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을 중단해야하는 스승의 날의 비애
20여 년 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그 날, 학교 운동장에는 때 늦게 내린 눈이 잔설로 운동장 군데 둔데 남아있었고 진창이 되어버린 운동장은 살얼음이 밟히며 질퍽거렸다. 게다가 북향의 교사(校舍)가 그림자를 길게 드리워서 입학식이 진행되는 운동장은 매우 을씨년스러웠다. 암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 받고 투병 중이시던 아버지께서는 장손의 입학식을 보시기 위해서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시고 학부모 대열에 합류하셨는데 입학식 내내 아버지의 관심사는 오직 장손의 담임선생님에게 있었다.
그 옛날 중학교 입학시험이 존재하던 시절, 이 나라 최고의 중학교에 가장 많은 아이들을 합격시키던 서울의 모 초등학교에서 살림살이를 맡으셨던 경력과 더불어 교육계를 너무나 잘 아시는 아버지였지만 자식들에게는 그에 대한 파일을 한 번도 공개하신 적이 없으셨다. 그런데 손자의 초등학교입학을 앞두고 그 파일 중에 지극히 일부를 공개하셨다. 그것은 담임선생님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손자의 초등학교 입학과 더불어 그것이 당신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학교에 재직하던 시절에 1 학년을 전담하던 어느 유력한 여교사가 했던 말을 전해주셨는데 이는 하나뿐인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키는 우리 부부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 여교사는 당시 오랜 경력과 남편으로 인한 엄청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말의 내용인 즉 ‘내가 일주일만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아이는 바보가 되고 만다.’는 것이었다. 아주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이 말은 학부모 입장에서 충분히 두려움을 가지게 만들었다.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손자의 입학식에 오셔서 유독 담임선생님에게 관심을 쏟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담임선생임의 인상이 좋다고 말씀하시며 조금은 안심하시는 것 같았지만 그 후로도 손자의 학교생활에 대하여 자주 물으시며 염려를 놓지 않으셨고 우리 부부는 아이를 학교에 볼모잡힌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후로 아내는 학교 및 담임선생님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온갖 지혜를 짜내었다. 살림이 넉넉지 못했던 이유와 더불어 뇌물에 대하여 거의 알레르기반응을 보이던 나의 소신 - 어쩌면 가지지 못한 자가 지닌 열등감의 다른 표현이었는지도 모르지만 - 아내는 나의 소신(?)을 존중하며 적절하게 처신했던 것 같다. 학년 초에 몰리는 뇌물성 촌지행렬을 비껴서 4 월 중순 쯤에 약간의 촌지를 들고 담임선생님을 알현(?)했고 주로 몸으로 봉사했으며 학년이 끝나는 종업식 전에는 촌지가 아닌 간소한 선물을 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학교가 아내의 이러한 부담 없는 처신을 어여삐 여겼는지 아이가 3 학년 쯤 되자 아내는 여러 선생님들과 격의 없이 지내기 시작했고 일부 선생님들과는 지금까지도 그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아내 덕에 아이는 모든 과정을 무난하게 마치고 이제 대학교 졸업을 불과 한 달 정도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파일을 경험한데다가 월간지에 수표를 끼워서 정기 상납하는 학부모들의 치맛바람 속에서 아이를 지켜낸다(?)는 것은 우선 심정적으로 상당한 부담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나의 경험이 지금도 학부모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고 상황이 예전보다 더욱 심각해졌는지 스승의 날에 휴교를 선포하는 지경이라니 기가 막힌다.
촌지문화라는 망국적인 문화가 교육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것도 아니고 아이의 교육이 볼모잡히는 것 같은 고약한 느낌만큼은 교육계만이 가지는 특별한 것이다. 관료사회의 촌지문화는 힘이 들지라도 정공법으로 부딪혀나가면 되고 까짓것 수틀리면 포기할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러나 아이의 교육이 어디 그런가?
젊은 엄마가 담임선생을 만나러 가야하는데 봉투에 얼마를 넣어야 하느냐고 고민하며 자문(?)을 구한다. 내신 성적 때문에 남자 담임선생이 면담을 요구하는데 아버지가 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야릇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자신의 본분보다 교수라는 직함을 이용해서 아르바이트(?)에 더 열을 올리는 교수는 학교에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어떤 지인은 자신의 학위논문심사를 맡은 교수들에게 향응을 제공했다고 털어놓았다.
교사는 가르치는 자다. 그 옛날 선비는 자신의 학문을 제자들에게 전하는 동시에 저술을 통해 후세에 가르침을 내려주는 임무를 지녔다. 따라서 교사는 선비가 되어야한다. 선비는 전통사회에서 그 사회의 지성인으로 인식되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그 사회가 요구하는 이념적 지도자를 의미할 수 있다. 이러한 보편적 선비상은 세속적 욕구에 매몰되지 않고 더욱 높은 이상을 지향하는 가치의식을 지니며, 신념의 실천을 위해 꺾이지 않는 용기가 요구된다. 또한 자신의 과오를 반성할 줄 아는 성찰자세가 필요하며, 사회의 모든 계층을 통합하고 조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선비는 신분적 존재가 아니라 인격의 모범이요 시대의 양심으로서 인간의 도덕성을 개인 내면에서나 사회질서 속에서 확립하는 인격체다.(다음 백과사전 참조)
그러므로 교육계의 부패 고리는 교직자들이 먼저 자성하고 끊어야한다. 아이를 볼모잡혔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수업시간에 교실로 뛰어들어 와서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학부모도 그 아이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결과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비록 박봉에 시달릴지라도,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교직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촌지문화를 단절해야 한다. 교육계의 부패는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교사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교 내부의 상납 고리를 생각한다면 이는 교사 스스로 순교자적인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부유한 삶을 원한다면 교사가 되지 말아야한다. 철밥통에 플러스 알파(?)가 달콤한 것이 교사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제발 교사가 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다른 공직자도 마찬가지다. 부유하게 살려면 차라리 장사를 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뇌물에 익숙한 사람은 장사를 해도 공정하게 할 수 없다. 이미 반칙에 익숙해졌으니까. 그래도 장사를 해라. 장사는 최소한 남의 자식의 미래를 볼모잡지는 않으니까. ‘부유하게 살려면 차라리 장사를 해라.’는 명제는 종교인이나 법조인이나 의료인이나 정치인이나 관료나 사회봉사적 성격을 띤 모든 직업군에 해당된다. 논어에 이르기를 ‘부패한 사회에서 부유함은 치욕’이라 했다.
머지않은 장래에 나의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에는, 그 옛날 나의 아버지께서 학교운동장 뒤편에 서서 손자의 담임선생님을 궁금해 하시던 일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날에는 그냥 고마움과 반가움만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양복은 빛깔로 입으면 된다고 하시며 사계절을 입어도 무난한 색상의 단벌양복을 입으시고 매일 걸어서 출근하시던 아버지가 보고 싶어진다. 어린 시절, 속도 모르고 아버지를 인색한 사람으로 낙인찍었었던 일을 용서받고 싶다.
첫댓글 아무런 단서 없이 아멘입니다! 이 악순환은 교육자가 끊어야 한다는 말씀에도~! 돈 벌 사람은 교육하지 말아야죠~! 맞습니다!
아내가 운영하는 떡카페에 찾아와서 자녀의 선생님께 드릴 선물세트의 규모에 대하여 고민하는 학부모를 보면 예전의 아내를 보는 것 같습니다. 어느 때가 되어냐 이런 일이 없어질지 심란합니다. 평안하세요.
자식 키우는 일에는 정답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식 일만큼은 장담을 못한다고도 하구요. 한창 진행 중인 삶 앞에서 성공했네 실패했네 하는 속단도 못하구요...그만큼 어렵다는 말이겠죠만 분명한 것은 부모나 아이가 확실하고 반듯한 주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저 역시 다덕님처럼 많은 고민이 있었으나 끝까지 휘둘리지 않는 부모와 교사와 아이의 삼각점 유지 하느라 무던히도 애썼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암튼 내 인생의 기준점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 덕분에 잠시 지난 일들을 생각해볼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일이 댓글 다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빠짐없이 달리는 댓글이 부담스럽군요. 또 글을 써서 올려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위력을 지닌 님의 댓글에 경의를 표합니다.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