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공주, 부여. 이곳은 아주 오래전, 한반도 서쪽에 자리했던 어느 고대왕국의 중심지로 자리했던 곳이다. 결국 그 삼국시대의 승자였던 신라의 경주는 온전한 상태를 유지한 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여행지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지만, 가장 먼저 멸망당한 백제는 그 흔적조차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아주 공허했다. 성왕 시절 공주에서 부여로 자리를 옮긴 뒤, 중흥기의 정점을 찍나 싶었으나 결국 정림사지에 남아있는 그 석탑에 당시 원정군 사령관이었던 자에 의해 기록이 새겨지던 수모만이 남게 된다.
경주와 부여. 각각 신라와 백제의 수도로 자리했던 곳. 두 곳을 모두 여행한 뒤, 각인된 이미지는 그것들에 대한 이미지는 묘하게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았다. 외곽에 물론 당대를 대표하던 사적지들이 즐비했지만,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유적지는 도심과 많이 떨어져 있지 않아 그 접근성이 매우 용이했다. 더불어 경주의 동궁과 월지가 있다면, 부여에는 궁남지가 자리했을 정도로 그 묘한 평행선 따라 대비되던 각 도시의 매력에서 비롯된 재미가 쏠쏠했다. 그곳들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야외 여행지 두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1. 구드래조각공원
정림사지를 돌아보고 흐린 날씨가 맑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정에도 여유가 있었으며, 잠시 휴식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코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려던 찰나 눈에 밟힌 곳이 있었다. 그곳은 예정에도 없던 곳이었으며, 그저 신기한 조각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어, 호기심에 발걸음을 옮겼는데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즐비하던 조각상들이 상당히 인상 깊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올림픽공원 9경을 탐방했을 때를 ㅈ외하 곤 처음 보는 광경이라 매우 관심을 갖고 주변을 한창 돌아보기 시작했다.
야트막한 언덕에 오르니 그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던 백마강 유역을 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강변따라 나부끼던 그 백제의 깃발은 이곳이 아주 오래 전, 백제의 도읍이었따는 사실을 말해주고 잇었으며, 백마강 건너편으로 아침 일찍 다녀왔떤 백제문화단지와 호텔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점심 때 까지 아직 시간이 있어 휴식을 취하러 가던 중, 예기치 못한 노다지와의 만남은 금방 환한 미소로 돌아왔으며, 지체없이 카메라를 꺼내들고 신중하게 주변의 분위기를 담아가기 시작했다.
구드래라는 명칭은 본디 고유명사로 조각공원 바로 아래 자리한 백마강 포구를 일컫는다. 이곳을 통해 외국의 사신들이 오갔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곳을 통해 백마강 유람선이 오갔으며, 당시에는 날이 흐려 배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1996~1997년 사이에 조성된 곳으로 따로 운영 시간의 제한을 두지 않아 24시간 동안 언제든 구드래조각공원을 찾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해 뒀다. 더불어 음악분수 시설도 있었는데 하루 총 3 차례 운영되고 있었으며, 코로나 시국에 종료됐다가 현재는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우선 상당히 반가웠던 점은 서울이 아닌 곳에서 이런 공간을 발견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넓지 않은 곳에 59점의 조각들이 자리했으니, 시간 관계상 하나하나 살펴볼 수 없다는게 아쉬웠다. 대신 카메라를 활용해 흥미로운 구도를 잡아가며, 눈에 밟히던 것들을 프레임에 담을 수 있었다. 어떤 작품들은 올림픽공원에서 보던 것들과 비슷해 눈길을 끌던 것도 있었다. 이런 새로운 모습들을 감상하다 보면, 문득 아쉬운 점도 있는데 크게 작품의 몰입과 배경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세히 알고 싶지만 제한된 시간과 유관분야가 아니라면, 그 즐거움에는 한계가 분명하긴 했다. 이곳을 제대로 보고 즐기고 싶다면 하루 정도로는 안될 것 같은 기분도 들었으며, 서서히 허기짐을 견디던 인내심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기에 짧았던 순간을 정리하고 미리 알아 둔 식당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높지 않았던 언덕에서 바라보던 백마강의 그 순간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으며, 문득 수천 년 전 당시의 사람들도 이곳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을까?라는 질문도 쓱 던져보게 된다.
2. 궁남지
서동요와 더불어 이곳을 설명하는 이야기는 많았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 그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연잎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후, 그 주변을 훑다가 드문드문 보이던 연꽃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만약 그 시기가 연꽃이 만발했을 때라면 정말 부여와 궁남자의 매력에 푹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백제와 불교 그리고 연꽃과 처염상정이라는 사자성어 모두 연꽃으로 묶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진짜 매력은 이어질 다음 장소에 숨겨져 있었다.
한반도 최초의 인공호수로 그 모습은 땅에 조성된 커다란 거울을 연상케 했다. 극적으로 맑아진 날씨는 하늘에 흩뿌려진 하얀 구름을 오롯이 담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며, 바람 한 점 없던 날씨로 잔잔한 호수에 몰입할 수 있던 그 분위기가 너무 평화로웠다. 처음 이곳을 알게 된 것은 드라마 '나의 나라' 촬영지로 소개가 되면서부터다. 당시 그 웅장했던 느낌은 그곳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며, 덕분에 이곳으로 날 이끌기에 충분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렌즈교환식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궁남지 주변을 돌며 셔터를 누르는데 여념이 없었다.
인공호수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리한 정자는 지금껏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생경한 모습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곳으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자리했는데, 호수 한가운데 자리한 정자에는 잔잔하게 불어오던 바람을 만끽하며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여행객들은 돌아본 뒤, 자리를 뜨기 바빴기에 부여에 거주 중이던 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이곳이 부여에서의 마지막 여행지였기에, 한껏 여유를 부려본다.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말이다.
너무나도 여유로우면서도 평화로웠떤 부여에서의 순간들은 다음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확인할 수 없었떤 그 과거의 모습의 아쉬움이 상당히 강해졌다. 남아있는 흔적들과 기록들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없었던 순간들. 하지만 부여를 떠나기 전, 박물관에 들려 금동대향로를 봤을 때, 그 높은 문화의 수준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기에 아쉬움을 만족감과 기대감으로 돌린다음 서울행 버스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아직 다 돌아보지 못했던 백제의 그 유적지. 그 못다한 여정에 방점을 찍고자 시간을 만들어 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