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즐겼던 당구를 집에서 칩니다.
게임 없이 혼자 치는 당구가 참 재밌습니다.
'쓰리쿠션'이 요새 대세죠.
빌리아드 채널이 생길 정도로 우리나라 당구 저변은 세계적이죠.
간간이 혼자 몰두하여 감각이 오르면 10개를 넘기는 장타 기록도 나오고
큐를 들었다 하면 보통 5개 이상(장타의 기준)을 치고서야 내려놓죠.
세 발짝 곁으로 목 부러진 기타가 서 있어요.
젊은날 즐겨 부르던 노래는 순전히 기타 덕이었습니다.
70 80 통기타 시대의 모든 곡을 섭렵?했죠.
형 대학 가서 '제노아 200' 기타를 사자마자
중 3이던 난 몇 달 안 가서 몰래 형이 넘기던 교본을 다 떼었어요.
기타 못 치게 하려고 줄을 다 풀어놓고 나가면 난
교본을 보고 다시 조율하여 라나에로스포, 은희, 뚜아에모아를
실컷 부르다 언날 들켜서 그리 서러웠던 기억도 있어요.
이제금 손녀에게 부르는 노래가 아무리 반짝반짝 작은별에서
곰 세마리가 한 집에 있어도 어느새 송창식, 양희은 김정호로
휘릭 넘어가버립니다. ㅋ
어쩐 일인지 요샌 하찌야 노랠 불러달라고 떼쓰지 않습니다.
하찌야로선 이 기류가 조금 민망 상처스럽고 무색 서운해요.^^
게다가 한 잔 걸치고 생쇼를 해주다 저렇게 기타 모가지가
부러지는 사고까지! 에효~~~
상처는 연못 가에도 있어요.
이 친군 네번 째 앉아 일년 내 물을 쁨는 거북인데
해마다 한 마리씩 겨울을 넘기면서 언 콧볼이 나가떨어집니다.
인자 걍 내버려두기로 했죠.
조곳이 꼭 내 나이꼴이나 닮았고 그래선지 어언 연민도 통했고
거울인 듯 바라보고 사는 편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사랑하는 것도 어렵지만 미워하는 것은 더 어려워서
저 허문 빈대코처럼 내 마음도 납작해지자 싶기도 하는,
때로 원근의 그런 벗들도 있거든요.
아심찮고 아니된 몽돌도 한나 있어요.
닳고 닳아서 더 닳아서는 안 되는 정도의 절정에서 미모를 달성한
저 얼굴을, 손녀도 척 알아보아요.
자조로 와서 좋아한다 예쁘다 귀엽다 쓰다듬더니
어느 날은 심드렁 지나칩니다.
하찌야는 갸웃거리며 졸졸 뒤따라 가는데
"채연이가 저 돌을 만지고 싶은데 새가 똥을 싸서..."
헐~
그러쿠나! 바로 닦아놓아야겠다 하구선 또 잊었는데
안즉도 희끗이 남아 있네요...^^!
지난 일요일 밤에 첫눈이 내렸죠.
담날 아침에 손녀의 눈이 똥그래지더니
하찌야를 불렀다 아빠를 불렀다 야단이 났죠. 그러다
밥을 먹고 나서 눈사람을 만들자는 아빠에게 통곡을 하였더랍니다.
밥 먹는 사이에 눈이 거짐 녹고 있었어요!
하찌야가 조용히 나갑니다.
하얀 스티로폼 박스 둘을 갖다가 뒷터 응달이거나
화단 그늘을 더듬어 잘 보이는 거실 앞 데크에
팥빙수처럼 수북히 올려놓았죠. 손녀가 삥긋 웃었더랍니다..
내 눈도 따라 녹아내렸어요.
이 동산에서 가장 따뜻한 곳.
고양이가 젤 잘 압니다.
고양이 오형제는 도담마을의 집고양이를 자처하며
어디든 놀고 쉬고 자고 먹고 짓까붑니다.
조용하고 날래며 따뜻하고 깨끗해요.
저만치서 서로 망설이는 관계랄까...
가까이 하기엔 지가 두렵고 멀어질까 내가 안타까우며
그러니 피차 씨크하게 모른 척하는 것이
최선!!
맥문동 씨앗이 절정인 걸로 보아
내년엔 그 뿌리를 얻어가도 되겠습니다.
쥔의 뜨거운 심장을 식히고 비어 가는 신장을 채워줄
'보음제'를 잘 내리고 있다는 표시.
아심찮은 것들이 첫눈 속에서 반짝거립니다.
*
살다보면,
아심찮은 듯 애틋한 것들이 있다.
마냥 비를 맞고 다니는 장닭을 보거나
개밥그릇에 앉은 벌 나비,
갈라진 벽 틈새의 민들레를 보는 것처럼,
등 굽은 소나무 위에서 터지는 나팔꽃송이,
그 넝쿨손이 가리키는
교실 창문의 청개구리들이나
고만한 계집애들의 이마에 핀 여드름,
그 여드름처럼 도도록이 내 머리칼
쥐엄질하여 찔러주는 꽃나비 핀,
이놈들이 내 손에 놓아주고 뽀르르 내빼는
꽃편지,
그런 것들이 있다.
졸시 <꽃편지> - 아주오래된 외출
아심찮은 것이 또 있었군요.
쫌 자랐다 싶으면 된장 쌈으로 자꾸 떼어가는데
어젯밤 한파에 그마저 풀이 죽었어요.
가엾고 고맙고...
*
......
눈발은 아이들의 것
오실 님 기다리며 노는 것.
첫눈은 어른들의 것
바린 님 뒤돌아보는 것.
졸시 <첫눈> - 아주 오래된 외출
처음으로 울타리 없는 곁집을 만나
프라이버시가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여기저기 절로 자라던 동백 새끼들을 데려다
경계선에 조르르 심었습니다.
언제 자라 가림막이 될지... 아득히 방편을 삼았지요.
경계울타리까지 총공사에 넣으려던 첫계획을 물렸더니 이제금 아쉽군요.
낙엽나무보다는 될수록 늘푸른 나무라야겠구요...
'나루'.
물이 먼 이 언덕에 강나루쯤 하나 출렁이며
묶인 배처럼 가만가만 삐그덕거리랬더니
열흘 남짓에 하나 씩 굵은 고리를 끊어내는 힘으로
펄펄 날고 뜁니다.
이 덩치가 풀리는 일은 차마 끔찍합니다.
집터 한 모서리를 사납게 틀어쥐고서 그 기세가 언제 꺾일지 몰라
이 카메라는 한사코 그 덜렁거리는 고리에 집중합니다.
한 영감이 늦가을로부터 이 언덕받이에 흑염소 열댓마리를 풀어놓자
아랫동네고 도담마을이고 경계가 바짝입니다.
아무데나 맴맴거리면서 심어놓은
정원수의 나뭇잎을 뜯어먹어 앙상하게 남겨놓습니다.
나루는 착하지만 올라타는 것을 무슨 재주나 재롱으로 알고 있으니
혹 산책길 노인을 덮치거나 혹 흑염소를 양떼처럼 몰고다닌다면
어찌 눈앞이 아찔하지 않겠습니까?
지 집이고 밥그릇이고 땅이고 나무고 잡히는 대로
갉고 뜯고 파고 아작을 내는
저 반칙왕, 벽창호, 깍두기를
애완이니 반려니 하는 분들이 존경스러워요.
못 해줘서 안쓰럽고, 해 줘도 얄밉고, 선물 주신 나선생께 감사하고,
고리 사러 가면서 투덜대고
그래도 짖어줘서 집 귀가 열리기도 하니
손님도 편지함도 택배도 제법 수월하긴 합죠...
나루야, 너를 넉넉히 품지 못한 것 꼭 네 품성 때문은 아닐 것이니
부디 이해하렴. 이 카메라도 한때는 지금의 네 표정이나 같았느니라.
서로 눈 맞촤가며 속 맴을 돕고 겉 외롬 나누고 미움도 곧 풀자꾸나.
이생이 모다 아쉽고 오 프로 모자람직한 인연 아니겄냐...
*
너와 내가 다르다는 건 마른
풀밭에 쪼그려앉아 너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과, 너는
나무 꼭대기에 앉아 물끄러미 먼 데만
바라보는 것의 차이.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건
가만히 일어서며 속절없이 손을
흔들어주는 것과, 너는
날개를 파닥이며 시름없이 그 먼 데로
날아가버리는 것의 차이.
졸시 <까치에게> - 아주오래된 외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