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English 영 문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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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예 수련의 올바른 길과
하나의 이치
1. 무예 수련의 종교적, 미신적, 신비적 색채
우리 주변에서는 간혹 어떤 무술이 종교적 색채를 띠거나, 무술 수련을 하면서 종교로 빠지는 경우도 간혹 보게 된다.
이는 무술뿐만 아니라 명상, 호흡법, 기(氣) 수련 단체에서도 종종 발생하는 현상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본문의 핵심을 이해한다면,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무술을 통해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무언가를 느낀다고 해서 이를 치료와 연결하거나,
기가 강한 산속이나 계곡에서 특별한 에너지를 감지했다고 해서 알게 모르게 "자기 과시나 욕심"을 내보인다면, 삶에서 불편함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는 하지 않아도 될 일, 혹은 하지 않아야 될 일 등에 대해,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만큼,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된다.
무예 수련은
이러한 과정을 올바르게 체험하고 깨달아 가면서, 최종적으로 술기(術技), 철학, 그리고 치유의 본질에 도달하는 ‘하나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이는 인간 삶의 수행과도 연결되며, 이치를 벗어난다면 쉽게 그 진위를 판별할 수 있다.
결국, 무예 수련이 지나치게 신비적이거나 비밀스러운 교리나 시스템으로 변질된다면, 이는 인간의 무지와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단번에 알 수있다.
2. 기본 핵심 - 하나의 이치로 바라본 무예와 삶
기본 핵심을 모른 채, 다양한 책 속의 화려한 표현이나 수백, 수천 년 전 경전에 나오는 구시대 의식 속의 개념들을 익힌다고 해서 ‘하나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치는 "마음의 작동과 조화"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단순히 책 속의 방대한 지식이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 학문을 공부하면서 반복되는 개념을 머릿속에 새겨 넣고, 그것을 깨달음으로 착각한다. 이 경우, 빈 깡통이 요란한 것처럼, 본질을 모른 채 시끄럽게 떠들 뿐이다.
결국, 자신이 알고 있는 것, 혹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최고라는 관점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게 된다.
특히, 한자 세대가 아닌 사람들은 한자의 뜻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사용되는 한자 용어를 억지로 해석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물론, 그것이 자신에게 맞고 즐길 수 있다면 상관없다.
무예 수련의 핵심은
견성성불(見性成佛)이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같은 개념을
단순한 지식이 아닌 실제적인 이해와 체험을 통해 깨닫는 것이다. 이 세상 어떠한 종류의 수행에서도 여기 범주를 벗어날 수없다.
3. 무예 수련의 본질과 깨달음 -
진실한 깨달음의 의미와 체험
‘이해했다’ 혹은 ‘알았다’는 것과 ‘진실로 깨달았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진실로 깨달았다’는 것은 직접 체험하고 몸으로 경험한 것을 의미하며,
단순한 이해는 머릿속에서 개념적으로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 오랜 세월 동안 머릿속에서만 반복된 이해는 마치 자신이 깨달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아무리 뛰어난 학식을 가진 철학자나 종교가라 할지라도, ‘하나의 이치’를 진정으로 깨닫는 것은 단순한 지식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여기서 종교가 학문적으로 발전하면 반드시 쇠퇴하게 된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반복된 진정한 체험은 각자의 노력과 수준에 따라 쌓여가며, 삶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상황과 조건을 극복하는 데 활용된다.
진영쌍검류 해동검도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형성되었고, 현재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해동검도의 기본 자세 하나를 통해서도 무예 수련의 핵심과 삶의 이치를 논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하나의 이치’를 깨닫고 나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으며, 이는 직업, 가정, 사회, 국가 등 모든 영역에서 적용된다.
인간 삶의 핵심과 실체는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이는 알파요 오메가이며, 단순하고 명확하다.
복잡하거나 추상적이거나 신비적인 것들은 인간 삶의 근본 이치와 무관하다.
4. 무예 수련, 삶의 이치와 하나 되다 -
무예와 삶의 올바른 길과 최종 목표
무예의 올바른 길은, 곧 수행의 바른 길이며, 나아가 삶의 올바른 길과도 연결된다.
이는 모두 하나의 이치 아래 존재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평생 무예 수련에만 몰두했다는 것 자체는 자부심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무예 수련만 했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말한다면, 이는 솔직한 심정의 고백일 뿐이다. 삶과 무예 수련은 같은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무예 수련에만 전념했음에도 현재의 삶이 궁핍하다면, 본래 삶과 무예 수련의 최종 목표를 다시금 점검할 필요가 있다.
결국,
무예 수련도 ‘잘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잘 산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과 행복을 스스로 만들며, 필요로 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면서 보다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결국, 무예 수련의 본질은 인간 삶의 한 범주에 속하며, 모든 것은 하나의 이치 아래 자연 속에 존재한다. 즉, 삼라만상이 하나의 이치 속에서 순환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무예 수련의 최종 목표와 인간 삶의 최종 목표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2025.4.1
Jinyoung Ssangkum Ryu Haedong Kumdo - Kim Jeong S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