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29.주일오후찬양예배 설교
*본문; 삼하 19:1~8
*제목; 사무엘하서강해(19) 왕의 귀환
1. 지난 주 이야기, 하나님의 복기
하나님께서는 자녀의 어리석음을 철저하게 다루십니다. 왜냐하면 두 번 다시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를 “광야학교”라고 불렀습니다. 이를 깨달으면 광야가 학교가 되고, 고난이 은혜가 되고, 위기가 기회가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복기”라고도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복기”하셔서 자녀의 어리석음을 깨달게 하시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넘어져도 하나님 쪽으로 넘어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다윗은 가장 근본적인 잘못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못함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부하들의 만류에 그만 회복의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다윗의 왕국이 기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자녀는 항상 있어야 할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2. 왕의 귀환
이제 압살롬의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이 전쟁을 다윗이 이기게 됩니다. 다윗의 믿음으로 인한 승리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레임덕” 현상이 일어납니다.
왕의 간절한 부탁에도 요압은 압살롬을 죽여 돌무덤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더 이상 다윗은 다윗이 아닙니다.
모든 문제가 믿음의 문제라는 말은 여기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믿음이 사라지니, 은혜도 삶의 모양도 점점 더 힘들어 지는 것입니다.
귀환한 다윗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그의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삼하 18:31~33’입니다.
“31 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삼하 18:31~33)
왕이 전쟁의 승리를 기뻐하기는커녕 아들을 잃은 슬픔에만 빠져 있자, 백성들은 의기소침해 집니다. ‘1~3절’입니다.
“1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삼하 19:1~3)
한 아버지의 슬픔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와 백성들 앞에서의 자신의 모습, 그리고 있어야 할 자리를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도자가 이러한 모습을 보이니, 나라 전체가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정과 나라와 민족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계시고,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혹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 가정과 나라와 민족을 다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다리가 되느냐에 따라 어떤 은혜가 부어지냐?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어쨌든 다윗의 이런 모습에 “레임덕 현상”은 더욱 가중됩니다. ‘5~7절’입니다.
“5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7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삼하 19:4~7)
다윗의 명령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여 버렸던 요압이 다시 다윗에게 와 왕 다윗에게 호통을 치는 것입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던 장면입니다. 다윗이 어리석고 돌이키지 못하니 이런 수모를 당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다윗이 “있어야 할 자리”를 회복합니다. ‘8절’입니다.
“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어떤 사람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삼하 19:8)
다윗이 성문에 앉았습니다. 이는 다시 통치를 시작했다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그러하니 백성들이 다시 왕 앞에 모이고, 대적들은 각기 자기 장막으로 도망을 갑니다. “있어야 할 자리”만 회복되어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를 회복하십시오.
그러면 먼저 당신의 삶이 회복되고, 당신의 가정이 회복되고, 당신의 교회가 회복되고, 당신의 나라와 민족이 회복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를 원하시는 이유입니다. 아멘.
첫댓글 다윗의 모든 어리석음과 범죄의 출발점은 바로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할 자리를 회복하십시오. 그러면 먼저 당신의 삶이 회복되고, 당신의 가정이 회복되고, 당신의 교회가 회복되고, 당신의 나라와 민족이 회복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를 원하시는 이유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