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르트 아주머니가 세상을 구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3대 요원이 있다. 음지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국정원 블랙요원,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하루가 지나기 전에 어디든지 가져다주는 쿠팡맨, 그리고 시위대와 경찰과 철통보안의 빌딩을 자유자재로 통과하는 야쿠르트 아주머니다.
나는 극단적으로 내성적인 사람이라 그 흔한 “야쿠르트 하나 주세요”라는 말도 못 꺼내봤지만, 멀리서 오래도록 관찰해 왔다(야쿠르트 주문을 못 해서 그런 건 아니다…). 눈에 띄는 샛노란 색의 히어로 복장. 눈이 쌓여 자동차들도 꼼짝 못 할 때에도 유유히 빙판을 빠져나가는 시속 8km의 시즈탱크. 그 안에는 야쿠르트부터 한우, 채소까지 최대 680kg까지 물건을 실을 수 있다. 가히 한국 메카닉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동네의 지리와 사람들까지 훤히 아는 정보력까지 갖추고 있다. 나는 그들이 단순히 음료를 판매하는 것이 아닌, 한국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한 비밀임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그리고 답을 찾았다.
경찰이 야쿠르트 아주머니에 SOS를 치다
지난 5월 10일, 오후 2시 18분. 부산 금정구에 노인복지센터에서 노인이 사라졌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그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경찰들은 곧 야쿠르트 아주머니의 본부. hy(옛 야쿠르트) 동상점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거리에서 야쿠르트를 팔던 야쿠르트 아줌마의 무전ㄱ… 아니 카카오톡에 알람이 울렸다. 18명의 요원들이 있는 단톡방에 실종 노인의 인상착의와 함께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뜬 것이다.
30분 전 검정 모자에 빨간 점퍼를 입은 할아버지가 사라졌습니다. 발견하시는 분께서는 즉시 연락 바랍니다.
오후 2시 38분쯤 인상착의가 비슷한 할아버지를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발견하고 경찰에 알렸다. 일반적으로 실종 치매 환자를 찾을 수 있는 골든타임은 24시간이다. 야쿠르트 아주머니들은 접수 신고 20분 만에 이걸 찾고 말았다.
매년 치매 환자들의 실종 사건은 1만 4천 건에 이르고 있다. 야쿠르트 아주머니는 지난 3월에는 대전에서 실종된 노인을, 12월에는 인천에서 한파 속에 슬리퍼 차림으로 나온 노인을 구했다. 지역과 사람을 훤히 알고 있는 그들의 눈은 언제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고 있다.
지역을 지키는 로컬 히어로 집단
그렇다. 그들은 경찰과 공조하며 실종된 노인을 찾거나, 골목길을 누비며 안전이 취약한 곳들을 찾아 범죄 발생 우려 지역들을 경찰에 전달하는 활동들을 하고 있었다. 전국에 1만 명이 넘는 요원(이 중에서 10년 넘게 활동한 베테랑은 약 5,600명에 달한다)들을 보유한 hy의 조직력은 지역의 안전을 지키는 데 안성맞춤이다.
2022년에는 반지하에 홀로 사는 할아버지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을 발견해서 구하기도 했다. 때로는 매일 집 앞에 놓는 야쿠르트 2병을 가져가지 않은 것을 보고 사람을 구한 적도 있었다.
이는 hy가 지자체, 관광서들과 손을 잡고 ‘홀몸노인 돌봄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려 1994년부터 시작한 hy의 대표적인 활동 중에 하나다. 단순히 음료를 전달하는 것을 떠나서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정서적인 치료까지 함께하고 있다.
홀로 사는 노인 100만의 시대와 그에 따르는 고독사 문제. 특히나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접촉하지 않는 ‘언택트 시대’가 왔음에도 야쿠르트 아주머니들은 그 틈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지난해 분당 정자교 붕괴 사고에도 프레시 매니저가 있었다
사실 히어로라는 게 어디 악당을 처리하는 일만 하겠는가, 사회의 그림자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 야쿠르트 아주머니는 그 최전선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문득 그들의 시작이 궁금해졌다.
47명의 가정주부가 전설을 만들다
hy, 그러니까 ‘한국 야쿠르트’가 시작된 것은 1971년도의 일이다. 그들의 경영이념은 ‘건강사회건설’이다(의미심장하지 않은가). 하지만 당시는 유산균 음료를 알지 못해 병균이냐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한국야쿠르트에서는 유산균 음료의 인식을 바꿔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서울 종로 지역을 중심으로 야쿠르트를 알릴 47명의 요원들을 모집했다. 모집 요건이 있었다. 남성이 아닌 ‘가정주부’만을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가정주부들이 밖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일을 하면서도 중간중간 아이를 돌보며 자유롭게 시간 조절을 할 수 있는 야쿠르트 아주머니는 가정주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 사회의 이곳저곳에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때문에 사람들은 편을 갈라서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야쿠르트 아주머니만은 친절하게 맞이한다.
전설적인 일화도 있다. 1994년 철도노조 파업으로 명동성당을 점거한 노조원과 경찰이 대치하던 일촉즉발의 순간이 있었다. 그때 홀연히 나타난 전설의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 야쿠르트 배달해 드려야 해요.
홀연한 외침에 경찰도, 노조원도 모두 길을 비켜주었다. 정영희 매니저님의 일화다. 한국 사회에서 야쿠르트 아주머니만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사회적인 룰이 생긴 것을 의미한다.
야쿠르트 아주머니에서 프레시 매니저로
사람들의 일이 인공지능과 기계로 대체되는 시기. 언뜻 편리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술들의 폭주 속에서도 가슴 속 핫팩처럼 사회를 따뜻하게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야쿠르트 아주머니, 아니 ‘프레시 매니저’의 일화들은 듣다 보면 아직 우리 주변이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느끼게 한다.
기술은 야쿠르트 카트(배트맨의 배트카처럼 이들에게는 코코라는 카트가 있다)에 잔뜩 적용시키고, 사람이 필요한 일에는 직접 나선다. 나는 언젠가 그들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언제나 그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전에 “야쿠르트 하나 주세요”라고 물어보는 게 먼저겠지?
원문: 마시즘
첫댓글 내용이 재밌어서 가져와 봅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야쿠르트 아줌마들에 대해서 이미 좀 경외감 같은게 있었는데요
수능 끝나고 노는거 함께했던 절친중 하나였던 애의 엄마가 야쿠르트 아줌마였거든요,
그냥보면 가난한 집에 부모님도 딱히 대단한 분들도 아니고 두루두루 안좋은 환경같았는데
이 친구는 구김살이 하나없고 발랄하고 자신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다 드러내는거에 대해서 거리낌이 없던 애였거든요
머리도 비상했고 잘놀고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고 했는데, 수능도 가장 잘 봤던 애였죠
그런데 실력이 됨에도 최고대학 가는게 아니고, 집안환경에 맞춰서 장학금 주는 전망좋은 학과에 맞춰서 레벨을 낮춰서 학교를 가더군요, 의대 들어갔다는 내 친구에 비해서도 수능과 학업실력이 더 좋았음에도요.
물론 이애도 그 엄혹한 아임에프 시절 이후였음에도 돈 잘버는 최고직장에 들어갔고 결혼도 잘하고~ 뭐 그렇고그런 엘리트가 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전형적인 개천에서 난 용이었던거죠~
그친구 엄마가 야쿠르트 아줌마라서 뭔가 남다른게 있었나, 하는 생각을 예전에 많이 했었답니다.
한때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잘된다는 둥의 루머같은걸 들어서 그랬던건지..ㅋㅋㅋ
긴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