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절과 8절 말씀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우리가 사랑에 대한 정의가 오늘 본문에 되게 많이 포함되어져 있어요. 짧게 짧게 한 4개 정도로 나누고 잠깐 기도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는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본질에 우리가 가까워질 수 없다는 거예요. 사랑하지 않는 성도가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도 없고 하나님이 가까이 갈 수도 없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갈 일은 만무하다는 거예요.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고 한다면 우리는 사랑해야 하는 겁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진리에 도달할 수도 없고 진리도 알 수도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예배도 봉사도, 사랑이 없으면 기도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게 돼요. 사랑이 있냐 없냐는 우리와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지 않느냐 연관되어 있지 않느냐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에게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것이고 사랑은 하나님 안에 있게 하는 것이고 사랑은 하나님과 연결되게 하는 것이고 사랑은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 근처에 우리가 갈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하라는 명령을 우리가 지켜야 되는 거죠.
사랑이 어렵잖아요. 여러분 쉬우면 성경에서 이렇게 수백 번 사랑하라고 말할까요? 사랑을 언급할까요? 사랑이 쉽고 다 할 수 있고 누구나 알 수 있는 거라면 성경이 왜 이렇게 빈번하게 자주 사랑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거죠. 자랑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잖아요. 그 사랑에는 대가가 따르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닌 거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했을 때 하나님이 아들을 제물로 주셔야 했고,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도 그 대가를 치러야 되기 때문에 사랑이 쉽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대가를 치르는 사랑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 가까이 하나님 본질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두 번째로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이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했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교회 안에 있어야 될 사랑은 인간에게서 나온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사랑이에요.
여러분 우리의 사랑이 완전할까요? 부부의 사랑이 완전하던가요? 부모의 자녀 간의 사랑이 완전하던가요?
완전하지는 않죠 좀 다른 사랑보다 좀 더 진하고 좀 더 희생적이고 헌신적이어서 부모의 사랑이 완전한 것처럼 비교해서 보이는 것이지, 부모의 사랑은 완전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노력해서 나오는 사랑은 교회도 성도도 개인도 온전하게 올 수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있는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이에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이 인류도 구원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이 죄인인 우리를 의인 되게 했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교회 안에 있어야 되는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인 거죠.
인간에게서 나오는 사랑은 인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사랑을 통해서만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고, 영원한 사망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첫 번째 사랑 첫 번째가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없다였고, 두 번째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이라 했고, 세 번째로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겁니다.
앞에서 우리가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 안에 있어야 될 사랑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랑이니까 우리도 또한 누군가를 먼저 사랑해야 돼요. 교회 안에서 있는 사랑은 먼저 하는 사랑인 거예요.
우리는 사랑을 기다리잖아요.
나는 가난하니까 나는 사랑을 더 많이 받아야 돼. 나는 문제가 많으니까 나는 더 많이 사랑을 받아야 돼.
이거는 교회 안에 있어야 될 사랑은 아니에요. 교회 안에 있어야 되는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먼저 하는 사랑인 거죠. 가난하지만 먼저 하는 사랑 문제가 많지만 먼저 하는 사람 사랑 삶의 고난이 많지만 먼저 하는 사랑이 교회 안에 있어야 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랑해 주셨어요. 그래서 특별히 아들을 주셨기 때문에 최고의 사랑인 겁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이 사랑은 비교 불가의 사랑이에요.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비교 불가이기도 하지만 아들을 주셨기 때문에 비교 불가한 거예요.
이 아들은 누구예요? 아들은 곧 창조주시잖아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창조주인 그리스도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사람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고 사랑은 먼저 사랑하는 것이 참 사랑인 거예요.
교회 안에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다리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건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아니에요. 먼저 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가난해도 우리는 사랑을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안에 있으면 먼저 사랑할 수 있고요. 내 인생에 문제가 많아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안에 있으면 우리가 먼저 사랑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 안에 여러분과 저 안에 있어야 될 사랑은 먼저 하는 사랑입니다.
네 번째로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걸 알기가 어렵잖아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저도 말씀을 전하고 기도를 하고 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온전히 느끼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아요.
그냥 그러니까 어떨 때는 추측, 어떨 때는 어느 정도의 신뢰, 어떨 때는 어느 정도의 믿음,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그분이 임재하셨다는 걸 내가 고백하고 선포하며 살아가지만 하나님이 100% 지금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할 때가 꽤 있어요.
근데 그걸 어떻게 증명할까요? 성경은 분명하게 증명하는 방식을 우리에게 알려줬어요. 12절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지금 이 자리에 임재에 계신 거예요. 청년 공동체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임재에 계신 거고 가정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그 가족 가운데 임재에 계신 거고,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그 자리에 지금 임재에 계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랑은 하나님 임재의 증거인 거예요. 하나님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다고 고백하면서 다투고 싸우는 건 하나님이 그 가운데 임재하고 계시지 않다는 증거이겠죠. 그래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수없이 선포해요.
그런데 성도들이 싸워요. 교회에 다툼이 있어요. 이 말은 그 교회에 지금 하나님이 임재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인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임재를 확인할 길이 우리가 많지 않아요. 그리고 우리의 영적인 감각에 따라서 못 느낄 때도 많아요.
근데 정말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고 확실하게 말씀해 주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랑하는 공동체의 하나님이 지금 임지하고 계신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 사랑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하고 이 가운데 하나님이 계십니다. 말을 해도 부끄러운 일은 아니에요. 왜 하나님이 그 가운데 진짜로 계시기 때문에 더 나아가서 조금 더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사랑하는 일이라는 거예요. 하나님 우리 교회에 계십니다는 걸 세상에 알리는 방법이 사랑인 거죠.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지금 우리 교회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계신 교회예요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 자랑해도 된다는 거예요. 그게 사랑인 겁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으로만 증거가 돼요.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이에요. 근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증거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수백 가지의 복음을 전하는 말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한 영혼을 품으면 그게 훨씬 더 효과적인 일이에요. 구원에 있어서 더 효과적인 일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말을 하고 설명을 해서 자꾸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잖아요. 그게 아니라 하나님 우리 가운데 계시고 하나님이 존재하고 계시다는 증명하는 길은 사랑인 거예요. 그래서 사랑으로만 하나님의 존재도 증명할 수 있고 사랑으로만 하나님의 사랑도 우리가 증거할 수 있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증명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은 많이 거론된 주제입니다. 이 말은 사랑이 되게 어렵다는 의미인 거예요. 특별히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도전을 주는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먼저 하는 사랑인 거예요. 아프지만 받기를 원하지 않고 먼저 하는 사람 문제가 많지만 문제없는 사람이 나를 먼저 돌봐주기를 바라는 사랑이 아니라 문제가 많지만 먼저 아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이 있는 공동체에 그런 사랑이 있는 공동체가 하나님이 계신 공동체이고 또 그런 사랑을 할 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증거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선포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을 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세상이 알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는 어려운 사랑을 해야 하는 공동체인 거예요.
우리가 해야 될 사랑은 되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이 강조하는 거고 수없이 강조하는 거고,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보여주셨어요. 너무 어려운 사랑이라 얘들아 이렇게 하는 거란다라고 보여준 거예요. 우리가 가족을 먼저 잃는 일은 되게 슬픈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만큼 그 정도의 수준의 사랑이라는 거예요.
예수님의 사랑이 그래서 우리 공동체가 목장 교회가 특별히 말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