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토니 Anthony (251-365)
수도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안토니는 A.D.251년경에 이집트 중부에서 기독교인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269년경에 그는 교회에서 복음서를 낭독하는 것을 듣고서 그 말씀을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가서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는 자기가 사는 마을 근처에 있는 은둔자의 지도하에 금욕생활에 전념했다. 285년경에 그는 완전한 독거생활을 하기 위해서 혼자 사막으로 들어갔다. 그의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들은 그가 사는 곳 근처에 정착하였다. 305년경에 그는 그들의 영적 교부로 활동하기 위해 자신의 은거지에서 나왔다. 그는 최소한 두 차례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했다.
한번은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진행 중일 때였고, 또 한 번은 이단과 싸우는 아타나시우스 주교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는 105세에 사망했다. 아타나시우스는 안토니의 전기를 저술했는데 그것은 기독교 세계에 수도 운동의 이상을 퍼뜨리는 데 대단히 큰 영향을 주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유배 기간 중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들과 동거하기도 했는데 이런 경험을 토대로 안토니의 생애를 저술했다. 그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수도원 운동을 신학적으로 잘 판단하여 모든 교회에 정착시키기를 원하였다. 아타나시우스는 안토니를 예수 그리스도 다음의 모델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를 가장 닮은 사람으로 보려 했다.
(1) 안토니의 생애
제1기 - [안토니의 생애](The Life of Anthony) 는 안토니가 부모님이 사망한 후에 금욕적인 생활을 시작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교회에서 "네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복음서의 말씀을 읽는 것을 듣고는 즉시 그대로 실행했다 그는 경제적인 능력을 부인 하고서 금욕의 길을 아는 사람들과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 그는 마을 가까이의 은수사들을 찾아다녔고 사람들의 주거지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다. 그것은 생활 수단의 조달이 비교적 쉬운 까닭과 광야를 악마들의 거주지로 여겼기 때문인데 광야의 뱀이나 맹수 등을 악한 영의 출현 형태로 보았기 때문이며 사단의 여러 가지 모양은 모두 자기 마음의 상태가 형상화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제2기 - 안토니가 무덤에서 생활하면서 죽음의 권세들이 그에게 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극복한 시기이다. 첫 시기의 성공 후에 더 높은 금욕과 격심한 악마와의 투쟁의 시기이기도 하다. 안토니는 이 시기에 무덤에서 분투하였으며 그리스도께서 안토니를 구해주신 경험을 하게 된다. 안토니의 경험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죽음과 마귀들을 정복하신 승리자였다
제3기 - 안토니는 사막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 버려진 성곽 안에서 생활했다. 안토니의 시대에는 사막은 마귀와 그의 부하들의 거처라고 믿었다. 안토니는 그 싸움에 시간과 정력을 모두 기울였다. 다른 수도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생계를 위해서 노동을 했으나 또한 암송한 성서를 묵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제4기 - 약 20년의 수도 후 그는 수도사의 아버지, '압바'(Abba)로 불려졌고 아직 완전히 조직되지는 않은 다소 자유로운 공동체-하나의 머리를 가진 순수한 은둔소-에서 생활하였다. 그의 최종적 체류 지는 수에즈로부터 대략 남쪽으로 100km, 흑해(수에즈만)로부터 40km 떨어진 곳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105세에 사망했다.
(2) 수도 생활의 특징
안토니의 생애는 엄격하게 자신을 연단하는 생활이었을 뿐만 아니라 온유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생활이기도 했다. 그는 은둔자로서 완전히 단순화된 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충고하고 화해시켜 주고 병을 치료해 주고 용기를 주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생활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적 영성 생활, 즉 수도생활을 만들어 냈다. 그는 세계 최초의 수도사는 아니었지만 특별히 기독교적인 동기를 가지고서 사막 깊숙이 들어간 최초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안토니의 수도 생활의 특징은 세상적인 삶으로부터의 전적 이탈과 초인적인 자기 훈련을 통해 악한 정욕과의 싸움을 싸워 그것에서 자유하게 되는 영적 진보를 나타냈다. 이것은 현재적 성취를 넘어서 계속 나아가는 역동적인 것이었다. 그 결과 그가 도달한 경지는 인간성의 완성 또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형성이며, 새사람 됨의 자의식이 선사된다. 그 수행은 성경과 기도, 사랑과 자비의 행위, 손노동, 가장 가난한 삶을 통한 단순화이다. 이것은 덕과 실천의 연합을 의미한다.
그의 수도 생활을 세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기도 - 안토니가 권한 일상적 형태는 기도와 노동을 번갈아 하는 것과 자연스러운 몸의 욕망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나. 노동 - 노동을 기도생활에 방해되는 행위로 생각한 일부와는 달리 그에게 있어 노동은 진정한 기도의 긴장과 기도의 정서를 유지시켜 주는 것이었다.
다. 가난 - 개인의 원칙적인 가난과 무소유는 후일 수도원 운동의 주춧돌이 되었다.
라. 순종 - 당시의 은둔 수도원이나 공동 생활하는 수도원에서도 영원히 구속하는 서약은 없었으나 선생 (압바,암마)에 대한 절대적 순종은 수도의 길에서 자칫 망가지기 쉬운 정신적 육체적 퇴락을 막는 중요한 과제였다. 곧, 순종은 영혼의 한 지도자에 대한 전적인 복종으로서 그러한 불행을 방지하는 보장된 수단이었다. 때때로 선생으로부터 주어지는 비상식적 요구나 수모, 시련 들 꿋꿋이 견디고 그의 영적인 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자는 결국 초자연적 투명함에 이르게 된다고 믿었다.
마. 장소 - 원칙적으로 한 장소 즉 수도실 안에 머물러 있는 일이 중요했으나 안토니는 그의 생애에서 여러 번 이동이 있었다. 이것은 중요한 필요에 능동적인 대처를 위함이었는바. 박해기에 알렉산드리아에 머물며 순교를 기다렸고 뜻을 이루지 못하자 감금된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했다. 또한 아리우스 논쟁과 관련하여 수도에 나타나 정통주의를 옹호했다.
바. 참회, 겸손, 사랑 - 사람이 구원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업적이나 기적을 통해서도 아니고, 더욱이 일차적으로 금욕을 통해서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겸손을 통해서이다. 자신의 의를 의지하는 자는 낭패를 볼 것이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참회의 심정으로 타인을 용서하고 용납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 신관 - 하나님의 신비를 캐내려고 하는 것은 참된 수도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분명히 명해지고 말하여진 것으로 만족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일 뿐이다.
아. 성서관 - 성서를 많이 암기할 수 있으나, 학문적이거나 이성적인 설명을 위하여 힘쓰지 않고 내적인 깨달음을 기다리거나, 그의 무지를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