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키아의 학문 : 탈레스와 피타고라스
지겨울 정도로 반복할 수밖에 없지만 페니키아의 학문 역시 남아있는 자료가 없어 그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역시 한정된 자료에서 얻은 편린들로 추정할 수밖에 없는데 서구 문명의 핵심이 된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 역시 페니키아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 중 하나가 유럽 최초의 과학자로 불리 우며, 버트랜드 러셀에게 ‘서양가문의 아버지’라는 찬사까지 받았던 탈레스의 부모가 페니키아 귀족이기 때문이다.
탈레스는 페니키아 혈통답게 젊은 시절에는 상인으로서 많은 재산을 모았다. 점성술을 통해 날씨를 예측할 수 있었던 탈레스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올리브 압착기들을 미리 사놓았다가 올리브가 풍년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압착기를 원할 때 그는 높은 가격으로 다시 팔아 큰 수익을 남겼다고 한다. 훗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이 행동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학의 유용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평했다.
그는 이집트로 유학하여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했다. 이 때 그림자를 이용하여 피라미드의 높이를 계산했고, 기원전 585년 5월 28일에 소아시아 중부 지역에서 볼 수 있었던 일식을 예언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이 사실을 200년 후, 헤로도토스가 기록에 남겼다.
자석이 금속을 끌어당기는 작용도 그가 발견했던 것으로 전해지며, 물질을 문지르면 나오는 정전기 현상도 발견하였다. 탈레스는 다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철학자이자 수학자, 천문학자, 공학자, 정치가로서 능력을 발휘했으며, 일식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과 신화로 설명하던 여러 가지 주제들을 과학과 철학의 방법으로 설명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찾으려고 노력한 최초의 철학자이기도 했는데, 그는 사물의 기초가 되는 물질의 근원은 '물'이라고 생각했으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 역시 물위에 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모 CF에서 나오는 것처럼 수소는 우주의 75%를 구성하고 있고,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수분의 비율도 비슷하니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 유명한 기하학의 아버지 피타고라스 역시 아버지 므네사르코스가 티레 출신으로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 에게 해 등지를 돌아다닌 무역상이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가 고향 사모스 섬을 떠난 것은 열여덟 살 때였다. 소아시아 연안의 밀레토스로 간 피타고라스는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를 만났다고 한다. 철학자들은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아꼈다. 특히 탈레스는 피타고라스의 재능을 인정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지식을 전수해 주었다고 한다.
그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탈레스의 수제자로 만족하지 않았다. 지식과 진리를 향한 그의 여정은 페니키아, 이집트, 바빌로니아 등으로 이어졌다. 페니키아의 후손다운 모습을 보인 그는 가는 곳마다 성직자와 과학자로부터 종교적 비전을 전수받고 지식을 배워 수학을 숭배하는 종교집단의 지도자로써 말년을 보냈다고 하는데, 탈레스를 스승으로 모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훗날 카르타고에 피타고라스 학파의 학교가 들어섰다.
탈레스와 피타고라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스 인으로 알고 있는 이 사제가 페니키아 혈통이었다는 사실은 이 해양민족의 학문 수준이 아주 높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페니키아인들은 물건 뿐 아니라 학문의 중계도 실행했으며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