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2일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 이웃 동네가 하리리다. 삼층석탑, 충효당, 모전석탑, 체화정이 있다.
막곡리에서 마애리를 가는 길에 체화정을 봤지만 지나쳤다. 내게 먼저는 불교문화재이다.
하리동 삼층석탑(경북 유형문화유산)
높이 3.6m. 고려 때 석탑으로 여긴다.
많은 기와편이 흩어져 있어 절터였음을 알 수 있는데, 망천사(望天寺)있었다고 전한다.
(마애동 비로자나불 좌상이 있는 곳도 망천사가 있었다고 한다)
감자밭 가운데 있다. 작물을 해치며 가까이 가고픈 마음은 없어 떨어진 곳에서 봤다. 지대석을 볼 수 없다.
삼층석탑을 보고 모전석탑으로 갈 때 충효당을 지난다. 모전석탑 주위에 주차하고 충효당까지 걸었다.
하리동 모전삼층석탑(경북 유형문화유산)
전탑(벽돌로 만든 탑)을 모방하여 자연석 위에 만들었다. 지붕돌 모양이 전탑형식인 것 같다.
700m쯤 떨어진 곳에 삼층석탑이 있다. 같은 절이었는지 다른 절인지는 알 수 없다.
예안이씨 충효당(禮安李氏忠孝堂, 보물)
예안 이씨는 안동 예안면을 본관으로 삼는다. 시조는 이혼으로 고려 원종 때 첨의정승을 지냈다.
중시조 이익은 보문각제학을 지냈다. 예안 이씨는 전의 이씨에서 분적하였다.
충효당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전사한 이홍인(李洪仁, 1525~1594)과 후손 이한오의 충(忠)과 효(孝)가 얽혀 있는 건물이다.
이홍인의 후손이 사는 집으로 1551년에 지은 조선시대 중기의 건축물이다.
겉모습만 보았다. 안에 들어가 자세히 보지는 않았다. 안동지역엔 이런 건축물은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쌍수당
체화정은 생각에 없었다. 하리리에서 죽전리로 가는 길에 배롱나무꽃이 나를 유혹하였다. 그곳이 체화정이다.
체화정(棣華亭, 보물)
1761년(영조 37)에 건축, 만포 이민적(晩圃李敏迪)이 학문을 닦고 형 이민정(李敏政)과 함께 기거하였다.
정자 앞 네모난 못에 둥근 섬 3곳을 만들었다. 동아시아 우주론을 상징한다. 세 섬은 삼신산을 의미한다.
정자 뒤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 수목이 울창하여 경관과 지세가 좋다.
‘체화(棣華)’는 '常棣之華'(상체지화)에서 가져 왔으며 형제간의 우애와 화목을 뜻한다. 시경(時經)에 나온다고 한다.
죽전동 삼층석탑(경북 유형문화유산)
전체 높이 약 3m. 지대석은 땅속에 묻혀 있다.
옛날엔 이곳에도 절이 있었을까? 지금은 꿀벌 채취자의 땅이다.
아담하고 단아한 맛이 느껴진다.
죽전동 삼층석탑을 보고 나오니 이런 석조물이 있는 절이 있어 들어왔다. 학심사.
절을 이런 석조물로 조성하려는 것보다 석조물을 만들어 파는 곳으로 느껴졌다. 절 안에 많은 자연석이 널브러져 있다.
학가산 광흥사 (鶴駕山 廣興寺) / 전통사찰
- 경북 안동시 서후면 광흥사길 1059(재품리)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절의 내력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는 것 같다.
여러 문화유산으로 봐서 조선 때는 법맥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827년 가람 모두 타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1828년 다시 절을 지었다.
1946년 화재로 대웅전(大雄殿)이 소실, 1954년에는 극락전(極樂殿), 1962년에는 학서루(鶴棲樓)와 대방(大房)이 무너짐.
지금 광흥사 중신 불전은 응진전이다.
명부전은 문이 잠겨 있다.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경북 유형문화유산)
명부전은 본전에서 떨어져 있다.
응진전(경북 유형문화유산)
처음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응진전은 조선 초기 다포계 팔작지붕 건축물이다.
'응진'은 '진리에 상응하는 자'란 뜻을 배웠다.
응진전 소조석가여래오존상 및 16나한상 일괄(경북 유형문화유산)
석탑, 석탑은 사리탑이다.
산령각
대웅전이 외롭다.
광흥사 아미타극락회상도(경북 문화유산자료)
광흥사는 훈민정음 해례본과 인연이 있는 절인 모양이다.
광흥사 동종(보물, 불교중앙박물관), 광흥사 장금자사경(경북 유형문화유산) 등이 있다.
학가산
광흥사를 나와 네비게이션 안내를 따라 죽령으로 향했다. 군도도 아닌 산길, 낯이 익다.
강동리 마애보살입상(영주시 평은면) 입구를 지났고, 영주댐 앞을 지나니 진월사(영주시 문수면, 전통사찰) 입구도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