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마13:24-30, 36-43
요즘 대학가에는 대통령의 탄핵을 찬성하는 학생들과 반대하는 학생들간의 집회가 열리면서 서로 충돌하는 위험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두가 국가를 위한 일이라고 하면서 학생들은 공부하는 시간과 알바하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까지 대통령탄핵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데 이런 시위가 전국대학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토요일이면 광화문에서도 윤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반대와 찬성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민주당의 텃밭이라는 광주에서도 수만명이 모여서 집회를 열었는데 탄핵반대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찬성하는 집회보다 대략 3배 정도는 더 모였다고 합니다. 한미다로 이런 집회는 누가 대한민국을 정말로 위하는 것이냐입니다. 윤대통령이 야당입법폭주를 막고 부정선거를 밝히고 탄핵남발을 막고자 계엄을 선포했다는 것이 탄핵반대자들의 생각입니다. 결과는 헌재에서 재판관들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판결이냐 아니면 대한민국을 망하게하는 판결이냐가 마지막 관건인줄 믿습니다. 정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늘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세상인데 오늘날 우리대한민국의 이념은 자유대한민국으로 계속되느냐 아니면 친북 친중국과 같은 공산주의로 가느냐의 갈림길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재명이가 쓴 대한민국을 혁명하라는 책속에는 미군은 점령군이라 철수해야 한다며 북한 중국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도 어리석은 백성들이 좋은게 좋다고 따라간다면 지금같은 자유는 잃어버리고 국민들을 노예처럼 되고 교회는 문닫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치적인 노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스스로는 불가능한 것이며 우리 죄값을 지시고 십자가위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아서 천국백성이 되고 죄에서 갇혀 있으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말씀대로 살고 싶지 않고 내 하고싶은 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말씀에서 빗나가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자기가 행한 결과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 있을 때는 아무도 천국이나 지옥을 가 본 적이 없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천국이나 지옥을 말씀하셨을 때는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을 일곱 가지 비유로 즉 씨뿌리는 비유, 알곡과 가라지 비유(24-30),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밭에 감추인 보화, 진주를 구하는 장사, 그물에 걸린 물고기 비유 등이 나오는데 이 모두는 천국에 대한 비유입니다.
오늘 전할 말씀은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천국 비유중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에 대해 논하고자 합니다.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자기의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24). 그런데 밤중에 그의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볏과에 속한 한해살이풀. 밭에서 자라며 강아지풀과 외형이 비슷, 악한 자들이나 거짓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상징)를 덧뿌리고 갔다(25). 처음에는 싹이 날 때는 몰라 보고(26) 종들이 주인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리면서(27) 우리가 가서 가라지들을 뽑기를 원하시냐고 물었더니 주인은 그렇게 한 것이 원수의 소행이라고 밝히는 한편(28), 가라지를 뽑기를 구하는 종들에게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 것이 염려되니(29)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두라고 하시면서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추수 때가 되면 추수꾼들을 시켜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단으로 묶어서 불사를 것이고 곡식은 모아 주인의 곳간에 넣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30). 나중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들에게 가라지의 비유를 밝히 말씀하여 달라고(36) 하니 예수님은 이 비유의 뜻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37-43까지로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님이시고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 즉 알곡은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자는 마귀요 추수때는 세상 끝이요 세상 끝날에 예수님이 천사들로 하여금 넘어지게 하는 자와 불법을 행한 자들은 지옥불에 던져 넣을 것이며 의인들은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니 귀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이십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은 농부가 논과 밭에 씨앗을 뿌리고 정성스럽게 가꾸는 이유는 풍성한 열매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는 하나님이요, 예수님은 세상이라는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마귀도 몰래 가라지를 뿌렸다는 것인데 추수할 때 알은 믿음의 신자는 천국이요, 쭉정이 즉 불신자는 지옥으로 던져진다는 것을 비유하신 말씀이신데 그러면 알곡과 쭉정이 즉 알곡과 가라지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1. 가라지와 알곡 그리고 쭉정이는 무엇인가?
알곡은 말 그대로 곡식의 알곡인데 쭉정이는 말 그대로 알맹이가 없는 곡식이며 가라지는 알곡과 거의 같은 잡초를 말하는데 예를 들면 조밭에 나는 강아지풀은 너무나도 비슷해서 다 자라야만 비로소 그 모습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가라지는 쓰기 때문에 먹을 수 없으며 이를 벼농사로 비유해 본다면 피와 같은 잡초인데 벼와 피도 처음에는 구분이 안되지만 다 자라면 피를 뽑아 낼 수 있는 것처럼 가라지라는 것은 어렸을 때는 너무 비슷하나 다 자라고 나면 곡식에 비해 생명력이 강해 뽑아도 다시금 살아나는 근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곡식은 김을 매고 물 주고 거름 주고 돌보지 않으면 죽거나 병들어 수확량이 줄어들게 된다. 가라지는 사람의 손이 안가도 잘 자라는 것이며 곡식은 주인의 손이 보살펴야만 자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영적으로 알곡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며 가라지나 쭉정이는 가짜 믿음없는 교인을 말한다.
(1) 알곡보다 더 멋지게 보이는 가라지
팔레스타인 농부들의 골치거리 가운데 하나는 가라지를 분간해 내는 것이다. 가라지와 보리의 차이는 우리나라의 피와 벼 정도가 아니다. 너무도 흡사하다.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이 농촌 봉사 가서 가라지를 뽑으라고 하면 곡식을 뽑아버리데 그 이유는 가라지가 곡식보다 더 크고 강해 보이니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이 구별해내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보다 세상사람들이 더 좋아 보이는 것도 가라지가 곡식보다 더 좋아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예수믿는 것이 금방 눈에 띌 정도로 무슨 매력을 갖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가라지 뽑기를 구하는 종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 것이 염려되니(29)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두라고 하시는데 가라지는 보리의 뿌리를 부둥켜 안고 있기 때문에 가라지를 뽑다가 보리까지 뽑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추수 때까지 두라는 것이다. 로마법에 보면 남의 밭에 가라지를 뿌리면 몇 년 징역을 산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면 실제로 원수들이 몰래 밭에 가라지를 뿌려놓는 일이 있었나 보다. 예수님께서는 가라지와 알곡의 비유를 통해, 교회안에도 참 진리의 백성과 거짓 교리를 믿는 교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의 때에는 마태복음 7장 22절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노니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한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교회내에서도 불법을 행하는 가라지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2) 알곡과 가라지의 차이
알곡과 가라지의 차이는 처음에는 몰라도 추수 때 먼저 뽑혀 불태워 버리는 것은 가라지이고 남는 것은 알곡이다. 여기서 알아야 될 것은 알곡 때문에 가라지가 있는 것이지 가라지 때문에 알곡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알곡은 농부의 한 평생 꿈이요, 가라지는 농부의 한 평생 근심거리이다. 사실 알곡은 유익된 것이지만 가라지는 백해무익한 것이다. 그럼에도 알곡이 있는 곳에는 가라지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곡식은 가라지의 그늘에 눌려 약해질 수 밖에 없다. 농부가 원하는 것은 알곡이지 가라지가 아니다. 비록 연약하고 보잘 것 없어도 하늘 곳간으로 들림 받을 존재는 알곡으로 비유된 진리의 백성이지 결코 불법을 행하는 악인들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가라지와 같이 외형적인 모습은 크고 명성도 있지만 그 결과는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라면 이보다 더 비극은 없을 것이다. 결국은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었지만 가라지같은 교인이라면 지옥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불법을 행한자들에 대해서 우리사회에서는 생명을 무시하는 모습이 매일 뉴스와 유트부에 올라온다. 경제적 문제로 다투던 아내를 살해한 후 시신을 차량에 은닉해 오던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보도도 있다. 비슷한 사건이지만 이번에는 이혼을 요구한 아내를 살해한 뒤 그 시신을 두 달여간 차량 트렁크에 보관해 온 4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총기휴대가 자유로운 미국에서는 우리보다 살인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토요미스터리에서 본 사건은 빈집털려 들어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집주인을 살해하였고 잠시후에는 그집에 놀러온 친구를 살해하였고 마지막에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집을 털려들어갔다가 부딪치다 보니 전혀 안면도 없는 사람들을 연쇄살인하는 이런 끔찍한 사건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온라인상에서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는 게임이 흔하다보니 그런 게임을 실제로 즐긴다고 하면서 그런 살인사건도 일어난다. 이는 마귀가 인간을 조종하면 그런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돈과 성적인 쾌락으로 인해 매일 살인사건들이 일어난다. 살인하지말라.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런 살인 사건은 cctv나 챠량블랙박스나 드론에 의해 발각된다는 것이다. 이세상에서는 죄를 짓고 숨을 곳이란 어디에도 없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인간들이 죄에 대하여 회개없이 살아간다면 그들 모두가 가라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천국과 지옥을 말씀하셨을 때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비유는 어떤 감추어진 실체를 알기 쉽게 표현할 때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비유를 들을 때는 본래의 감추어진 진리를 찾아야 한다. 오늘은 밭에 나는 알곡과 가라지에 대한 비유에 대한 설명이다. (36-40)
36 예수님께서 무리를 멀리 보내고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우리에게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밝히 말씀하여 주옵소서 하매
3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사람의 아들이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왕국의 자손들이로되 가라지는 그 사악한 자의 자손들이니라.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수확하는 때는 세상 끝이요. 거두는 자들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모아 불에 태우는 것 같이 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첫째, 이 비유의 핵심은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라’(24)는 말씀 속에 담겨 있다.
좋은 씨를 뿌리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37).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의 씨를 우리 마음에 뿌려서 수십배 열매를 맺는다면 그런 자들은 천국 백성이 되게 하셨음을 의미한다. 말씀의 열매를 맺는 다는 것은 세상에서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다. 다시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두시는 구원의 열매들(알곡)이다.
둘째, 가라지는 사악한 자의 자손들이며(38)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 곧 사단이다(39). 저들은 악한 영 곧 마귀의 지배를 받는 불신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때는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마귀 자식이라는 의미다.
셋째, 추수 때는 세상 끝이며 추수군은 천사들이다. 알곡과 가라지는 추수 때까지 세상이라는 밭에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라지는 알곡에 비해서 생명력이 질겨서 때로는 자신의 뿌리로 곡식의 뿌리까지 휘감고 있기 때문에 자칫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라지를 추수할 때 까지 그대로 두라고 하신 것이다. 농부들은 아무런 쓸모없는 가라지를 불태워 버리듯이 세상 끝에는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이 땅에 보내어서 불법을 행하며 천국 백성을 넘어지게 하던 가라지들을 풀무불같은 지옥불에 던져 넣어 거기서 이를 갈며 슬피 울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42). 주님께서는 추수 때에 곧 주님의 재림 때 천국 백성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확실하게 영생의 축복과 영벌의 심판으로 구분하실 것이다. 지금은 가라지를 뽑을 때가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주님의 재림 때까지 가라지로 있다가 지옥불로 떨어질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맞이한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천국에서 영생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가라지들은 지옥불에 던져진다는 말씀이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는 천국 백성과 불신자들과의 관계로서 이 땅에서는 천국백성이 불신자들로부터 고난과 핍박을 받게 된다는 현재성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알곡과 가라지를 심층 비교해 보기로 하자.
2. 가라지와 알곡의 심층 분석
(1) 알곡과 가라지는 한 곳에 공존한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세상에는 왜 악이 존재하는가? 왜 거짓이 더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인가. 이런 의미에서 다음의 몇 가지를 비교하면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는데 마귀가 몰래 가라지를 뿌렸다는 것입니다. 곡식을 뿌린 밭에 원수가 밤에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어디를 가나 알곡과 가라지는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개인, 어떤 조직, 어떤 직장, 어떤 교회에도 알곡과 가라지는 공존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알곡을 진(眞)이라면, 가라지는 위(僞)인 것입니다. 즉 <참됨>과 <거짓>은 항상 상존한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에는 어느 곳에든지 거짓과 진실이 공존하고, 선과 악이 함께 하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말입니다. 우리 개인의 마음도 마음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또 다른 한쪽에서는 육신의 법을 따라 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갈등을 느꼈기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해 내랴(롬7:24)"고 탄식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신앙생활에서 낙심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상품중에도 정품과 짝퉁이 있듯이 빛과 어두움이 있듯이 알곡과 가라지는 개인의 마음에서부터 시작하여 사회 국가 교회내에서도 공존한다는 사실입니다. 신자와 불신자가 다른 곳에 따로 거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교회 안에서 함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기록한대로 우리 마음속에도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함께 거하여 이 두 마음이 언제나 싸우며 투쟁합니다.
(롬7:23) 내 지체들안에서 다른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내가 보는도다.
이 두 마음 중 성령의 소욕이 이길 때 우리는 요셉과 다윗같은 인물이 될 수 있지만 육체의 소욕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아간같이 사특하고 가룟유다같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반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과 악이 모두 공존하는 세상에 살며, 자신의 선택에 따라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롬8:5-8,13)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성령을 따르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13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해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이는 내 마음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잠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지키는 것이 자기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다. 육신 생각을 이기고 하나님 말씀을 우선하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마귀사탄은 끊임없이 육신 생각을 우리 삶에 주입하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악하고 음란한 생각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사탄이 주는 육신 생각과 타협하다보면 결국은 사망 길로 가는 것이다. 지금은 사탄의 유혹에 미혹되어 마음이 무너진 교인들이 많다. 이들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자들이다. 이것은 인간의 고집과 교만과 야망이 강하다는 것은 사탄에게 자기 마음과 생명을 넘겨주는 것이다. 우리마음속에는 알곡같은 신실한 마음과 함께 내 심령 속에는 탐욕과 죄짓고 싶은 가라지도 함께 공존한다.
(2) 알곡은 고개를 숙이고 가라지는 고개를 듭니다.
벼가 익어가는 논에 가보면 알곡일수록 고개를 숙이지만 쭉정이는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것을 아는 자가 겸손한 자입니다. 겸손한 자는 은혜를 받은 자요, 은혜를 받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감격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마찬가지로 알곡 신자일수록 겸손해지지만 쭉정이일수록 교만하다는 것을 교훈하여 줍니다. 주님은 쭉정이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알곡을 원하십니다. 쭉정이 신자는 되지 못하고도 된 줄로 착각하고,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척 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알곡 신자는 하나님 앞에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 때문에 가슴아파하고, 다른 사람들의 허물과 죄를 보면서 자기 탓으로 여기며,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하나님 앞에 중보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논리나 말이 아니고 겸손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바르게 받지 못하면 교만해 집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찾으시는 성도는 겸손한 알곡 신자입니다.
곡식을 추수하면 농부는 창고에 넣기 전에 키질을 합니다. 알곡은 앞으로 모이지만 쭉정이는 바람에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키질하면 쭉정이는 멀리 날아가 버리지만 알곡은 남게 됩니다. 신자들도 겉으로 보아서는 누가 알곡 신자인지 누가 쭉정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환난의 바람이 불어오면 알곡 신자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만 쭉정이는 환란의 바람에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이 세상 마지막에도 하나님께서는 시험과 환란을 통하여 알곡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실 것입니다. 그날에 하나님은 알곡은 천국 창고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불타는 지옥에 던지실 것입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천국에는 알곡 된 성도들만이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쭉정이가 가는 곳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타는 지옥임을 성경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알곡과 쭉정이가 함께 있을 때는 잘 모르나 추수의 때가 오면 반드시 하나님은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오늘 이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부르신다고 할지라도 천국 창고에 들어갈 수 있는 알곡같은 믿음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3장 41-43에서 최후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43).
예수님은 마지막 지옥불에 던져질 가라지의 정체를 밝혀주실 때에 먼저 마귀가 뿌려 놓은 가라지를 불사르기 위하여 단으로 묶어서 불에 태울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가라지의 마지막은 풀무불에 던짐을 받게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불법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라지는 하나님 계명을 범하고 있는 사람들 또는 그들 단체인 거짓 교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3. 알곡과 가라지 둘 다 주인의 보호를 받습니다.
밭에 곡식과 함께 가라지도 자라고 있음을 발견한 종들은 주인에게 가서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대답하기를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은 곡식과 가라지의 뿌리가 서로 뒤엉켜 있어서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이 상하거나 뽑히게 될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주인은 많은 가라지를 없애는 것보다 한 포기의 곡식을 다치지 않게 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교회에서 가라지 신자를 솎아내려다가 혹시라도 알곡 신자가 상처를 입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십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자칫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다가 실수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심사숙고할지라도 누가 알곡 신자인지, 누가 가라지 신자인지를 분별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특히, 믿음이 연약한 영적 미숙함이나 인간적인 약점을 보고 그를 가라지 신자라고 판단을 내린다면 그 때문에 주님의 몸된 교회는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서 가라지 신자가 악행을 하더라도 무관심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거짓된 신자로 드러날 경우, 교회는 그 사람에 대하여 경계하고(딤후 2:25,26), 때로는 교회의 출석을 금할 필요도 있습니다(고전 5:13). 단지 어떠한 경우라도 가라지 신자들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은 주님의 몫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관심은 오로지 알곡에게만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은총은 가라지에게도 똑같이 내려집니다. 마치 선인과 악인 모두에게 햇빛과 비가 내려지는 것처럼 그의 은총은 알곡과 가라지 모두에게 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라지에 대한 주인의 관심이나 사랑 때문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도 다치게 할까봐 추수때까지 기다리는 알곡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이 선인과 악인 모두에게 공평하게 베풀어진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악인을 사랑하시거나 보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통해 의인을 보호하기 위함이며 가라지의 때가 추수할 때까지인 것처럼 악인들의 때는 최후의 심판 때까지이기 때문입니다.
4. 의인과 악인은 반드시 구별된다.
예수님의 좌우에 갈라선 양과 염소 같이, 때가 되면 의인과 악인을 반드시 구별한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죄악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을 구원하시기 위해 구별하셨던 것과 같이 홍수로부터 노아와 그 가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구별하셨던 것과 같이 의인과 악인은 반드시 구별됩니다. 오늘 말씀처럼 그때에는 주인이 알곡은 모아 천국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모아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지는 것과 같이 의인에게는 상급으로 악인에게는 영벌로 구별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의인을 위한 특별한 방법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노아를 위해 방주라는 특별한 방법을 예비하시고 롯을 위해 천사의 방문이라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신 것처럼 주님은 의인을 위한 특별한 방법을 예비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의인과 악인의 궁극적인 차이입니다. 주님은 악인의 고통과 고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시지만 의인의 고통은 결코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며, 어떠한 여건하에서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시91:7) 천명이 네 곁에서 만명이 네 오른쪽에서 쓰러질 터이나 그것이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로다.
천국비유말씀은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가라지는 불에 태운다는 것이다.
오늘 알곡과 가라지 비유는 추수 때에 주인이 추수꾼들에게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고 명합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도 주님은 천사들을 보내셔서 참 신자인 알곡과 거짓 신자인 가라지를 나누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세상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자들과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젖어 살던 거짓 신자들과 마귀의 거짓된 가르침을 따르던 자들이 영원한 지옥 형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마치 곡식 이삭이 여러 달에 걸쳐 혹독한 더위와 가뭄과 병충해를 견뎌낸 후 추수 날에 거두어져 창고에 들여지듯이 이 땅에서 여러 가지 시련과 역경을 믿음으로 견뎌낸 알곡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또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같이 모든 알곡 신자들이 구원의 하나님을 친히 뵙고 영광과 찬송을 돌릴 뿐 아니라 주님을 위해 바친 모든 수고와 흘린 땀에 대하여 영광스런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 날의 기쁨에 대해 주님을 위해 고난받은 성도들은 앞으로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롬 8:18).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 날의 영광을 바라보며 충실한 알곡 신자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추수는 바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예수님의 재림과 더불어 모든 죽었던 자들이 썩지 않을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나 부활의 몸으로 변할 것이고 살아남은 자들도 변하여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주 받은 이 땅과 하늘은 온데 간데 없이 없어지고 다시는 멸망하지 않고 쇠하지 않는 새 하늘과 새 예루살렘성이 하늘로 부터 내려오면 모든 성도들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것을 보여 주신 것이 성경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2천년전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 복음씨앗을 뿌리셨으며 이천년동안 알곡이 성장하는 동안 가라지도 세력을 확장하며 지금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4세기경 복음이 로마카톨릭에 정착되면서 마귀는 2000년 동안 카톨릭이라는 마귀의 전략적인 교회를 만들어 복음을 부패시키기 하였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유월절에 지키던 부활절을 폐지시켰고 이스터축제를 부활절로 대체하였고 354년에는 크리스마스를 제도화 시켰고 5세기 경에는 십계명까지도 변경시켜 기독교 성경과 카톨릭 성경의 십계명이 판이하게 다르게 되었고 12세기 경에는 사도신경을 암송하도록 하는 불법행위가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이제는 교회의 전통으로 고정되어 있어 이런한 불법전통을 지키지 않는 교회들이 이단처럼 보이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법은 마귀의 무기이므로 불법을 추종하는 것은 곧 마귀의 자녀임을 스스로 시인하는 행위입니다.
(마 7:21-23)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여기서도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하셨고, 불법을 행하는 자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서 선지자 노릇을 하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이적과 기사와 권능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추수는 알곡을 거두고, 가라지는 불에 태우는 심판을 의미한다. 알곡과 가라지는 어떤 신앙생활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동안 알곡이 될 수 있고, 가라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다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을 믿는 심령 속에는 알곡같은 마음이 자리잡고 있으나 이 짧은 인생 내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가라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살아가는 동안 마음먹기에 따라서 알곡같은 성도가 될 수도 있고 가라지 같은 인생도 될 수 있다. 주님은 이러한 형편을 잘 아시기에 우리에게 이 비유를 들려주신 것이며 실은 가자지같은 교인들에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가라지로 인해 고통이 올지라도 낙심치 말고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끝까지 알곡 신자답게 주의 일에 더욱 힘써서 주님 앞에 설 그 날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