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북부 하르키우 카멘카(카미얀카)의 한 마을에 있는 주택들이 포격으로 파괴돼 있다. 카멘카/AFP 연합뉴스© 제공: 한겨레 우크라이나 전쟁의 두 가지 시나리오© 제공: 한겨레 [세계의 창]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지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기념할 게 없다.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부를 축출하거나 우크라이나 영토 전부를 러시아로 병합하지 못했다. 1년간 러시아군은 6만~7만명이 전사하고 20만명 가까이 부상했다. 탱크는 절반 가까이 잃었는데, 한달에 150대를 잃지만 유일한 탱크 공장은 20대만 보충해줄 수 있다. 징집병을 더 모으려는 노력은 전국적 반발을 만났다. 러시아인들은 준비 안 된 징집병들을 사선으로 계속 밀어넣는 우크라이나 전선을 ‘고기 분쇄기’라고 부른다. 러시아 경제는 제재 때문에 붕괴하지는 않았으나 상황이 안 좋다.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2% 축소됐다. 외국 기업 수백곳이 철수하거나 운영을 중단했다. 푸틴 정부는 화석연료 같은 원재료 수출로 경제를 지탱하고 전쟁 자금을 충당하지만 이는 지속 가능한 전략이 아니다. 러시아인 50만~100만명이 푸틴의 정책에 항의하거나 징집을 면하려고 나라를 떠났다. 엑소더스(대탈출)가 푸틴의 반대자 수를 줄이기는 했지만 러시아에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이 사라졌다. 원자재 중심의 경제를 다변화하지 못하고 ‘두뇌 유출’까지 겪는 것은 전쟁 수행을 위해 미래를 저당잡히고 있다는 뜻이다
외교 정책 측면에서 보면, ‘러시아의 세계’를 확대한다는 푸틴의 결심은 이를 저지하겠다는 세력의 연합을 키울 뿐이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나토의 동진에 대한 분노 자체에는 정당성이 있지만, 그는 서구가 동맹을 확대하고, 군사비를 늘리고, 우크라이나 같은 나토 비회원국들과 협력을 가속하게 만들었다. 푸틴은 유럽 극우 정당들의 지지도 거의 잃었다. 그의 비유럽 동맹들조차 흔들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총회 결의에 단 7개국만 반대했다. 이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전쟁에 집착한다. 적어도 돈바스 지방 전체와, 2014년에 합병한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우크라이나 남부 지방을 원한다. 그는 인구 규모 덕에 러시아가 소모전에서 이길 것이라고 믿는다. 최대 100만명의 러시아인이 나라를 떠나기는 했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인구의 20%가량인 800만명이 외국으로 대피했다. 또 푸틴은 서구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가 감소하면서 군사 원조도 고갈될 것이라고 본다. 미국과 유럽 여론조사에서는 전폭적 군사 원조에 대한 지지가 약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무기 제공이 당장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앞으로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젤렌스키는 가능한 한 많은 첨단 무기를 빨리 확보하려고 한다. 우크라이나가 진창이 사라지는 봄의 어느 시점에 개시하려는 2차 반격에 많은 게 달렸다. 우크라이나군이 돈바스와 크림반도 사이에 쐐기를 박는다면 크림반도를 고립시키고 점령군을 몰아내는 데 유리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경우는 1995년 크로아티아군이 세르비아군을 점령지에서 몰아낸 사례에 빗대 ‘크로아티아 시나리오’라고 부를 수 있다. 크로아티아군의 ‘폭풍 작전’은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끝낸 평화협정으로 이어졌고, 세르비아인들의 지지를 잃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5년 뒤 선거에서 패했다. 다른 시나리오는 한국 같은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한국전쟁처럼 첫해에 점령 지역 변동이 컸다. 그다음에는 한국전쟁의 이후 2년처럼 본래 경계선 주변에서 교착에 빠져 전투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마지못해 휴전에 동의할 수 있다. 둘 중 어느 시나리오로 갈지는 알기 어렵다. 1년간의 전쟁이 보여준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있다면 예측 불가능성이다. 러시아는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우크라이나는 이를 격퇴해 거의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어쩌면 전쟁의 두번째 해에는 침략자는 처벌받고 피해자는 정당한 자리를 되찾는 가장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런 평화를 위해서는 분명히 싸울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