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사이드
가을의 문턱이다. 시골이면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깊은 밤을 알릴 듯한 시각이다. 외출에서 돌아와 TV를 켜니 우리 국가대표와 외국팀의 축구 친선 경기가 벌어지고 있다. 팽팽한 가운데 밀고 밀리는 접전이다. 한 선수가 볼을 몰고 문전 앞으로 수비수를 따돌리고 돌진하여 골대의 그물망을 가르며 골인시켰다. 관중과 선수는 열광하지만, 옆줄 밖의 선심의 깃발은 치켜 올라져 있다.
축구 경기에서 가장 엄하게 적용되는 룰이 오프사이드이다. 만약에 축구 경기에서 오프사이드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골 문전에서 대혼란이 일어나고 서로 아귀다툼이 일어나 볼꼴 사나운 경기가 될 것이다. 오프사이드 룰도 여러 번 고쳐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너무 룰이 느슨하면 골이 많이 터질 것이고, 엄하면 골이 터지지 않아 관중의 즐거움이 없어져 관심 밖으로 밀릴 것이다. 이처럼 룰도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따라 변화한다.
축구 경기에서 죄•우측에 깃발을 든 선심이 두 명이다. 이들은 선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이동하면서 공이 옆줄 밖으로 나갔는지 판단하고 어느 쪽에서 프리킥하고 드로잉을 해야 하는지 결정한다. 특히 골 문전에서 오프사이드 반칙을 세밀하게 적용하여 판단해야 한다. 흔히 공격수가 넘어온 공을 받아 골문 앞에서 골키퍼와 일대일에서 골을 넣어 영웅이 될 수 있는 숨 막히는 상황, 그때 심판의 호각이 울린다. ‘오프사이드’를 선언하며 열광에 찬물을 끼얹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규범도 마찬가지로 변화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가고 있다. 일상에서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신호등을 무시하는 차가 있는가 하면 횡단보도가 아닌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지키지 않으니까 사고를 당하기도 하지 않는가. 아무리 바빠도 질서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면 오프사이드가 된다. 그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라 지탄의 대상이며 악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갈대 바다를 건너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향했다. 그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끄는 데로 뒤따라갔다. 구름기둥이나 불기둥은 성령을 상징하며, 그것을 무시하고 그냥 갔으면 방향도 상실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오프사이드가 되었으리라.
공동체는 공동선을 위해 함께할 의무가 있다. 함께 하기 위해서 질서와 법이 존재한다. 그것을 무시하거나 지키지 않으면 오프사이드가 된다. 자기의 뜻을 앞세워 달리다 보면 욕심과 교만에 빠지기도 한다. 이때 내 안의 심판관(양심)은 호각을 불며 ‘오프사이드!’라고 외칠 것이다. 그러나 그 소리를 무시하고 오프사이드를 범하며 마구 질주한다.
생각의 늪에서 깨어보니 TV에서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자정을 넘어 무승부로 끝났다. 오늘 경기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수비수가 공격수에게 오프사이드트랩을 썼지만, 공격수는 그것을 눈치 채고 트랩에 말리지 않고 골을 넣었다. 그러니 보는 관중도 재미가 있었으며 열광 속에서 기쁨에 흥겨워했다. 우리가 엇길로 갈 때 누가 호각을 불어주랴. ‘오프사이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