난 자체에 몰입하여서 삶의 질고와 어두움이 상흔으로 남지만,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그 고난을 통해 순결해지고 순도가 높아지며 하나님의 얼굴이 드러나게 된다.
고난은 하나님이 함께하기 위한 장소이며, 하나님이 그 자리에 함께 계시며, 거기서 자신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신다. 다니엘의 사자 굴에 하나님은 함께하셨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풀무불 속에 네 번째 사람, 그가 하나님이셨다. 고난에 몰입하지 말고 거기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자. 우리가 그 얼굴을 대하기까지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아야 한다. 고난의 결론은 눈으로 보는 듯 선명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