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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회고 에세이】
자랑스러운 군대 친구 곽영석 ‘작가 병장’에게 띄우는 편지
― 고단한 병영 생활하면서도 틈틈이 ‘동화 원고’를 쓴 곽영석 육군 병장 작가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작가 병장’이란 호칭은 아마도 처음 들어 볼 거야. 내가 최초로 붙여준 호칭이니까.
경기도 가평. 육군 H 교육부대 본부중대. 그러니까 50여 년 전, 우리는 병장 계급장을 달고 한 내무반에서 고락(苦樂)을 함께했지.
▲ 경기도 가평, 육군 H 교육부대에서 함께 복무했던 곽영석 작가 병장(좌측)과 필자(색 바랜 앨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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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중대’란 부대장 바로 밑에서 주요 직책을 수행하는 곳. 제각기 ‘특기’를 가진 병사들이 선발되어 일했던 곳.
곽 병장은 신춘문예 당선 작가로서 남다른 이력과 필력을 인정받아 이곳 참모 본부에서 복무했지.
나는 상장, 표창장, 주요 보고서 등 붓글씨를 전담하는 이른바 ‘필경사(筆耕士)’로 선발되어 이곳 참모 본부 행정처에서 군 복무를 했지.
동화작가 곽영석 병장은 만년필로 원고를 쓰고, 모필사로 불렸던 나는 붓으로 상장과 표창장을 썼던 당시의 부대 내 풍경이 생생하게 떠 올라.
▲ 동화작가 곽영석 병장(우측)은 만년필로 원고를 쓰고, 필자(좌측)는 붓으로 상장과 표창장을 쓰고(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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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붓글씨는 부대 내 새롭게 조성된 공원 등 곳곳에 걸렸지. 중대장의 지시로 내가 붓글씨를 쓰면 목공소 사병들은 조각칼로 괴목에 글자를 새겼어.
▲ 부대 곳곳에 걸려 있는 필자의 붓글씨 목각 현판 앞에서 필자(색바랜 앨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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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야. 내가 곽 병장과 함께 내무생활을 하면서 놀란 사실이 한 둘이 아니야.
자유 시간이나 야간 불침번 시간에 곽 병장은 원고를 쓰는 거야. 군대 생활하면서 문예 창작 활동이 가능하냐고 독자들은 의문을 가질 거야.
하지만 내가 지켜본 곽 병장은 틈만 나면 원고지를 가까이하는 모습이었어.
행정반 사무실에서 야간 불침번 교대를 하면서 내가 말했지.
“어서 들어가 취침해. 고단하지 않아? 온종일 훈련받고 심신이 피곤할 텐데 인제 그만 원고 덮어두고 잠을 자게.”
그러면 곽 병장은 특유의 너털웃음을 웃었지. 그러면서도 책상에 놓인 원고지와 만년필을 여전히 거두지 않았어.
당시 곽 병장은 아동극본을 쓰고 있었지. 내가 슬쩍 넘겨본 원고는 아주 달필이었어.
까만색 고급 만년필에서 흘러나온 청색 잉크는 원고지 칸마다 천의무봉(天衣無縫) 동심의 글발이 실타래처럼 이어졌지.
곽 병장은 병영 생활하면서도 만년필을 잠시도 놓지 않았어. 동시, 동화, 아동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창작 열의를 불태웠지.
▲ 행정반 사무실에서 불침번 시간에도 틈틈이 원고를 썼던 곽영석 작가 병장과 내무반 전우들의 다정했던 모습을 회고하는 필자(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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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님을 난 잘 알아. 당시 나는 수필과 칼럼을 쓰고 있었지.
입대 전 ‘농촌 청년’이었던 나는 각종 언론 매체와 잡지에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창작의 보람을 느끼고 있었지.
고된 군대 생활하면서 곽 병장처럼 눈에 띄게 원고를 쓰지는 않았지만, 문예 창작에 관한 관심은 늘 두고 있었지.
그런데 곽 병장은 글만 잘 쓰는 게 아니었어. 성격도 원만하고 전우애도 남달랐지. 친화력이 뛰어나고 농담도 잘했지. 장난기도 심했어.
어느 날은 침상에 무심코 앉아 있는 나를 등 뒤에서 꼭 포옹하더니 귀엽다면서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간지럼을 태웠어. 동화 작가다운 ‘동심의 장난꾸러기’ 심술이 발동한 것이지.
그럴 때마다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지. 격투기? 아니 그보다는 약했지만 우리는 한 덩어리가 되어 침상에서 뒹구는 씨름선수가 됐지.
돌이켜보면 정말 재미있고 정겨웠던 장면이지.
곽 병장은 먹을 것에도 인색하지 않았어. 꼭 나눠 먹었지. PX에서 곽 병장이 사다 준 ‘브라보콘’ 맛을 잊을 수 없어. 아마도 그날은 곽 병장 생일이었을 거야.
우리가 복무했던 경기도 가평지역은 어딜 가나 밤나무가 유명했지. 초소에서 총대 메고 야간 보초를 서면 철모 위로 알밤이 후두두 떨어졌어.
가을이면 본부중대 가는 길 코스모스꽃이 아름다웠고, 겨울이면 자기 키만큼의 눈사람을 만들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갔지.
▲ 가을철이면 밤나무 우거진 코스모스꽃 길이 유난히 아름다웠던 본부중대 가는 길(필자의 색 바랜 앨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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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육군 교육부대 <눈 사람> 앞에서 필자(색 바랜 앨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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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잔디밭 아래에서 휴식을 즐기던 우리 앞에 갑자기 사진병이 나타났어.
곽 병장은 이때 갑자기 짓궂은 장난기가 발동했어.
“그렇고 그런 사진만 찍지 말자”라는 거였지. 군대 생활하면서 무표정하고 경직된 기념사진만 찍지 말고, 생동감 넘치는 재미있는 사진을 찍어보자는 거였어.
나를 포함한 전우 3인에게 잔디밭에 엎드리라고 했어. 그러자 곽 병장이 그 위에 번개처럼 올라탄 거야. 마치 기마전(騎馬戰) 하는 자세로 말이야.
밑에 깔린 3인의 얼굴은 그야말로 곽 병장의 육중한 체구, 그 중압감에 마치 압사(壓死)를 당하는 표정인데, 곽 병장은 달랐어. 신이 났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마치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표정으로 엎드려 있는 3인의 전우를 안아주는 자세를 취한 거야.
나의 색바랜 앨범에서 이 사진이 군대 생활 최고의 즐겁고 재미있는 ‘명품 사진’으로 꼽는다네. 예측하지 못했던 곽 병장의 돌발적인 몸동작과 즉흥적인 연출 덕분이지.
▲ 부대내 잔디밭에서 내부반 전우들과 함께 즐거운 한 때(필자의 색 바랜 앨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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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군대 시절 친구 곽 작가 병장이여!
나는 곽 병장 전역 후의 빛나는 작품 활동도 관심 있게 보았어.
언론에 보도되는 곽 작가의 저술 활동은 물론이고, 유튜브에서도 곽 작가가 작사한 수많은 노래를 들으면서 감탄했어.
특히 ‘곽영석 작사’라고 적혀있는 ‘찬불가(讚佛歌)’는 불교 신도가 아니더라도 이해하기 쉽고 따라 부르기 쉬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돼 있어.
최근 유튜브를 통해 들어본 ‘곽영석 작사’ 찬불가는 ‘아침 서곡’, ‘풍경 소리’, ‘참회하는 마음’, ‘뜰앞에 잣나무’, ‘내 마음이 부처라면’ 등 수를 헤아리기 어려워.
또 아동극집 ‘노랑나비의 노래’, ‘우리들의 학예회’ 등 100여 권이 넘는 작품집 출간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왕성한 필력을 감탄할 만하지.
197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곽 작가는 수상 경력도 화려해. <한국불교문학상>, <대한민국 동요작사대상> , <청소년예술제 희곡상> 등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상을 받았어.
그러니 ‘자랑스러운’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척 붙여도 좋을 만큼 성공한 ‘군대 친구’가 아닌가.
군대에서 만난 우리의 인연이 보통 인연인가.
고향 친구처럼 따뜻한 전우애를 보여준 곽 병장 작가. 이 시대 쉽게 만나기 어려운 훌륭한 인품의 동년배 작가.
50년 만에 곽 병장 작가와 함께 찍은 사진첩을 펼쳐보면서 그보다 더 근사한 덕담과 찬사를 찾지 못하네.
70 노년에 자랑스러운 ‘군대 친구’와의 회고 글을 쓰면서 남모르는 행복감에 젖네. ■
2026. 8. 9.
윤승원 회고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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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 감상 소감
이 글은 단순한 군대 시절의 추억담을 넘어, 50년의 세월을 건너온 우정과 문학적 인연을 한 편의 따뜻한 인간 기록으로 복원한 회고 에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학평론가의 시선으로 조금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 「50년의 세월을 건너온 ‘작가 병장’과의 우정」
윤승원 수필가의 「자랑스러운 군대 친구 곽영석 ‘작가 병장’에게 띄우는 편지」는 제목부터 정겹다.
특히 ‘작가 병장’이라는 호칭은 이 글의 핵심적인 문학적 장치다. 군대에서는 누구나 계급과 보직으로 불리지만,
윤승원에게 곽영석은 단순한 ‘곽 병장’이 아니라 병영이라는 억압적 공간에서도 문학을 놓지 않았던 한 사람의 작가였다.
따라서 ‘작가 병장’이라는 이름에는 두 사람의 청년 시절과 문학적 자의식, 그리고 50년이라는 세월이 동시에 들어 있다.
1. 군대라는 공간에서 발견한 ‘문학 청년’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곽 병장이 자유시간이나 야간 불침번 시간에도 원고지를 펼쳐놓고 글을 쓰던 모습이다.
“곽 병장은 원고를 쓰고 있었다.”
이 짧고 담담한 문장이 오히려 강한 울림을 준다.
군대는 규율과 명령, 훈련과 긴장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 병사가 만년필을 들고 동화와 아동극을 쓰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글을 열심히 썼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학을 향한 내면의 열정은 어떤 환경에서도 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더욱이 윤승원 역시 당시 수필과 칼럼을 쓰던 청년이었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는 사실상 두 문학청년의 병영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한 사람은 모필사로서 붓을 들었고, 다른 한 사람은 작가로서 만년필을 들었다.
붓과 만년필.
서로 다른 도구였지만 두 사람 모두 글을 통해 자기 내면을 표현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문학적 대칭을 이룬다.
2. ‘청색 잉크’와 ‘원고지’가 만들어내는 문학적 풍경
특히 다음 부분은 문학적 이미지가 매우 선명하다.
“까만색 고급 만년필에서 흘러나온 청색 잉크는 원고지 칸마다 천의무봉(天衣無縫) 동심의 글발이 실타래처럼 이어졌지.”
이 문장은 회고 에세이 가운데서도 상당히 시적인 문장이다.
까만 만년필, 청색 잉크, 원고지, 동심, 실타래라는 이미지가 서로 연결되면서 50년 전 병영의 한밤중이 눈앞에 펼쳐진다.
특히 ‘청색 잉크’는 단순한 색깔이 아니다. 그것은 젊은 작가의 꿈과 청춘, 그리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래를 상징하는 듯하다.
50년이 지난 지금 윤승원은 그때의 장면을 기억한다. 그래서 청색 잉크는 어느 순간 청춘의 빛깔로 변한다.
이 글에서 가장 문학적인 장면 중 하나다.
3. 작가의 품격을 ‘작품’보다 ‘사람’에서 찾다
이 에세이의 또 다른 미덕은 곽영석 작가의 문학적 성취만을 나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윤승원은 곽 병장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원만한 성격, 뛰어난 친화력, 농담, 장난기, 먹을 것을 나누는 넉넉함, 전우애.
이러한 인간적인 기억들이 쌓인 뒤에야 비로소 오늘날의 작가 곽영석이 등장한다.
그래서 독자는 곽영석이라는 작가를 먼저 ‘유명한 작가’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만나게 된다.
이것이 이 글의 중요한 장점이다.
문학적 성공보다 인간적 품격을 먼저 기억하는 것.
아마도 70대에 이르러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 윤승원 작가에게는 그것이 훨씬 중요한 가치였을 것이다.
4. ‘겨드랑이 간지럼’과 ‘기마전 사진’이 주는 생생한 웃음
이 글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곽 병장이 윤승원을 뒤에서 끌어안고 겨드랑이를 간질이는 장면, 두 사람이 침상에서 뒹굴며 씨름하던 장면,
그리고 전우 세 사람 위에 올라가 기마전처럼 포즈를 취한 사진 이야기는 독자에게 웃음을 준다.
특히 잔디밭에서 세 전우 위에 올라탄 곽 병장의 장면은 한 편의 코미디처럼 읽힌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윤승원은 50년 전의 친구를 기억하면서 훈장이나 상장보다 한 장의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회고의 진정성이 생긴다.
사람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것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사소하고 엉뚱한 순간들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 사진을 ‘명품 사진’이라고 부른다.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사진 한 장이 50년의 시간을 호출하는 기억의 매개체가 된 셈이다.
5. ‘브라보콘’은 작은 물건이 아니라 우정의 맛이다
개인적으로는 ‘브라보콘’ 이야기도 매우 좋게 읽힌다.
“PX에서 곽 병장이 사다 준 ‘브라보콘’ 맛을 잊을 수 없어.”
문학적으로 보면 이 한 문장은 상당히 귀하다.
50년 전의 우정을 설명하기 위해 거창한 철학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브라보콘 하나면 충분하다.
아이스크림의 맛은 사라졌지만, 그때의 친구는 기억 속에 남았다. 결국 윤승원이 기억하는 것은 브라보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건네주었던 친구의 마음이다.
이처럼 이 글에는 작은 사물에 기억을 담아내는 회고문학의 좋은 특징이 살아 있다.
6. ‘과거의 곽 병장’과 ‘현재의 곽영석 작가’를 연결하다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글의 시간이 크게 확장된다.
50년 전의 병장 곽영석이 현재의 작가 곽영석으로 이어진다.
당시에는 원고지 위에 동화와 아동극을 쓰던 청년이었고, 이제는 수많은 작품집과 노래, 문학상 등으로 자신의 문학세계를 구축한 작가가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의 성공이 과거의 모습 속에 이미 씨앗처럼 들어 있었다는 점이다.
윤승원은 그것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목격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 글은 단순한 친구 예찬이 아니라,
“나는 50년 전에 이미 당신의 작가적 운명을 보았다.”라는 오래된 증언처럼 읽힌다.
이것이 이 글을 특별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7.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칭찬의 방식’이다
후반부의 “‘자랑스러운’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척 붙여도 좋을 만큼 성공한 ‘군대 친구’”라는 표현은 윤승원 수필가 특유의 소박하고 인간적인 문체를 잘 보여준다.
문학평론가의 관점에서 보면 이 글의 칭찬은 문학상 심사평 같은 객관적 찬사가 아니다.
친구가 친구에게 보내는 사적인 헌사다.
그래서 오히려 진심이 느껴진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좋다.
“70 노년에 자랑스러운 ‘군대 친구’와의 회고 글을 쓰면서 남모르는 행복감에 젖네.”
여기서 글의 주어는 곽영석이지만, 마지막에 남는 감정은 윤승원 자신의 행복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좋은 회고문은 과거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현재의 나를 이야기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50년 전 친구를 회상하는 것은 곧 50년 전의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그 젊은 시절의 자신, 글을 쓰던 청년 윤승원과 만년필을 놓지 않던 청년 곽영석이 다시 만나는 순간, 70대의 윤승원은 자신도 모르게 행복해진다.
8. 이 작품의 문학적 핵심은 ‘기억의 복원’이다
윤승원 수필가의 최근 회고 에세이들이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기억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복원한다.
50년 전의 내무반, 원고지, 만년필, 청색 잉크, 브라보콘, 밤나무, 야간 보초, 잔디밭, 전우들의 장난, 색 바랜 사진첩까지 하나씩 꺼내면서 사라졌던 한 시대를 되살린다.
특히 ‘사진첩’이 글 전체를 묶는 보이지 않는 액자 역할을 한다.
사진 속에는 젊은 곽 병장과 윤승원이 있지만,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은 70대의 윤승원이다.
따라서 이 글에는 세 개의 시간이 동시에 존재한다.
젊은 시절의 시간 → 50년의 세월 → 오늘의 회고 시간
이 세 시간이 한 장의 사진을 중심으로 겹쳐진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군대 추억담을 넘어 ‘시간과 기억에 관한 수필’로 읽을 수 있다.
청년 곽영석의 원고지에는 청색 잉크가 흐르고, 50년 뒤 윤승원의 사진첩에는 색바랜 사진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잉크의 색은 바래지 않았습니다. 사진은 빛이 바랬지만 우정은 바래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 이 에세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 총평
윤승원 수필가의 「자랑스러운 군대 친구 곽영석 ‘작가 병장’에게 띄우는 편지」는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맺어진 한 문학청년과 한 문필 청년의 우정을 50년의 세월 뒤에 다시 불러낸 따뜻한 회고 문학이다.
웃음이 있고, 장난이 있고, 브라보콘의 추억이 있고, 밤나무 아래의 청춘이 있고, 원고지 위의 푸른 잉크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친구가 자랑스럽다’는 마음보다 더 깊은 감정, ‘그런 친구를 가졌던 내가 행복하다’는 마음이 남는다.
그래서 이 글은 곽영석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이면서 동시에 윤승원 작가 자신의 청춘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50년 전의 병장들이 70대의 노인이 되어 다시 사진첩 앞에 앉았다.
한 사람은 만년필을 들었고, 한 사람은 붓을 들었다. 그때 두 사람이 쓰던 글씨와 문장은 세월을 건너 오늘까지 살아남았다.
“세월은 사람의 얼굴을 바꾸지만, 진실한 우정의 문장은 지우지 못한다.”
이 한 문장으로 이 회고 에세이의 정서를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자랑스러운 친구를 회고하는 글’인 동시에 ‘자랑스러운 청춘을 회고하는 글’이라는 점에서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 덧붙이는 말
이 글은 옛 군대 친구를 칭찬하는 글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청춘을 다시 만나는 글이라서 더욱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감상자가 인상 깊게 본 것은 ‘작가 병장’이라는 한마디입니다.
50년 전의 군대 친구를 단순히 ‘곽영석 선생’이라고 부르지 않고 ‘작가 병장’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시절의 내무반과 원고지, 청색 잉크, 만년필, 장난기 많던 젊은 병장의 모습이 한꺼번에 살아납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남모르는 행복감에 젖네”라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결국, 이 글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곽영석 작가의 성공 자체보다, 그런 좋은 친구를 젊은 시절에 만나 50년 동안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윤 선생님의 회고 에세이에는 늘 이런 장점이 있습니다.
역사를 거창하게 기록하지 않고, 사람의 작은 기억 하나를 통해 시대와 인생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이번 글도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한 장의 색바랜 군대 사진이 50년 전의 청춘과 오늘의 노년을 이어주는 문학적 다리가 되었습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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