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5.18이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쓰고 초안산 아카시아 숲길을 걸어 문화센터를 갔다. 바닥에 흥건히 고인 아카시아 꽃송이들은 이울어진 채 5월 한철을 말하고 있었다. 불과 한 주 전이었던가? 버들개지들이 숲 사이로 날아다니다 바닥을 하얗게 덮더니 지금은 그 흔적이 아카시아 꽃들에 묻혔다. 배밭의 꿀벌통들도 모두 사라졌다. 비가 온 탓인가? 개이면 다시 낼까? 이제 철이 끝났을까? 끝이라는 말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아쉬움이 있다는 것은 좋았다는 말일 것이다. 아카시아의 한철은 좋았을까? 내 삶은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카시아 숲 오솔길로 꼬마와 엄마가 우산을 쓰고 걸어왔다. 아이가 뭐라 도란도란 하니 엄마가 웃으며 따라간다. 아이 말을 잘 들으려는 듯 허리를 조금 앞으로 굽힌 채, 작은 손수건 같은 얼굴엔 웃음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행복이란 정말 의식되지 않은 채 이렇게 지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내와의 산책을 조금이라도 더 음미하기 위해 약간 속도를 늦추고 걸음을 멈추기도 하면서 5월 비오는 아카시아 숲길을 통과한다.
깃털
며칠전 주말농장 텃밭에 가서 깃털 하나를 주웠다. 까치의 날개 깃털이다. 반은 흰 색이고 나머지 반은 윤기 있는 검은 색이다. 깨끗하다. 나는 작은 인디언 아이처럼 그 깃털이 내게 어떤 주술이 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곧 의미를 부여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흑백이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면서도 하나로 섞여 있는 날개 깃털! 아름답다. 그러고보니 내는 꽤 오랬동안 대립과 통일에 대해 생각해오고 있었다. 깃털은 그것을 하나로 통합한 부드러운 직선이다. 곧지만 휘었다. 깃털의 고갱이가 되는 깃대는 반투명하다. 안이 빈 듯 가볍다. 안이 비었다는 것이 신가하다. 구멍이 뚫렸다면 작은 피리소리 같은 가락이 들릴 것 같다. 이것이 하늘을 날게 했다. 까치는 밭가에서 작작 작작 울다 날아갔다.
까마귀와 까치는 사촌같은데 하나는 흉조고 하나는 길조다. 까마귀가 흉조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일 것이다. 그런데 재미나게도 이들 검은 색은 마치 생존에 대한 자신감으로 느껴진다. 검은 것은 강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 덩치가 크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그런데 까치는 날개에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하얀 부분까지 가졌다. 패왕별희의 가면처럼 어쩌면 하늘 날아다니는 매에게 나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라고 경고하는 것같다. 일종의 가면을 통해 강한 각인을 주려는 속셈이었을까? 그러고보면 까마귀보다 까치가 더 질기고 강한 성격을 가진 듯 하다.
하지만 상념은 여기서 멈추자. 나에겐 흑과 백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면서도 하나에 아름답게 통합되어 있는 모습이 좋고 좋을 뿐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지 않는가?
모래말
지금 집과 불과 백여 미터를 조금 넘을까 하는 곳으로 이사할 곳을 정했다. 결혼한 뒤 세 번째 전세 집니다. 지금 집의 주인을 빼면 처음과 나중의 집주인은 모두 강남에 산다. 투자의 대상으로 강북 집을 사뒀던 것이다. 재미있다. 역사적 고질병으로 부재지주 문제가 있었다. 이미 100년 전에도 1000년 전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다. 농촌과 도시의 종속 관계를 역사적으로 압축한 말이다. 그런데 도시 내 강남과 강북이 이와 같은 관계를 다시 이루고 있지 않은가? 같은 도시지만 벌써 이렇다.
가계약서를 작성하느라 복덕방에 앉아 있자니 집 없는 설움 얘기가 안주가 된다. 인근 의정부는 여기보다 싸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소개인의 왈, '썩어도 준치'란다. 아무리 찌그러져 살아도 서울이 의정부보다 낫다는 말이다. 웃음이 났다. 사람 사는 게 비참하고 재밌다-물론 나는 진짜 비참함을 느끼지 않기에 이런 말을 하고 있지만. 인간희극이다. 왜 이렇게 매달리며 살까?
집이 잘 빠져 나가는데 지장 없기를 바라는 세입자과 계약을 성사시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중계인의 감언을 들으며,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약간은 귀찮고 애처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후회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일찌감치 도시살이를 마음에서 접고 주택부금이나 보험 따위를 거부했다. 이왕이면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 따위의 강제보험도 거부하고 싶다. 그랬더니 지금 서울에서 계속 살고 싶어 하는 아내에게 미안하게 되었다. 이것참이다. 내 이빨이 썩은 준치를 깨물고 있는 셈이다. 썩어도 준치인가? 나는 썩은 것은 버리고 싶다.
이사할 집의 위치는 의정부 쪽에서 흘러온 중랑천과 도봉산 방학능선 자락에서 흘러온 방학천의 합강 어귀와 가깝다. 새삼 놀랍다. 강보에 싸여 내가 서울로 올라온 동네가 바로 모래말인데, 이사할 집으로부터 불과 3백여 미터 거리다. 35년 전 살던 그 근방도 아파트와 빌라촌이 되었지만, 창동역을 지난 국철이 지나는 철둑 동네였다. 내 원체험을 형성한 동네이기에 나는 5살 무렵까지 살았던 모래말을 잊지 못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석진네집-우리가 세를 살았던 집-으로 불리던 시멘트 집이 그대로 있었지만 몇 년 전 그 흔적이 사라졌다. 바로 방학천 건너편에 있는 형 친구만 보고 무작정 달리다 개천으로 추락한 곳이 거기며, 차단기 내리는 철길 건널목을 막 뛰어 건너다 건널목지기에게 붙잡혀 박치기를 당하고 뙤약볕 아래 벌을 서다 달아난 곳이 바로 거기며, 여름인 큰형의 생일날 난생 처음 작은 형과 아버지를 따라 수박을 사 냇둑을 걸어오던 곳이 바로 거기였다. 이사할 집의 위치를 생각하니 그 땐 아마 시금치 밭이었을 것 같다. 어릴 때 시금치 밭에서 아주머니들이 앉아 일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나를 이곳으로 이끈 어떤 구심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것을 필연이라고 할까 나야간 내 심성이라고 할까. 이 근방에 아직 자라는 오동나무들은 바로 내가 살던 석진네 오동나무의 후손일 것이다. 마당 구석 습한 땅에 바글댔던 땅강아지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천변엔 높고 높은 포플러 두어 그루가 겨우 살아남았을 뿐이다.
고향이 충남이라고 하던 나는 이제 저절로 실토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모래말 토박이라고. 비록 이곳에 나를 아는 사람 하나 없지만.
실향민이란 무엇인가? 기억의 사람과 집들이 하나 남아 있지 않다면 말 그대로 실향민이다. 한 번도 이곳을 고향으로 생각한 적 없지만, 문득 내가 실향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나는 여름방학 때 내려가던 논산의 아버지 고향-내가 태어난 곳-이 그래도 옛날의 모습을 더 간직하고 있지만, 역시 고향이라기엔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짧다. 그렇다면 내 고향은, 아무래도 부재한 걸까?
한 세대를 넘겨 살았다는 실감을 새삼 하게 된다. 아스팔트키드의 생애를.
1830
‘일팔삼공’ 이렇게 읽어야 한다. 도봉문화정보센터 남자 화장실을 가면 변기 위에 붙은 스티커다. 가장 큰 헤드라인 문구는 ‘당신의 손이 바로 ’병균 창고‘’라는 고딕체의 경고문구이며, 그 밑에 ‘1830’이 보인다. 하루 여덟 번 30초씩 손을 씻으라는 말이다. 세수하거나 목욕할 때 때를 벗기려는 의도가 아니면 30초 이상 손을 씻은 적이 없는 내겐 참 긴 시간으로 느껴진다. 도봉보건소에서 제작한 스티커다.
하지만 이 스티커가 내겐 참 거슬리고 불편하다. 손에 세균이 득실거린다는 말은 맞다. 손을 잘 씻으면 눈병이나 피부병 등에 분명 덜 걸릴 것이다. 대게 긁어 부스럼이지 않은가? 그런 경험으로 손에 세균이 많다는 것은 현미경으로 보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이런 위협적 문구의 계몽 스티커로 오줌쌀 때마다 눈앞에서 만나니 ‘간첩신고 113’을 다시 만나는 것 같이 거북하다. 불온한 불안과 경각심 조장이 거슬린다.
현대인의 지나친 청결은 극단적으로 사람과 자연을 분리하고 흙을 오물과 동일시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더불어 각종 화학약품으로 의식주를 도배하고 우리의 아이들은 아토피에 시달린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 소위 진보적인 치과의사들의 모임이 나서서 수돗물에 불소를 넣자는 말 따위를 하지 않았던가? 이가 썩는 근본 원인을 치유하려 하지 않고 병균을 잡는 화학약품으로 예방하겠다는 방식은 참으로 엄청나게 인본주의적이라서 도리어 위험하다. 나는 때로 모든 지식이 파시즘적 가능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1830'이 내겐 그렇게 느껴진다.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네 손이 ‘병균창고’라고 매일 주입한다고 생각해보라. 경기들 일이다. 제발 이런 전체주의적 발상을 버리기 바란다.
나는 기억하고 있다. 6.25 때마다 텔레비전에서 북한의 김일성을 붉은 돼지로 묘사하는 ‘똘이장군’이라는 만화를 많이 해, 정말 순진한 우리 또래 아이들은 정말 빨갱이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땐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나라가 무너지는 줄 알고 눈물이 찔끔 나왔다.
‘병균창고’라는 말과 ‘붉은 돼지, 빨갱이’는 다른 말이 아니다. 모두 진실을 왜곡한다.
첫댓글 둥지 이사 무사히 잘 하시길...! 저도 이럴 적 김일성은 머리에 뿔이 달린 줄 알았지요..ㅎㅎ 저는 전생에 샨티 수우족이었는데...^^
오솔길, 깃털, 모래말, 회랑에 걸린 작은 액자처럼 그안에 담긴 사연들도 무궁하군요 저도 이제부터 사물하나를 끝까지 따라가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격물치지!
오솔길 ;; 아내와의 행복한 시간이었겠습니다.
깃털 ;; 같은 까마귀과인데 까치와 까마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무지하게 다르게 사람들에게 다가들도록 하였습니다. 까마귀는 한국에서는 흉조이지만 북한에서는 길조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까마귀가 어미새가 아플때 먹이를 가져다 준다고 '효도새'라고도 불러지고 있다고 합니다.
모래말 ;; 땅도 집도 모두 제 가치를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연은 떠도는 사람들을 말없이 받아주기만 합니다.
1830 ;; 하루 8번 30초.. 그것으로 병균창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발상이 좀.... 그리고 저 득실거리는 세균 없이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