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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옛 돌다리 Ⅰ -- [충청남북도]
지난 몇 년 동안 전국의 많은 길을 걸었다. 이 땅에서 사라진 옛길, 인적 없는 길을 걷다보면 골짜기나 물길이 앞을 막아 돌아가거나 신발 벗어들고 바지가랑이 걷어 올려 직접 물을 건너간 경우가 허다했다. 가끔 이런 곳에 외나무다리나 징검다리가 놓여 있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다리를 놓은 사람이 근처 동네 주민인지 먼저 지나간 나그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의 수고는 다른 한 나그네의 여정을 행복하게 했다.
불교에서는 가장 큰 선행의 하나로 월천공덕(越川功德)을 꼽기도 한다. 국보에서 비지정문화재에 이르기까지 다리를 놓은 사람들의 공력과 예술성은 다를지라도 그 속에 담긴 뜻은 모두 인간의 편리를 위한 배려라는 점에서는 같을 것이다.
올 봄 충청도답사 길에서 만난 강경미내다리, 한때 우리나라 3대시장의 하나라는 강경장에 수많은 장꾼들이 오가며 건너 다녔을 이 다리는 길도 끊어진 곳의 외진 제방 안에 남아있다. 철도와 도로가 생기면서 강경포구 강경장의 기능도 사라지면서 이 다리는 잊어가는 옛 영화의 유물로만 존재하는 셈이다.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모습의 강경 미내다리부터 시작된 옛 돌다리 답사는 지난 몇 달 동안 주말을 이용해 계속되었다. 이 답사보고서를 쓰는 지금 전국의 모든 옛 돌다리를 대부분 답사했다고 자위해 본다.
다리는 사람과 문화 그리고 물산이 교류하는 길을 이어주는 기능이 있다.
교류와 소통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과거보다 더 큰 고립과 단절을 느끼는 것은 마음의 교류가 끊어진 탓 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 더 나아가 불통의 이 정치권력과 국민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연결다리가 생겼으면 한다.
역사 속 한국의 옛 돌다리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80여기에 이르는 옛 돌다리가 복원되거나 남아있다. 현존하는 다리뿐만 아니라 다리는 사라졌지만 그 비석이나 흔적이 남아있는 것도 답사하였다.
다리(교량)란 하천, 계곡 또는 해협 등을 횡단하가니 도로를 연결할 때 그 통로를 위하여 축조된 구조물로서 사람이나 차가 다닐 수 있게 걸쳐 놓은 시설이다.
이러한 교량(橋梁)에 대해 옛 고전(經註)에는 ‘본래 교(橋)는 수레나 우마(牛馬)가 통행할 수 있는 다리를 가리키며, 양(梁)은 사람이 건너다니는 다리로 돌다리나 징검다리를 뜻 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보통 구분 없이 ‘다리’로 통칭해서 사용한다.
다리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는 늪이나 소하천 등지에 통나무를 걸치거나 주변의 돌을 띄엄띄엄 놓아 빠지지 않게 한 징검다리일 것이다.
다리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신라본기 실성니사금조에 ‘12년 추 8월 신성 평양주 대교(新成 平壤州 大橋)’라 한 것이다.
이때는 413년으로 평양주는 현재의 양주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고 어떠한 형태의 다리였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기록에 ‘대교’라 한 것으로 보아 당시에 상당한 규모의 다리를 놓았음을 알 수 있고 이전에도 여러 다리를 놓아 이용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백제시대 기록으로 「삼국사기」백제본기 동성왕조에 ‘12년 설(設) 웅진교(熊津橋)’라 한 것이 있다. 이때는 498년으로 웅진은 오늘날의 충청남도 공주이다.
이렇듯 삼국시대에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다리들이 설치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리는 불국사의 자하문에 이르는 청운교, 백운교와 안양문에 이르는 연화교, 칠보교가 있다. 이 다리들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김대성이 가설한 것이다.(「동경잡기」권9 불우조)
또 경주의 남천에는 700m 간격을 두고 월정교지 일정교지(사적 제457호)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월정교는 현재 복원공사 중이다. 「삼국사기」경덕왕 19년조(760)에 ‘궁궐 남쪽 문천(현 남천) 위에 월정교(月淨橋)와 춘양교(春陽橋) 두 다리를 놓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춘양교는 고려시대에 일정교(日淨橋)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 뒤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효불효교, 칠성교 등으로도 불려 졌으며 조선조에 이르러 모두 일정교(日精橋)로 표기되었다. 월정교(月淨橋)는 고려 충렬왕 6년(1280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고 이름도 바뀌어 월정교(月精橋)로 표기되기 시작했다.
지금 다리는 사라졌지만 「삼국유사」에 설화나 전설이 남아있는 경주의 다리로 유교와 귀교가 있다.
일정교, 월정교가 가설되기 전 문천(남천)의 다리로는 유교가 있었다. 유교는 원효가 강물에 빠져 옷을 말리려고 요석궁에 머물게 되었고, 거기서 요석공주를 만나 성속을 넘는 불같은 사랑으로 설총을 낳았다고 해서 유명해진 다리이다.(「삼국유사」원효불기조)
또 죽은 진지왕의 귀신과 과부 도화녀가 낳은 자식 비형이 진평왕의 명을 받들어 귀신을 동원하여 신원사 북쪽 개천에 하루 밤에 다리를 가설했다는 귀교가 있다.(「삼국유사」도화녀비형랑조)
고려시대를 대표적인 돌다리는 개성의 낙타교(만부교)와 선죽교이다. 만부교(낙타교)터는 개성시내로 진입하는 통일거리 입구에 있다. 차량이 지나는 넓은 통일다리 옆에 사람이 다니는 오래된 콘크리트다리가 만부교터이다.
만부교는 만명의 인부가 하루에 만든 다리라 하여 붙은 이름으로 고려 태조 왕건이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이 수교를 맺고자 화친의 뜻으로 보낸 낙타 50마리를 이 다리 밑에서 굶어 죽게 한 사건에 이름을 따 낙타교라고도 불린다.
해방 전의 개성시민들에게는 ‘야다리’가 더 익숙한 이름인 듯하다. 남쪽의 개성 실향민들은 만부교, 낙타교는 잘 몰라도 ‘야다리'는 잘 알고 있다.
선죽교는 원래 이름은 선지교였으나 이성계일파에게 고려 충신 정몽주가 피살되고 나서 참대가 자라 선죽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천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대나무는 없어져 지금은 근처에 대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
정몽주의 혈흔이라 전하는 선죽교 돌바닥의 붉은 흔적은 개울 건너 중앙 바닥돌에 있고 이는 철 성분의 산화 흔적이며 후세에 붉은 돌을 옮겨 넣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혈흔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
만부교(낙타교)와 선죽교는 고려 시작과 끝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 일어난 다리이다. 어쩌면 다리는 길을 연결하는 공간적인 통로이면서 한 역사의 시작과 끝을 예고하는 시간적인 통로이기도하다.
함평 고막천 석교는 남한에 있는 유일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돌다리이다. 1274년(고려 원종 15) 무안 승달산 법천사 고막대사가 만들었다고 전한다.
진천 농교(농다리)는 「상산지」와「조선환여승람」의 기록에 '고려초 임장군이 축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국적으로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고 과학적 공법의 우수함을 짐작하게 할 만큼 특이한 양식으로 짜여진 돌다리이다.
서울, 경기지방에 위치하는 조선시대 왕릉에도 돌다리(금천교)가 있다. 목릉 금천교, 홍릉 석교, 장릉 석교, 영릉 금천교, 융릉교 등이 있는데 이 답사보고서에는 생략하였다.
옛 다리의 분류
1.옛 다리의 종류(재료에 따른 구분)
옛 다리에 사용되었던 재료는 돌과 나무가 대부분이었고 부분적으로 흙, 잔디, 칡, 철물들이 사용되었다.
1)흙다리
2)나무다리
3)돌다리
2.옛 다리의 형식
1)널다리(보다리):형교(桁橋), 판교(板橋)
가장 오래된 형태이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널리 사용된 형식으로 함평 고막천석교, 수표교, 전곶교(살곶이다리) 등이 유명하다.
2)무지개다리(구름다리):홍예교(虹霓橋), 홍교(虹橋)
널다리가 수수한 다리라면 무지개다리는 조형미가 뛰어난 아름다운 다리이다. 널다리에 비해 많이 가설되지는 않았는데 이는 공력이 많이 들어 축조하기에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정된 축조 형식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숫자가 남아있다. 궁궐이나 사찰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영산 만년교, 선암사 승선교, 흥국사 홍교, 벌교 홍교, 창덕궁 금천교, 경복궁 영제교, 창경궁 옥천교 등이 유명하다.
※현존하는 한국의 홍교
불국사 연화교, 칠보교(국보 제22호) 751년 축조(신라 경덕왕 10년)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국보 제23호) 751년 축조(신라 경덕왕 10년)
(불국사의 이 돌다리들은 다리냐, 계단이냐 하는 논란이 있다. 옛날에는 다리 아래로 물이 흘렀다. 그래서 다리로 본다.)
강진군 병영성 홍교(전남유형문화재 제129호) 1417년 축조 (용두석 有)
광한루 오작교(명승 제33호) 1461년 축조
경복궁 영제교
창덕궁 금천교
창덕궁 존덕정 홍교 1469년 축조
창경궁 옥천교(보물 제383호)
경희궁 금천교
덕수궁 금천교
영광군 도동리 홍교(전남 문화재자료 제190호) 1497년(연산군 3) 축조
흥국사 홍교(보물 제563호) 1639년 축조(용두석 有)
건봉사 능파교(보물 제1336호) 1704년 축조
고성군 육송정 홍교〔백운교〕(보물 제1337호) 1704년 추정
건봉사 문수교
건봉사 청련교
송광사 우화각 삼청교〔능허교〕(전남유형문화재 제59호) 1707년 축조(용두석 有)
송광사 청량각 극락교 1730년대 축조
선암사 승선교(보물 제400호) 1713년 축조 (용두석 有)
선암사 하승선교 숙종 대 추정
강화군 석수문 홍교(인천 유형문화재 제30호) 1711년(숙종 37)
서울시 홍지 수문교〔오간대수문〕 (서울유형문화재 제33호) 1715년 축조
보성군 벌교 홍교(보물 제 304호) 1729년 축조(용두석 有)
논산시 원목다리〔원항교〕(충남유형문화재 제10호) 1730년 축조(용두석 有)
논산시 강경미내다리(충남유형문화재 제11호) 1731년 축조(형태미상 동물상 有)
창녕군 영산 만년교(보물 제564호) 1780년 축조
안양시 만안교(경기 유형문화재 제38호) 1795년(정조 19) 축조
수원시 화성 화홍문 1796년 축조
진도군 남동리 쌍운교(전남 문화재자료 제215호) 1870년 추정
진도군 남동리 단운교(전남 문화재 자료 제215호) 1930년 추정
고흥군 옥하리 홍교(전남유형문화재 제73호) 1871년 축조(용두석 有)
고흥군 서문리 홍교 (전남유형문화재 제73호) 1871년 축조(용두,용미 有)
창원시 희심자작교 1873년 축조
달성군 유가 만세교〔척진교〕(대구 문화재자료 제42호)
1747년 축조(척진교, 목재 홍교), 1916년 석재 홍교로 개건
3)징검다리
사람의 통행이 적은 한적한 개울에 주변의 재료를 이용하여 설치하였다. 물이 많을 때는 사용하지 못하고 사람만이 조심해서 겨우 통과 할 수 있다.
신안 암태도 노둣길과 백양사 징검다리가 대표적이다.
4)배다리:주교(舟橋), 부교(浮橋)
배다리는 교각을 세우지 않고 강의 수면 위에 작은 배를 한 줄로 여러 척 띄워 놓고 그 위에 널판을 건너질러 깐 다리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옛날에는 수심이 깊고 폭이 넓은 강에는 다리를 놓지 않고 배를 타고 건넜다.
주교의 일찍부터 활용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정종 1년(1045) 임진강에 가설되었는데 “선교가 없어 행인이 다투어 건너다. 물에 빠지는 일이 많았으나 부교를 만든 뒤로 사람과 말이 평지처럼 밟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그 뒤 고려 말 이성계의 요동 공격과 위화도 회군 때에도 주교가 이용되었다.
조선 정조 때 왕의 생부인 사도세자의 무덤을 현 동대문구 매봉산에서 수원의 화산으로 이장함에 따라 능행(陵行)에 필요한 배다리를 자주 한강에 설치, 이용하게 되었다. 정조는 배다리를 설치하기 위해 특별히 주교사(舟橋司)라는 관청을 설치하고 ‘주교사절목’을 제정하여 배다리의 설치 절차와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밀양 남천교(1930년 추정 옛 사진)
5)누다리(樓橋)
다리 위에 누각이 있는 형태이다. 신라 원성왕 14년(798)에 “궁남루교(宮南樓橋)가 불탔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 다리의 이름으로 보아 다리 위에 회랑식 건물이 있는 목교로 추정된다.
누교는 다리의 연결 기능과 정자 역할을 함께하는 다리이다. 또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월랑으로도 많이 가설되었다. 백제 무왕 때 조성된 익산 미륵사지의 다리도 이와 같은 형식이다.
현재 남아 있는 대표적인 누교는 송광사 청량각 극락교과 우화각 삼청교, 곡성 태안사 능파각, 수원 화성 화홍문이 있다. 현재 복원공사 중인 경주 월정교와 일정교도 누교였으며 근래 작으로 구례 천은사 수홍루가 있다.
누교는 누각의 무게로 인해 구조적으로 안정된 석조 홍예교 위에 설치되었다. 예외적으로 태안사 능파각 목교는 양쪽 석축 교대가 무게를 지탱하는 나무로 된 단칸 다리이다.
6)매단다리:조교(弔橋), 현수교
길을 내기 어려운 절벽과 절벽사이에 줄을 가로로 걸쳐 줄의 지탱력으로 설치하거나, 성곽의 주요 통로에 적의 침입을 어렵게 하기 위해 고랑 위에 설치한 다리를 줄로 오르내린 형식의 다리를 말한다.
재료의 내구성이 약해서 오늘날까지 원형이 남아 전하는 매단다리가 없어 찾아보기 힘들다.
조교(弔橋):양쪽 언덕에 줄이나 쇠사슬을 건너지르고, 거기에 의지하여 매달아 놓은 다리
한국의 옛 돌다리 답사(지역별)
충남(9)
1.논산 강경 미내다리(충남 유형문화재 제11호)--충남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 541
2.논산 원목다리〔원항교〕(충남 유형문화재 제10호)--충남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 193-2
3.논산 석성 수탕석교(충남 문화재자료 제388호)--충남 논산시 석성면 원북리 618
4.보령 대천 한내돌다리(충남 유형문화재 제139호)--충남 보령시 동대동 809-1
5.부여 궁남지(사적 제135호) 다리--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
6.부여 홍산 만덕교(향토유적 제54호)--충남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428(홍산배수장 내)
부여 홍산 만덕교비(충남 기념물 제3호)--충남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211-2(홍산객사 내)
7.부여 옥산(홍산) 가교비(충남 문화재자료 제118호)--충남 부여군 옥산면 상기리 산 19
8.당진 면천 군자정(당진 향토유적 제1호) 돌다리--충남 당진군 면천면 성상리 778
9.서산 비인 청석교--충남 서천군 비인면 비인초등학교 앞
충북(4)
1.진천 농교〔농다리〕(충북 유형문화재 제28호)--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601-32
2.청주 남석교(매몰)--충북 청주시 석교동과 남문로 1가 육거리종합시장 아래 매몰. 석조견상 4기
가운데 3기 존재(청주대학교 2기, 충북대학교 1기) #청주 남석교 석조견상
1)청주대 남석교 석조견상
2)충북대 석조견상
3.청원 문의 문산석교(충북 유형문화재 제222호)--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산리 산6-1
4.옥천 (장계관광단지 옥천향토전시관) 청석교(충북 유형문화재 제121호)--충북 옥천군 안내면 산7-1
※옥천 (정지용문학관) 청석교--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1
옥천 청석교가 있는 ‘옥천향토전시관’ 각자 비석과 정지용문학관과 생가 사이에 놓인 청석교는 일
제강점기 때 황국신민신사 비석을 갈아서 만든 것이다.
대구/경북(5)
1.대구 달성 유가만세교〔척진교〕(대구 문화재자료 제42호)--달성군 유가면 양리 575-2
2.불국사 연화 칠보교(국보 제22호), 청운 백운교(국보 제23호)--경북 경주시 진현동 15-1
3.경주 월정교, 일정교(사적 457호)--경북 경주시 인왕동 921-1, 교동 274 일원
4.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제60호) 돌다리--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산 131
5.봉화 법전 석교마을 돌다리--경북 봉화군 법전면 풍정2리 80(석교마을-돌다리)
※영주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예천 회룡포 뽕뽕다리 등
경남(9)
1.창녕 영산 만년교(보물 제564호)--경남 창녕군 영산면 동리 455
※유다리비--경남 창녕군 영산면 성내리, 영산시장 뒤편 100m
2.창원 대산 주남돌다리〔새다리〕(경남 문화재자료 제225호)--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가술리 590
3.창원 북면 희심자작교--경남 창원시 의창구 북면 상천리 소라마을
4.거창 마리 용원정 쌀다리--경남 거창군 마리면 고학리 병항마을 용원정
5.거창 장승백이 다리(유실)--경남 거창군 마리면 말흘리, 상판은 마리우체국 앞 도로변
6.남해 남면 석교리 돌다리--경남 남해군 남면 석교리
7.산청 지곡사 세진교비--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리 772-4 일원 지곡사지 입구 500m 아래, 세진교는 1936
년 유실
8.밀양 삼량진 영남대로 처자교--경남 밀양시 삼량진읍 검세리757 낙동강재방 안(2011년 발굴)
9,창원 동읍 단계리돌다리--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단계리 697-9 (수로의 복개된 콘크리트다리로 아
래?--확인하지 못햇다.)
※산청 전 구형왕릉(사적 제214호) 앞 홍교--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산16
전남(20)
1.보성 벌교 홍교(보물 제304호)--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154-1
2.보성 벌교 도마교(전남 유형문화재 제173호)--전남 보성군 벌교읍 전동리 181
3.보성 벌교 징광사지 수박교(멸실)--전남 보성군 벌교읍 징광리
4.순천 낙안읍성(사적 제302호) 평석교--전남 순천시 낙안면 남내리
5.순천 승주 선암사 승선교(보물 제400호)와 하승선교--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49-1
6.순천 송광사 청량각 극락교--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
7.순천 송광사 우화각 삼청〔능허〕교(전남 유형문화재 제59호)--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
8.고흥 옥하리 홍교와 서문리 홍교(전남 유형문화재 제73호)--전남 고흥읍 옥하리 269-1, 고흥읍 서문리
(옥하리 홍교에서 200m 상류)
9.여수 흥국사 홍교(보물 제563호)--전남 여수시 중흥동 17번지
10.강진 병영성 홍교(전남 유형문화재 제129호)--전남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323-3
11.영광 도동리 홍교(전남 문화재자료 제190호)--전남 영광군 영광읍 도동리 105-2
12.함평 고막천 석교(보물 제1372호)--전남 함평군 학교면 고막리 629
13.나주 금성교--전남 나주시 금성동
14.곡성 태안사 능파각(전남 유형문화재 제82호)--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18-1
15.담양 용대리 석교(담양 향토문화유산 제1호)--전남 담양군 대덕면 용대리 992-1
16.화순 유마사 보안교(화순 향토문화유산 제30호)--전남 화순군 남면 유마리 321
17.진도 남도석성 남박다리〔쌍홍교, 단홍교〕(전남 문화재자료 제215호)--전남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294
18.완도 보길도 굴뚝다리〔판석보〕와 부용동 원림 돌다리들--전남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200 등
19.신안 암태도 징검다리〔노두길〕--전남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와 추포리
20.장성 백양사 징검다리--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26
※구례 천은사(전남 문화재자료 제35호) 수홍루--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
※담양 소쇄원(사적 304호)나무다리--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
전북(2)
1.남원 광한루원(명승 제33호) 오작교--전북 남원시 천거동 78
2.정읍 고부 군자정(전북 유형문화재 제133호) 돌다리--전북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 65
※고창 선운사 극락교--전북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500
강원도(4)
1.고성 화암사 돌다리--강원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 산136-11
2.고성 육송정 홍교〔백운교〕(보물 제1337호)--강원 고성군 간성읍 해상리 1041
3.고성 건봉사 능파교(보물 제1336호)--강원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38-1
4.고성 건봉사 문수교, 청련교--강원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36 건봉사 입구
※고성 화진포 홍교--강원 고성군 거진읍 봉평리
※영월 서강 한반도지형과 정선 섶다리와 나무다리
경기도/인천(6)
1.안양 만안교(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8호)--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679
2.수원 화성(사적 제3호) 화홍문--경기 수원시 수원화성 북수문
3.강화 석수문(인천 유형문화재 제30호) 홍교--인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883
4.안성 칠장사 입구 유다리--경기 안성시 죽산면 산직동(칠장사 주차장 500m 아래)
5.고양 강매동석교(고양시 향토문화재 제33호)--경기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 42-1 강고산마을 창릉천
6.고양 덕수자씨교비--경기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 10-2 창릉모퉁이공원
서울(12)
1.경복궁 영제교
2.경복궁 경회루 돌다리
3.경복궁 향원정 취향교
4.창덕궁 금천교
5.창덕궁 후원 존덕정 홍교와 소요정 돌다리
6.창경궁 옥천교(보물 제386호)--서울 종로구 와룡동 창경궁
7.창경궁 통명전 지당석교
8.경희궁 금천교와 덕수궁 금천교
9.전곶교〔살곶이다리〕(사적 제160호)--서울 성동구 행당동 58번지
10.청계천 수표교(서울 유형문화재 제18호)--서울 중구 장충동2가 197-1
(원위치)중구 수표동 43번지와 종로구 관수동 20번지 사이 청계천
11.청계천 광교〔대광통교〕
12.인왕산 옥인동 기린교--서울 종로구 옥인동 옥인시범아파트 9동 옆 계곡
#제주도에 한림 명월교와 명월대교가 있다. 아직 답사하지 못했다.
북한(1)
1.개성 선죽교(북한 국보유적 제159호)--조선 개성 선죽동
※낙타교(만부교, 야다리)--조선 개성시 통일거리 통일다리 옆
<참고 문헌>
1.전통 과학 건축(대원사)--손영식
2.옛 다리, 내 마음속의 풍경(한길사)--최진연
3.천년 후, 다시 다리를 건너다 1,2--손광섭
4.답사여행의 길잡이(돌베개)--한국문화유산답사회
충청남도(9)
1.논산 강경 미내다리(충남 유형문화재 제11호)--충남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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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논산 원목다리〔원항교〕(충남 유형문화재 제10호)--충남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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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여 궁남지(사적 제135호) 다리--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
6.부여 홍산 만덕교(향토유적 제54호)--충남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428(홍산배수장 내)
부여 홍산 만덕교비(충남 기념물 제3호)--충남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211-2(홍산객사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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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여 옥산(홍산) 가교비(충남 문화재자료 제118호)--충남 부여군 옥산면 상기리 산 19
다리가 어찌 물가에만 있으랴....산 중턱에 가교비가 있다. 비가 오거나 땅이 젖어 있을 때 나그네에게 마당바위에 짐을 내리고 쉬어가게 하려는 뜻에서 가교비를 세운 것이다. 참 황당하고 호탕한 뜻이 숨어 있는 비석이다. 비석 앞의 마당바위가 바로 다리이며 비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施主僧敬特(시주승경특)/化主劉金候(화주유금후)/□□乭山(돌산)/□□印(인)□□王幼(왕유)□任雲(임운)
「지역유지인 유금후의 시주를 받아 경특 스님이 다리를 놓으니... 우뚝한 산 위에 놓인 다리 위에서 다가오는 구름과 벗하여 노니나니... 지나는 나그네여 잠시 봇짐을 벗고 그 맛을 누리시라. 」
#가교비 찾아 가는 길
8.당진 면천 군자정(당진 향토유적 제1호) 돌다리--충남 당진군 면천면 성상리 778
9.서산 비인 청석교--충남 서천군 비인면 비인초등학교 앞
충북(4)
1.진천 농교〔농다리〕(충북 유형문화재 제28호)--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601-32
2.청주 남석교(매몰)--충북 청주시 석교동과 남문로 1가 육거리종합시장 아래 매몰.
청주 남석교의 재원은 기록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길이는 64m, 넓이는 4m로 알려져 있다. 서울 전곶교(살곶이다리)와 진천 농다리 다음가는 규모이다.
석조견상 4기 가운데 3기 존재(청주대학교 2기, 충북대학교 1기)
※청주 남석교 석조견상
1)청주대 남석교 석조견상(2기)
2)충북대 남석교 석조견상(1기)--파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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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청원 문의 문산석교(충북 유형문화재 제222호)--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산리 산6-1
(청원 문의문화재단지 내)
4.옥천 청석교(충북 유형문화재 제121호)--충북 옥천군 안내면 산7-1 (장계관광단지 옥천향토전시관)
※옥천 정지용문학관 청석교--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1
옥천 청석교가 있는 옥천향토전시관 앞 ‘옥천향토전시관’ 각자 비석과 정지용문학관과 생가 사이에 놓인 청석교는 일제강점기 때 옥천 황국신민신사 비석을 갈아서 만든 것이다.
[출처] 한국의 옛 돌다리 Ⅰ - [충청남북도] |작성자 ohyh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