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작사 조운파, 작곡 임종수)는 1976년
발매된 「하수영」의 대박 히트곡입니다.
부드러운 저음의 매혹적인 목소리와 점잖고 온화한 무대 매너에
얼굴도 잘 생긴 「하수영」이 "이 땅의 아내들에게 하는 달콤한
고백(告白)"은 장안의 화제(話題)를 몰고 오기에 충분했었습니다.
이 곡은 남편들의 애창곡으로 부인들에게는 애청곡으로 큰 인기를
얻어 무명가수 「하수영」이 이 음반 발표와 함께 10대 가수 반열에
오르게 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하수영」(1948~1982)은 부산에서 태어나 고교 시절 교회와 청소년
적십자 단 활동을 하면서 성악곡으로 실력을 연마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길옥윤 작곡
"사랑은 홍역"을 녹음했지만 반응이 없었고 무명 가수 생활로 접어
들었습니다. 작사 작곡이 가능했던 「하수영」은 1974년에는 자작곡
"찬 비"를 발표면서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1978년
윤정하가 다시 불러 '찬 비'가 크게 히트합니다.) 그리고 1976년 4월
서라벌 레코드에서 발매한 " 「하수영」 - 새 노래 모음"의 타이틀 곡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큰 인기를 끌면서 오랜 무명 생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노래의 성공을 등에 업고 '최인현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한진희', '정소녀'를 주연으로 하여 '도금봉', '주선태' 등을 출연
시켜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멜로
드라마로 배경 음악으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흘렀습니다.
1977년 11월 코리아 극장에서 개봉하지만 1만 명이 채 되지 않는
관객이 들며 흥행(興行)에는 실패합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하수영」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한창 인기를 얻고 있을 때 고속도로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어
목숨만 부지한 채 9개월 간 병상(病床)에 있어야 했습니다.
이후 회복하여 년말 10대 가수제에 참여하고 자작곡 등을 담아
1979년까지 앨범을 내고 활동하였으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의
강렬함 때문인지 '후속타'를 터트리지 못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가구점을 운영하며 밤 무대에서 노래합니다.
1981년 겨울 가구점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1982년 1월, 34세의
나이로 한줌 재로 돌아갑니다. 긴 무명 생활로 가난과 싸워야 했던
「하수영」은 말버릇 처럼 "자신이 죽으면 생화(生花)로 덮어 화장
(火葬)을 해 달라"고 친구들에게 말했다는 데 총각인 채로 생(生)을
마감한, 아내를 얻어보지도 못하고 부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더욱 안타깝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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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 본 순간
거칠어진 손 마디가
너무 나도 안타까웠소
시린 손 끝에 뜨거운 정성
고이 접어 다져온 이 행복
여 민 옷깃에 스미는 바람
땀방울로 씻어온 나날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 만을
사랑 하리라.
미운 투정 고운 투정
말 없이 웃어 넘기고
거울처럼 마주 보며
살아온 꿈 같은 세월
가는 세월에 고운 얼굴은
잔주름이 하나 둘 늘어도
내가 아니면 누가 살피랴
나 하나만 믿어온 당신을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 만을 사랑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