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女僧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금덤판: 금 캐는 광산
*섶벌: 일벌
*머리오리: 머리카락
멋지고 잘생긴 시인. 무수히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시인이 백석 시인이다.
일제강점기 185cm라는 당시 어마어마한 키에 휜칠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 시작(詩作), 러시아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에 능통한 언어 천재로서 세 번의 결혼을 한 이력과
여인과 함께 통영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로 만들어버린 이야기
그리고 김영한이라는 재일 동포 여인이 1980년대 후반 당시 1,0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백석 시인을 위해 길상사라는 절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하며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 일, 100권을 사비로 1936년 한정 발간한 그의 첫 시집 '사슴'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용(龍)이 되어 어딘가에서 나타나 주기만 한다면 1억 원을 호가하는 돈으로 사겠다는 이가 지금도 줄을 선 전설 중에 전설의 이야기를 가진 이가 백석 시인이다.
오늘은 이런 백석 시인의 그 유명한 전설의 시집 '사슴'에 수록된 '여승'을 들여다 본다..
시 속에 서정적 자아는 여승과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그 여승을 만난 적이 있다. 바로 평안도 어느 금전판에서 옥수수를 팔던 여인이다. 여인의 옆에는 (말을 듣지 않는, 혹은 자꾸 칭얼대며 장사를 방해하는 나이 어린) 딸아이가 있었다. 그 딸을 때리고 눈물을 보이던 여인이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은 아내와 딸을 두고 일벌처럼 나간다. 그리고 여인은 딸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옥수수 장사를 하여 연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록 남편의 소식은 없다. 설상가상으로 딸아이도 죽었다. 삶에 지친 여인은 삭발을 하고 중이 된다. 그리고 오늘, 여승이 된 그 여인을 만나 합장하며 인사를 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여승은 으레 인사를 하듯이 합장을 했을 것이다. 산 속 생활이 오래였는지 산나물(가지취 - 참취나물) 냄새가 난다. 그 얼굴은 예전에 본 얼굴 그대로이다. 나 역시 그리 좋은 신세가 아니기에, 여승이 되어버린 여인의 삶이 서러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