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함께했던 20년.(2)
한국 만화계가 내 마음에 쏙 들었던 한 가지는
학력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력서도 필요 없고, 경력도 문제 삼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스토리가 재미있느냐 없느냐, 오직 그 한 가지 만으로 평가받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국졸임에도 불구하고 대졸 작가들 틈에 끼어
그럭저럭 나만의 둥지를 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력에 대한 열등감으로 나는 늘 불안하고 초조하였습니다.
스토리 작가로 햇수가 더해짐에 따라 동료 작가들도 많이 알게 되고
그들의 모임에 꼭 초대 전화를 받지만, 나는 선듯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밥을 먹다가, 혹은 술을 한 잔 하다가, 누군가 나의 학력을 물어 온다면?
참으로 끔찍한 일이고,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습니다.
군대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나에겐 공포였습니다.
나는 절도 전과 때문에 군대엘 가고 싶어도 국가에서 받아주질 않았거든요.
그러니, 누가 나에게, "양형은 어느 부대에서 복무했어?" 이렇게 물으면 나는,
"응, 난 면제받았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는데
"면제받았다고? 왜?" 이렇게 되물어오면, 나는 할 말이 없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군대 이야기만 나와도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내가 군대만 갔다 왔어도 지금보단 훨씬 더 자신 만만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내가 국졸이라는 그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내 작품이 학력 때문에 평가절하 받는 것이 더 큰 걱정이었습니다.
만일, 예를 하나 들어서, 어떤 사람이 출판사에 원고를 한 편 들고왔다고 칩시다.
이때, 그 작품을 쓴 사람이 대학 나온 사람이냐, 아니면 초등학교 출신이냐에 따라
같은 작품이라 해도 읽는 사람에겐 그 평가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사람인 이상, 더구나 학력만능주의가 판치는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그가 누구든 그 선입견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나는 믿었고
그래서 나의 학력이 알려진다면 내 작품에 대한 신뢰도와 원고료 액수에서
커다란 불이익을 받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속으로 마음먹기를, 누가 만일 학력을 물어온다면
눈 딱 감고, 인하대학교 국문학과 77학번이라고 말해야지! 이렇게 준비하고 있었는데
만화 스토리 작가 20년 동안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장 절친하게 지내던 동료 작가 한 사람이 내 카페 회원으로 가입해주었는데
그 친구도 내가 국졸이라는 사실을 내가 쓴 카페글을 읽고 알았을 정도입니다.
나의 국졸 학력과 절도 전과 사실은 안팎으로 나에겐 감당키 어려운 짐이었습니다.
내 위로는 형님 두 분, 누님 네 분이 계셔서 7남매 중 내가 막내인데
나의 친 형제들도 나를 부끄러워하였습니다.
누님들은 나의 그 부끄러운 과거가 매형이나 시댁 식구들에게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하였고, 그래서 내가 찾아오는 것을 아주 싫어하였을 뿐만 아니라
내가 글을 쓴다고 했을 때도 믿지 않았습니다.
20대 후반, 열심히 번 돈으로 내가 15평짜리 아파트를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실을 놓고도 하루는 형님 한 분이 나에게 하는 말이,
"너 유부녀 사귀냐?"
"아니요."
"그럼 그 아파트는 무슨 돈으로 산거냐. 여자가 돈 대줘서 산거 아니야?
그러지 마라. 그러다 또 깜빵 간다!"
나에 대해서 내 형제들의 인식은 이러하였고
내 작품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 적도 없었습니다.
내 형제들은 내가 혹시 돈이라도 꾸어달라고 할까 봐 그것을 늘 걱정하였습니다.
그 아파트는 분명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산 것이고,
작가 생활 20년 동안 만화가 아닌,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번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책이 내 이름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허영만의 《길잡이》이현세의《두목》고행석의《잘못된 환생》조운학의《고백》
이상무의《독신주의자의 최후》황제의《현해탄의 허리케인》등
수십 편의 만화를 내가 썼다고 증명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내 집에는 만화 스토리 원고가 있었지만 형제들이 내 집에 와 보는 예가 없으니
이런저런 오해 속에서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20년을 보냈습니다.
만화가들에 대하여 스토리 작가는 형편없는 약자입니다.
이름을 내주지 않아도 불만을 표시할 수가 없었고
원고료도 그들이 주는 대로 군소리 없이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화가 크게 히트하여 중판을 거듭해도 만화가들은 그냥 저 혼자 입 닦고 말았고
그래서 이현세 같은 사람은 스토리 작가들에게 여러 차례 소송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쓴 《두목》도 영화화되고 10판의 중판이 거듭 되었지만
중판 원고료, 영화 원작료는 한 푼도 받지 못하였습니다.
만화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일본은
스토리 작가 이름이 앞에 나오고, 만화가의 이름이 뒤에 나옵니다.
스토리 작가가 오히려 만화가를 고용하는 형식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 만화계가 오늘처럼 지리멸렬한 이유가 물론 다른 데에도 있지만
스토리 작가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고 키우지 못한 것도 큰 원인 중 하나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책에 스토리 작가 이름을 내준다면, 원고료가 얼마냐를 떠나,
누군들 최선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돈보다는 명예가 더 소중하기 때문에!
분명 내가 쓴 글인데도 이현세 글. 그림. 이렇게 나오니
의욕과 책임감과 작품의 질이 다 함께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컴퓨터와 컴퓨터 게임이 폭발적으로 확산되면서
한국 만화의 95%가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을 꼭 컴퓨터 게임에만 돌릴 수가 없는 것이
같은 상황에서도 일본의 만화계는 건재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만화가 화려하게 다시 부활하는 그날을 기대해봅니다. <계속>
2013년. 1월. 31일.
민중혁명이 온다. 강봄.
http://cafe.daum.net/rkdqha1770
첫댓글 글의 재미가 증폭되면서, 제가 간지러워 하던 부분을 박박 긁어 주시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또 한 명의 강봄님을 만나는 거 같아요^^
이렇게 다 까발리면 내가 손핸데!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