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균 시인의 시는 시적 배경이 주로 봄, 여름이 아닌 가을, 겨울이다. 쓸쓸함과 고독이 자주 드러나며, ‘기울어가는 석양’, ‘꺼지는 등불’ 등과 같은 하향적 표현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유성호 교수는 그가 ‘따뜻한 모더니스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김광균 시인을 “사람을 사랑하고 사라져 가는 존재들에 대해 애태워한 시인”이라 표현하며, “우리 주변에서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저물어 가는 석양처럼 기울어가는 존재들에 대한 시선을 놓치지 않은 것”이라 설명했다.
감각과 감각을 자유롭게 넘나들다
1930년대 모더니즘의 주된 경향은 이미지즘과 결합해 선명한 이미지를 제시하는 데 있다. 이를 가장 뚜렷이 표현한 시인이 바로 김광균이다. 김광균 시인의 시는 반짝이는 강물과 푸르른 산을 그려내는 수채화보다는, 기울어지는 석양 아래 애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유화에 비유할 수 있다. 김광균 시인의 시가 선명하면서도 애잔한 이미지를 담을 수 있는 것은 그가 회화적 상상력에 뛰어났기 때문이다. 김광균 시인은 인상파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회화적 풍토를 시적으로 조형하는 데 부단히 노력했다.
김광균 시인의 이미지즘은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을 결합시켜서 복합적으로 표현하는 ‘공감각적 표현’의 사용에서 두드러진다. 그의 시 ‘설야’에서 눈 내리는 풍경조차도 청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구절인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가 대표적이다. 반대로 ‘외인촌’의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는 종소리라는 청각적 심상을 시각화해서 표현했다. 이처럼 김광균 시인은 감각과 감각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하나의 선명하면서도 은은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특히 시각적 이미지의 경우 색채의 명도와 채도까지도 섬세하게 표현해 회화적 효과를 가중시켰다.
유성호 교수는 김광균 시인의 이미지즘, 그리고 사물을 보는 시선이 우리에게 ‘문학사적 원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광균 시인은 어떤 사물에 대해 그것의 외관뿐만 아니라 소리와 향기 등 까지 모두 한 데 어울려 표현하려 했다”라며 “우리가 사물이나 풍경을 볼 때 그것을 공감각적으로 조형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심장에서 작동한다면, 김광균 시인의 시를 떠올려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설야(雪夜) -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追億)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
* 한국문학선집[시]-문학과지성사
* 와사등(瓦斯燈)
차단ㅡ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ㅡ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승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 벙어리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니고 왔기에
길ㅡ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ㅡ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
* 한국문학선집[시]-문학과지성사
첫댓글 雪夜... 오늘은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는 데...
설야의 정취를 느낄 수나 있을려는지...
어느 먼 곳 여인의 옷벗는 소리를 들을 수나 있을려는지요... ㅎ... ^^*...
고등학교를 다닐 때, 국어 선생님께서 곧 잘 엎으신 시가.'어느 먼 곳의 여인이 옷벗는 소리였는데,
김광균 시인님의 시 였네요.
엎어신 ---> 읊으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