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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강
10.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수9:1~2).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아께 아뢰어 이스라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아샬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수10:12~14).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수11:23). 모두 서른한 왕이었더라(수12:24).”
가. 가나안을 회복함
9장 1절부터 12장 마지막까지 레바논 앞 대 해변에 있는 여섯 족속을 멸하는 사건이 나온다. 이 여섯 족속은 육신으로 보면 가나안 거주민이다. 영적으로 보면 이것은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을 상징한다. 지금 우리가 보면 그 사람들이나 이스라엘 사람이나 다 같은 사람이고, 그 백성이나 이 백성이나 다 같은 백성인데, 성경에 이것을 제시한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과 원수 된, 하나님의 백성과 대적이 되는 사탄의 백성, 세상의 백성을 말하기 위해서 이 족속을 사용하고 있다.
1) 가나안은 하나님이 약속한 땅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주기로 약속한 땅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토대가 되는 땅이다. 그런데 그 땅에는 이런 여러 족속들이 벌써 살고 있었다. 아브라함이 처음 그 땅에 갔을 때에도 그 사람들은 살고 있었고, 430년 후에 애굽에서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그 사람들은 여전히 살고 있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을 이스라엘이 점령해 들어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그 사람들이 먼저고 이스라엘 민족이 다음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먼저고 세상 백성이 다음이다. 우리가 육신으로 본다면 아담이 먼저고, 그리스도가 다음이지만, 영적으로 본다면 그리스도가 먼저고 아담이 다음이다. 그래서 예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느니라(요8:58).” 하셨는데 이 말은 영적으로 하신 말씀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했으므로 아담이 먼저지만, 영적으로 그리스도가 먼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목표로 해서 아담을 지었기 때문이다.
창세기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의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1:1-2).” 하셨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이 먼저 천지를 창조했는데 누군가가 그 땅을 점령해서 그것을 유린한 자가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먼저는 하나님이고 그 다음에 사탄이 그 땅을 점령하였기 때문에 혼돈이 온 것이다. 가나안 땅도 마찬가지이다. 그 땅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인데 그 땅을 사탄이 와서 점령하였기에 하나님께서 그 땅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내신 것이다.
2) 더 온전한 자리로 회복하심
하나님은 우리를 더 완전한 세계로 이끄신다. 기계는 고장 난 것을 고쳐놓으면 원래만 못 하지만 사람의 인격은 다시 회복되면 전보다 더 나아진다. 왜냐하면 적을 이길 수 있도록 고쳐졌기 때문이다. 적에게 한번 들어갔다가 나온 것이니까 적을 알고 있다. 다시는 적에게 속지 않을 생명이 된 것이다. 처음에 만들어진 사람은 사탄에게 유혹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회복된 사람은 사탄에게 유혹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더 완전해졌기 때문이다.
가나안의 여섯 족속을 멸하신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보게 되면 이스라엘은 당연히 들어가야 할 곳을 들어간 것이다. 육신적으로 생각하면 이것이 참 모순이다. 그런데 성경은 왜 이것을 말하는가? 그것은 영원한 세계를 말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 육신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다. 육신적으로 보면 큰 모순이고 잘못된 일이다.
무력을 가지고 점령했기 때문에 그곳은 항상 전쟁을 안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만일 강해진다면, 세계정세가 팔레스타인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면 이스라엘은 또 쫓겨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나 육신적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대로 그곳을 자기 땅이라 할 것이고,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대로 그곳을 자기 영토라 할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끝이 없는 전쟁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경륜으로밖에는 이 땅 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길이 없다. 하나님의 경륜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육신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영원히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 된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를 그곳에 심어야 한다. 여호수아서는 구약이니까 육신과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영적인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가나안에 있는 여섯 족속은 세상과 사탄을 의미하고 있다.
나. 기브온 거민들이 은혜를 구함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듣고 연합해서 여호수아와 전쟁을 하려고 계획하게 되었다. 그때 우스운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히위 사람 중에서 기브온 거민들이 몰래 변장을 해서 들어오게 되었다. 아주 멀리서, 오랜 여행을 해서, 고생고생해서 온 것처럼, 신발도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가죽포대도 다 헌 것을 가지고, 포도주도 오래된 것을 가지고, 떡도 곰팡이 난 것을 가지고 와서 “우리가 당신네 이야기를 듣고 당신들을 만나려고 이렇게 먼 길에서 고생해서 왔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걸 보고 기특하다고 생각을 해서 그 사람들을 받아주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히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미 “우리와 같이 살자, 받아주겠다.” 이렇게 약속을 했기 때문에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멸하지 못하고 성전에서 나무 패고 물을 긷는 자로 삼았다. 한번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였기 때문에 그 맹세를 어길 수가 없어서 결국은 다른 족속이 다 멸하여질 때 기브온 거민들은 멸하여지지 않았다.
기브온 거민들은 부끄럽지만 구원을 받게 되었다. 멸망 받아야 할 사람들인데 성전에서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로 삼았으니까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곳에 일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구원을 받은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구원의 손을 내민 자에게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경우라도, 분명히 적이었다 할지라도 구원을 요청하고 들어오면 그들을 박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일 이스라엘이 자기에게 항복해 들어온 사람을 박대하고 진멸했다면 그들이 하나님 앞에 항복할 때 용서받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가난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했으면 다른 사람도 가난할 때 하나님 은혜가 필요한 줄로 알아야 한다. 내가 곤궁할 때 도움이 필요한 줄 안다면 다른 사람도 곤궁할 때 도움이 필요한 줄 알아야 된다. 내 필요한 것은 인정하고 남의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면 불의한 것이다.
다. 가나안 6족을 멸할 때까지 태양이 머무름
그리고 가나안 6족과의 싸움이 나오는데 여기서 여러 왕들이 모두 다 멸망을 하게 되었다. 이 전쟁의 승리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수10:12,13).”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태양이 머무를 수 있는가? 우리가 물리적으로 생각할 때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가? 이것을 어떤 근본주의자들이나 보수주의자들은 역사적으로 연구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옛날 달력을 검사하고 역사를 연구해서 그때 기록에 해가 10도가 머물렀다는 데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증명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님 말씀은 그런 역사를 제시하려는 책이 아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이것은 적과 싸우는 자리에서 그 승리가 너무 신나고 완전했기 때문에 결국 해가 머물러 주는 것과 같이 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10시간 싸워서 점령할 땅을 2시간 만에 점령했다면 그 2시간이 10시간이 된 것 아니겠는가? 머물러 준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10시간 싸워야 이길 것을 2시간 싸워서 이겼다는 것이다. 그러니 10시간 몫을 했다는 그런 의미이다. 해가 중천에 머물러 지지 않았다, 내려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가 빨리 져버리면, 전쟁을 다 못할 것 아니겠는가? 예를 들어 지금 6족속을 멸해야 하는데 해가 너무 짧아서 2족속을 멸하고 나니까 해가 져버렸다면 나머지 4족속은 멸할 수가 없다. 그런데 6족속을 다 멸하고도 해가 남았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그 백성이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다 이길 때까지 해가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태양이 있을 동안에 원수를 다 이겼다는 뜻이다.
태양이 전쟁을 다 끝낼 때까지 머물러 주었다. 일을 다 마칠 때까지 해가 아직 안 지고 있었다. 그래서 태양이 머물렀다고 표현한 것이다. 우리의 승리가 완전할 때 우리가 그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이기고 이겨서 완전하게 승리할 때까지 태양이 넘어가지 않았다, 기울어지지 않았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래야 그 땅에 전쟁이 그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절에는 “그 땅에 전쟁이 그쳤다.”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신 일이 이보다 큰일이 없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태양도 머물고 달도 멈추고 원수를 갚기까지 그리했다는 것이다. 적을 다 진멸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같이 싸우셨다는 뜻이다. 우리가 싸우는 모든 싸움은 다 실패다. 이긴 것 같아도 실패고 진 것 같아도 실패다. 그런데 하나님의 싸움은 지는 것 같아도 승리다. 영원한 승리다.
라. 하나님이 승리하신 것만 영원한 승리임
세상에는 승리라는 것이 없다. 하나님만이 영원히 승리하신 분이다. 영원한 것만 영원히 승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했다고 자랑하지만, 어느 때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빼앗길지 모른다. 지금은 평화협정을 맺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영원한 승자란 없다. 결국은 언제 또 지고 이길지 모르니까 흥망성쇠가 덧없는 것이 되고 만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이런 시처럼 세상은 다 그렇다. 무엇이 잘되었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기고만장할 일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승리는 영원하다. 이스라엘이 만일 팔레스타인 땅에 가서 하나님 나라를 심었다면 그것은 영원한 승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팔레스타인도 아니고 히브리인도 아니고 어느 인종이 아닌 하나님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이길 때 그 사람의 육(힘)을 내 육(힘)으로 이겼다면 언젠가는 그 사람의 육(힘)이 나를 이길지 모른다. 우리가 세상적인 것을 가지고 이긴다면 그것은 이긴 것이 아니다. 그때로는 내가 이긴 것 같지만 어느 순간에 가면 또 지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영원한 것으로 이겼다면 그것은 영원한 것이다. 어떤 사람의 문제를 그리스도로 해결한다면 영원하지만 인간의 생각이나 방법으로 한 것은 언젠가는 또 뒤집어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해답이다.
이 땅 위에 영원한 평화는 그리스도밖에 없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다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싸우셨기 때문에 그쳤다. 이 지구상에 전쟁이 끝나려면 그리스도의 승리가 와야 한다. 그 전까지는 절대로 누구도 이기는 사람이 없다. 서로 다 안 지려고 발버둥 치기 때문에 누구도 영원히 이기는 자는 없다.
하나님이 승리하신 것만 영원한 승리지 우리는 영원히 승리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싸우셨기 때문에 이겼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 이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싸우는 전쟁에 하나님이 싸우시면 이기고, 하나님이 싸우시지 않으면 우리는 지게 돼 있다.
마. 하나님 나라는 승리자들의 나라임
가나안을 점령하고 서른한 왕이 다 패망을 했다(수12장 참조). 이 왕들은 천년왕국과 대비되는 왕들이다. 천년왕국도 왕들의 나라이다. 가나안도 역시 왕들의 나라이다. 이 왕들은 작은 성을 지키는 성주들로서 그 땅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른한 왕이나 되었다. 천년왕국도 역시 왕들이 그 땅을 지배하는 나라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왕들이 지배하는 나라이다. 즉 승리자만이 땅을 차지하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천년왕국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결국 승리자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계시록에는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아들을 낳았다고 했다. 그 아기는 누군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자다. 승리자라는 뜻이다. 여기서 해를 입은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 즉 교회 안에서 이기는 자가 나온다는 말이다. 교회는 이기는 자가 계속 나와야 하고, 이기는 자를 계속 생산해야 한다. 그 사람만이 왕국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왕국이 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사탄을 이긴 자들의 나라이다. 우리가 사탄을 이긴 만큼 우리의 영역이 그만큼 넓어지게 된다. 내가 세상을 이긴 것만큼 내 영역이 된다. 내가 세상과 싸워서 이기지 않으면 내 영역은 없다. 그래서 우리가 편하기만을 원한다든지, 안전하기만 원한다든지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영토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나가서 전쟁을 해야 한다. 또 우리 안에 있는 적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군사는 사사로운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했다. 사사로운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전쟁을 할 수 없다. 전쟁하는 사람은 사사로운 것을 생각한다든지, 자기 편할 것을 생각한다든지, 자기 입장을 생각한다든지 하면 전쟁이 안 된다. 전쟁하는 사람은 전혀 그것이 없어야 이길 수 있다. 그래서 편한 것만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더 좋고 더 영광스러운 것이다.
왜 십자가가 필요한가? 십자가가 승리하기 때문이다. 십자가 없이 우리는 사탄을 이길 수가 없다. 예수님도 십자가로밖에는 사탄을 이길 수가 없었다. 예수님이 승리하신 것은 사탄에 대한 승리다. 사탄에 대한 승리는 곧 세상에 대한 승리다. 우리가 사탄과 전쟁을 해야지 다른 것과 전쟁하는 것은 헛일이다. 형제와 싸우고 있다든지, 자매와 싸우고 있다든지 하는 것은 다 헛일이다.
영적인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탄과 전쟁을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십자가를 내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내가 사탄을 이길 수 있지 그렇지 않고서는 사탄을 이길 방법이 없다. 아담이 왜 못 이겼는가? 그것은 십자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왜 이겼는가? 십자가가 있었기 때문에 이긴 것이다.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고, 공중에 권세 잡은 자에 관한 것이다. 이 싸움은 영적 싸움이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 없이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십자가만이 우리의 영토를 크고 넓게 확장시킬 것이다. 결국 십자가가 아니면 이길 수가 없다. 사탄을 이기는 유일한 무기는 십자가뿐이다. 다른 무기는 절대로 없다. 어떤 무기로도 사탄을 이기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예수밖에는 사탄을 이긴 사람이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내 운명으로 알아야 우리가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우리가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또 우리가 승리해야 하나님 나라가 그만큼 넓어진다. 자기 영역이 그만큼 넓어지게 된다. 그러면 사실 확보된 영역만큼 우리는 살기 편해진다. 전쟁에서 이기고 나면 편해지지만 그것을 피하려고 하면 계속 전쟁이 일어나고 없어지지 않는다.
한번 전쟁이 끝나면 편안해진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라고 했다. 사실 평화의 왕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는가? 그러나 그 검은 평화를 위한 검이다. 그 검은 무엇인가? 바로 십자가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슨 칼을 주겠는가? 예수님이 가진 무기가 십자가밖에 없는데 무슨 칼을 우리에게 주겠는가? 결국 주님이 주신 검은 십자가이고, 그 십자가가 우리 입에서 이한 검이 되어 나가게 될 때 만국을 치게 될 것이다.
승리하는 자 앞에서 태양은 내려가지 않고 달도 기울어지지 않는다. 승리가 계속되는 동안에 태양은 천천히 내려가고 시간은 많아진다. 우리의 일생이 승리로 연결될 때 결국 우리는 밤이 없는 사람이 되고 태양이 기울어지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다. 영원한 승리를 상징하는 태양이 우리에게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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