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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웹진 《비평공간》 12호
『허밍』 (최정원 / 창비) 토론
2026년 10월 12일 발행 / 출판놀이
- 자유로운 토론을 위하여 닉네임을 사용했습니다.
사회자: 안녕하셨어요.
<비평공간> 열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허밍』 함께 토론해 보겠습니다.
SF 작품인데요. 이 작품을 통해 지금 SF 작가들이 어느 정도의 작품을 써 내고, 또 어떤 도전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만치 않은 작품입니다. 작가 입장에서 배울 점이나 아쉬운 점도 있겠고요.
『허밍』은 영어덜트 작품인데요. 전체적인 감상부터 나눠보겠습니다.
메론: 판타지는 일상적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아니라 작가가 그려놓은 그림을 따라가야 되잖아요. 이 작품도 역시 어렵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뜻언뜻 상상되는 장면이 되게 좋았고요. 문장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캐릭터들도 되게 단단했던 것 같고요.
작품이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환경, 인간 삶, 정치, AI의 문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작품 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탄탄하게 줄거리를 끌고 가고 있어서, 참 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습니다.
첫 부분 읽을 때는 그림이 안 그려져서 오늘 한 50쪽까지 다시 읽어봤어요. 그랬더니 그림이 잘 그려지고 좋았어요. 저 같은 경우는 한 번 읽어서는 이해를 잘 못하겠더라고요. 두 번 정도 읽으면 이해가 잘될 것 같습니다.
사회자: 저도 한 번 읽고 토론을 위해서 한 번 더 읽으니까 가독성이 느껴지더라고요. 처음에 읽을 때는 저도 어려웠어요.
SF 쓸 때 다들 고민이 있는 거죠. 작가는 자신이 설정한 작품 속 세계를 다 알고 있지만, 독자들은 처음 맞닥뜨리는 세계를 가는 거란 말이죠.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이 사람들이 누군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독자를 끌고 가는 게 작가로서 되게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도입 부분에서 헤매다가 뒤로 가면 아귀가 맞아가면서 빠져들게 되는 건데, 이 작품도 도입 부분은 일반 독자들도 그렇고 청소년들도 힘들긴 할 것 같아요.
딸기: SF여서 도입 부분이 어려울 거라 예상은 했는데요. 이 작품은 도저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분위기 정도만 알겠고, 문장 자체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이런 느낌으로 계속 간다면 작품을 다 읽어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요.
다 읽고 나서 어떤 느낌이 들었냐면, OTT 드라마 한 편을 하루 종일 본 느낌이 들더라고요. 뭔가 몰아붙이는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보통 청소년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 긴박감, 그런 것들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
한 번 읽어서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끝부분도 어떻다는 얘기지,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제가 이 작가의 문장 속도를 따라가는 게 힘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내용을 놓치는 부분이 많지 않았나, 묘사하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읽어야하는데, 제가 못 쫓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자: 저도 OTT 드라마 한 8부작 되는 걸 한 번에 끝까지 보는 느낌이었어요. 작가가 영화를 찍기 위해 시나리오를 쓴 느낌이에요.
이것도 작품의 특성일 수 있겠는데, 작가가 극적인 장면 연출을 하면서 언어로 찍어낸 것 같거든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이 작품을 보면 훨씬 이해하기가 쉬울 것 같아요. 영상은 많은 언어가 필요하지 않죠.
영상의 언어를 문학의 언어로 옮기려면 상당히 많은 말이 필요하잖아요. 장면 묘사를 할 때 전체 이미지를 한꺼번에 보여줄 수가 없기 때문에 말은 순서가 있어요. 작가가 발상할 때는 영상으로 발상을 하더라도 문장으로 바꿀 때는 상당히 언어적인 괴로움이 있잖아요. 거기서 영화하고는 다른 문학만의 독특한 특성이 나오는 거지요.
그런 면에서 청소년들이 이런 문장을 깊이 있게 읽어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생각을 많이 해 봐야할 문제인 것 같아요.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영화적인 발상이 됐든 문학적인 발상이 됐든, 전체적인 설정이라든가 주제 의식은 되게 깊은 게 분명하고요.
체리: 저도 1장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체적으로는 작가가 굉장한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서사를 이끌어 가면서 버릴 수 없는 문장들로 촘촘하게 연결을 하더라고요. 장치도 그렇고요.
읽으면서 장면들이 끊임없이 떠올랐거든요. 이를테면 코로나 같은 재난과 안전의 문제, 존재에 대한 생각도 하게 했는데, 힘 있는 자와 없는 자들. 죽음과 생존의 문제와 죽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와 기억의 문제도 생각해 보았고요.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변이가 되는데요. 저는 변이라고 하는 것을 저 자신에 대입해서 상징적으로 생각해 보았거든요. 이 사회 안에도 변이된, 변형된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힘 있는 자들에 의해 그러한 존재들이 가려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보았고요.
인상적인 문장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좋은 문장들은 공책에 적으며 읽었고요. 두 번째 읽으면서 인물의 관계도를 그려가면서 읽다보니 작품이 더 잘 이해가 되더라고요.
공동체의 안전과 개인의 존엄성이 충돌할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우리는 어떤 걸 더 우선시하고 판단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코로나 때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때 코로나에 걸렸던 사람들은 완전히 격리가 되었잖아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사회자: 『허밍』은 인간이 다른 존재로 변이되는 이야기인데요.
인간이 동물로 변하건 나무로 변하건 좀비로 변하건 뱀파이어가 되건 어쨌든 인간이 변이가 되는 SF 작품이 상당히 많잖아요. SF는 왜 이렇게 집요하게 인간의 변이를 다룬 작품을 다루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의미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망고: 책을 다 읽고 나니 다른 선생님들은 어떤 감상일지 궁금하더라고요. 저는 제목이 끌렸어요. ‘허밍’이잖아요. 들리지 않지만 들리나, 보이지 않지만 보이나, 느끼지 않지만 나중에 느껴지나, 그럼 결국에는 뭘까?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 작품이 처음에는 어렵게 시작했지만 뒤에는 좀 쉽게 끝나긴 하더라고요.
현재의 문제들을 총망라한 소재들을 다 넣은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작가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상력이 감동이었어요. 식물인간이 아닌 나무로 팔이 움직일 때 허밍처럼 소리가 들린다는 발상도 좋았고요. 작가가 뭐가 씌지 않으면 이렇게 쓸 수가 있나,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작이지만 지엽적으로 소소하게 걸리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예를 들자면 ‘할머니가 고무장갑을 벗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고무장갑은 9년 동안 어디에서 계속 조달이 됐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고요. 로봇 인형들이 어떻게 계속 에너지를 공급받는지도 좀 걸렸어요.
사회자: 그런 것들을 판타지나 SF에서는 큰 틀에서 시공간의 내적 질서라는 개념으로 얘기를 하거든요.
물론 리얼리즘 작품도 그렇지만 특히 SF나 판타지를 쓸 때 작가는 하나의 세계를 설정하잖아요. 철학이 되었건 인물이 되었건 존재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건, 시공간의 내적 질서라는 것은 독자들이 납득할만한 전제를 설정하면서 써 나가죠.
영화도 그렇잖아요. 작품 내에서 내적 질서가 허물어지면 (넷플릭스 드라마 『들쥐』 예를 들면), 지문 검사 한 번 해 보면 끝나는 걸 왜 끝까지 안하냐고 하잖아요. 이 문제도 이따가 깊이 있게 나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라임 님 지금 들어오셨는데, 작품 읽은 감상 말씀 해주시겠어요?
라임: 저는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어요. 어렵더라고요. 내가 소설이 잘 안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사회자: 우리 모두 힘들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이구동성으로 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깊이가 있다, 그런 이야기 중이었어요.
그럼 좀 더 깊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작품의 긍정적인 면부터 이야기 해 볼까요.
딸기: 저는 왜 식물이 나무가 됐을까, 궁금했고요. 나무가 된 이유를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얘기가 언제쯤 나올까, 궁금해 하면서 읽었거든요. 뒷부분에 왜 나무였는지 그 이유가 나오더라고요. 그 부분을 읽으면서 작가에 대해서 실망하지 않게 되었고요.
작품에서는 인형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미호나 R같은 안드로이드가 등장하잖아요. 변이된 것들 중에 움직이면서 다가오는 것들은 역시 좀비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 작가는 크리처 괴물에 안드로이드와 좀비를 다 넣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만 얘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런 점에서 대단한 것 같아요.
사회자: 왜 작가는 인간이 나무로 변이 되는 이야기에 꽂혔을까요.
특히 SF 작가가 인간 신체의 변형과 변이를 다루는 철학적 배경에 대해, 비평가나 연구자들이 언급하는 바가 있는데요.
SF 장르는 근대 인간의 지위나 인간 중심적 사유를 극복하려는 포스트휴머니즘과 맞닿아 있잖아요. 근대 이후의 인간 존재에 대해 탐구하는 장르가 바로 SF라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근대에는 인간만이 순수한 이 세계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의 몸이 순수하게 그 존재 자체로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 자체가 여러 생명들과 얽혀 있는 복합적인 존재라는 건데요. 생태계 속에서 인간이라는 건 쉽게 이야기하면, 인간 몸에 박테리아도 살고, 온갖 바이러스나 온갖 균류들도 있어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혼종 된 어떤 존재라는 거죠. 공존하고 있는 존재다.
인간만이 최고이고 인간만이 순수한 존재라는 생각이 너무나 오만한 생각이었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한 거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그 경계를 허물면서 철학이 발전해 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인간과 식물이 하나가 돼서 나무 인간이 된 것을 좀비로 그릴 수도 있겠죠. 좀비로 그린다면 부정적인 관점으로 그리는 거잖아요. 그런가 하면 인간과 식물이 새로운 친족 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그릴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인간이라고 하는 그 고정된 순수 관념을 깨기 위해서 작가들이 다양한 시도를 해 보고 있는 건데요. 이 작가의 철학은 지금 양쪽에 다 해당하는 것 같거든요.
수많은 SF 작품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데, 작가의 시선은 두 가지 방향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메론: 저도 공감이 많이 되는 부분이에요.
110쪽에 이런 내용이 나오거든요.
“변이했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뿌리도 입도 없이 굳어진 사람들이래요. 스스로 에너지를 못 만드니까 어두운 곳에서 지내면서 양분이 될 만한걸 찾아 직접 움직여요. 먹는 것에 대한 욕구밖에 남아 있지 않으니 조심해요. 낮에도 해가 잘 안 드는 건물 안은 주의하는 게 좋아요. 밤은 웬만하면 외출하지 말고요. 아, 너무 겁 줬나? 괜찮아요. 거의 다 숲이 많아 우거진 옛날 공원이나 산에 모여 있으니까 마주칠 일은 거의 없을 거예요. 그리고 뭐, 마주쳐도 뛰면 되니까! 몸이 굳어서 엄청 느리거든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은 나무로 변이가 되었는데, 그렇게 안 되는 존재도 있다는 거잖아요. 지금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이런 존재가 바로 좀비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치밀하게 잘 쓰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제가 굉장히 가슴에 와 닿는 문장이 있었는데요.
가장 많은 눈을 가지고 가장 오랜 학습을 거듭해 온 인간마저도 판단을 위탁하는 거대한 인공의 의식들이 각자 후보들을 골랐다.
이 문장에서 결정을 못하고 AI한테 맡기는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많은 사람들이 AI한테 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물어보잖아요. 결국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힘, 결정하는 힘을 점점 더 퇴화시켜가는 것은 아닐까. 작가가 그런 문제의식을 진작부터 갖고 있었던 분이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체리: 저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완벽함이라고 하는 것과 허점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작품을 들여다봤고요. 도입부가 인상적이었는데요.
14쪽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요.
권력과 책임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핏대를 올리고 있을 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검은, 대재앙의 비였다.
소나기가 그치고 난 도시에서, 쩍쩍 갈라진 피부 사이로 피와 함께 마치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각질화된 세포를 쏟아 내는 사람들 수만 명이 비명을 지르며 거리를 내달렸다. (중략) 날개가 굳어 떨어진 새들이 낙엽처럼 바닥을 굴렀다.
비를 맞으면서 그 장면들이 시작이 됐고요. 15쪽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인간들은 허겁지겁 그들의 자랑이던 대도시의 외곽에 거대한 방벽을 쌓기 시작했다.
서울에 우산이라는 방벽 시스템이 등장하는데, 잠실 지구에 완벽하게 설치되었습니다. 방송으로 이렇게 떠들어댄단 말이에요. 그리고 최고의 과학자들과 전문가들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하고요. 우리 인간들한테는 굉장히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쪽에 보면 이렇게 서술하거든요.
잠실의 우산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 (중략) 들여보낸 무인기들은 원인 파악에 실패했고 남은 방법은 사람이 직접 들어가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
그러면서 여운이 등장하게 되잖아요. 그리고 R을 만나는데요. R이 여운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거든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이 모두 기록되고 있는 건 아닌지 좀 불안한 생각이 들었고요.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는데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물과 사회, 사람과 세계가 어떻게 관계 맺고 이루어지는지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생각거리가 많았던 작품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이 특히 좋았습니다.
사회자: 우리나라에서 SF소설을 대중적으로 가장 잘 쓰는 작가 중에 김초엽 씨가 있잖아요. 김초엽 씨가 쓴 『파견자들』도 인간이 식물화되는 이야기인데요. 성인 대상 소설이긴 하지만 비슷한 계열의 작품이기 때문에, 우리 <비평공간>에서 한 번 읽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내부 토론도 있었습니다.
인간이 변이가 되는 작품들은 하나의 큰 계열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식물이 되었든 어떤 존재가 되었든 이런 철학적인 계열의 이야기들을 꼭 한 번 써 보셨으면 좋겠어요. 아마 창작 욕구가 마구 생기실 겁니다.
라임: 저는 나무가 좀비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그냥 다양하다고만 생각했거든요. 예쁜 나무도 있고 환경이 안 좋은 나무도 있고. 막 쩍쩍 갈라진다고 표현할 때는 아토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났고요.
작가가 벌써 이런 생각을 했구나, 느낀 부분이 있었는데요. AI들이 자기들끼리 경쟁하듯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인간한테 굳이 말하지 않잖아요. AI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인간한테 숨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지금 들려오고 있고요.
저는 R이 우산이 되는 부분에서 좀 놀랐어요. 기술이 그렇게까지 발전한 거죠. 그리고 여운이를 끝까지 속인 부분도 그렇고요.
이건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건데요. 읽으면서 한강 작가 『채식주의자』가 떠오르더라고요. 『채식주의자』에서 인간이 나무가 되는 부분이 떠올랐고요. 삼촌이랑 무선으로 주고받는 내용에서도 5·18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어요. 집이 풍비박산 되고 학교가 다 무너지고 이런 장면에서 4·3, 5·18 이런 게 자꾸 떠오르는 거예요.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SF가 아무리 발달해도,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크게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이 나무로 변이된 부분에서는 친근하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나무는 어쨌든 혼자 살아 있잖아요. 뿌리 하나만으로 온갖 균류들과 함께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자라니까, 인간이 나무로 변이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자: 이 작품이 결국은 인간만 인간이냐, 나무 인간도 인간인데, 과연 어느 걸 선택할래? 묻고 있잖아요. 똑같은 비중으로, 하나의 존재로, 하나의 친족으로 선택한다면 너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여운한테 선택하라고 그러는 거잖아요.
여러분 같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겠어요?
굉장히 힘든 딜레마 같은 상황을 만들어 놓고 질문을 던지고 있거든요. 청소년들이 이 작품을 끝까지 읽어낼 수만 있다면 수준 높은 토론이 될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토론을 잘 이끌어간다면 아이들이 문학의 맛도 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읽을수록 되게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에요.
망고: 제가 선생님한테 AI 강의를 듣고 대충은 이해를 했는데요. 세계사를 보면 기원전이 있고 기원후가 있듯이, AI 이전과 AI 이후가 자꾸 생각이 나는 거예요.
아까 선생님이 생명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 하셨는데 우리 몸이 자연인이라면, 자연에서 받아서 생활하는 게 과연 뭘까 생각을 해봤는데, 의식주 모두 기계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 같더라고요. 집도 그렇고, 옷이나 먹을거리도 공장에서 나오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과연 자연인으로서만 살아갈 수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에서도 미호나 R의 힘이 없으면 상황이 진전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마음이 좀 혼란스러운 거예요. 제대로 된 건가 싶기도 하고요.
여운이 생명을 살려내려는 끈질긴 힘을 보여주려는 작품인 것 같기는 한데, 혼돈이 되기는 합니다.
사회자: 그렇죠. AI가 오면서 지금 격변기에 살고 있는데, 인간이라는 존재가 뭐냐에 대해서 고민이 많이 되지요. 혼종의 인간이라고 할 수도 있고, 과학하고 하나가 되어서 변이된 존재라고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망고: 박팀장과 팀원들 있잖아요. 국가의 권력을 가진 힘 있는 자들이 근대적인 인간으로 느껴졌고요. 여운이나 정인이, 미호와 R같은 존재들이 새로운 인간으로 느껴졌거든요. 변이된 생명체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의미로의 인간의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회자: 작품에서 매력적인 인물은 오히려 인공지능 R인 것 같아요. R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잖아요. 작품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R의 반전 때문인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기도 하고, 여운을 선택한 것도 R이죠.
망고: R이 작품 속에서 좀 미묘하게 작동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여운한테 약을 두 알을 먹이잖아요. 기계로서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사회자: 지금 관리할 수 없는 AI로 간다고 하잖아요. AI한테 전쟁을 맡기면 90% 가까이 핵폭탄을 발사하는 쪽으로 결정한다는 식으로, 별의 별 얘기를 다 하는데요.
메론: 거기까지는 안 갈 것 같은 느낌이에요. 어쨌든 R은 여운이 명령을 내려야 행동하게끔 프로그램된 거니까요. R이 세상을 망가뜨릴 이유가 딱히 심어져 있지 않다면 그럴 위험은 없을 것 같아요. 기계들이 뭘 할 수 있는 건 결국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닐까.
사회자: 이 R이라고 하는 캐릭터가 이 작품을 읽게 만드는 동력원인데, AI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요.
AI를 만드는 사람들은 AI는 지금 스스로 성장하고 진화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인간의 마음을 배워버린 AI라고 하는 설정을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자두 씨도 이제 상황이 되시면 한 말씀 해 주시죠.
자두: 늦게 화면을 켜서 죄송합니다.
딱 한마디로 정리해서 말하기 어려운 작품이었어요. 좋다 나쁘다, 인상적이다, 아니면 흔히 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하나로 딱 정리해서 판단하기가 좀 어려웠던 작품이었고요.
프롤로그가 기대감을 많이 갖게 했던 작품이었어요. SF적인 경이감이나 거침없는 서사가 전개될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했고요. 초반부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보통 이야기들을 보면 서울에서 비서울인 고향으로 떠나는 이야기인데, 위치적으로 정반대로 설정이 되어 있어서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품의 설정이 20~30년 후인 근미래가 아니고 가까운 미래로 그려져 있잖아요. 제 기억에 10년 이내였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요.
아무리 SF, 판타지여도 시공간을 설정할 때 작가가 바꾸지 않고 일관성 있게 가져가야 되는 부분들이 있는 거잖아요. 근데 살짝살짝 어긋나는 지점들이 있더라고요.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몰입을 하고 싶은데 자꾸 튕겨나가게 하는 지점들이 있었어요. 그런 지점들이 빈도수가 많았는데, 지금 기억나는 것은, 잠실에 있는 제2롯데타워예요.
그건 이미 현실에 다 지어져 있고 빌딩 이름도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소설 속에서는 이름이 정해져 있지 않거나 이상한 이름으로 나오고, ‘사람들이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았다’는 식이었어요. 이런 요소들이 시간적 배경이 정확히 언제인지 혼선을 주면서, 한창 재미있게 읽다가도 몰입을 방해하고 튕겨 나가게 만드는 거죠.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방벽이라는 것도, 그 방벽의 경계가 스노볼 같은 모습인 건지 다른 건지 묘사가 되어 있지 않아서 몰입감을 방해했던 것 같아요. 이 정도 작품을 쓰는 작가라면 충분히 다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은데, 그런 부분이 많이 아쉬웠고요.
저도 인간이 나무로 변이되는 것이 되게 인상적이었고, 이 작품의 의미 있는 특징이라고 생각 되는데요. 인간이 나무로 변이됐을 때 그 종류도 다양하게 변주될 텐데,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아서 좀 답답했거든요. 역시 충분히 묘사가 가능한 작가님인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이 생략이 되어 있어서 아쉬웠어요.
인간이 나무로 변하는 작품 중에서 제일 인상적으로 읽었던 것이 김숨 작가의 『뿌리 이야기』인데요. 인간이 나무로 변해가는 과정을 소름 끼치도록 묘사했던 작품을 보고 되게 놀랐던 기억이 있거든요. 이 작품도 인간이 나무로 변이되는 것을 중요한 장치로 가져가려고 했다면, 손가락 다섯 개가 갈라져있는 것 같다는 식의 반복되는 묘사들 외에, 좀 더 다양하고 리얼하게 묘사가 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저도 한 중간까지 읽었을 때는 OTT 시리즈 보는 느낌이었어요. 왜 이런 느낌이 들지, 생각해 봤거든요. 작품이 화자가 계속 바뀌면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 문단이 짧은데 또 자주 바뀌더라고요. 그런 것도 한 요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R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R과 주인공 여운의 관계를 로맨스로 읽어내는 청소년들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린 시절의 추억을 기반으로 하는 부분이나, 결말로 가면서 감정선이 다양하게 변주되는 부분들을 작가님이 잘 그려내신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이 작품보다는 작가의 다음 작품이 엄청 기대가 됐어요. 좋은 점들이 많지만 밸런스 면이나 그런 점이 아쉬웠거든요.
나무 인간을 인간으로 보고자하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인간이 아니라고 보는 집단도 있는데요. 작품의 기저에는 ‘내가 너의 존재를 규정한다’는 식의 아주 포괄적인 개념의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한 것을 기저로 여러 가지 개념들을 날카롭게 잡아내셨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엔딩에서 그러한 내용을 여밀 때, R이 우산이라는 증거를 밝히면서 저는 독자를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선택을 강요당한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사유를 대사로 이야기하는데, 물론 그 대사들이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조금 더 호흡을 가다듬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자: 엔딩에서 주제를 강요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건가요?
자두: 작가가 작가의 말에도 썼더라고요. 처음에 짧은 글이었는데 분량이 엄청 늘어났다. 근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결코 단순한게 아니잖아요. 작품을 재가공할 때 꾹꾹 누른 것 같아요. 공기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회자: 이 작품이 ‘허밍’이잖아요. 엔딩에서 허밍 소리가 들리는 부분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것 같아요. 그 장면에서 독자들을 울릴 수 있어야 하는데, 청소년들을 한 번 눈물 빼게 해야 하는데, 좀 아쉽더라고요. 워낙 결정적인 부분이라 아쉬움이 더 큰 것 같아요.
317쪽인데, 제가 한 번 읽어볼게요.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가느다란 허밍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결에 잘못 들은 것일까 착각할 만큼 작고 희미한 노랫소리.
여운은 눈을 번쩍 떴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던 낮은 허밍에, 한 음 높은 다른 허밍이 겹쳐진다. 하나 더.
그리고 또 더.
여운과 정인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착각이 아니었다. 정말로 들려오고 있었다. 가락도 리듬도 각자 다른 가닥가닥의 소리들이 층층이 쌓이며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화음의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득한, 어딘가 그리운, 가슴이 저리게 슬픈 울림. 노래는 마치 안개처럼 빌딩 전체를, 아니 서울 전체를 희뿌옇게 감싸며 피어올랐다.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은,
“아…….”
“말했잖아.”
정인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노래도 부른다고. 살아있다고.”
숲이었다. 숲 전체가 노래하고 있었다. 온몸으로. 가슴이 조여 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명치부터 목 끝까지를 꽉 메우고 치솟았다. 여운도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웃었다. 목소리가 엉망진창으로 갈라져 나왔다.
“그러네.”
모두, 저렇게 울고 있네. 묘비 같은 게 아니었네. 정말로. 살아있네, 다들.
우리가 틀린 게 아니었네.
눈물방울이 정인의 뺨 위로 떨어졌다.
이 장면이 감동으로 와야 하는데요. 나무로 변한 인간에 대한 연민이 됐든 공감이 됐든, 허밍 소리가 갖고 있는 상징이 좀 멋지게 와 닿아야 하는데, 글쎄요. 좀 더 깊은 인상으로 남았으면 하는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토론에서 못 다한 말씀 한 마디씩 해 주시죠.
메론: 제가 이 작품을 평가할 만한 독자는 아니고요.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진짜 잘 썼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작가의 말이 작품에 비해서 간단하다고 느껴졌거든요. 작가가 느끼는 어떤 가벼움일텐데, 최선을 다해서 작품에 쏟아내고 난 뒤 느끼는 해방감 같은 것 같아요. 한 번으로는 안 될 것 같고요.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망고: 저도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제목에 끌려서 읽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허밍이 언제 나올까, 생각하며 읽었거든요. 처음 허밍이라고 느꼈던 부분은 109쪽이었는데요. 읽어보겠습니다.
여운은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뇨. 뭔가…… 목소리 같은 게…….”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 같은 게 들린 것 같아서.
우스스, 바람도 없는데 이파리들이 서로 몸을 부딪쳤다.
저는 허밍이 좀 더 나올 줄 알았는데, 마지막 부분 하이라이트에서 나오더라고요.
최근에 읽은 SF 중에 감동적으로 읽은 책이었습니다. 저도 한 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체리: 저는 이번 토론을 통해서 SF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게 가장 큰 성과였던 것 같습니다.
라임: 저는 토론하면서 제가 왜 이 책을 힘들게 읽었는지 알게 되었어요. 자두 님 말씀처럼 방벽이라든가, 여러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묘사가 있었더라면 조금은 쉽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고요.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허밍 소리는 언제 나오는지 궁금했거든요. 그만큼 허밍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래서인지 엔딩에서 서술되는 허밍에 대한 장면은 저도 많이 아쉬웠어요.
294쪽에 R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유전자가 일부 바뀌고 생활 방식이 일부 바뀌는 것뿐이지 않습니까? 저희 기준에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인간이나 뿌리로 땅에 박혀 있는 인간이나 다 똑같은 인간인데요.”
저는 이 세 줄이 가장 좋았어요. 얘네들 눈에는 이렇게 보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요. 작가가 정말 대단한 상상력을 가지고 쓴 작품인 것 같습니다.
사회자: 작가가 R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이런 장면을 연출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짜릿하긴 하죠.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면은 있어요. 여운이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런……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무슨 소리야! 어떻게 똑같아, 그게!”
반감을 갖고 얘기하니까 R이 이렇게 말하는데요.
“정정할까요? 완전히 똑같진 않겠죠. 외형도 바뀌고 두뇌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겠죠. 그게 중요합니까? 어차피 생존 반응은 그대로입니다. 사실 어떤 관점에서는…….”
인간들은 서로에게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우산은 그들을 동정하기로 했다.
“종 차원의 진화로 보이기도 합니다만.”
종 차원의 진화로 볼 수도 있지 않느냐는 거지요. 어차피 바이러스도 인간을 자기 서식지로 생각하고 사는 것이고, 자연도 인간을 서식지로 산 것뿐이다. 뭐 그렇게 다른 게 있겠느냐는 것이 일부 철학자들의 생각인데요. 작가들은 고민을 해 볼만 하죠.
딸기: 처음에 나무로 변이된 이유가 나오는 장면이 있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라임 님이 읽었던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또 이런 장면이 있는데요.
‘이것 좀 보라고. 진짜 광합성을 한다니까? 저게 모양만 식물인 게 아니라 정말 식물이 하는 일을 다 해. 게다가 봐 봐. 파장이 잡히잖아. 뇌가 살아 있다는 뜻 아냐? 아직 방법은 모르겠지만 연구하다 보면 언젠간 의사소통도 가능할 거라고. 멋지지 않아? 아무런 공해 없이 자체 에너지 생산이 가능한 인류라니 우리보다 나은 것 같은데.’
이 부분이 나무로 변이된 이야기를 쓰기 위한 작가의 철학이었을 것 같거든요.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사고를 하고 계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SF 작가들은 정말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두: 주변에 이 작품을 읽은 사람이 없어서 얘기 나눌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얘기 많이 나눌 수 있어서 재미있었고요.
좋아하는 문장이 있어서 읽어 보겠습니다. 335쪽이에요.
아무도 모른다. 저 속에 갇혀 서로를 지키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을 모두 잃고서도 결국 사람들을 살리려고 위험 속으로 뛰어들던 그 아이를. 저 버려진 사람들을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없어 더 많은 이들을 지옥에 끌고 가고 싶어 했던 정신 나간 기계의 마음과, 그를 막기 위해 여운을 이용하려 들었던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도.
사회자: SF 작가들은 철학자이기도 하죠.
우리는 워낙 인간 중심주의 사고에 사로잡혀서 비인간들을 무시하고 절대적인 권력을 누려왔지 않습니까? 그것에 대한 반성으로 철학하는 사람들, 문학하는 사람들, 교육하는 사람들, 예술하는 사람들이, 근대 인간 중심주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상상력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여성 철학자 중 한 사람이 도나 헤러웨이인 것 같아요. 도나 헤러웨이는 자신은 포스트 휴머니스트도 아니고 퇴비주의자다, 그렇게 말하거든요. 썩어서 뒤섞이는 퇴비 있지 않습니까? 퇴비주의자라고 하면서 하는 얘기가 있는데 읽어보겠습니다. 『신유물론』 219쪽이에요.
퇴비는 땅 속에 사는 것들, 서로 얽히고, 진행 중이고, 생성적이고, 파괴적인 지구의 존재들과 거의 동일어이다.
그렇죠. 지구에서 살고 있는 많은 존재들이 결국은 썩어서 퇴비가 돼서 돌아간단 말이죠. 그러니까 해러웨이는 자기는 그런 퇴비주의자라는 거예요.
퇴비는 땅과 관련된 관용어로서 생명의 연속성, 다종의 삶과 죽음, 먹고 먹히기, 상호 의존적인 뒤얽힘,
그렇죠. 서로가 얽혀서 바이러스 미생물이 작동하고, 결과적으로는 이런 퇴비의 사유 체계가 가장 밑바닥의 사유이죠.
공생, 자연 문화의 구체적인 형상이다.
자연과 문화가 구별된 게 아니고, 자연하고 문화가 뒤섞인 생태계의 가장 구체적인 형상이 퇴비이죠.
퇴비 은유는 모든 크리터가 수평적으로, 기호론적으로, 계보상으로 공통의 ‘육신’을 공유하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알게 하여 우리를 쉽게 다종 속으로 데려가기 위한 전략이다.
페미니스트이면서 과학자고 철학자인 도나 해러웨이는 가장 밑바닥, 그 수많은 다종 속으로 인간도 내려가야 된다는 거예요.
인간은 원래 땅속에서 온갖 크리터와 함께 살면서 서로를 오염시키고 감염시키면서 뒤얽혀 발효하면서 서로를 만드는 존재들이다. 손상된 행성에서 트러블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퇴비임을 자각하고 “크리터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신진대사 변형”에 과감히 뛰어들어야, 고향인 테라폴리스에서 크리터들과 게임할 자격이 있다.
이게 멋있는 말인데요. 지구가 손상됐다. 그러니까 지구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자, 그런 생각하지 말고, 훼손됐으면 훼손된 대로 트러블과 함께 하자는 거예요.
퇴비인 우리는 다종의 공동생성적 집합체 “어셈블리지”이다. 우리는 개체를 다시 정의하고 비인간과 인간의 불가분성, 비인간의 주요한 행위능력을 인식해야 한다. 스콧 길버트 등의 말처럼 “우리는 개체였던 적이 없었다.” 해러웨이는 휴먼의 잔향이 가득한 포스트 휴머니즘을 인간 예외주의로 비판하면서, 포스트 휴머니즘과는 결별하는 새로운 ‘윤리-존재-인식-론,’ 퇴비주의를 제안한다.
해러웨이는 미생물, 바이러스도 우리 인간의 장에 살면서 공존하는 것이고, 인간 몸에 서식하는 또 하나의 행위자들로 본다는 거죠. 인간은 혼자서 독점적으로 인간이라고 하는 개체였던 적이 없었다는 겁니다. 근대 휴머니즘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걸 포스트 휴머니즘이라고 하는데, 포스트 휴머니즘에도 휴먼이라는 말의 잔향이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포스트 휴머니즘에도 인간의 냄새가 남아 있다. 그 인간의 냄새가 남아 있는 포스터 휴머니즘조차도 인간만 독특하게 예외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있기 때문에, 그것도 넘어서야 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극단적인 것 같지만, 이 말은 인간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인간이 퇴비주의라고 하는 상상력을 발동할 수 있을 정도로, 비인간하고 경계를 허물면서 어떻게 공존해야 될 것인지를 모색해야 한다는 건데요. 아동청소년 문학하는 사람들은 교육, 철학, 작가의 자리에서 사유를 하면서 참고할 만한 견해인 것 같습니다.
『허밍』을 읽으면서 이런 사유를 할 수 있는 작가가 아동 문학판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에 감동을 했고요.
여러분들도 이렇게 멋진 작품 많이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비평공간>이 벌써 열두 번째니까 시작한지 2년이나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늘 참여해 주셔서 계속 이어오고 있는데요. 매회 토론에 참여해 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토론할 작품들이 계속 생기는 것도 감사한 일인 것 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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