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서 걸핏하면 채소파동이 일어난 이유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21>] 농촌은 통곡한다
최근 몇 년 새 겨울이면 살을 에듯이 춥기도 했지만 눈도 엄청나게 많이 내렸다. 비닐하우스 작물이 얼어서 죽거나 폭설로 비닐하우스가 주저앉아 농사를 망쳤다. 2008년에는 겨울 내내 구제역이 번진다고 자식새끼처럼 애지중지 기르던 소, 돼지를 생매장하느라 지쳤는데 조류 인플루엔자까지 번져 닭, 오리를 산 채로 파묻었다. 짐승조차 살기 어려운 땅이 되고 말았다.
그 농촌에 봄이 찾아와도 무엇을 심어야 먹고살지 막막하다. 쌀농사는 흉년이 들어도 쌀값이 오히려 떨어져 벼농사를 지어야 할지 말지 망설여진다. 게다가 땅속에 파묻은 가축사체의 핏물이 지하수에 배어나 물도 못 마실 판이 되지 않나 싶어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런데 농촌, 농민을 하대하는 집권세력의 입놀림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2009년 한때 배추 값이 금값이라고 야단이었다. 전년에 이어 그해 봄에도 배추파동이 일어났다. 2008년 11월에만 해도 10kg(3포기)에 6500원까지 떨어졌던 배추 값이 그즈음 1만6500원으로 뛰었다. 개학과 더불어 학교급식 수요가 늘어나면 2만 원까지 오를 기세였다.
2008년 가을 배추파동이 일어나 농가마다 재배면적을 늘렸건만 그 꼴이 됐다. 배추가 한파로 냉해를 입은 데다 폭설로 눈에 파묻혀 얼어 버리고 누렇게 썩었기 때문이었다. 배추가 흉작인데 무, 상추, 양배추인들 성할 리 없었다. 값이 아무리 올라봤자 농촌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팔래도 팔 게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 자료에 따르면 4대강 하천부지 전체규모는 5425만3000㎡이다. 이곳에서 주로 감자, 참외, 오이, 수박, 토마토, 파, 배추, 무 등 밭작물을 재배해 인근도시에 팔았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을 한답시고 밭작물을 키우던 하천부지를 마구 파헤쳤다. 4대강 주변 농지에 준설토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았으니 그만큼 재배면적이 줄어들었다.
이명박 정권 들어 걸핏하면 배추파동, 채소파동이 일어난 것은 그 때문이다. 신선 채소류는 저장성이 낮아 공급이 10%만 달려도 가격파동이 일어나기 마련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천부지에 엽채류, 근채류, 양념류를 길러서 먹고살던 농민들이 농사를 지으려고 해도 땅이 없어졌으니 손을 놓을 판이다.
국제곡물가격이 2008년 하반기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이상기후로 인해 수확량이 감소한 탓이었다. 2008년 국내 쌀농사도 흉년이 들었는데 오히려 쌀값이 떨어지는 추세였다. 그해 쌀 수확량이 폭풍, 호우, 일조량 부족으로 429만t에 불과했다. 이것은 1980년의 330만t 이후 가장 적은 물량이다. 그런데 쌀값이 하락세를 나타냈다. 쌀만 빼고 모든 생활물가가 뛰는 꼴이었다.
재고미가 남아돌기 때문이다. 2009년 3월 1일 쌀 재고량은 150만9000t으로 1994년 이래 가장 많은 규모였다. 이것은 적정 재고량 72만t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물량이었다. 이러니 2009년도 쌀농사를 지어봤자 쌀값을 제대로 받기는 틀렸던 것이다. 그래도 쌀농사 말고는 달리 지을 농사가 없으니 안타깝게도 농민들은 또 논으로 나갔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구제역 재앙
2010년 가을 구제역이란 날벼락이 내려친 농촌은 그 옛날의 그곳이 아니었다. 가축이란 가축은 떼죽음을 당해 옛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구제역을 옮긴다고 주민들이 발길을 끊어 마을회관조차 설렁했다. 마을버스도 찾지 않았다. 그때까지 전국적으로 생매장한 가축수가 무려 339만3200마리나 되었다.
소 15만 마리, 돼지 323만2000마리, 사슴 등 기타 1만1200마리다. 닭, 오리도 540만 마리나 언 땅에 파묻었다. 경기도의 경우 전체 돼지의 72%를 생매장했다. 1040개 농가가 키우던 돼지 165만3000마리를 산 채로 땅에 묻었던 것이다. 경기도 내에서도 이천은 한우의 12.6%, 젖소의 25.1%, 돼지의 98.8%를 생매장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구제역 재앙이었다.
당시 민주당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3월 1일 현재 가축 매장지가 전국적으로 4671곳이며 이 가운데 경기도가 2042곳, 강원도가 445곳으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비닐 한두 장을 깔고 가축을 생매장하고 그나마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곳이 많았다.
당장 해빙기가 오면 가축의 사체가 썩으면서 생기는 가스의 압력으로 침출수가 새어나오고 악취가 풍기기 마련이었다. 봄이 채 오기도 전에 핏빛으로 물든 침출수가 흘러나오는 곳도 적지 않았다. 비가 오면 매장지가 무너지고 핏물이 지하수로 스며들고 하천으로 흘러가 식수원을 오염시킬 게 뻔했다. 지하수를 식수로 쓰는 마을에서는 식수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자료를 보더라도 구제역 피해가 엄청났다. 일자리가 4만7000개나 사라질 판이었다. 축산업은 3만1713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만큼 직격탄을 맞았다. 그 타격은 연관산업에도 파급영향을 끼쳐 도소매 유통업 4487개, 볏짚사료 3407개, 운송업 1501개, 사료업 1226개 등의 고용감소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사육단계는 물론이고 사료생산-공급과 관련한 분야, 그리고 도축 이후의 유통단계에서 일자리가 무더기로 없어진다는 소리였다. 축산업의 생산감소에 따라 국민경제에 미치는 생산유발 감소액이 4조 원대에 이른다는 전망이었다.
2009년 현재 축산업은 농림업 생산성의 38.3%를 차지했다. 그런데 종축(種畜)마저 생매장해 버렸으니 축산기반의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돼지의 경우 전국 종돈장 22곳, 돼지인공수정센터 2곳에서 17만4800마리를 생매장했다. 씨가 마를 판이었다. 1997년 3월 대만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해 축산기반이 거의 무너지다시피 했다.
전체 돼지사육두수 1068만 마리 가운데 40%에 가까운 385만 마리를 생매장해 41조 원 상당의 피해를 본 바 있다. 그 후 10년 이상 지났지만 대만은 아직도 축산기반이 회복되지 않았다. 대만의 사태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런 실정인데 외국산 육류수입이 급증했으니 축산기반의 완전한 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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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3월, 홍영표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돼지 생매장 살처분 현장 사진. ⓒ홍영표 의원실 |
그런데 구제역 파동을 틈타서 미국산 육류수입이 급증했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 1월 중 미국산 냉동 쇠고기가 1만580t, 5277만9000달러어치 수입됐다. 이것은 구제역 파동 직전인 2010년 11월의 7505t에 비해 40.97%나 증가한 것이다.
또 미국산 돼지고기는 1만261t, 2628만 달러어치 수입됐다. 이것은 2010년 11월의 4717t에 비해 무려 153.96%나 늘어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실적이 광우병 반대 촛불시위 이후 처음으로 호주산을 제치고 1위로, 돼지고기도 미국산이 캐나다산을 밀어내고 1위로 올라섰다.
식량주권 포기한 FTA
식량자급률이 25% 수준인데 축산기반마저 붕괴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황인데 아무런 농업대책도 없이 이명박 정권은 전방위 FTA(자유무역협정)를 추진하고 있었다. 미국은 곡물과 육류를 포함해 세계 최대의 식량수출국이다. 프랑스, 독일, 영국은 공업국이기 이전에 농업국이다. 호주도 대표적인 농업-축산국이다.
한-미 FTA가 농민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효되었다. 이에 앞서 유럽의회는 2009년 2월 17일 한-유럽연합 FTA 동의안을 처리했다. 호주와는 빠른 시일 내에 FTA를 타결한다고 양국이 이미 합의한 상태였다. 한-미, 한-유럽연합에 이어 한-호주 FTA, 한-중국 FTA가 체결되면 값싼 수입 농축산물에 밀려 한국농업은 고사위기에 처할 게 너무나 자명하다.
그런데 집권세력의 입놀림이 가관이었다. 2010년 구제역 파동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유정복과 한나라당 원내대표 김무성은 과학적 근거도 없이 구제역을 베트남에 다녀온 농민 탓으로 돌렸다. 한나라당 구제역대책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던 최고위원 정운천은 침출수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퇴비로 활용하면 된다고 내뱉었다.
그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확대에 앞장섰던 인사이다. 침출수는 가축사체의 썩은 물에다 석회, 살균제, 진정제, 병원균이 뒤범벅되어 독성물질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나 한 말인지 모르겠다.
한국과 같은 좁은 국토에서는 축산업은 장려할 산업이 아니라는 것이 한나라당 원내대표 김무성의 말이었다. 세계 최대의 돼지고기 수출국인 덴마크의 면적은 한반도의 1/5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모르겠다. "다방농민이란 말이 있다.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투자했더니 그 돈이 엉뚱한 데로 갔다고 하더라." 한-미 FTA를 주도한 통상교섭본부장 김종훈의 말이었다.
"경찰이 백날 도둑을 지키면 뭐하나? 집주인이 도둑 잡을 마음이 없다"며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 윤증현이 농민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했다. 정부의 농업지원금을 말하는지 정부보상금을 말하는지 몰라도 자금집행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농민의 책임이 아니다.
정치적-경제적 강대국치고 농업국이 아닌 나라는 없다. 강대국들이 정부보조금을 통해 농업을 육성하는 이유는 식량을 다른 나라에 의존해서는 강대국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식량자급을 위해 농업발달에 매진하는 까닭도 바로 그것이다. 1989년 공산주의 붕괴의 근본원인도 식량난이었다.
식량자급률이 25%에 불과한 나라에서 식량은 남의 나라 농민에게 맡겨 수입해서 먹는 게 싸다고 떠벌린다. 집권세력이 농업포기-농민천시의 심각성을 망각하고 그 같은 발언의 무책임성을 예사로 아니 국가장래가 암울하다. 그들의 천박한 국가관-농업관에서 식량안보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을 찾아볼 수 없다.
이상기후로 인해 세계적 식량파동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당장 2012년 때 이른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104년 만에 가뭄이 들어 논밭이 쩍쩍 갈라져 대흉년을 예고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라 식량위기가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경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