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희망이란 단어로 비상을 꿈꾼다.
나는 지금, 소유와 문명을 벗어난 세상의 뒤안길에서 밴쿠버의 심장부인 관광 명소로 유명한 '스탠리 팍' 긴 바닷가의 새벽길을 걷고 있다. 얼음처럼 따가운 겨울 새벽을 온 몸으로 껴안으며 태평양을 향해 도약하는 갈매기들의 힘찬 날갯짓에 눈시울이 뜨거워온다. 살갗이 아리도록 날카로운 바람을 뚫고 나르는 갈매기들의 역동적인 날개 짓은, 투병으로 싸늘해진 삶의 의욕에 불씨를 당기며 ㅡ 먼 망각 속에 묻혀진 날아오르지 못한 종이학의 꿈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등꽃처럼 잔잔한 연보라 빛 잔영(殘影)으로 남아 있는 추억하나.
고사리 손등에 핏기가 마를 날이 없었던 학창시절, 나는 여명의 교회 종소리을 들으며 그의 집 앞을 오갔다. 언제부터인가, 새벽 그림자를 밟고 따라오기 시작한 그와는 교회 청년부와 학생 성가대로, 유년 주일학교 반사로서 신앙의 꿈을 키워나갔다. 야간학교 방과 후, 늦은 밤 귀가 길을 그림자 같이 등불을 밝혀주던 그는, 내 인생 초반 외로운 타향살이에 지친 내게 등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고교 졸업 후,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로 향했다. 5공 시절, 서울의 인심은 흉흉하고 인정마저 각박하던 4.19 직전 - 생존이란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은 척박한 땅에서 꽃을 피워내는 것 만큼 힘든 일이었다. 그에게서 편지가 날아들었지만 생각할 여유마저 없었던 나는 우정 이상의 감정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백도, 답장을 쓸 시간조차 없었다. 사랑 놀음 같은 것은 부모 잘 만난 행복에 겨운 내 또래의 몫이라고 묵살하며, 이성에 대한 감정이나 정서적인 감상은 사치라고 억지를 부리며 살았다. 상대적이지 못해서였을까. 어느 날, 입영 열차를 탄 그에게서 소식이 끊기고. 정지할 줄 모르는 시간 속에 서로의 꿈은 다른 날개를 달고 세월 저쪽으로 흘러만 갔다.
딸이 결혼하는 것을 보아야 눈을 감겠다는 어머니의 소원은, 꽃 같은 나이에 시집을 가게 했다. 맏딸로서 끝내 친정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허기진 가슴을 감싸 줄 반려자를 찾아서 결혼을 결심한 것이다. 결혼식을 앞둔 어느 날, 소식이 없던 종이학 얼굴이 나타났다. 나는 차마 하기 어려운 말을 해야만 했다. "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예, 무엇이라고요." 아! 토해내던 그 신음 소리와 일그러진 표정. 얼어붙은 침묵, 군복차림으로 장승처럼 서있던 그 순간을 어찌 잊을까, 책임져야 할 일이나 미안해야 할 언약은 없었다. 그런데도 오래도록 가슴이 아팠다. 이유야 어떠하든 성실하고 근면한 한 청년이 견뎌내야 할 꿈에 대한 실망과 허탈의 앙금들, 고의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자문다답, 좋은 친구를 잃고 후회할지 모른다는 안타까움, 결혼에 대한 내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복합적인 감정이 뒤엉켜 퇴락해 가는 고향 마을의 빈 우물을 들여다보듯 뒤가 씁쓸했다. 훗날 내 처지와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을지, 가족의 생존과 배움에 대한 열망만이 전부였던 그 당시의 나를... . 갑작스런 결혼의 선택, 참 마음은 하늘만이 아실 뿐이다.
그가 보낸 빨간색 스포츠 가방을 소포로 받은 것은 결혼식 직전이다. 주인공에게 돌려준다는 선물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야 한다'는 축하장과 함께 가방 가득 담긴 종이학. 결혼 후 차마 학을 버리지 못했다. 예쁜 유리병에 담아 찬장 속에 간직했다. 찬장 문을 여닫다 문득 학과 마주치면, 학을 접느라 밤을 새웠을 그의 모습이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 때의 나에겐 마음 한 자락 내어줄 자리가 없음을 알면서도 '천 마리의 학을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전설을 믿으며 힘겨운 군 생활을 용케도 견디어 내었으리라.
세월은 듣지 말아야 할 그의 소식을 풍문에 실어 왔다. 제대 후 실성한 사람처럼 헤맨다고. 그것은 당사자의 문제일 뿐, 내 알 바 아니라고 도리질을 했다. 그 뒤로 찬장 속의 종이학은 벽장 속으로 유폐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그 후 나의 삶은 의사의 오진과 수술의 후유증으로 모든 꿈은 정지되어 갔다. 투병이란 질곡의 늪에서 자아실현의 꿈은 포기와 체념으로 묻어야 했고 끝내 모두를 놓아버리고 태평양을 건넜다. 떠나온 집안 구석 어딘가에 내동댕이 처져 있을, 40여 년이 되어 가는 빛 바랜 종이학. 그 초라한 꼴은 내 모습을 닮았을까, 결혼해서 잘 살기를 바랐는데 병까지 짊어진 채 고향마저 떠났느냐고 울고 있을까. "나는 이제 결혼도 하고 사업도 번성하고, 영생의 꿈에 은빛 날개 반짝인다"며 종이학은 위로한다. 힘겨운 세상살이 견뎌내며 친정과 시댁, 자식과 가정을 위해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 절대자의 품에 안겨 안식하라고. 이루지 못할 꿈 인줄 알면서도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어 보낸 그의 끈질긴 인내와 뜨거운 열정을 이제 새삼스럽게 배우고 싶다. 비록 날지 못하는 학이지만, 손끝이 닿은 학들이 내게로 와서 제 마음을 전하며 비상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오늘 나는 그가 그랬듯이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는 꿈을 꾼다. 나의 여과된 의식으로 꿈을 잃은 이들에게 등불 밝히는 혼이 담긴 글 한 편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하며.
그렇다. 저 바다 위를 힘차게 비상하는 갈매기처럼 치열하게 은혜의 날개아래서 여생을 가꾸어 갈 것이다.
첫댓글 그랬군요...마음아픈 상처..많은 사람들이 그와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을겁니다... 종이학 하나하나에 손길을 느끼며 ...언젠가는 학처럼 날 수 있는날이 오리라 믿습니다...종이학의 정성이 결코 무너지지 않으겁니다...전지전능하신 님이 계시기에 .........
은빛날개짓도 활기롭게 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