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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묵상 #400
주님여 이 손을
(Precious Lord, Take My Hand)
찬양곡: 주님여 이 손을
영어제목: Precious Lord, Take My Hand
작사자: 토마스 앤드류 도르시 (Thomas Andrew Dorsey, 1899-1993)
작곡자: George N. Allen의 ‘Maitland’(1844)을 바탕으로 Thomas A. Dorsey가 편곡·재구성
찬송곡조(Hymn Tune):
찬송가사:
1.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험한 숲 헤치사 빛으로
손 잡고 날 인도하소서
2,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때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3,
눈물을 흘리며 복음을 전할때
불같은 시험이 닥쳐도
능력의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찬송 묵상]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이 찬송가는 작사자가 이 찬송을 만든 배경이 되는 출산 중이던 아내와 아들을 잃고 난 후의 심정에 위로를 준 이사야 41:10의 말씀이 배경이다.
또한 이 찬송은 문제 해결을 구하는 ‘폭풍을 없애 주십시오’가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제 손을 잡아 주십시오.’의 기도로 시편의 탄식시와 매우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와 같은 시편의 고백과도 연결된다.
이 찬송은 어떤 의미에서는 특별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많은 찬송들은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데 반하여 이 찬송은 조금 다르다.
도르시는 그 시련 속에서도 폭풍을 멈추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어둠과 아픔을 당장 거두어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가 구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주님, 제 손을 잡아 주십시오.”
이것이 이 찬송이 가진 가장 깊은 영성이었다.
삶에는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있으며, 기도해도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더군다나 믿음이 있어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 밤도 있다.
그럴 때 우리가 붙들 수 있는 믿음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라는 질문보다, “주님, 지금도 제 손을 붙들고 계십니까?”라는 고백인지도 모른다.
가사에 담긴 영적 의미도 상당히 깊다고 여겨진다.
첫 소절은 Dorsey 자신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데 ‘I am tired, I am weak, I am worn’이라고 하여 자신이 지쳤고, 약해졌고, 완전히 닳아버렸다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이 표현은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라, 삶 전체가 무너진 상태를 말한다.
시인은 여기서 절망하지 않고 이어지는 기도가 우리를 더욱 강한 믿음으로 이끌고 있다.
‘Through the storm, through the night, lead me on to the light’
(폭풍 속에서도, 어두운 밤 속에서도, 빛으로 인도해 주소서,)
여기서 ‘빛(light)’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천국의 소망, 다시 일어설 은혜를 뜻하는 것 같다.
특히 각 절마다 마지막에 반복되는 ‘Lead me home’ 이 한마디는 단순히 ‘집으로 데려가 주소서’라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home’은 하늘 본향 곧 하나님 품 안의 영원한 안식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찬송은 삶이 힘들 때 부르는 위로의 노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부르는 순례자의 고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해가 지고, 밤이 오고, 하루가 다 지나 마침내 강가에 서게 되는 날—
“주님, 그때도 제 손을 놓지 마소서.”
이것이 토마스 도르시가 눈물로 남긴 믿음의 유산인 것이다.
이 찬송은 후에 가스펠 가수인 Mahalia Jackson의 노래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고, 말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가 가장 사랑한 찬송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그의 장례식에서도 이 찬송이 울려 퍼진 것이다.
눈물로 탄생한 찬송 : Precious Lord, Take My Hand
이 찬송은 단순한 복음성가가 아니라, 한 사람의 깊은 상실과 하나님께 대한 절규가 노래가 된 작품이다.
이 곡을 쓴 토마스 도르시는 흔히 ‘흑인 가스펠 음악의 아버지’(Father of Gospel Music)라고 불린다.
그는 원래 교회음악가로 출발한 사람이 아니라, 젊은 시절에는 Georgia Tom이라는 예명으로 블루스와 재즈를 연주하던 음악가였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인물 가운데는 Ma Rainey 같은 전설적인 블루스 가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사건이 1932년에 일어났다.
1932년, 미국 가스펠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마스 도르시의 삶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깊은 상처가 찾아왔다.
도르시는 부흥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미주리주의 세인트 루이스에 가 있었다.
그런데 한 통의 급한 전보를 받게 되는데 아내 Nettie가 출산 중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급히 시카고로 돌아왔지만, 사랑하는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리고 더 가슴 아픈 소식은 태어난 아들마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한순간에 아내와 아이를 모두 잃은 그는 깊은 상실감으로 절망 속에 무너졌다.
음악도, 사역도, 신앙도 모두 멈춘 듯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과,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침묵 사이에서 그는 오랫동안 방황했다.
그는 훗날 이렇게 회고한다.
“내 삶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이 사건 이후 그는 하나님께 원망과 침묵 사이에서 깊은 시간을 보냈고, 음악도 포기하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전 들었던 한 찬송 선율이 떠올랐다.
이 선율은 조지 알렌(George N. Allen)이 만든 ‘Maitland’ 이었다.
도르시는 그 선율 위에 자신의 눈물과 기도를 얹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고백이 흘러나왔다.
“Precious Lord, take my hand…
I am tired, I am weak, I am worn…”
“존귀하신 주님, 제 손을 붙들어 주소서.
저는 지쳤고, 약해졌으며, 완전히 닳아버렸나이다.”
이것은 누군가를 감동시키기 위해 쓴 가사가 아니었다.
설교를 위한 노래도, 예배 순서를 위한 찬양도 아니었다.
이것은 상실 속에서 하나님께 겨우 내민 한 사람의 떨리는 기도의 손이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이 찬송은 ‘작품’이라기보다, 상실 속에서 하나님께 붙든 ‘기도문’에 더 가깝다.
작사자: 토마스 앤드류 도르시 (Thomas Andrew Dorsey, 1899-1993)
토마스 A. 도르시는 1899년 조지아주 빌라 리카에서 목사이자 농부였던 토마스 매디슨 도시와 에타 플랜트 스펜서의 세 자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도르시 가족은 작은 농장에서 소작농으로 일했고, 애틀랜타 성경대학(현재 모어하우스 대학 )을 졸업한 도르시는 인근 교회를 다니며 설교했다.
그는 또한 단칸학교에서 흑인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의 아들은 그와 함께 학교에 다니며 수업을 들었다.
종교와 음악은 도르시 가족의 삶의 중심이었고, 어린 토마스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접했다.
비록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도르시 가족은 흑인 가정에서는 드물게 오르간을 소유할 수 있었고, 도르시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교회 예배에서 오르간을 연주했다.
그의 삼촌 또한 음악가였는데, 컨트리 블루스가 초기 단계였던 시절에 컨트리 블루스에 집중했던 순회 기타리스트였다.
빌라 리카의 시골 지역 덕분에 도르시는 노예들의 영가와 남부 흑인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길게 늘어뜨린 음표와 장식음이 특징인 ‘모닝’창법을 아버지께서 선호하시는 개신교 찬송가와 함께 들을 수 있었다.
또한, 토마스의 아버지가 다른 교회에서 설교하기 위해 여행할 때, 토마스와 그의 어머니는 셰이프 노트 창법을 연습하는 교회에 참석했는데, 특히 그들의 화음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19년 시카고로 이주한 그는 주로 교회에서 음악 교육을 받았지만, 재즈와 블루스도 공부하고 연주했다.
그는 블루스가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 재즈와 보드빌 음악의 작곡가이자 편곡가로 활약했다.
블루스 가수 마 레이니의 투어에 반주자로 참여하며 명성을 얻었고, ‘지아 톰’라는 이름으로 기타리스트 탬파 레드와 함께 성공적인 음반 활동을 펼쳤다.
그러던 도르시는 영적인 각성을 경험한 후, 도시는 종교 음악 작곡과 편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가사를 제외하고는 블루스와 교회 음악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으며, 노래를 설교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여겼다.
도르시는 시카고 필그림 침례교회에서 50년간 음악감독으로 재직하며 음악적 즉흥 연주를 도입하고, 당시에는 세련되지 못하고 천박하다고 여겨지던 박수, 발 구르기, 외침과 같은 개인적인 참여 요소를 교회 예배에 장려했다.
1932년에는 미국 전역의 음악가와 가수들을 양성하는 단체인 전국복음성가대협회(National Convention of Gospel Choirs and Choruses)를 공동설립했으며, 이 단체는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세기 복음 성가대 1세대 가수들인 샐리 마틴, 마할리아 잭슨, 로버타 마틴, 제임스 클리블랜드 등이 도시와 함께 작업하거나 훈련을 받았다.
이후 재즈와 블루스에 종교적인 가사를 접목하여 가스펠 음악을 탄생시켰다.
1931년 매그놀리아 루이스-버츠,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라이와 함께 시카고 에벤에셀 침례교회에 최초의 가스펠 합창단을 창단했다.
그는 필그림 침례교회에서 60년간 가스펠 합창단을 이끌었다.
도르시는 또한 1933년 전국 가스펠 합창단 협회(NCGCC)를 설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협회는 전국의 합창단들에게 가스펠 음악을 부르는 방법을 가르쳤다.
도르시는 1921년 전국침례교대회에서 WM 닉스가 부른 ‘I Do, Don't You?’를 듣고 영감을 받기 전까지는 교회 음악 작곡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닉스는 특정 음절과 단어를 강조하기 위해 일부 음을 길게 늘이고 다른 음은 빠르게 연주했다.
도르시는 기존 찬송가 안에서 즉흥 연주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유와 가능성에 매력을 느꼈고, 이를 통해 가수와 연주자들은 더욱 풍부한 감정, 특히 기쁨과 환희를 공연에 불어넣어 회중을 감동시킬 수 있었다.
닉스의 노래를 듣고 감격한 도르시는 훗날 ‘그 위대한 가수가 그 일요일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주님의 나라에서 위대한 가수이자 일꾼이 되어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싶다는 영감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이 경험은 그가 1922년 자신이 멘토로 여겼던 찰스 틴들리의 스타일을 따라 작곡한 첫 번째 종교곡 ‘If I Don't Get There’의 저작권을 등록하게 했다.
그러나 교회음악으로는 재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으므로 그는 계속해서 블루스 음악 작업을 했다.
레이니는 바쁜 일정으로 순회 공연을 다니며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1926년부터 도시는 2년간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했다.
그는 1928년에 일종의 영적인 재충전을 경험했다.
처제와 함께 교회 예배에 참석했을 때, 도르시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준 목사로 인하여 영적체험을 하게 되어 회복되었다고 주장했다.
그 후 그는 모든 노력을 복음음악에 집중하기로 맹세했다.
가까운 친구의 죽음 이후, 도르시는 블루스의 영향을 받은 첫 번째 종교 노래인 ‘If You See My Savior, Tell Him That You Saw Me’를 작곡하도록 영감을 받았다.
1932년 출산 중이던 아내와 아기까지 잃은 그는 이 찬송 ‘Precious Lord, take my hand’을 가사를 썼으며, 당시 조지 알렌(George N. Allen)이 만든 ‘Maitland’ 곡조를 재구성하여 만든 것이다.
그는 말년에 인터뷰를 할 때 블루스 음악이나 그 시기의 경험을 비난한 적이 없었다.
그는 친구들과 동료 블루스 음악가들과 계속 연락을 유지하며 "나는 내 블루스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모두 같은 재능입니다. 박자는 무엇이든 박자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도르시는 1970년대에 활동이 쇠약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알츠하이머병 증상을 보였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필그림 침례교회와 NCGCC에서 은퇴했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참여하고 공연했다.
그와 NCGCC는 1982년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 <Say Amen, Somebody>에 출연했다.
영화에 나오는 1981년 모임은 그가 참석할 수 있었던 마지막 대회였다.
도르시는 1993년 시카고 자택에서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다가 알츠하이머병으로 세상을 떠나 시카고의 오크 우즈 묘지에 안장되었다.
작곡자: George N. Allen의 ‘Maitland’(1844)을 바탕으로 Thomas A. Dorsey가 편곡·재구성
이 찬송가의 작곡자 표기는 자료마다 조금 다르게 나와 혼동이 생기곤 한다.
일반적으로는 토마스 도르시가 작사와 작곡 모두 한 것으로 표기되고 있다.
실제 악보와 저작권 등록에도 토마스 도르시의 작사·작곡으로 올라가 있다.
그러나 음악적 뿌리를 따지면 이 곡의 선율은 19세기 미국 작곡가 (George N. Allen)의 찬송 선율인 ‘Maitland’(1844)에서 가져와 편곡·재구성한 것으로 평가한다.
도르시는 조지 알렌의 찬송가 ‘Maitland’ 곡조를 알게 된 것은 Thomas Shepherd가 1693년에 작사한 개신교 찬송가 ‘Must Jesus Bear the Cross Alone’(한국찬송가 339장 내 주님 지신 십자가)을 통해서였다.
이 가사는 Allen이 1844년에 ‘Maitland’ 곡조에 맞춰 작사했던 것이다.
https://youtu.be/uj_mOrYvSjw
조지 넬슨 앨런 (George N. Allen, 1812-1871)
조지 넬슨 앨런은 오하이오주 허드슨의 웨스턴 리저브 아카데미에서 공부했고, 보스턴에서 로웰 메이슨에게 사사했다.
앨런은 오벌린 대학 설립 초기 음악계에 탄탄한 기반을 마련했으며, 음악 교수 외에도 지질학 및 자연사 교수, 비서, 재무 담당자를 역임했다.
1835년에는 <오벌린 사회 및 안식일 찬송가집>을 편찬했는데, 이 책에는 그의 가장 유명한 곡인 <메이틀랜드>(‘십자가와 왕관’ 또는 ‘서양 멜로디’로도 알려짐)와 "예수님은 홀로 십자가를 져야만 하십니까?"(339장 내 주님 지신 십자가)라는 가사가 실려 있다.
이 곡은 1938년 토머스 A. 도르시에 의해 그의 찬송가 ‘소중한 주님, 제 손을 잡아주소서’로 각색되었다.
그는 여러 찬송가를 작곡했고, 아이작 우드버리의 오라토리오 <압살롬>을 위한 추가 음악도 작곡했다.
또한 모든 학생들이 주머니에 넣어 다닐 수 있도록 3x4인치 크기의 작은 찬송가집을 편찬했는데, 이 찬송가집은 여러 차례 재판되었다.
찬송곡조(Hymn Tune): MAITLAND
이 찬송은 토마스 도르시가 자신이 쓴 찬송시에 조지 N. 알렌의 MAITLAND 곡조를 편곡 내지는 재구성하여 만든 곡이다.
미국의 많은 찬송가집에서는 이 찬송을 “Composer: George N. Allen / Adapter: Thomas A. Dorsey” 혹은 “Words and Music: Thomas A. Dorsey” 두 방식 중 하나로 표기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원문 가사와 한국 찬송가 번역과의 차이
한국에서 이 곡은 찬송모음집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주로 ‘주여, 나의 손을 잡고 가소서’, 혹은 ‘주님 이 손을’ 등의 제목이나 복음성가 형태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번역된 가사도 번역상 원래의 뜻을 곡조 내에 맞추기는 어려움이 많겠지만 원문과 비교하면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먼저 가사의 첫 시작인 ‘Precious Lord’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 단어를 직역한다면 ‘존귀하신 주님’, ‘귀하신 주님’, ‘가장 소중하신 주님’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번역 가사에서는 단순하게 ‘주여’, ‘주님’, ‘사랑의 주님’ 등으로 단순한 호칭으로만 표현되고 있다.
원문의 의미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내게 가장 소중한 분’, ‘잃을 수 없는 분’이라는 절절한 고백인데 한국 번역은 대체로 ‘주여’로 간략화되어, 이 정서가 약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다음으로 심신의 상태를 표현한 원문의 ‘I am tired, weak, worn’(나는 지쳤고, 약해졌고, 닳아버렸나이다)는 원문은 단순히 피곤함이 아니라, 삶 전체가 부서진 사람의 탄식이다.
이 부분은 도르시가 아내와 아이를 잃은 후의 심정을 직접 담은 표현인데, 이 부븐을 단순하게 ‘지치고 곤할 때’, ‘힘들고 외로울 때’라고 하여 단순한 삶의 노곤함만을 뜻하지 않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Lead me home’으로 표현된 각 절의 마지막 소절은 ‘나를 본향으로 인도하소서’, 혹은 ‘하늘 집으로 인도하소서’의 뜻이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번역가사에서는 단순히 ‘나를 인도하소서’로만 되어 있어 방향성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원가사의 ‘home’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천국’, ‘영원한 안식처’, ‘하나님 품’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찬송은 단순한 위로의 노래가 아니라 죽음 앞에서 드리는 순례자의 기도에 가깝기에 원문 가사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는 번역이 아쉽기만 하다.
[가사 원문]
Precious Lord, Take My Hand
1.
Precious Lord, take my hand
Lead me on, let me stand
I am tired, I'm weak, I am worn
Through the storm, through the night
Lead me on to the light
Take my hand, precious Lord Lead me home
존귀하신 주님, 내 손을 잡아 주소서.
나를 이끌어 주시고, 내가 서 있게 해주소서.
나는 지쳤고, 연약하며, 기진맥진합니다.
폭풍 가운데서도, 깊은 밤 가운데서도
나를 빛가운데로 인도하소서.
존귀하신 주님, 내 손을 붙드시고
나를 본향으로 인도하소서.
2.
When my way groweth drear
Precious Lord, linger near
When my light is almost gone
Hear my cry, hear my call
Hold my hand lest I fall
Take my hand, precious Lord Lead me home
내 가는 길이 어둡고 쓸쓸해질 때
귀하신 주님, 내 곁에 머물러 주소서.
내 생명이 거의 다해갈 때에도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간구를 들어 주소서.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내 손을 붙들어 주소서.
존귀하신 주님, 내 손을 붙드시고
나를 본향으로 인도하소서.
3.
When the darkness appears
and the night draws near
And the day is past and gone
At the river I stand
Guide my feet, hold my hand
Take my hand precious Lord, lead me home
어둠이 다가오고
밤이 가까이 올 때
하루가 다 지나 저물어 갈 때
내가 강가에 서 있거든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내 손을 붙들어 주소서.
존귀하신 주님, 내 손을 붙드시고
나를 본향으로 인도하소서.
https://youtu.be/Hxavh3jp7ao

첫댓글 홍석진: 고맙습니다
이렇게 슬픈 사연이 있었군요
그런데 편집 솜씨가 너무 훌륭하시네요
늘 감탄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