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文鄕) 강릉(江陵)
10. 내 고향 학산(鶴山)
내 고향 강릉의 학산(鶴山) 마을은 자두(Plum)와 학(鶴/白鷺/왜가리)으로 유명한 마을이었다.
봄이 되면 마을은 꽤 꽃으로 온통 하~얀 꽃밭을 이루고는 했고, 여찬리(余贊里)로 넘어가는 왕고개 아랫녘 노송(老松)밭은 수백 마리의 왜가리(白鷺) 떼가 날아들어 둥지를 틀고 새끼를 쳐서 끼룩거리는 울음소리가 항상 들렸으며 논이나 개천가에 먹이를 찾아 어정거리는 백로도 항상 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이 백로를 가리켜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학(鶴)이라 불러서 그런 줄 알았더니 나중에 동물도감을 보고서야 그것이 학이 아니고 백로, 일명 왜가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로 떼는 노송밭 가지에 둥지를 틀었는데 백로 똥이 독해서 그런지 나무 밑의 풀들은 모두 누렇게 말라 죽었고, 소나무도 말라 죽는 가지가 많았다. 솔밭 근처에 있는 집들은 독한 똥 냄새와 시끄럽게 울어대는 소리 때문에 골치도 아팠겠지만, 백로를 마을의 번영을 상징하는 길조(吉鳥)로 여겨 행여 새끼가 둥지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잘 보살펴서 둥지 위로 돌려보내곤 했다.
마을의 역사가 오래다 보니 통일신라 시대의 유물 유적이 많이 출토되는 것은 물론, 그 훨씬 이전 부족국가였던 예맥(濊貊)의 하슬라(河瑟羅)로 불리던 시기의 유물들도 이따금 출토되고는 한다.
신라시대,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하였다는 엄청나게 큰 굴산사(掘山寺)라는 절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이 굴산사는 우리나라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사굴산(闍掘山)파의 본산이었다고 하며, 강릉 단오제의 주신(主神)인 그 범일국사(梵日國師)의 출생지가 바로 이곳 학산이다.
또 여찬리에서 학산으로 넘어오는 왕고개는 고려 말, 우왕(禑王)이 이성계에 의해 이곳으로 쫓겨 오며 울면서 넘었다고 하는 고개인데 지금은 포장된 도로는 아니다.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고려말 우왕(禑王)이 잠시 머물렀던 곳도 바로 이곳 학산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유적들을 꼽아보면, 처녀가 동해에서 솟아오르는 해가 비친 물을 바가지로 퍼서 마시고 범일국사를 잉태하였다는 우물인 ‘석천(石泉)’, 처녀가 아이를 낳아서 몰래 뒷산 바위 밑에 갖다 버렸는데 나중에 가 보니 학이 아이를 품고 있었다는 ‘학바위’,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왕가뭄에도 눈물을 흘린다는 ‘눈물바위’, 고려시대부터 학당(學堂)에서 글 읽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는 ‘뭉구니(文群)골’ 등 전설에 얽힌 장소도 많다.
이 학산마을의 자랑꺼리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마을 소식지인 ‘학마을’을 책자로 발간한 것을 꼽을 수 있는데 1977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하였으니 그 역사가 실로 40년이 넘는데 연 1회 발간하던 것을 지금은 연 2회 발간하고 있다. 전국 어디를 찾아봐도 리(里) 단위의 작은 마을이 자체적으로 마을의 소식을 알리는 소책자를 40여 년 이상 꾸준히 발간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현재 48호(2020. 11. 1.)가 발간되었는데 매회 50페이지 내외로 발간된다.
또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정한 마을의 기념물들을 살펴보면 ①굴산사터 승탑(국가지정 보물 제85호) ②굴산사터 당간지주(국가지정 보물 제86호) ③굴산사터 (국가지정 사적 제448호) ④굴산사터 석불좌상(강원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38호) ⑤조철현 가옥(강원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87호) ⑥정의윤 가옥(강원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93호) ⑦강릉학산오독떼기(강원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5호)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앞서가는 농촌마을로 이름을 날리고 있어 다음과 같이 5가지 우수마을로 지정받았다.
①대한민국 문화 역사마을(문화관광체육부 지정:2005) ②새 농어촌 최우수마을(강원도 지정:2005) ③정보화마을(정보통신부 지정:2006) ④녹색농촌 체험마을(농림수산부 지정:2006) ⑤창조마을(농림축산식품부:2019)로도 지정을 받았으니 자랑스러운 고향 마을이다.
학산 자두 / 조순박사 생가 / 왕고개(옛 길)
요즘도 인터넷에서 ‘학마을’이라는 이름으로 검색하면 우리 학마을은 유명한 마을로 나오는데 오래된 고택(古宅)도 많고 제헌국회의원(晩惺 鄭冑敎)을 배출하였는가 하면 전국에서 제일 많은 박사가 나온 마을이며 정·재계 거물들을 다수 배출하는 등 명성을 날리는 유명한 마을이다.
그러나 전국 제일로 꼽는 곳이 춘천의 박사마을이라 조금 서운하다.
춘천시 서면의 박사마을은 면(面) 단위이고, 우리 학산은 리(里) 단위이니 면적으로 따지면 우리 학산이 국내 최고의 박사마을이다. 전 총리이자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조순(趙淳) 님도 이곳 출신이신데 이곳 학산(鶴山)은 박사가 38명 나왔고, 특히 교육자 출신이 많아서 현재까지 140여 명의 교육자를 배출한 선비(鮮卑) 마을이기도 하다. *조순(趙淳) 박사께서는 작년(2022) 6월에 생을 마감하시고 고향인 이곳 선산에 잠드셨다.
우리 학산에서는 자두를 ‘꽤’라고 했는데 가는 곳마다 엄청나게 큰 자두나무들이 많아서 봄철이면 마을은 온통 하얀 꽤 꽃으로 뒤덮여 장관을 이루는 ‘꽤꽃마을’이기도 했다. 특히 법왕사(法王寺)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제법 큰 개울(鶴山川)이 있는데 그 개천 변으로 꽤나무가 많아서 개울을 따라 내려오는 도로는 온통 꽃길이었다. 봄철이 되면 강릉 시내에 사는 사람들은 일부러 꽤 꽃을 구경한다고 학산으로 오곤 했는데 달밤에 이 길을 거닐면 흐드러지게 핀 하얀 꽃밭은 마치 꿈속을 걷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대한제국(大韓帝國)시기 국화(國花)를 이화(李花)로 삼고 온갖 나라를 상징하는 모든 것에 이화의 꽃문양을 새겼는데 이것이 바로 오얏(李:오얏 이)으로 바로 우리나라 토종자두, 즉 강릉말로 꽤이다.
돌이켜보면 내 고향 학산은 나라를 상징하는 국화(國花)의 마을이었던 셈으로 크고 작은 마을과 개인들의 경사(慶事)는 우연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학산 3리 금광평(金光坪)에 있던 우리 집은 울타리가 앵두나무였고 또 엄청나게 큰 자두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매년 엄청나게 많이 열렸다. 토종자두인 꽤는 덜 익어 푸른 것을 깨물면 저절로 눈이 감길 만큼 신맛이지만, 빨갛게 익은 다음에 먹으면 신맛이 감돌지만 제법 달콤한, 상큼한 맛이다.
우리 어머니는 앵두와 자두를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셨는데 사람들은 ‘쳇, 그까짓 꽤를....’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남기지 않고 모두 팔아 오시곤 했다. 너무 흔해서 그랬는지, 인근에 과수원이 많아 사과와 배가 흔해서 그랬는지 자두는 과일 취급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 귀한 나라의 상징인 이화(李花)의 열매 꽤를... ㅎㅎ
또 한 가지는 커피의 원조인 강릉 테라로사(Terarosa) 본점(本店)이 학산에 있는 것이 자랑이다.
2002년에 문을 연 커피전문점 테라로사는 학산 설레 마을에 있는데 수많은 자회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커피(Coffee) 전문회사이다. 강릉 안목해변에 원두커피 가게들이 몰려있어 강릉이 우리나라 원두커피의 메카로 불리고 있지만, 학산(鶴山)에 있는 이 테라로사가 그 중심에 있다고 하겠다.
테레로사는 커피 샵(Coffee Shop), 커피 공장, 커피 박물관(Museum), 미술관(Art Shop), 빵굼터(Bakery), 양식당(Restaurant) 등을 고루 갖추고 있고 주차장도 널찍한 제법 큰 회사이다.
이곳에서는 전 세계에서 공수해 온 커피 원두를 직접 볶아 핸드드립(Hand drip)으로 내리고, 직접 구워주는 빵, 정식 서양 요리 등으로 품격을 갖추어 커피 애호가들이라면 꼭 한 번 들러 가는 곳이다.
테라로사(Terarosa)는 원어로 테라로사(Terra Rossa)로 커피나무가 잘 자라는 물 빠짐이 좋은 붉은 흙이다.
나는 대학진학을 하면서 서울(오류동)로 올라왔는데 몇 년 후 고향을 갔더니 그 많던 자두나무도, 하얀 날개를 펼치고 하늘 가득 나르던 백로들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사람들 이야기에 의하면 인근에 예비군 훈련소가 생겼는데 총소리에 놀라 백로가 오지 않는 모양이라고 했고, 자두(꽤)는 수령(樹齡)이 오래되어 베어내고, 보다 수익성이 높은 과실수로 혹은 관상수로 바꾸어 심으면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더 살기 좋은 마을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마을의 상징이던 자두나무와 백로 떼를 볼 수 없어 고향을 갈 때마다 허전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