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순환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세상을 살다보면 별별 희한한 일을 다 겪는다. 무엇을 바라고 한 것도 아닌데 어려운 상황에 처하여 남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내가 우연히 겪은 어떤 일을 생각하면 무슨 보답같은 느낌이 들때가 있다.
우연히 텔레비전을 켜자, 눈 내리는 강변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어부의 모습이 영상에 잡혔다. 눈오는 추운 날씨에 부지런히 그물을 걷어올리고 있었다. 하나, 그 광경이 치워보여선지 낭만적으로 비쳐지지는 않았다.
나는 우연히 그 광경을 보다가 그곳이 어디서 본듯한 낯설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 본 풍경일까, 고개를 갸웃하다가 화면 아래 쪽에 여진 자막을 발견했다. '파로호의 고기잡이 풍경.‘이라는 문구였다. ' 아 아, 그곳이구나.' 나는 가볍게 탄성을 흘렸다. 이때 머릿속에서는 옛날 군 복무시절의 어떤 장면이 스쳐지났다.
때는 1967년. 나는 헌병 교통초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곳은 길이 험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단일로로서 일방통행을 해야하는 곳. 근무지에는 특별한 비석하나가 서 있었다. 그 것은 이승만대통령의 친필로서 6.25 당시 아군이 화천댐 사수를 위해 결사 항전한 것을 기념해 세운 ‘파로호(破虜湖)’ 비석이다. 본래 이곳의 이름은 화천호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국군 6사단이 적을 크게 물리쳐서 나중에 이름이 바뀌었다.
이말은 바로, 깨트릴 파(破), 오랑캐로(虜)를 써서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이다. 아군은 여기서 1951년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중공군을 크 게 무찔러 대승을 거두었다.
나는 그곳에 헌병부대 주임무인 교통통제를 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헌병을 파견하여 목을 지키게 했던 것이다. 근무 방법은 전화기를 메고 나가 양쪽 초소에서 상호 연락을 하면서 차량을 차례대로 교행시키는 일이었다. 몇 대의 차량을 모아 일방통행을 시킨다음 일정한 시간을 두고 반대 편의 차량이 통과하도록 조치했다.
복무여건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난방용 난로가 있긴 하나, 그것은 화목을 때서 쓰는 재래식 난로였다. 그러다보니 늘 연료가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불을 지피자면 잠깐씩 틈을 내서 산에 오르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준비한 도끼나 톱도 갖추고 있지 못하여 땔감을 구하려면 하는 수 없이 민가에서 연장을 빌려와야만 했다.
강원도의 날씨는 변화무쌍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겨울철은 변덕이 죽 끓듯 했다. 날씨가 금방 흐리다가 눈이 오고 기온은 수리고 영하 몇 도를 오르내렸다.
그런 날 하루는 야산으로 땔감을 마련하러 나가게 되었다. 쌀쌀한 날씨에 잿빛 농무(濃霧) 가 현저한데 하늘에서 시나브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외딴 민가로 도끼를 빌리러 갔다. 한데 집안이 적막했다. 인기척 내어 외쳤다.
“주인어른 계십니까. 도끼 좀 빌리려 왔습니다.”
한데도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한참 후에 빈지문이 반쯤 열리더니 주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주인은 말 대신 손짓으로 연장이 있는 곳을 알려주고는 바로 문을 닫았다.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모습이 분명했다.그래도 조금 불편하나 생각했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산에 올라 하루치의 땔감을 마련했다.
그날따라 나무하는 작업이 힘이 많이 들었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나무가 잔뜩 물을 먹어서인지 도끼 밥이 잘 먹지를 않았다. 어렵게 땔감을 장만하여 초소로 복귀 했다. 한데 조금 전 까지도 괜찮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더니 굵은 진눈개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런 눈은 금 새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나는 다른 선임에게 난로의 불을 지피도록 부탁하고, 빌린 도끼를 돌려주려고 그 집으로 향했다. 한데, 아까와는 달리 들려오는 신음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많이 불편한 것 같았다. 다급히 물었다.
“왜 그러세요. 어디가 많이 아프세요?”
그가 말했다. 아까부터 명치끝이 거북했는데 조금 전부터는 식은땀이 나고 숨까지 막혀온다고 했다.
“그러고 있으면 어떡합니까. 병원엘 가야지”
그러고 생각하니 ‘. 눈이 더 내리면 차량이 끊길 게 뻔한데.’ 는 걱정이 생겼다. 그 생각을 하니 앞뒤가 돌아봐지지가 않았다. 환자를 업고 급히 초소로 돌아왔다. 지나가는 차량을 잡아서 병원에 후송시킬 일이 급했다.
마침내 눈길을 뚫고 임산물 반출 트럭이 한 대 나타났다. 지체 없이 차를 세훈 후,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환자를 면 소재지 보건소로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이때는 더욱 눈이 기세 좋게 퍼붓기 시작했다. 도로는 덮이고 나뭇가지에는 소복이 눈이 쌓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초소 간을 이어준 직통전화가 불통이 돼 버렸다. 심각한 상황을 맞아 결단이 필요해 졌다.
서둘러서 철수를 단행했다. 차량은 끊기고 도보로 가는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디서 느닷없이 ‘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신호탄으로 여기저기서 ‘툭! 툭!’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난생 처음 들어본 소리였다. 남녘에서 나고 자란 나는 신기한 장면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데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나무마다 잔뜩 눈이 실려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면서 내는 소리였다.
한참을 걸었으나 아직도 면소재지가 있는 부대까지는 3분의 1은 더 남아 있었다. 이제는 마지막 지나간 트럭의 자국도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큰일인데.’
한데 그때였다. 눈을 들어 앞을 보니 맞은편에서 움직이는 물체가 흐릿하게 보였다. 사람 같았다. 무척 반가웠다. 그렇다면 그 사람 발자국을 따라 가면 되겠구나. 그나 저는 그는 ‘누구일까.’ 한데 보니 그는 바로 얼마 전에 내가 차에 태워 보냈던 그 환자분이 아닌가.
눈길에서 극적인 조우를 했다. 예기인즉슨 아픈 증세는 급체를 했는지, 침을 맞으니 금방 좋아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만나 푹푹 빠지는 발걸음을 서로 인계했다. 이런 극적인 일이 일어나다니. 신기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반갑게 상봉한 것도 잠시, 이내 헤어졌다.
"‘조심해 가세요."
이후부터는 다시 걷기가 쉬워졌다. 나있는 발자국을 따라 걷노라니 두려움도 사라졌다. 얼마를 더 걸었을까. 저 멀리에 삼거리가 보이고 부대 위병소가 희미하게 나타났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안도를 할 수 있었다. (2004)
첫댓글 화목을 마련하기 위해 도끼를 빌리러 다니던 집 주인과의 만남은 사실 특별할 것도 없어보입니다.
그런데도 묘한 여운을 남기는 까닭이 소설적 이미지로 다가오네요.
폭설에 견디지 못한 나뭇가지들이 부러지는 소리와 부대로 복귀하는 길을 분간키 어려운 아득한 고독의 순간에 마주친 사람이 다름 아닌, 선생님께서 급히 후송해주었던 도끼 집 주인이었으니 제목 대로 인연의 순환이군요. 두 사람이 엇갈리는 길을 가는데도 서로가 남긴 희미한 발자국을 따라 무사히 귀대하고 귀가하는 야릇한 풍경을 그려봅니다.
이것은 너무나 특별한 경험이어서 이 주제를 가지고 두편이나 써봤습니다.
처음에는 조금씩 내리던 눈이 폭설로 바뀌었는데, 설해목 부러지는 소리와 무릎까지 차오른 눈길을 걸으며 그 사람이 남겨놓은 흔적으로 겨우 가늠하면서 오게 되었지요. 지금도 그 상황이 기억속에 아련합니다.
글 속에서 보여준 인연은 그냥 인연이 아니라 필연인듯 하네요. 드라마틱한 묘사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긴장감이 넘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전율이 느껴질 만큼 재미와 감동이 있네요. 아주 오래 된 얘기인데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그때 그 경험이 특별해서겠지요..
그때의 일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귀로에 겪은 일은 이상한 필연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여 신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설해목 부러지는 소리 저도 어릴적 고향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강원도 눈이 많이 오지요.
파라호가 강원도 어디입니까? 이 글을 읽는동안 빨려들어갑니다.
파로호는 강원도 간동면과 화천명의 경계에 있어요. 그곳은 화천댐이 있어 6.25때 중공군 1개사단이 전멸했다고 하더군요. 길이 단일로여서 그곳에서 교통통제를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