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
(Marc Zakharovich Chagall, 1887~ 1985년 )은 러시아 제국(현벨라루스)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화가이다.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린다.
러시아 태생의 화가·판화제작자·디자이너.
회화 이론을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내면의 시적
호소력을 이용하여 상징적이고 미학적인 형식요소들과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이미지를 결합한
작품들을 많이 그렸다. <나와 마을>(1911)과 같이
초현실주의 이전에 나온 그의 초기 작품들은 현대미술에서 처음으로 정신의 실체를 나타낸
것들이었다. 다양한 표현 수단을 사용한 그의 작품들 가운데는 연극과 발레 무대장치, 성서를 삽화로 그린 동판화, 스테인드 글라스 등이 있다.
샤갈은 폴란드의 국경에서 멀지 않은 러시아 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샤갈은 유대인의 초등학교에 다닌 뒤 러시아어로 가르치는 지방공립학교에 들어갔다.
1910년 샤갈은 파리의 몽파르나스에서 하숙생활을
하며 1년 6개월을 보낸 뒤, 자유분방한 미술가들이
모여 사는 라뤼슈(벌집)라는 초라한 마을의 끝에 있는 작업실로 이사했다. 그는 그곳에서 표현주의 화가와 입체파 화가그리고 아방가르드 시인 등을 만났다.
그 집단에서는 거의 모든 종류의 대담한 회화를 장려했으며, 샤갈은 그러한 자극에 영향을 받아 러시아에 있을 때 드러내기 시작한 시적이고,
겉보기에는 비합리적인경향들을 빨리 발전시켜나갔다. 그가 처음으로 파리에 머물렀던 이
4년의 기간은 때때로 그의 전성기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손가락이 7개인
자화상> <나와 마을>·<창문을 통해 본 파리> 등이
있다. 이 그림들에서 이미 샤갈은 본질적으로 그뒤
60년 동안 변하지 않은 양식을 개발했다.
샤갈은 1914년 현대 미술 잡지인 <슈트름> 을 발간한
베를린의 화랑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가져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
1920년대와 1930년대초에 그의 그림은 대작이 줄어들었으며 많은 비평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질도 떨어졌지만, 어쨌든 더욱 뚜렷이 시적인 성향을 띠었으나 더욱 인기를 얻었다. 그러한 작품으로는
<에펠탑 앞의 신랑과 신부>,<서커스>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프랑스의 루아르
지방으로 이주했으며, 그뒤 유럽의 모든 유대인들에
대한 나치의 위협이 차츰 심해지자 더 남쪽으로
피해갔고, 마침내 1941년 7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1942년 뉴욕 시의 '발레 시어터'를 위해
발레 〈알레코)의 무대장치와 의상을 만들었다.
1948년 그는 이미 프랑스를 2차례 방문한 데 이어
다시 프랑스로 이주했는데, 처음에는 파리 교외에서
살다가 결국은 코트다쥐르의 방스와 그 옆의
생폴에서 살았다. 1958년 이후에는 많은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들을 설계했다. 1964년에는 뉴욕 풀턴에
있는 교회의 창문을 완성했고 파리 오페라 극장의 새
천장을 완성했으며, 그로부터 2년 뒤 링컨 센터에
있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새 건물을
위하여 2점의 커다란 벽화인 음악의 샘〉·〈음악의
승리〉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