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선 아래 내용은 존 머레이가 히브리서 4장 9~10절을 바탕으로 안식일 제도의 구속사적 의미와 영속성을 논증한 글입니다. 가나안의 안식과 성도에게 남은 안식이 창조 때 하나님의 안식을 본받은 것임을 설명하며, 안식일이 창조적 성격과 구속적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밝힙니다. 결론적으로 안식일(주의 날)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고 미래의 영원한 안식을 예표하는 영속적인 제도이므로 성수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한번 읽어 보시고 성경 묵상에도 활용하시면 좋겠습니다.
| 히4:9.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 4:9).
이 구절의 문맥은 해석과 그 함축하고 있는 의미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극히 중요하다. 4절은 창세기 2:2을 인용하고 있다.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안식을 언급한다. 5절은 가나안의 안식을 암시하고 있으며,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참고, 시 95:10)과 관련하여 시편 95:11(3절과 3:11도 참고)을 인용하고 있다. 시편 95:11과 마찬가지로 5절의 주목할 만한 특징은 이 가나안의 안식이 하나님의 안식("내 안식")이라 불린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특징 짓고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안식이었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4절의 하나님 자신의 안식에 대한 언급이 이것과 근접해 있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의해 주어졌기 때문이라는 사고 이상을 요구한다.
우리는 가나안의 안식이 하나님의 안식의 본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의 안식이라고 부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 그것은 하나님의 안식의 성격을 다소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동일화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는 안식과 관련하여 10절에 나타난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래서 가나안의 안식과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는 안식은, 그것들이 제 칠일에 그의 창조 사역으로부터 안식한다는 하나님 자신의 안식의 성격을 다소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안식이라 불린다. 여기에 현재의 주제와 매우 관련되는 어떤 것이 있다.
가나안의 안식과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는 안식이 성격상 구속적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그것들이 창조에서의 하나님의 안식의 본을 따르기 때문에, 이것은 그 구속적 성격이, 사람을 위한 안식일 제도가 원래 그 근거로 삼고 재가받은 하나님의 저 안식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는 안식일 규례에 있어서 창조적 성격과 구속적 성격간의 밀접한 관련성 및 출애굽기 20:11과 신명기 5:15의 상호 결합성을 발견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는 것이 사람의 의무를 지배하고 구속의 규정들 안에서 실현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구속의 완성에서 하나님 백성의 안식일의 안식은 완전한 분량으로의 합치를 획득한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참고, 계 14:13).
안식일 제도는 모든 측면과 적용에 이러한 전망적인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구속의 전 움직임은 남아 있는 안식일의 안식에서 완결될 것이다. 안식일은 완성된 안식의 약속이며, 표지이며, 미리 맛봄이다. 그것은 또한 담보다. 안식일의 성경적 철학은 그러한 것이므로, 그 영속성을 부인하는 것은 구속의 움직임으로부터 그 가장 귀한 요소 중 하나를 빼앗는 것이 된다.
구속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가지고 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주의 날'로서의 안식일에 집중되어 있다. 과거와 관련해서 그것은 우리 주님의 부활의 기념이다. 현재적으로는 그것은 부활의 기쁨과 함께 인자의 주권에 의해 그 자비로운 계획을 성취한다. 미래적으로는 그것은 성도들의 유업의 약속이다. 이해와 적용의 정도에 있어서 다양성이 존재하지만, 가톨릭과 개신교와 개혁주의 전통에서 주의 날의 준수를 명령한 것은 바로 이 관점이다. 우리는 구속 계시에 깊이 새겨지고 그리스도의 교회의 역사에서 그렇게 인식된 제도를 상실할 것인가? 신앙 안에서, 그리고 안식일의 주님을 존귀케 하기 위하여, 우리는 단호히 아니라 고 대답할 수 있다. 그분에 대한 헌신 속에서 우리는 반복되는 안식과 예배의 날 의 기쁨과 복을 더욱더 알 수 있다.
(주일 성수 협회(Lord's Day Observance Society)의 집회에서의 연설)
존 머레이, 『존 머레이 조직신학 I』(크리스챤다이제스트), pp.224-226.
첫댓글 초신자를 위해 요약해 올립니다:
히브리서 4장 9~10절의 문맥을 분석하며 안식일 제도가 지닌 창조적·구속적 의미와 영속성을 깊이 있게 다룹니다.
히브리서 4장의 문맥은 안식일의 올바른 해석과 함축된 의미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언급된 가나안의 안식은 제칠일의 창조 사역 후 안식하신 하나님 자신의 안식을 본뜬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는 안식 역시 하나님 자신의 안식과 본질적인 성격을 공유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안식이라 불립니다.
가나안의 안식과 성도에게 남아 있는 안식은 모두 그 성격상 구속적인 의미를 명확하게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위한 안식일 제도가 원래 창조 때의 안식을 근거로 삼았고 그 성격을 고스란히 띠고 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안식일 규례 안에는 세상을 만드신 창조적 성격과 영혼을 구원하시는 구속적 성격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구속의 전 과정은 장차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원히 남아 있는 안식일의 안식 안에서 최종적으로 완결될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적 철학에 비추어 볼 때 안식일의 영속성을 부인하는 것은 구속사의 가장 귀한 요소를 빼앗는 것과 같습니다.
주의 날로서의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과거와, 그 주권 아래 계획을 성취하는 현재와, 유업을 약속하는 미래를 모두 가집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깊이 인식되어 온 이 제도를 신앙 안에서 단호히 지켜갈 때 우리는 반복되는 안식과 예배의 참된 복을 누리게 됩니다.
네, 요약이 제공돼야 글 읽기가 쉬워집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섭리를 깊이 깨달아, 맡기신 양 떼를 바른 진리와 사랑으로 온전히 먹이게 하소서.
예배의 날마다 부활의 기쁨과 영원한 안식의 소망을 선포하며, 성도들과 함께 주님의 주권을 온전히 찬양하게 하소서.
목회 여정 가운데 제 자신의 사역과 노력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과 안식 속에 머물며 주님만 닮아가게 하소서.
아멘!
칼빈은 안식일을 구약의 의식법으로 보아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그 그림자로서의 기능은 폐지되었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는 안식일의 본질이 날의 신성함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가 자신의 정욕과 사역을 쉬고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시도록 양보하는 영적 안식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특정한 하루에만 메이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자신의 일을 쉬고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동시에 칼빈은 교회의 질서와 성도의 연약을 위한 실제적인 제도로서의 안식일, 즉 주일 제도의 필요성을 분명히 인정했습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을 행하며 기도를 드리는 공동체적 예배의 날이 반드시 지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또한 육체적인 노동을 멈추고 쉬는 것은 인간의 연약함을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자,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창조의 질서라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칼빈에게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 법을 문자 그대로 고수하는 날이 아니라, 교회의 공적 예배와 성도의 영적 유익을 위해 세워진 자유롭고 질서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는 날짜 자체가 주는 미신적 신성시를 경계하면서도, 교회가 정한 주일 예배의 약속과 질서를 무너뜨리는 방종에 대해서는 엄격히 경고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칼빈의 안식일 견해는 의식적 법으로서는 폐지되었으나, 영적 안식의 의미와 교회의 질서 및 예배를 위한 실천적 제도로서는 여전히 보존되고 발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네, 제일 좋은 의견으로 보입니다.
루터는 구약의 안식일 법을 모세에게 주어졌던 이스라엘의 임시적인 의식법으로 보아, 신약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문자적인 구속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특정한 날을 다른 날보다 본질적으로 더 거룩하게 여기는 미신적 태도를 경계하며, 모든 날이 하나님 안에서 평등하다고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실제적인 측면에서 교회의 공적 예배와 질서를 위해 일주일에 하루를 구별하여 모이는 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선포하며 성례를 행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시간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또한 육체적으로 고된 노동을 하는 이들의 건강과 쉼을 위해 사회적·자연적 관점에서의 휴식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창조 질서적 유익을 인정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주일을 구약의 율법적 의무로서가 아니라, 복음의 자유 안에서 말씀과 예배에 집중하고 이웃을 돌보는 사랑의 기회로 여겼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츠빙글리는 루터와 유사하게 구약의 안식일 법을 모세의 의식법이자 그림자로 보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폐지되었다고 이해했습니다. 특정한 날 자체가 신성하다는 율법주의적 태도를 철저히 경계했으며,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자유 안에서 매일이 하나님께 속한 날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츠빙글리는 교회의 공적 예배와 사회적 질서를 위한 주일 준수의 필요성을 강력히 옹호했습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공동체 성찬을 행하기 위해서는 구별된 날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안식일의 휴식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이들과 가축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창조 질서적 배려라는 점을 강조하며, 주일에는 세속의 직업적 노동을 멈추고 온전히 예배와 이웃 사랑에 집중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루이 벌코프(Louis Berkhof)는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적 입장에 서서 안식일의 도덕법적 성격과 지속성을 강하게 옹호했습니다.
그는 안식일 제도가 모세의 율법 이전에 이미 창조 때(Creation Ordinance) 제정된 인류 보편의 도덕법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의식법적 요소(엄격한 처벌이나 성전 제사와 관련된 규정들)는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되었지만, 안식일의 핵심적인 도덕적 의무는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벌코프는 구약의 제칠일 안식일이 신약의 제일일(주일)로 전환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 강림이라는 구속사적 사건에 근거한 정당한 변화라고 설명했습니다.
히브리서( 히 ) 4장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3. 그러나 그 말씀을 믿은 우리는 안식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진노하여 맹세한 것과 같이, 그들은 결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사실상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일을 끝마치셨으므로, 그때부터 안식이 있어온 것입니다.
3. For we which have believed do enter into rest, as he said, As I have sworn in my wrath, if they shall enter into my rest: although the works were finished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히브리서( 히 ) 4장
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4. 일곱째 날에 관해서는 어딘가에서 "하나님께서 일곱째 되는 날에는 그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 하였고,
4. For he spake in a certain place of the seventh day on this wise, And God did rest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s.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5. 또 이 곳에서는 다시 "그들은 결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5. And in this place again, If they shall enter into my rest.
히브리서( 히 ) 4장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11.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씁시다. 아무도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1. Let us labour therefore to enter into that rest, lest any man fall after the same example of unbelief.
존 머레이의 안식일 제도의 창조적 구속사적 성격을 잘 읽었습니다. 좋은 내용이네요.
하나님이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것은 창조의 완전함을 보여 준다는 메시지도 담겨 있네요. 완전하지 않았다면 안식도 있을 수 없었을 텐데요. 우리도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받고 마침내 저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쉼을 얻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안식일 규례는 인간에게 영혼과 육체의 쉼을 누리게 함으로써 영원한 안식에 대한 맛보기도 되고, 사모함을 주려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느낍니다.
좋은 포인트를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영적인 의미의 완전한 안식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깊고 유익한 글울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목회와 신학 연구의 깊은 여정 속에서 주일과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붙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칼빈, 루터, 츠빙글리, 벌코프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선진들이 남긴 유산을 깊이 돌아보며 예배의 본질을 세워가시는 목마름에 깊이 공감합니다.
이 배움과 묵상이 성도들을 향한 풍성한 꼴이 되어, 맡으신 교회가 참된 복음의 자유와 안식의 기쁨을 누리기를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