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화 <부부> 50화. 다시 태어나도 함께할지 생각해 보는 것
387화 <부부> 50화. 다시 태어나도 함께할지 생각해 보는 것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살겠습니까?”
텔레비전 진행자가 한 노부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한참 동안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할머니가 먼저 대답했다.
“어떻게 또 다른 사람을 만나 마음 맞추고 삽니까. 그냥 또 살고 말지.”
방송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할아버지를 의식해서인지, 할머니의 답변은 평범했다. 그녀는 궁금했다.
‘저 할머니 말씀이 진심일까 아니면 할아버지 눈치를 보시느라 그런 것일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그녀의 시누이는 그런 얘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쳤다.
“에구, 내가 미쳤다고 저런 인간하고 또 산단 말이야? 한평생 같이 사는 것도 소름이 돋는데, 다음 세상에서는 절대로 같이 못 살지. 한 번 살아봤으니까, 다시 태어난다면 다른 사람하고 살아봐야겠지. 지금은 애들 때문에 꾹 참고 살지만, 다음 세상에서는 나도 하고 싶은 일 맘껏 하면서 더 좋은 사람 만나서 원 없이 살아봐야지.”
얼마 전, 부부 다섯 쌍이 야유회를 갔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자, 누군가 그녀에게 물었다.
“효진이 엄마 아빠는 언제 봐도 잉꼬부부 같은데, 이 다음 다시 태어난다면 어쩔 거예요? 물어보나 마나겠죠?”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자 다소 과장되게 내뱉고 말았다.
“아니, 무슨 그런 악담을 하시나요. 멀리 옷자락만 보여도 달려가서 이승에서 못 갚은 원수를 꼭 갚고 말 텐데…….”
그녀가 대답을 하고 뒤를 돌아보니, 아뿔싸 이미 늦었다. 남편이 고기 접시를 들고 뒤에 서 있었다. 모두 들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날 저녁, 그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이것 봐. 너는 그동안 나랑 사는 게 원수랑 사는 것처럼 그렇게 고역이었어? 나는 너 하나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너는 그게 아니었단 말이지?”
그는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베개를 들고 아이 방으로 건너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장난으로 던진 말 한 마디에 토라진 남편을 달래느라 무려 일주일을 빌어야 했다. 온갖 유머를 동원해 웃기려 했고, 평소 안 떨던 아양까지 떨었다.
텔레비전을 같이 보던 남편이 물었다.
“이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어쩔 거지?”
“그야. 일편단심 당신 만나서 충성해야지. 됐지?”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누군가 다시 묻는다면 이제는 이렇게 대답하기로 했다.
‘원수라고 하면 내세에서 부모 자식 간으로 인연 맺어질까봐 무섭잖아요. 그래서 복수하는 방법을 좀 달리 해보기로 했어요.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전국 방방곡곡 헤집고 다니면서 찾아낼 거예요. 신문 방송 광고까지 내가면서 악착같이 이 사람을 찾아내어서 또다시 결혼하고 아들 딸 구별하지 않고 생기는 대로 줄줄 힘닿는 데까지 낳을 거예요. 그리고 나선 바가지 바득바득 더 많이 긁으면서 지지고 볶고 살 거예요.
이것이 그녀의 진심이었다. 어쨌든 내세에 다시 만나 함께 산다면, 그 만남 자체가 복수가 아닐까 하고, 그녀는 생각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결혼은 치열한 삶의 현장입니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지는 경우는 없다고 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매일 지지고 볶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부부생활입니다. 그러다 문득 희미하게 미소 지으면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참 소중한 것 같다고 말입니다. 물론 그 느낌은 금방 없어지죠. 행복은 그런 거라고들 합니다. 작은 일에 행복해하는 그 사람이 사랑스럽지 않은가요. |
<법정> 20화. 90도의 호소
조무래기들이 두어 줄 앞자리에 쪼그리고 있고 그 뒤로 들쑥날쑥 둘러선 군중을 향해 허리를 꺾다시피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있는 장면. 합동연설장에서 찍은 국회의원 입후보자의 그러한 모습을 신문에서 보고 웃을 수도 울어줄 수도 없는 미묘한 기분이었다.
그와 같은 정중한 인사를 우리는 그 어떤 자리에서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정부의 높고 낮은 관료를 비롯하여 민중의 공복(公僕)이라는 국가 공가 공무원, 어쩌다 주민등록증 같은 걸 찾으러 들르게 되는 동회의 직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분들한테서 그러한 예의를 본 일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허리를 그토록 꺾은 입후보자의 정중한 인사가 우리를 감동시키기 보다 도리어 웃기는 것이다. 그것은 평소의 거동과는 너무나도 판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광경을 한참 보고 있으면 웃을 수만도 없다.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세상이 변하고 국회의 기능이라는 것도 형편없이 줄어들었음에도 한결같이 국가를 위해,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분골쇄신하려는 그 일편단심을 보고서 인 것이다.
애국의 길도 여러 가지가 있다. 밭을 갈아 씨뿌리는 길도 있고, 신사숙녀들이 기분좋게 일하도록 구두를 닦아주는 길도 있으며, 모두가 싫어하는 오줌 똥을 묵묵히 쳐주는 일도 있다. 그런 일 가운데 하나가 다스리는 권한을 국민들로부터 한동안 맡아봄으로써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일단 권한을 맡아놓으면 그 90도의 호소가 뒤로만 뒤로만 젖혀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소임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이 글이 활자화될 무렵이면 그 90도 호소의 반응이 판명된 후가 될 것이다.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한 사람으로서 이 기회에 바라고 싶은 것은 그 90도의 예절을 선거 유세장에서만이 아니라 국사(國事)를 다루는 때에도 계속 유지해 달라는 말이다.
크고 작은 국가 공무원들에게 그러한 자세를 솔선수범하여 이 나라가 다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 되도록 해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