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인간의 역사
『백 년 동안의 고독』, G. 마르케스, 문학사상사.
<백 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는 콜롬비아 태생으로 12남매 중 장남이다. 그는 콜롬비아를 비롯해 프랑스, 베네수엘라, 미국, 멕시코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이후 광고회사에 다니고 영화대본도 쓰며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작가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을 23년 동안 구상했고 18개월 동안 칩거하며 하루에 8시간 정도를 썼다고 한다. 작품은 6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을 다룬다. 가문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슬라 이구아란의 결혼으로 시작된다. 부부는 2남 1녀를 낳는다. 자녀 이름은 아들 호세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 딸 아마란타이다. 아마란타를 제외 한 두 아들은 자녀들을 낳고 낳아 가문을 이어간다.
작가는 자손들의 이름을 2대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로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이런 구조는 부엔디아 가문의 성향을 구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2대 아르카디오의 이름을 받은 3대, 4대, 5대의 아르카디오는 개방적이며 호기심이 많은 인물로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반면, 아우렐리아노 이름을 받은 3대, 4대 6대 자손들은 투쟁적이며 진취적이다. 비롯 형제끼리 성향은 다르지만 세대가 이어지면 비슷한 특성이 나타남을 이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세대간 혈족은 어느 부분에선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6대에 걸친 인물의 성향 중 가장 공통점은 ‘근친상간’이라고 볼 수 있다. 부엔디아 가문에서 우르슬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성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있다. 특히 이들의 ‘근친상간’은 소설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한다. 이런 성향은 형제간인 호세 아르카디오(2대)와 아우렐리아노 대령(2대)과 필라르의 관계, 아마란타(고모)와 조카 아우렐리아노 호세(3대)와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고모 아마란타는 “그렇다고 다 해결되는 것도 아냐. 우리가 아이를 낳으면 아마 돼지꼬리가 달린 애가 태어날 거야.”(p.167)라며 관계를 거부해보지만 조카 아우렐리아노 호세는 고모의 어떤 얘기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들의 몰락은 1대에서 이미 예언되어 있었다. 결국 6대 아우렐리아노와 이모 아마란타 우르술라가 결혼해 돼지꼬리 달린 아이가 태어나고 부엔디아 가문은 몰락한다.
부엔디아는 ‘좋은 날’,‘좋은 시대’라는 뜻이다. 부엔디아 가문의 의미와는 다르게 이들에게 좋은 시절보다 ‘고독’한 날들이 더 많았다. 그 중 가장 고독했던 인물은 우르슬라을 꼽을 수 있다. 그녀는 140년 넘게 후손들의 삶을 지켜보며 백내장으로 눈이 멀었을 땐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보이는 척을 한다. 우르슬라는 장님이 되었다고 밝히면 “자신이 이제 쓸모없어졌음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결과만 초래할 거기 때문에”(p.276)비밀로 덮어둔다. 아울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서른 두 차례 무력봉기를 일으켰으나 모두 실패한다. 그는 권력을 상실한 후 작업실에 틀어박혀 ‘황금 물고기’를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 17명의 자식이 있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대령은 이해받지 못했다. 어머니인 우르술라 한테서도 말이다. “작은 황금물고기와 금화를 바꿔다가 금화로 다시 물고기를 만들고,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한심한 악순환만 거듭하게 되는데, 구태여 왜 그런 일을 하는지 도대체 대령의 사업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p.223)
소설에 나오는 개인의 고독은 중남미가 겪었던 아픔으로 읽힐 수 있다. 스페인식민지제국에 의해 자행된 300년 동안의 수탈과 폭력을 마르케스는 폭로하고 싶었다. 이를 소설 안에서 보수당과 자유당의 정치분쟁과 전쟁으로 풀어놓는다. 원시적인 마콘도 마을에 바나나 농장이 설립되고 현대문명이 침투되면서 마을주민은 외국자본에 시달리게 된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라틴 아메리카의 고독을 대변하고 있다.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는 “라틴 아메리카의 고독은 라틴 아메리카가 서구 세계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라며 고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독’을 심도 있게 표현하기 위해 마술적 사실주의(Realismo Magico)로 평가받는다. 소설은 리얼리즘과 마술적 요소를 교차하며 스토리를 전개시킨다. 예를 들어 아내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피의 흐름이 멀리 있는 그녀의 남편에게까지 흘러갔다든지, ‘팔팔 끓고 있는 얼음’의 표현이나 ‘인물들 가운데 죽은 사람이 다시 나타나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활약하는 모습’,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난 아이’, ‘흙과 벽에서 긁은 석회를 먹고사는 레베카’ 등 인과가 맞지 않는 독특한 방법의 소설기법을 구현해냈다. 소설의 속성은 ‘허구’가 바탕이지만 또 다른 마술적 요소와 섞이면서 신비로운 소설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라틴 아메리카에 내려오는 초자연적인 주술이나 마법 등의 설정은 상황을 추상화시키고 인물의 개성을 독자적으로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환상적인 요소를 현실에 적용하며 시간상의 흐름도 교차시켜 놓는다. 마콘도라는 가상 공간을 설정하고 6대에 걸친 가문을 통해 인물의 고독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한 인간의 고독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원주민의 역사와 착취의 고통을 대변하고자 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즉, 인간소외를 말한다. 가문이 나선형으로 반복되더라도 인간의 생은 한 번 뿐이다. 각자의 고독은 거시적으로 가문의 고독으로 이어진다. 탄생과 죽음. 이런 모순적인 반복부터 인간은 고독을 비껴 갈 수는 없음을 전한다.
<서평-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