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당
당뇨약을 들라며 처방해 준다. 정말 내가 그렇게 됐나 걱정이다. 그래서 다른 병원을 갔다. 괜찮다며 그냥 가란다. 어휴 그럼 그렇지 왜 하필 그런 걸 얻어걸리겠나. 몇 해 지나다 마을 의원 내과에 갈 일이 있어서 피검사부터 했다. 수치가 높다며 약을 곁들여 지어준다. 어서 낮춰야지 놔두면 안 된단다.
기어이 사달이 났다. 이웃에 약 먹는다는 말만 듣던 떠들썩한 것을 나도 하게 됐다. 뭐 좋은 것이라 따라 하나. 그때부터 오늘까지 수십 년 넘게 길게도 이어져 왔다. 아침저녁 서너 알씩 밥 먹기 전에 넘긴다. 거기다 고지혈이 있다나 또 잦은 소변으로 잠을 설치는데 그 약까지 함께 넣어 삼킨다.
지난날 아는 사이였는데 어느 날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곧 낫겠지 했는데 여러 해 만날 때마다 어정거린다. 당뇨가 심해서 그리됐단다. 더하면 다리를 잘라야 한다니 큰일 날뻔했다. 또 다른 이는 얼굴이 말라 보였다. 뚱뚱했는데 갑자기 반쪽이다. 모임에서 먹음새가 좋았는데 삐쩍 야위었다. 한방을 드나들었는지 물 많이 마시는 소갈증이란다.
한번 탈 나면 되돌릴 수 없는가 보다. 저리 무서운 병인가 싶어 그만 오금이 저려온다. 약은 빠지지 않고 잘 먹는다. 석 달마다 듬뿍 타 와 으레껏 먹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고만고만 덧나지 않으니 고마워라. 당뇨와 고지혈은 이렇다 하고 나타나는 게 없다. 의사가 있다니 그런가 하고 지낸다.
전립샘이 나빠 밤사이 여러 번 쉬하는 게 번거롭다. 잠을 설치게 되어 다음날 얼떨떨할 때가 있다. 거기 그만 오줌길에 돌이 생겨 얼마나 아픈지 새벽에 응급차에 실려 갔다. 아팠다 좀 놔 주곤 하는데 이건 꾹 눌러 쉼 없이 찌른 채 결려 엉엉 울고 싶었다. 그렇게 모질게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 소변을 보려면 막혀 피만 줄줄 나오고 찡하고 터질 듯해서 참느라 안간힘을 썼다.
갈 때마다 이런저런 걸 시킨다. 눈 검사를 하며 한나절 내내 줄 서서 오래 기다렸다. 시장통같이 북새통에 시달려 복도를 서성이니 힘들었다. 피를 뽑고 가슴을 찍는 등 여러 가지를 하느라 지친다. 그러더니 도저히 안 되겠다며 주사도 놓으란다. 이다지 심해졌나 커다란 근심거리가 생겼다.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 배꼽 곁에다 찔렀다. 따끔했지만 참을 만하다. 아침저녁으로 약 찾아 먹고 또 배를 드러내는 게 이만저만 섣부른 게 아니다. 온통 여기에 마음 써야 한다. 이태를 하다 보니 이는 사는 게 아니다. 뚝 불거지는 것도 없다. 마냥 지내려니 따분하고 거추장스럽다. 자그마치 살았으면 됐지, 뭐 발버둥 치고 아등바등하겠나. 내 던지고 집어치웠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아 잘 됐다 싶었다.
날이 갈수록 이래도 될까. 가라앉은 앙금이 피어올랐다. 지팡이 짚거나 바짝 마른 걸 보잖았나. 한번 자칫 잘못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가족이 뒷바라지하면서 무던히 힘겨워한다. 마지못해 마을 의원에 들러 약을 타 먹기로 했다. 아침은 잘 먹는데 바깥에 나갈 땐 깜박하고 저녁 약을 거를 때가 있다. 찾아 먹는데도 여러 개 남아돈다.
달짝지근한 건 참아야 하는데 설 손이 간다. 커피도 주면 마다하지 않고 한잔 들이킨다. 꿀도 그 달콤한 맛이 날 끌어당겨 배길 수 없게 만든다. 밀양에서 나무에 일찍 익어 떨어지려는 홍시를 해마다 따온다. 몽글몽글 사르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맛에 반한다. 이 맛을 어찌 그만두나 참는다고 하지만 조금씩 넘기며 지냈다.
밀가루로 만든 칼국수와 수제비, 단팥빵이 왜 그리 먹음직하나. 뜸 잘 든 뽀얀 쌀밥에 묵 김치 올려 한술 떠보라 구수하고 새콤달콤한 맛에 술술 막 넘어간다. 잡곡을 넣어 껄끄러운 게 싫다. 콩이 자꾸 씹혀 겉돌고 맴돌며 넘어가질 않는다. 고기와 나물 가지도 누린내가 나고 잇몸에 끼여 파내기 거북하다. 팔십 넘게 써서인가 어금니가 벌어져 냉큼 들앉아 뻐근하다. 그래도 아프거나 흔들리는 게 없어 이만한 게 어딘가.
이쯤 나이에는 귀도 어두운데 아직은 밝아서 잘 들린다. 젊을 때는 괜찮았는데 늙어서 한쪽 다리가 짧아져 절뚝이는 사람도 있다. 무릎과 엉덩이 관절이 나빠 사흘돌이로 물리치료 다니는 친구들을 본다. 여태 팔다리 휘어지거나 떨리는 게 없이 멀쩡하다. 위가 가끔 떠름해서 암으로 나타나면 어쩌나 조바심을 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차를 모는데 앞이 구름 낀 것처럼 희뿌옇기만 하다. 자고 나면 찌뿌듯하고 뻐근한 게 무겁다. 그러려니 하는데 아내가 며칠마다 잰 혈당을 보더니 놀란다. 이렇게 올라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냐며 뭐란다. 단박에 나가잔다. 바닷길을 걷자며 팔을 이끈다. 걷기 싫어 끌려 저 끝까지 갔다 왔다. 너무 걸어 다리 아프고 등에 땀이 다 난다.
저녁을 적게 들고 소파에 앉아 권투와 당구 프로를 보는데 또 밀려 나갔다. 이번엔 아파트를 돌았다. 세 바퀴를 도니 다리가 휘청한다. 다음 날 아침에 재니 일백이나 떨어졌다. 좋다며 반긴다. 이제 눈이 좋아질 거란다. 차 몰다 부딪치고 아찔한 일을 당하니 어디 나가는 게 두렵다. 침침하고 둔해져서이다.
이것저것 주섬주섬 잡히는 대로 자꾸 넣어 배불리 먹었는데 안 보인다. 아내가 주전부릴 보이는 대로 버리거나 구석에 감춰 넣는다. 아들이 약도 챙겨줘서 거르지 않는다. 이리 보채고 닦달하니 좋아져 간다. 절뚝이고 비쩍 말라가면 되겠나.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걷기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나른하고 귀찮아 주저앉거나 걸핏하면 눕는다. 새벽에 다리를 들어 박차고 벌떡 일어나 한참 글 쓰다 보면 새날이 밝아온다. 기쁨의 예배드리는 주일을 지킨다. 다른 날은 한나절 집사람 좋아하는 텃밭에 엎드려 일하고 당구 치러 가는 게 즐거운 일이다. 밭이 여기저기 떨어져서 길쭉하다. 오가며 다니는 것과 당구대를 맴맴 도는 게 적이나 꾀 발품이다. 자그마치 혈당을 떨어뜨리는 만 보쯤 될까 말까.
첫댓글 나이 드니 여러가지 질병이 생깁니다
당뇨가 무섭긴 한데 당장 증상이 없으니
대수롭게 여깁니다
먹는 것 걷는 것 인내심이 요구되는 질병
평생을 같이 살아가야 되는 게죠
여든 넘게 잘 관리하셨습니다
같이 살아왔는데 요즘 높아집니다.
조심하면 내려가고 그냥 지나면 올라갑니다.
고지혈 전립샘도 별 탈 없이 여태 지내왔습니다.
올랐다 내렸다 하는데 저리 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