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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8일 그날의 함성을 기억하며... - 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 후 첫 정부기념식 및 재현행사 - - 대전시, 이낙연 국무총리에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 국가 지원 요청 - |
□ 충청권 최초의 학생운동인 3.8민주의거의 제59주년 기념식이 8일 오전 대전시청 남문광장에서 개최됐다.
□ 이날 기념식은 지난해 11월 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첫 번째 열리는 정부기념식으로, 이낙연 국무총리와 정부 측 주요인사, 허태정 대전시장, 3.8민주의거 참여자, 시민, 학생 등 약 1,700여명이 참석했다.
ㅇ 기념식은 김용재 3.8민주의거 기념사업회 공동의장의 경과보고와 이낙연 국무총리의 기념사에 이어 민주의거 정신을 승화한 공연이 이어졌다.
□ 정부기념식 후 재현행사에서는 당시 시위에 참여한 민주의거자와 대전고, 대전여고, 둔원고, 괴정고 4개 학교 학생들이 거리행진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ㅇ 시청사 둘레길을 배경으로 전문배우들의 출정식 퍼포먼스에 이어 당시 상황을 재현한 가두행진, 시위진압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3.8민주의거의 역사적 의의를 시민과 함께 공유했다.
ㅇ 허태정 대전시장은 “3.8민주의거가 국가기념일로 제정될 수 있도록 힘써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며 “3.8민주의거 정신을 기억하고 후대에게 계승될 수 있도록 대전시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한편 허 시장은 이낙연 국무총리, 기념사업 추진위원들과 단재 신채호 생가를 찾아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 등 기념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국가적인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붙임] 사진자료
<참고> 3.8민주의거 발단과정 및 역사적 의미
- 1960.3.8. 대전고 학생 1,000여명이 자유당의 부정부패 및 정부통령선거 전략을 규탄하고 학원 자유 쟁취를 위해 시위 감행
- 당초 학도호국단을 중심으로 전체 고등학교가 연대 시위를 계획했으나, 사전 발각되어 경찰이 저지하는 가운데, 대전고만이 시위 강행
- 3.10.에는 연행된 학도호국단 대표들의 석방을 외치며, 대전상고
학생 600여명이 시위 진행
- 시위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경찰의 진압과 도주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고, 2명의 교사가 체포
⇒ 이러한 과정을 3․8민주의거라 칭하고 4․19혁명의 단초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