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년 7월 14일(화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서운함을 자비로 바꾸는 연습”
법우 여러분, 오늘 아침 법문의 주제는 “서운함을 자비로 바꾸는 연습”입니다.
오늘은 불기 2570년 7월 14일, 화요일이며 음력 6월 초하루 법회일입니다.
초하루는 한 달의 첫 마음을 새롭게 세우는 날입니다.
지난날의 무거운 마음을 돌아보고, 오늘부터 다시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발원하는 날입니다. 특히 오늘은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서운함을 부처님 전에 조용히 내려놓고, 그 자리에 자비의 마음을 심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서운한 마음이 생깁니다. 서운함은 마음이 약해서만 생기는 것도 아니고, 수행이 부족해서만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서운하고, 정성을 다했기 때문에 서운하고, 가까운 인연이기 때문에 더 아프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서운함도 크게 생기지 않습니다. 서운하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그 인연을 소중히 여겼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서운함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마음이 점점 어두워집니다. 처음에는 작은 섭섭함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원망이 되고, 원망이 깊어지면 미움이 됩니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반복되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가 받은 상처를 통해서만 보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의 말도 밉게 들리고, 행동도 밉게 보이고, 예전에는 그냥 넘기던 일까지 마음에 걸리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서운함이 일어날 때 먼저 자기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원한은 원한으로 그치지 않고, 오직 원한을 버릴 때 그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큰 원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 작은 서운함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서운함을 서운함으로만 붙들고 있으면 마음은 풀리지 않습니다. 상대가 먼저 사과해야 풀릴 것 같고,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줘야 풀릴 것 같지만, 사실 내 마음이 원망에 머물러 있으면 어떤 말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서운함을 자비로 바꾸는 첫걸음은 상대를 고치려 하기 전에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내가 많이 서운했구나.” “내가 인정받고 싶었구나.” “내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이렇게 자기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이 수행입니다. 내 마음을 알아차리면 서운함은 조금씩 힘을 잃습니다. 알아차림이 없을 때 서운함은 나를 끌고 다니지만, 알아차림이 있을 때 서운함은 지나가는 마음이 됩니다.
법우 여러분, 자비는 나를 서운하게 한 사람에게 억지로 웃어주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비는 미움이 올라올 때 그 미움을 곧바로 말로 쏟아내지 않는 것입니다. 자비는 마음이 아프다고 해서 상대의 마음까지 찌르지 않으려는 절제입니다. 자비는 상대의 허물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며 더 크게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한마디 하고 싶을 때 잠시 멈추고, 숨을 한 번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바로 생활 속 자비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비를 아주 큰 수행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조금 덜 날카롭게 말하는 것, 내 마음을 몰라준 사람을 하루 종일 미워하지 않는 것, 상대도 부족한 중생이라는 사실을 한 번 떠올려보는 것, 이런 작은 마음이 모두 자비의 연습입니다. 오늘 음력 6월 초하루를 맞아 우리 마음에 이런 발원을 세워보면 좋겠습니다.
“부처님, 제 마음에 서운함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미움으로 키우지 않게 하소서.”
“부처님, 제가 받은 상처만 보지 않고 상대의 형편도 조금은 헤아릴 수 있게 하소서.” “부처님, 가까운 인연일수록 더 부드러운 마음으로 대하게 하소서.”
이 발원은 상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내 마음을 살리기 위한 발원입니다. 서운함을 오래 품고 있으면 가장 먼저 괴로운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상대는 아무렇지 않게 지내고 있는데, 내 마음만 밤새 뒤척이고 내 마음만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서운함을 내려놓는 것은 상대를 용서해 주기 이전에 나를 괴로움에서 풀어주는 일입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 혹시 서운했던 사람이 떠오른다면 곧바로 원망하지 말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도 부족했고, 그 사람도 부족했다.” “나도 내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했고, 그 사람도 자기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인연을 미움으로만 남기지 않겠다.”
이 한마디가 마음의 방향을 바꿉니다. 서운함으로 닫히던 마음이 자비의 방향으로 조금씩 열립니다. 수행은 이렇게 작은 방향 전환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초하루 아침, 우리 모두가 새달의 첫 마음을 자비로 세웠으면 합니다.
서운함을 그대로 들고 가지 말고, 부처님 전에 한 번 내려놓고 가면 좋겠습니다. 서운함은 마음을 닫게 하지만, 자비는 다시 마음을 열게 합니다. 서운함을 붙들면 괴로움이 자라고, 자비로 돌리면 공덕이 자랍니다. 오늘 하루, 내 마음 하나 부드럽게 다스리는 것이 곧 초하루의 귀한 수행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법우 여러분, 서운함이 생길 때 우리가 먼저 살펴야 할 것은 “내가 무엇을 기대했는가.”하는 마음입니다. 사람 사이의 서운함은 대부분 기대에서 시작됩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기대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기대하며, 부부와 형제와 도반 사이에도 말하지 못한 기대가 숨어 있습니다. 기대가 전혀 없을 수는 없지만, 그 기대가 내 뜻대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붙들면 마음은 쉽게 다칩니다. 수행은 기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기대에 끌려가지 않는 마음을 기르는 것입니다.
내가 정성을 다했는데 상대가 몰라줄 때 서운합니다. 내가 먼저 연락했는데 상대가 답이 없을 때 서운합니다. 내가 어려울 때 기대했던 사람이 곁에 있어주지 않으면 마음이 허전해집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저 사람은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단정해 버리면, 마음은 더 깊은 상처로 들어갑니다.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형편이 다르고, 마음의 여유도 다르다는 것을 한 번쯤 헤아려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물론 헤아린다는 것이 내 아픔을 무조건 참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마음이 아프면 아프다고 알아차려야 하고, 필요한 말은 부드럽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그 말을 원망으로 전하느냐, 자비로 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원망으로 하는 말은 상대를 몰아세우지만, 자비로 하는 말은 관계를 살리는 길을 엽니다. 같은 말이라도 마음의 뿌리가 다르면 결과도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왜 나를 이렇게 서운하게 했느냐.”고 따지듯 말하면 상대는 방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조금 서운했고,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차분히 말하면 상대도 들을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수행자는 말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말해야 할 때 자비롭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침묵만이 수행이 아니고, 바른 마음으로 전하는 말도 수행입니다. 말은 마음의 길이기 때문에, 그 길에 미움이 깔려 있는지 자비가 깔려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자기를 사랑한다면 자기를 잘 지켜야 한다.”는 뜻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자기를 지킨다는 것은 몸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서운함이 올라올 때 내 마음을 미움에 내어주지 않는 것이 나를 지키는 일입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때문에 내 하루 전체를 어둡게 만들지 않는 것이 나를 지키는 일입니다. 상대의 부족함 때문에 내 마음의 복전까지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수행자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흔히 용서를 상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깊이 보면 용서는 먼저 나를 위한 일입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를 준 일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그 일에 묶여 있는 내 마음을 조금씩 풀어주는 것입니다. 상대를 향한 원망의 줄을 계속 잡고 있으면, 결국 그 줄에 묶여 괴로운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서운함을 자비로 바꾸려면 먼저 마음속에서 상대를 조금 넓게 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서운함을 준 그 사람도 사실은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도 모르는 것이 많고, 서툰 것이 많고, 자기 상처에 갇혀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서운함을 준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조금 부드러워집니다.
법우 여러분, 자비는 상대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약한 마음이 아닙니다. 자비는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에 내가 지배당하지 않겠다는 강한 마음입니다. 자비는 내 마음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결심이며, 인연을 원망으로만 끝내지 않겠다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자비로운 사람은 무조건 참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바르게 세우고 상대도 함께 살리는 길을 찾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보살의 마음입니다.
오늘 음력 6월 초하루에 우리가 세울 수행은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서운한 마음이 올라오면 먼저 숨을 한 번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 마음을 미움으로 키우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해보십시오. 가능하다면 그 사람의 형편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도 마음이 아프다면 조용히 부처님 전에 내려놓고, 내 마음이 먼저 상하지 않게 해달라고 발원해 보십시오.
서운함은 그대로 두면 마음의 벽이 되지만, 잘 살피면 자비를 배우는 문이 됩니다. 나를 아프게 한 인연이 오히려 내 마음을 넓히는 공부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기대를 내려놓고, 말을 부드럽게 하고, 상대의 부족함을 헤아리며, 내 마음을 지켜낼 때 서운함은 조금씩 공덕으로 바뀝니다. 오늘 이 초하루 아침, 우리 모두 서운함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서운함을 자비로 돌이키는 수행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법우 여러분, 서운함을 자비로 바꾸는 연습은 결국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공부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그 인연 속에서 기쁨도 얻고 상처도 받습니다. 그런데 상처받은 마음을 그대로 방치하면 그 마음은 자꾸 과거로 돌아가고, 지나간 말 한마디를 붙들고 또 붙들며 스스로를 괴롭히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지나간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어도, 그 일에 끌려가는 마음은 조금씩 돌이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마음공부이고, 이것이 자비를 배우는 길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서운하게 했을 때, 우리는 마음속으로 자꾸 묻습니다. “왜 나에게 이렇게 했을까.”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왜 나는 늘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힘들어야 할까.” 그러나 그 질문만 계속하면 마음은 답을 얻기보다 더 깊은 원망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때 질문을 조금 바꾸어보면 좋겠습니다. “이 일을 통해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할까.” “내 마음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 “이 서운함을 어떻게 자비로 돌릴 수 있을까.” 질문이 바뀌면 마음의 길도 바뀝니다.
부처님 가르침에서 중요한 것은 바깥 인연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의 움직임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상대가 잘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상대가 무심했을 수도 있고, 말 한마디가 거칠었을 수도 있으며, 내 정성을 가볍게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을 겪은 뒤에도 내 마음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는 결국 나의 수행입니다. 상대의 허물은 상대의 몫이지만, 그 허물 때문에 내 마음이 미움으로 무너지는 것은 내가 살펴야 할 몫입니다.
서운함이 올라올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마음속에서 상대를 단정해 버리는 일입니다.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저 사람은 나를 무시한다.” “저 사람에게는 더 이상 마음을 줄 필요가 없다.” 이렇게 단정해 버리면 마음의 문은 닫히고, 인연은 더 멀어집니다. 물론 모든 인연을 억지로 붙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움으로 문을 닫는 것과 지혜롭게 거리를 두는 것은 다릅니다. 수행자는 미움으로 끊지 않고, 지혜로 조절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가까운 인연일수록 더 조심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말도 쉽게 하고, 기대도 많이 하고, 서운함도 크게 느낍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도반이기 때문에,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기 때문에 더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가까운 인연일수록 서로의 부족함을 더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까운 인연을 지키려면 옳고 그름만 따지기보다 따뜻함을 잃지 않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옳은 말을 하더라도 차갑게 하면 상처가 되고, 부족한 말을 하더라도 따뜻하게 하면 위로가 됩니다.
법우 여러분, 자비로운 사람은 서운함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비로운 사람도 서운할 때가 있고, 마음이 아플 때가 있고,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다만 자비로운 사람은 그 마음을 원망으로만 끝내지 않습니다. 서운함을 통해 내 기대를 돌아보고, 내 말씨를 돌아보고, 내 집착을 돌아보고, 내 마음의 크기를 돌아봅니다. 그래서 같은 일을 겪어도 수행자는 그 일을 마음을 닫는 이유로 삼지 않고, 마음을 넓히는 공부로 삼습니다.
오늘 초하루에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자비는 상대를 이기기 위한 마음이 아니라 함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원망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상대가 모두 옳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원망을 내려놓으면 내 마음이 먼저 편안해집니다. 내가 미움을 붙들지 않으면 내 안의 기도가 맑아집니다. 내가 서운함을 자비로 바꾸면, 그 순간 내 마음속에 새로운 복의 씨앗이 심어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부터 아주 작은 실천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서운한 사람이 떠오르면 곧바로 원망의 말을 꺼내지 말고, 먼저 숨을 한 번 고르십시오. 마음속으로 “이 마음을 부처님 전에 내려놓겠습니다.” 하고 발원해 보십시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사람에게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한 번 헤아려 보십시오. 그래도 마음이 풀리지 않으면 억지로 좋은 척하지 말고, 조용히 기도하면서 내 마음이 더 거칠어지지 않도록 지켜보십시오. 이것이 현실 속에서 할 수 있는 자비의 연습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게도 자비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운한 마음이 생겼다고 해서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좁을까.” 하고 자신을 탓하지 마십시오. 서운함이 생겼다는 것은 내 안에 아직 기대가 있고, 정이 있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다만 그 마음을 미움으로 키우지 않고, 알아차림과 기도로 돌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내 마음을 다정하게 살피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마음도 다정하게 살필 수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은 음력 6월 초하루 법회일입니다. 새달의 첫날에 우리가 부처님 전에 올릴 가장 귀한 공양은 향이나 꽃만이 아닙니다. 내 마음속 오래된 원망 하나를 내려놓는 것도 귀한 공양입니다. 누군가를 향해 굳어졌던 마음을 조금 풀어보는 것도 귀한 공양입니다. 서운함을 미움으로 키우지 않고 자비로 돌리겠다는 발원 하나가 바로 오늘 우리가 올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공양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고, 자비와 지혜로 그 마음을 다스리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가르침은 멀리 있는 수행자에게만 필요한 말씀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가정에서, 절에서, 일터에서, 도반 사이에서, 우리는 수없이 서운함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마다 조금씩 연습해야 합니다. 한 번에 다 내려놓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오늘 한 번 덜 미워하고, 오늘 한마디 덜 거칠게 하고, 오늘 한 번 더 헤아려보면 그것이 곧 수행의 진전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법문의 주제를 마음속에 다시 새겨보겠습니다. “서운함을 자비로 바꾸는 연습.” 이 말은 내 마음을 억누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내가 받은 상처를 부정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이 말은 서운한 마음이 올라올 때 그 마음을 미움의 길로 보내지 말고, 이해와 기도와 자비의 길로 돌려보내자는 뜻입니다. 그 길을 걷다 보면 닫혔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며, 괴로웠던 인연도 언젠가는 공부의 인연으로 바뀌게 됩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초하루 아침에 우리 모두 이렇게 발원합시다. “부처님, 제 마음에 서운함이 일어나더라도 그 마음을 오래 붙들지 않게 하소서. 제가 받은 상처만 바라보지 않고, 상대의 부족함도 헤아릴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가까운 인연일수록 더 부드럽게 말하고, 더 따뜻하게 바라보며, 미움보다 자비를 먼저 선택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이 발원이 오늘 하루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 서운함이 찾아오면 그것을 미움의 씨앗으로 삼지 말고 자비의 씨앗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서운함 하나를 자비로 바꾸면 그만큼 내 마음의 그릇이 넓어집니다. 내 마음의 그릇이 넓어지면 인연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삶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음력 6월 초하루의 맑은 발원으로, 법우 여러분 모두가 서운함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자비로 마음을 밝히는 수행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부처님 법문 고맙습니다.
마음에 새겨 행 하겠습니다.
스님 법문 가르침 새기며 행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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