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사유수(思惟修)/불교인의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함장
|
원광스님(555~638)은 불교에 바탕을 둔 다섯가지 계율을 만들고 백성들이 누구나 다 지킬 수 있도록 이끌어 화랑도는 물론 백성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원광스님은 출가하여 불교를 더욱 깊이 공부하고자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그 곳에서 널리 이름을 떨칠 정도로 유명하였습니다. 원광스님이 고국인 신라로 돌아왔을 때는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로부터 자주 침략을 받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수십 년 만에 돌아오자 늙은이건 어린이건 모두 기뻐하였고, 왕은 스님을 만나보고는 성인처럼 공경했습니다.
원광스님은 성품이 겸손하고 항상 웃음으로 사람을 대하였으며 결코 화내는 일이 없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의 경전 중에서 《열반경》에 크게 감동했는데 특히, ‘모든 중생은 다 같이 부처가 될 성품을 지니고 있다.’ 는 부처님의 말씀이 너무나 스님을 기쁘게 했답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 지위가 높거나 천하거나, 남녀노소 차별이 없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났습니다.
스님이 청도 운문사에서 십여 리 떨어진 가실사에 머물고 있을 때 귀산과 추항이라는 젊고 건장한 두 청년이 찾아와 스님께 부탁했습니다.
“스님, 저희들은 화랑이지만 어리석어 아는 것이 없으니 한 말씀 가르쳐 주시면 평생의 교훈으로 삼겠습니다.”
원광스님은 나라를 위해 무술을 닦고 전쟁터로 나가 적과 싸워야 하는 두 젊은 화랑을 생각하여 그에 맞는 다섯 가지 계율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첫째는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써 하고(사군이충 - 事君以忠), 둘째는 부모를 섬기되 효도로써 할 것이며(사친이효 - 事親以孝), 셋째는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는 신의로써 하고(교우이신 - 交友以信), 넷째로는 전쟁터에 나아가서는 물러남이 없어야 하고(임전무퇴 - 臨戰無退), 다섯째로는 살생을 하되 잘 가려서 해야 한다.(살생유택 - 殺生有擇) 이렇게 다섯 가지이니 잘 지켜서 헛되지 않게 하게.”
이렇게 하여 그 유명한 원광법사의 ‘세속오계’가 만들어졌고 진평왕 24년 백제군이 쳐들어 왔을 때 귀산과 추항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는데 이를 지켜본 신라 군사들이 힘을 합쳐 용감히 싸워 아막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원광스님은 이 외에도 미신적인 주술로 재앙을 쫓고 병을 고치는 풍습에 젖어 있던 백성들에게 부처님의 바른 도를 지키고 참회하도록 일깨우면서 불교가 널리 뿌리내리도록 힘을 쏟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