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사람 / 김석수
‘이 사람이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있지? 기분 나쁘게.’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써서 그쪽을 보지 않고 수영용품 바구니를 바닥에 놓고 로커 문을 열었다. 그는 팬티만 입고 거울 앞으로 가서 머리를 빗는다. 등 뒤에서 힐끗 쳐다보니 꼴불견이다. 배가 불룩 나오고 허벅지가 쑥 들어갔다. 가슴이 늘어지고 젖무덤이 축 처졌다. 나도 더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될까봐 두렵다. 내게 말을 걸면 알은체할까 말까 망설인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탈의실에서 밖으로 나왔다. ‘인사할 걸 그랬나. 아니, 안 하길 잘했어. 말 섞으면 귀찮아.’ 삽상한 바람이 콧등을 스치고 지나간다.
며칠 전에 준비 체조하고 있는데 그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내게 왜 알은체하지 않느냐는 표정이다. 체조를 마치자마자 물로 들어갔다. 그의 시선에서 멀어지고 싶다. ‘아침부터 재수 없는 사람 만나면 하루 망칠 수 있어.’ 처음에는 잠영으로 나중에는 자유영으로 빠르게 나간다. 그는 강습은 받지 않고 얕은 데서 혼자 허우적거린다. ‘내가 왜 사람을 피하지? 도통 알 수 없네. 내가 뭐 잘 못한 일도 없는데. 참 이상하다.’
‘또 만났네. 또 만났어. 아하, 여섯 시 반이구먼. 난 일곱 시 반인데. 노인네가 일찍도 나오네. 새벽잠이 없는가? 기초라도 수영을 배우지, 혼자 애쓰네.’ 그는 다른 사람에게 가끔 이것저것 물어본다. 어떻게 하면 수영 잘하는지, 물에서 가라앉지 않고 빨리 가는지 궁금한 것 같다. ‘참 딱하구먼. 남의 수영하는 것 방해하지 말고 강사한테 처음부터 배워야지. 뭔 짓거리야. 아직도 장학사와 교장으로 대접받고 싶은가 봐.’ 우리 반 준비 체조하면 밖으로 나갈 것이지 내 옆에서 매급시 뽀짝거린다. ‘알은체할까? 아니야. 귀찮아. 다음에 하지.’
그는 나와 같은 단지 아파트에서 산다. 몇 년 전에 건널목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그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내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 “어디 근무해?”라고 반말로 응대했다. 머뭇거리다가 "ㅈ 고등학교요."라고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왜, 내게 반말하지? 고약한 영감탱이네. 같이 근무한 적도 없고. 학교 선배도 아니고 친하지도 않는데, 얼굴만 아는데 아랫사람 대하듯 하네. 기분 나쁘네.’ 이런 하찮은 일에 신경 쓰는 내가 우습다.
연수원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연구사고 나는 교사였다. 고등학교 선배가 그를 소개했다. ㅈ 고등학교에서 정보부장 업무를 맡으면서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회의에 갔더니 그는 장학사로 나타났다. 멀티미디어실을 구축하는 회의였다. 회의 중간에 질문하면 참석자에게 핀잔을 주기도 하고 거들먹거리며 답변했다. 권위적인 인상이다. 융통성이 없고 답답하다는 느낌이다. 나중에 그는 중학교 교장으로 나갔다. 학교에서 교직원과 잘 지냈는지 모른다. 그 시절 그는 기가 세고 체격이 건장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다. 나도 저 나이쯤 되면 그렇게 보일까 걱정이다.
출근길 차가 찬 바람을 쌩쌩 불며 지나간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면서 걷다보니, 벌써 아파트 엘리베이터 입구다. 문이 막 닫히려는 순간 한 남자가 들어온다. 그는 뿔테안경을 썼다. 스포츠형 머리다. 얼굴이 핼쑥하다. 한쪽 눈이 움푹 들어갔다. 건장하던 체격이 시간이 흐를수록 작아진다. 내 얼굴을 그의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도 내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 그는 먼저 살고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했다. 내가 잘 아는 선배가 교감으로 그는 교장으로 함께 근무했다고 한다. 먼저 인사를 하려다 머뭇거리며 망설이다 모른 체했다. 처음 기회를 놓쳐서 자금까지 서로 알은체하지 않고 지낸다. 그의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고 아내가 귀띔했다. 그와 마주칠 때마다 인사할까 말까 하다 포기했다. 내 행동이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른다. 두 사람은 내게 교직 선배지만 불편한 사람이다. 이번 학기 마치기 전에 다정하게 서로 인사하고 싶다.
첫댓글 저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기회를 놓치고 미루다 보면 늦더라고요. 용기 내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두루 친절할 것 같은데 원장님도 가리는 분이 계시는군요.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라면 피하는 게 상책이지요.
알은 체 해도 계속 아랫사람 대하듯 할 것 같은데요? 사람 쉽게 안 바뀌더라구요.
솔직하게 쓰셔서 더 공감이 갑니다. 글을 읽고 생각이 많아져 불편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더 고민이네요.
사람 마음 참 고약합니다. 상대방이 딱히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그냥 싫은 사람이 있어요.
난감하겠네요. 슬기로운 대처가 있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글이 재밌어요. 선생님 이미지와 반전이라 그런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읽으며 많이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모습과 대조적이네요. 둥글둥글 대처 하실 것 같은데요.
재밌게 숨도 쉬지않고 읽었답니다. 한해 수고 많으셨어요.
마지막 문장이 반전이네요. 다시는 안 보고 싶다가 아니어서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