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조개는 폐각 안에 있는 모양이 새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제 서울에 있는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제 오느냐고
저녁 늦게 간다고 했더니 너무 늦단다.
이유를 물으니 새조개 작업을 하는 것에서 20키로 한 자루를 얻어 왔는데 저녁에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싱싱할 때 먹어야 하는 것인데
아쉽지만 일정은 일정이니
서울에 딱히 가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불교아동문학인회 정기 총회가 있는데 새로 가입한
오선생이 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신입회원이 혼자 총회에 참석히기는 어려운 일이다.
마음 먹고 있던 일은 있다,
내가 정말 힘들 때 의지하고 도움이 되었던 선생님을 돌아가시기 전 한번은 보고와야 하지 않을까?
하여 나섰다.
아침 7시 41분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집에서 6시 40분에 나서야 했다.
남편에게 농성역까지만 태워다 달라고 하였다.
아침 시간에는 전철을 타고 가는 것이 쉽고 빠르게 가는 방법이다.
서울에 도착하여 한번도 안 가본 길을 또 간다.
가다가 돌아서서 보고 또 보고 겨우 회의 장소에 도착을 하였다.
좁았지만 좁은대로 또 그렇게 회의가 진행이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신현득, 김종상 선생님, 이연수 선생님, 차 한잔 하고 가지 않을 것이냐는 물음에 그냥 나서야 했다.
늦어지는바람에 점심을 늦게 먹고 이야기 할 틈도 없이 혜화역으로 향했다.
회화역에서 1호선으로 바꾸어 타고 개봉역을 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인천행을 탄 줄 알고 있었는데 천안행 1호선을 탔던 것이다.
다행이 가산디지털역에서 그 사실을 알았다. 부랴 내려서 나오니 택시가 있었다.
많이 멀지 않을 것 같았다.
구로역 뭐라고 했지만 다 지나버린 일, 택시를 타고 개봉중학교로 가자고 하였다. 다행이 택시 기사님이 친절하여
미소들병원까지 들어 갔다.
그래도 처음 왔던 때처럼 헤매지는 않고 찾아 들어 갔다.
다행스럽게도고 선생님은 앉아서 간식을 드시고 계셨다.
표정도 참 좋아 보였다.
가져간 식혜를 따라서 드리고 식혜밥을 몇 번 떠 넣어 들렸다.
전에부터 밥을 못 겠으면 식혜밥은 드시는 분이다.
다섯번 드시고는 노!
한번 만? 제가 한번만 더 드릴게요.
그랬다.
엄마가 밥을 드실 때면 안 먹는다고 하다가도
"아따 한번 만 더 드시게"
하면 밥을 받아 드시곤 했다.
30여분을 그렇게 병원에서 손을 잡고 이야기 하다가 나왔다.
오선생과 이야기를 하며 다녀서인지 지난번처럼 가슴이 아프지는 않았다.
혼자 왔을 때 정말 가슴이 무너짐? 미어짐? 찍어짐? 뭐 그럴 때는 어떻게 표현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랬는데 두번 째여서 인지 아님 동행이 있어서인지 그 때보다는 나았다.
용산역에서 시간이 어중간 하여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오선생이 옛날 집에서 공부하던 때를 말하며 꼭 저녁을 사 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 또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으며 두통약도 하나 챙겨 먹었다.
만약 그 약을 그 때 먹지 않았다면 기차에서 더 심하게 아팠을 것이다.
신기하게 송정역에 내리니 머리가 좀 가라앉았다.
전철타고 버스 타고 집에 도착을 하니 9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잘 자고 일어나니 많이 나았다.
오전에 부지런히 야채 정리하고 새조개 먹을 수 있게 하려고 준비를 하였다.
11시 쯤 막둥이가 와서 네 사람이 손질을 하여 점심으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한 편을 썼다.
꿈
밑바닥에서 산다고
꿈마저 버릴 수는 없어요.
하늘을 날 수 있을 때까지
바다 밑 바닥에 산다고 꿈마저 없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