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 / 마린스키 발레단 / 게르기예프 지휘
=== 프로덕션 노트 ===
2008년 6월 마린스키극장에서 펼쳐진, 러시아 발레단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적인 공연 실황
특히 <봄의 제전>의 경우 바츨라프 니진스키의 오리지널 안무(1913)와 니콜라스 로에리흐의 의상을 복원해서 재현한 최초의 시도로, 역사적인 가치마저 지니고 있다. 일리야 쿠츠네초프를 비롯한 마린스키 극장의 주역 무용수들이 펼치는 탁월한 무용과 발레리 게르기에프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폭풍같은 연주, 실황의 열기, 그리고 뛰어난 화질과 음질이 한데 어울려 일대 장관을 만들어냈다. 초연 당시 로에리흐의 의상이나 니진스키의 혁명적인 안무를 흑백 스냅사진으로만 접했던 이들에게 계시처럼 다가오는 공연이다. 개별 무용수들도 훌륭하지만 전체 앙상블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린스키 극장의 위력을 엿볼 수 있으며, 보너스 영상 역시 훌륭하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최진영 글>
봄의 제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스트라빈스키의 3대 발레음악 가운데 마지막 작품으로, 러시아 이교도들의 대지와 태양신에 대한 제의(祭儀)를 그린 작품이다.
초연 당시 일어난 관객소동
디아길레프의 의뢰로 작곡된 이 곡의 강렬한 리듬과 원시주의적 색채는 발레 안무와 함께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스트라빈스키 발레 음악의 독특한 양식은 이 작품에서 집대성된다. 그간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근대의 러시아가 아니라 선사 시대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선율은 여전히 러시아의 민속적인 것에서 차용을 하되, 안무와 음악은 원시주의의 단순함과 투박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애초에 디아길레프는 ‘매우 새로운 발레 음악’을 써달라고 부탁하였고, 이 곡은 청각적으로 단순한 것과는 별개로 연주하기에는 너무 복잡하였다. 백번이 넘는 연습이 필요했고, 초연은 원래 정해진 날짜보다 일 년 정도 더 미뤄졌다. 그리고 1913년 5월 29일, 몽퇴의 지휘와 니진스키의 안무로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첫 공연이 이루어졌다. 이 작품의 초연에서 청중들이 충격을 받고 소동을 일으킨 것은 유명한 일인데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객석은 웅성거리기 시작하였고, 막이 올라 길게 땋은 머리를 늘어뜨린 처녀들이 무대에서 뛰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비난이 빗발쳤다. 사람들은 욕설을 하기도 하고 일어서서 나가기도 하였다. 작품의 초연으로부터 50여년이 지나 스트라빈스키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스트라빈스키는 청중들의 이러한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오히려 스트라빈스키는 몽퇴의 초연에 대해서 매우 흡족해 하였다.
청중들을 이렇게 자극시킨 것은 음악보다는 안무였을 것이다. 안무는 그때까지의 러시아 발레가 보여주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또한 봄의 부활을 환영하기 위하여 원시적인 이교도의 농민들이 한 처녀의 생명을 제물로 바친다는 야만적 줄거리도 관객을 격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초연 이후 이 작품은 얼마간 발레공연장이 아니라 ‘음악공연장’에서 연주되었다. 다음 해에 이 작품을 음악회용으로 공연했을 때에는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으며, 당시의 대단한 혁신은 이제 위대한 고전이 되었다.
원시적인 효과를 위한 장치
스트라빈스키는 이 작품을 “음악적 무보(舞譜)와 같은 작품”이라고 묘사하였다. 작품은 봄의 창조적 힘이 가지는 신비로움과 위대함을 표현한다. 이런 표현에는 그의 관현악법적 테크닉이 크게 기여하였다. 예를 들어, 타악기 뿐 아니라 다른 관현악기들을 모두 타악기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원시적인 느낌을 더하였다. 발레의 첫 장면인 ‘처녀의 춤’에서는 모든 현악기와 여덟 대의 호른이 스타카토로 같은 리듬을 연주하여 타악기적 음색을 낸다. 이때 2/4박자의 리듬은 불규칙한 강세에 의해서 파괴되고 박자의 강약은 사라진다. 2박 계열이나 3박 계열의 전통적인 리듬이 아닌 5, 7박 등을 빈번하게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리듬에 주안점을 둔 것은 19세기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화성과 형식으로 실험을 한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물론 스트라빈스키도 대담한 화성의 사용을 보였다. 예비되거나 해결되지 않는 불협화음이 갑작스럽고 대담하게 등장하며, 전통적 조성 체계 안에서는 거리가 먼 두 개 이상의 화성이 함께 쌓아올려지기도 하였다. 이런 장치들은 이 소리들의 모음이 어떤 화성이 아니라 ‘소리 덩어리’로 들리게 하여 역시 다른 악기군들로 하여금 타악기적 인상을 주도록 한다.
봄에게 바쳐지는 처녀의 이야기
봄의 제전은 제1부 대지에의 찬양, 제2부 희생 제물로 총 2부로 나뉜다. 제1부는 봄이 막 오고 있는 원시시대의 황량한 러시아의 고원에서 시작된다. 깎아 세운 바위 둘레에 원시 부족이 모여들고, 젊은 남녀들이 모여서 대지를 두드리며 봄이 오는 것을 축하하는 춤을 춘다. 흥분이 더해지자 청년들은 마음에 드는 여자들에게 달려들어 함께 춤을 추고, 이때 부락의 원로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젊은이들을 진정시키고, 대지를 경배하는 예식을 행하도록 한 뒤 대지의 춤을 추게 한다. 낮을 배경으로 하는 제1부와 달리, 제2부는 밤을 배경으로 몇 명의 처녀들이 들판에서 춤을 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중 한 처녀가 제물로 간택되고, 그 처녀의 주위를 돌며 젊은 남녀들이 춤을 춘다. 간택된 처녀는 신에게 바치는 희생의 춤을 추기 시작하지만 그 춤은 곧 광란으로 변하여 처녀는 지쳐 숨을 거둔다. 처녀가 죽자 제사장들과 원로들은 처녀의 시신을 들고 그녀가 태양의 신부가 되었음을 기뻐한다.
작품 구성
1부 대지에의 찬양(Part I: L'adoration de la Terre)
서곡
봄의 싹틈과 젊은 남녀의 춤(Les Augures Printaniers)
유괴의 유희(Jeu du Rapt)
봄의 론도(Rondes printanières)
적대하는 도시의 유희(Jeux des cités rivales)
현인의 행렬(Cortège du sage: Le Sage)
대지에의 찬양(Adoration de la Terre)
대지의 춤(Danse de la terre)
2부 희생 제물(Part II: Le Sacrifice)
서곡
젊은 처녀들의 신비로운 모임(Cercles mystérieux des adolescentes)
선택된 처녀의 찬미(Glorification de l'élue)
조상의 초혼(Evocation des ancêtres)
조상의 의식(Action rituelle des ancêtres)
신성한 춤-선택된 처녀(Danse sacrale-L'Elue)
---------------------------------------------------------------------------------------------------------------------
=== 작품 해설 === <2013년 9월 23일자 발행 네이버캐스트 / 황장원 글>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리듬의 시대'의 개막을 알린 음악사상 최대의 문제작 중 하나
1911 ~ 13년 사이에 작곡, 1921년과 1947년에 개정
1913년 5월 29일 밤,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은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당시 극장 안에서는 바슬라프 니진스키가 안무를, 이고리 스트라빈스키가 음악을 담당한 발레 뤼스(Ballet Russe, 러시아 발레단)의 신작 발레가 첫 선을 보이고 있었다. 문제는 그 공연 내용이 지나치게 파격적이고 선동적이라는 데 있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분위기의 이상야릇한 서주가 흘러나올 때부터 동요의 기미를 보였던 관객들은 막이 오르자 이내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급기야 무대에서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반대파와 지지파로 나뉘어 격론을 벌였고, 공연은 객석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고성과 야유, 악단이 쏟아내는 요란한 음향, 그리고 무대 위 무용수들이 내는 소음 등이 뒤엉킨 채 엄청난 소란 속에서 막을 내리고 말았다.
공연사상 가장 유명한 스캔들로 기억되고 있는 [봄의 제전]의 초연이 올해(2013년)로 100주년을 맞이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면서, 이 희대의 문제작에 얽힌 사연들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자.
1910년 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첫 번째 발레음악인 [불새]의 작곡을 마쳤을 무렵, 스트라빈스키의 머릿속은 이미 새로운 작품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했다. 그 구상이란 공상 속에서 보았던 이교도들의 엄숙한 제전을 무대 음악으로 형상화하는 것이었다. 그 제전은 봄의 신을 예찬하기 위해서 산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었고, 그 의식에서 이교도들은 늙은 현자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제물로 간택된 소녀가 죽음에 이르도록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세 번째 발레음악인 [봄의 제전]의 제재가 된다.
제전을 향한 여정
스트라빈스키는 곧 친구인 니콜라스 뢰리히를 찾아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뢰리히는 샤머니즘에 각별한 관심과 애착을 가진 러시아 화가로서, 슬라브의 민속에도 조예가 깊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경청한 뢰리히는 강한 의욕을 드러내며 대본 작업을 돕겠다고 나섰다. 그 해 여름, [불새]의 초연을 위해서 파리를 방문한 스트라빈스키는 발레 뤼스의 단장인 디아길레프에게 예의 구상을 털어놓고 의논했다. 그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하고 싶었지만, 당장은 [불새]의 초연과 후속 공연들을 무사히 치르는 일이 우선이었다. 따라서 [봄의 제전]의 작곡은 지연되었는데, 그것이 악재라기보다는 호재로 작용했다. 파리에서의 시즌이 끝나갈 즈음, 스트라빈스키는 바닷가에서 휴식을 취하며 ‘베를렌의 시에 의한 두 개의 노래’를 작곡했다. 드뷔시의 인상주의 어법을 수용한 작품이었다. 8월 말에는 스위스에서 피아노가 포함된 실내악곡을 하나 썼는데, 그 곡을 쓰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 갑자기 생명이 있는 꼭두각시 인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페트루슈카! 그의 두 번째 발레음악의 태동이었다. [페트루슈카]에서 그는 오스티나토 반주와 자극적인 리듬 위에 민요의 단편을 싣는 수법과 복조성에 대한 실험을 감행했다. 이듬해 여름, [페트루슈카]의 초연 직후에 그는 ‘발몬트의 시에 의한 두 개의 가곡’과 칸타타 ‘별들의 왕’을 작곡했다. 신비주의에 심취해 있던 스크랴빈의 화성 어법을 도입한 작품들이었다. 이처럼 구상과 작곡의 양면에서 풍부한 자양분을 섭취함으로써 스트라빈스키는 비로소 [봄의 제전]을 보다 혁신적이고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들어낼 준비를 마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뢰리히의 말처럼 ‘범 인류적인’ 호소력을 갖춘 걸작이 될 운명이었다. 1911년 여름, 대본이 마련되면서 작업은 본격화되었다. 스트라빈스키는 뢰리히와 협력하여 상세한 시나리오와 제목을 정했으며, 세부의 악장들을 현재의 순서로 배열했다. 그 과정에서 고대 슬라브 부족의 제의에 관한 뢰리히의 풍부한 지식이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13년 3월, 마침내 완성된 총보가 빛을 보았고, 디아길레프는 곧 초연을 추진했다. 총보는 [페트루슈카]를 지휘했던 프랑스의 지휘자 피에르 몽퇴의 손에 쥐어졌고, 안무는 바로 전 해(1912년)에 [목신의 오후]로 파리 문화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천재 무용수 바슬라프 니진스키에게 맡겨졌다. 그 날의 진상 1913년 5월 29일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거행된 [봄의 제전] 초연은 공연 역사상 가장 요란했던 스캔들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순수하게 음악적인 견지에서 보자면, 그 유명한 소동은 생각만큼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스트라빈스키의 혁신적인 음악에 대한 반응이었다기 보다는 발레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송두리째 뒤엎은 니진스키의 파격적인 안무가 야기한 관객들의 거부감과 혼란, 그리고 그러한 결과를 뻔히 내다보고서 공연을 강행했던 디아길레프의 흥행 전략이 빚어낸 한바탕의 해프닝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라빈스키가 장년에 쓴 회고록의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의 상황을 조금은 냉철하게 되짚어보자. 우선 서주에 이어 막이 오른 다음부터는 객석에서 일어난 엄청난 소음 때문에 음악에 제대로 귀 기울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따라서 관객들은 주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시각적 자극에 반응했고, 단속적으로 들려오는 음악은 그저 그런 분위기를 돋워주는 소음에 불과했다. 그 혼돈 속에서 디아길레프는 한 술 더 떠 객석의 조명을 켰다 껐다 하면서 관객들의 심리를 자극하여 소란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래 놓고 공연 후에 모든 것이 자신이 바라던 대로 이루어졌다며 만족스러워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그 시절 파리에서 공연 중에 소동이 일어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장 콕토는 이렇게 회상한 바 있다.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그곳은 온갖 스캔들이 벌어지는 장소였다. …… 요란하게 치장한 멋쟁이들, 탐미주의자, 속물주의자, 초속물주의자, 반속물주의자 등등 오만가지 인간 군상들이 모여들었다.” 그런 곳에서 희대의 센세이션을 일으켜 공연장에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바로 디아길레프의 의도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초연은 격렬한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키며 화제를 모았고, 덕분에 후속 공연들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갈수록 반대파는 줄어들었고, 세 번째 공연에서는 항의는 거의 없이 열렬한 박수가 쏟아졌다. 사실 초연 당시에도 스트라빈스키는 니진스키, 무용수들과 함께 관객들 중에서 갈채를 보내는 이들을 위해서 수차례 불려 나가 답례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잔뜩 화가 나있었는데, 자신의 의도나 음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니진스키의 얼토당토않은 안무와 자신의 음악을 가려버린 관객들의 무분별한 반응에 엄청나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음악은 니진스키의 치기 어린 야망과 디아길레프의 속물적인 이익에 철저히 이용당한 꼴이 돼버렸다. 그는 나머지 공연에 참석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자신의 [봄의 제전]에 대한 스트라빈스키의 믿음이 확고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옳은 것으로 판명된다. 불과 1년 뒤 [봄의 제전]이 발레 없이 콘서트 형식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 이 작품이 거둬들인 성과는 스트라빈스키 자신의 표현대로 ‘작곡가로서 보기 드문 성공’이었다. 해당 공연에서 지휘를 1년 전과 마찬가지로 몽퇴가 맡았다는 사실도 간과하지 말자. 한편 1921년에는 레오니드 마신의 새로운 안무로 발레 공연도 다시 성사되었다. 마신은 니진스키에 비해 스트라빈스키의 의도와 음악을 훨씬 잘 이해하고 존중해주었다. 작곡가는 그의 안무에 상당히 만족했고, 특히 리디아 소코로바가 춘 마지막 독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일종의 ‘추상적 바바리즘’을 추구했던 스트라빈스키의 소망은 그제서야 비로소 온전히 실현되었던 것이다. 혁신 또는 격동의 아이콘 [봄의 제전]은 스트라빈스키의 경력 초기를 대변하는 신민족주의 ‧ 원시주의 경향의 정점에 위치한 역작이다. 이 작품에서 스트라빈스키는 그때까지 자신이 연마해온 모든 기법과 실험을 집대성하여 러시아의 전통과 20세기 모더니즘의 통합을 이루어냈고, 그 성공을 통해서 문화적 변방인 러시아의 작곡가가 아니라 유럽 음악의 주류를 선도하는 작곡가의 반열에 올랐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비밀은 역시 음악에 숨어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는 복잡하고 강렬한 리듬이다. 5박자, 7박자, 11박자 등 종전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았던 변칙적인 박자가 적극적으로 도입되었고, 전곡을 통해서 끊임없이 변전하는 박자들은 세로줄의 울타리에 갇혀 있던 기존의 박절 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이는 음악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근원적인 충동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효과를 낳았다. 또한 그 안에는 슬라브 민요에서 취한 여러 선율의 단편들이 교묘하게 변형되어 녹아 있다. 아울러 드뷔시, 스크랴빈, 쇤베르크 등 당대의 가장 급진적인 음악어법을 두루 수용한 대담한 화성어법과 과감한 관현악법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작인 [페트루슈카]에서 장식적인 차원에 머물렀던 반음계의 사용은 한층 확장, 심화되어 화성의 흐름을 주도했고, 5관 편성의 대규모 관현악단이 동원된 가운데 다양한 진취적 악기법들이 시험대에 올라 충격적인 음향을 빚어냈다. 이 모든 것의 절묘한 융합으로 탄생한 [봄의 제전]은 극단적으로 변화무쌍한 음악이다. 현란하게 변전하는 기괴한 리듬, 위압적인 관현악의 포효,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음향, 활활 타오르는 극적 고조! 이 그로테스크한 풍경화는 언제 어디서 연주되든 듣는 이의 가슴에 걷잡을 수 없는 동요와 격랑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말이다. 어떤 이는 이 곡 특유의 원초적인 박력과 무한한 생명력에서 극한의 희열을 맛볼 것이고, 어떤 이는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과 정신 사나운 리듬에 어안이 벙벙해질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것이 고도로 정교하고 치밀하게 조직된 작품이라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교의 제전을 재현하다 대본상의 시간적 배경은 러시아의 이교(異敎)시대의 어느 이른 봄날, 공간적 배경은 대지에 푸른 싹이 막 돋아나기 시작한 신성한 언덕이다. 전곡은 2부로 나뉘며, 제1부의 낮과 제2부의 밤이 서로 대비를 이룬다. 제1부 - ‘대지에 대한 경배’ 제1부에서는 한낮을 배경으로 봄을 맞이한 인간들의 흥분과 환희가 묘사된다. 먼저 파곳의 높은 음역대를 활용한 신비로운 선율이 주도하는 주술적인 분위기의 서주가 흐른 다음, 막이 오르면 고대 슬라브 부족의 젊은이들이 언덕 기슭에 모여 봄의 만개를 재촉하기 위해 대지를 힘차게 두드리며 춤을 추는 장면이 펼쳐진다. 무당이 앞날을 예언하고, 흥분한 청년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처녀에게 달려들어 약탈하다가, 이내 다 함께 어울려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계속해서 서로 라이벌 관계에 있는 부족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부락의 장로들이 도착한다. 마침내 현자가 열렬한 기도와 함께 꽃이 피기 시작한 대지에 입을 맞추면, 대지를 깨우기 위한 격렬하고 장엄한 의식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제2부 - '제물' : 서주 – 젊은 처녀들의 신비로운 모임 - 선택된 자에 대한 찬미 - 초혼 - 조상들의 의식 - 희생의 춤(선택된 처녀) 제2부에서는 밤을 배경으로 봄의 도래를 감사하기 위해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거룩한 의식이 치러진다. 인상주의 풍의 서주가 사뭇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이교도들의 밤을 암시하면, 희생될 처녀를 정하기 위한 모임이 열린다. 마침내 제물이 정해지면 처녀들의 몸짓은 선택된 자를 찬미하는 격렬한 춤으로 비화하고, 장로들은 곰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조상의 영혼을 부르는 의식을 거행한다. 선택된 처녀는 광란 상태에서 절박한 몸짓으로 춤을 추다가 쓰러지고, 마지막은 조상의 영혼이 그녀를 들어 올려 신에게 바치는 장면으로 장식된다. 초연에 관한 다소 과장된 전설을 직시하는 것과는 별개로, [봄의 제전]이 음악사상 손꼽히는 문제작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오늘날 이 작품은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음악사의 일대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발표 당시 이 작품은 지난 200년간 유럽 음악계에 군림해온 독일 음악의 지배에 종언을 고하는 신호탄이었으며, 천년을 지속해온 선율과 화성의 시대를 마감하고 ‘리듬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세찬 두드림이었던 것이다! 나아가 이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격동적인 시대상을 예술적으로 선취한, 일종의 예언적 작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 서주 – 봄의 전조 – 젊은 처녀들의 춤 - 유괴의 유희 - 봄의 론도 - 적대하는 부족들의 유희 - 현자의 행차 - 현자 - 대지의 춤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3.03 14:5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3.03 14:5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4.04 19:5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4.09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