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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문화와 역사가 숨쉬는 곳) ◐부소산성과 낙화암/고란사◑
부소산성은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사비시대의 도성(都城)이다.『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사비성, 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이 산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 도성의 일환이며,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538년(성왕 16) 수도의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나, 이 보다 먼저 500년(동성왕 22)경 이미 산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천도할 시기를 전후하여 개축되었고, 605년(무왕 6)경에 대대적인 개수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일부의 성벽은 통일 신라 시기에 수축되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고을의 규모에 맞도록 축소되어 이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축성의 구체적 방법을 보면 성벽 안쪽의 흙을 파서 성내 벽쪽에 호(壕)를 만든 한편, 그 파낸 흙을 성벽의 축조에 판축의 재료로 이용하였다. 바깥 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을 세우고, 성벽의 안쪽과 중간에도 기둥을 세워 분할 축조되었다. 기단에는 낮게 석축을 하거나, 기단 석렬을 마련하고, 안쪽으로 배수로 겸 통행이 가능한 좁은 부석(敷石)의 시설도 있다. 성벽에는 가로 세로로 목재를 넣은 것도 있다. 후대의 것은 무너진 흙을 내벽에 보축(補築)하기도 하였다. 성의 바깥 벽면은 기반토(基盤土)를 마치 판축(版築)하듯이 황색 사질토와 적색점질토를 겹겹이 다져 놓았다. 그 위에 돌을 3~5단으로 쌓고 흙을 덮었다. 이런 방식으로 축조된 산성의 입지는 경사면이어서 원래의 경사도보다도 더욱 가파른 경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이 산성의 아래 너비는 7m 가량이며 높이는 대략 4~5m에 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성이 백제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수축, 개축을 거치며 사용된 것이긴 하나, 년차적인 조사에 의하여 성벽과 치성 및 특수한 시설과 내부의 여러 가지 양상이 차례로 밝혀져, 우리나라 고대 축성 기술의 박람회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표고 106m의 사비루 부근의 산봉우리,를 중심하여 조사된 구간에서는 다양한 집터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성에는 동,서남문지가 있으며, 북쪽의 금강으로 향하는 낮은 곳에 북문(北門)과 수구(水口)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궁남지(서동공원 관람) ; 40분 황포돛배 체험(희망자) ; 30분
(오늘 하루만이라도) ◐백마강에 무거운 짐과 모든 상념(想念)을 흘려 보내고...◑
“푸른 달빛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백마강에 황포돛배 뜬다” 구름 한 점 없이 깊고 깊은 푸른 하늘 위로 보름달이 둥실 솟아 은은한 달빛이 부여의 진산 부소산을 에워싸고 있다. 나당 연합군의 말발굽이 천지를 진동 하던 날 숨막히듯 가뿐 숨을 내쉬며 부소산을 오르는 여인들은 백제의 멸망과 함께 다시는 보지 못할 절경에 마음이 더 아팠으리라. 이 같은 역사적인 사연과 아름다운 풍광을 바탕으로 황포돛배를 재현하고 백제의 한이 서린 백마강을 일주하는 관광은 색다른 감흥을 줄 것이다. 백마강을 일주하는 황포돛배는 길이 19.8m, 폭 4.5m 규모로 승선인원은 47명 정도이며 외형은 옛모습 그대로 복원하고 내부는 편의시설과 안전설비를 갖춰 안전도를 높임은 물론 관광객이 소음으로 인한 불편이 없도록 무소음 전기 모터를 장착하였다. 황포돛배는 백마강의 고란사와 수북정간 3.5km 구간에 걸쳐 왕복 운항하게 되며 관광객을 매료시키는 부여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매김 하고있다.
◐궁남지(서동공원) 연꽃축제 ; 7월 중순경(면적 약10만평)◑
★65세 이상은 신분증 지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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