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생활은 소리로 시작한다. 문을 여닫는 소리, 누구를 부르는 소리, TV 세탁기, 거리의 자동차…. 이런 여러 가지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화성으로 악보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는 일생동안 얼마나 많은 악보를 만들어 갈까. 태어날 때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죽을 때까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만들어 낸다. 그중 가장 소중하게 남기고 싶은 악보는 무엇일까.
비발디 사계를 들어보면 봄의 소리는 유난히 경쾌하다.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동물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갖가지 식물들이 새싹을 움터내는 소리, 논밭 갈이에 바쁜 소의 긴 울음소리. 이런 소박한 농민들의 생활을 그린 곡으로 잘 들어보면 마치 시냇물이 거세게 흐르다가 멈추어 웅덩이를 만들고 또다시 흘러 강을 이루는 자연 풍경을 떠 올리게 된다.
소리는 무형 체여서 빛깔이나 무게 모양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음의 흐름을 읽고 마음에 담을 수, 있다 소리를 담아 풍경을 떠 올리고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맹인들이 듣는 소리의 작품은 어떤 색깔이나 모양의 그림이 그려질까.
나는 ‘페르퀸트 조곡’이나‘모짜르트 곡’을 좋아한다. 모짜르트 음악은 명쾌하고 균형 있는 선율에다, 아름다움을 더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감미로운 우아함을 자아낸다. 마음을 정돈되게 한다. 푸른 잔디가 어우러진 호수 길을 따라가는 서정에 빠져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울리는 악기가 있고 악기로 연주되는 곡이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를 생각하면 그에게 맞는 교향곡, 조곡, 가곡 또는 그 시대에 즐겨 부르던 유행곡이 스쳐간다.
수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추운 겨울날 실연한 청년이 홀로 방황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독신으로 살고 젊은 나이(31세)에 일생을 마친 그의 생을 비춰봄이라 하겠다.
남편에게 악기를 붙여보라면 징이라 붙이겠다. 징은 전형적인 우리나라 악기로서 뭉치의 채로 크게 내리치는 것이, 특징이듯, 남편은 어떤 일이 생기면 소리부터 크게 지르고 화를 버럭 낸다. 한 마디로 성질이 급하다. 급한 성질만큼 가라앉히는 시간도 짧다. 금세 누그러진 표정으로 나타난다. 비록 말로서 사과는 안 하지만 누그러진 표정에서 느낀다. 징은 울림의 시작이 크고 여운이 길다. 둥근 모양에 채로 치는 소리의 여운이 남편의 생김새와 성격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징을 한 옥타브 낮추면 정이 될 것이다. 거친 숨을 몇 번 고르기로 연습하다 보면 금세 따뜻한 정으로 흐르지 않을까. 그 시간을 기대해 본다.
누가 내게맞는 악기를 고르라면 피리를 고르겠다. 피리는 인생의 깊은 정서가 서려 있다. 유년의 추억일까. 향수일까. 친구와 나란히 둑길에 앉아 불던 보리피리, 학교길을 오가며 즐겨 불던 버들피리, 달밤 평상에 누워 귀뚜라미와 화음을 이루던 피리 소리가 늘 귓가에 맴돈다.
딸아이는 하프의 소리로 키우고 싶다. 하프는 백조를 닮은 악기라고도 한다. 음색은 구슬을 굴리듯 연하고 부드럽다. 특이한 색채감을 불어넣은 느낌으로 여성스런 맛이 흐른다. 하지만 커 길수록 기타 줄 튕겨내는 소리로 옥타브가 올라간다.
아들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다. 피아노는 음량이 풍부하고 여운 또한, 깊다. 셈여림을 쉽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제 성격과 흡사하다.
저마다 악기를 다룬다고 해서 목소리까지 악기 소리에 맞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분이 내게 전화를 걸어 엄마 바꿔 달라고 한다. 어떤 때는 바로 “엄마 좀 바꿔 줘.”한다. 이런 말을 50대까지 들었다. 내가 타고난 음색이나 음량의 조율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뜯어고칠 수도 없기에 난감할 때가 더러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있어 그런 일은 없지만, 그래도 가끔 전화를 받을 때 엄마 핸드폰 맞냐고 묻는다.
신이 창조한 많은 것 중에 소리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 사람의 목소리는 물론 갖가지 식물이 크고 자라는 소리, 수많은 동물의 몸짓 울음소리, 사계절마다 불어오는 바람과 비 천둥 번개…. 지구상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다채로운 소리가 어떻게 창조되었을까. 무게도 형체도 빛깔도 없는 큰 위력에 견줄만한 것이 과연 또 있을까.
우리 삶은 소리로 만들어진 화음이고 악보다. 소리와 함께하는 사람은 크나큰 가치를 부여받고 살아가는 참으로 귀한 존재다
징과 피리 하프와 피아노, 우리 가족의 4중주 음악으로 ‘비발디의사계 봄’을 경쾌하게 연주하며 가장 소중한 악보로 남기고 싶다.
첫댓글 황 작가님의 목소리가 어려보여서 그런 일이 일어나니 황당해 하지말고 기분좋게 받아들이세요. 다른이들이 부러워할 사항입니다.
새 해가 벌써 한 달이 다 가려 하네요, 다음 주면 설 연휴에 들어가네요. 설 명절 행복하게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