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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ubf 12-2 주일메시지
누가복음 6장 깅헤 이부 네 손을 내밀라
말씀 누가복음 6장 6-누가복음 6장 11절
요절 누가복음 6장 10절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c체널의 회복이라는 토크쇼 프로그램에 윤복희씨가 나왔습니다. 윤복희 씨의 여러분이라는 노래의 후반부 가사입니다. “네가 만약 외로울 때면 내가 친구가 될게 네가 만약 기쁠 때면 내가 웃음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야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야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예수님은 인간의 회복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에덴 동산의 회복,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건강을 회복시켜주시고 성공을 회복시켜주시고 마음에 평안을 회복시켜주시고 기쁨을 회복시켜주시고 사랑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시기 전에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472 장 찬송가에 나오는 것처럼 믿음의 손, 순종의 손, 기도의 손을 내밀어야합니다. 우리의 회개의 손을 내밀어야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가 엿보다)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이삭을 비벼 먹고 바리새인들과 논쟁한 후였습니다. 또 다른 안식일이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이 전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회당에 오른 손이 마른 사람이 나옵니다. 다른 번역에는 다 오른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외경에 의하면 그는 석공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오른 손이 말라 직장일을 할 수 없었고 가정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었습니다. 생활하는 것도 여러모로 불편하였습니다. 그는 참안식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고쳐주사 참안식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그를 고쳐주시면 예수님을 고빌할 증거를 얻고자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가 엿보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 시대의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는 거룩한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 보면 그들은 사랑이 말라 있었습니다. 우리는 겉모습보다 내면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보다 내면을 보십니다. 그들은 목자로서 한손마른 자를 보면 사랑으로 고쳐주어야 합니다. 고쳐줄 능력이 없으면 그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라도 드려야합니다. 그 사람을 붙잡고 못 고쳐주어서 미안하다고 울기라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를 고쳐주시면 박수를 쳐서 예수님을 칭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에수님이 그 사람을 고쳐주시면 예수님을 고발하고자 몰래 엿보고 있었습니다. 목자들이 왜 그렇게 사랑이 말라 있을까요? 시기심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무리의 인기를 얻자 예수님에 대한 시기심으로 마음에 사랑이 말라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시기심에 사로잡히면 사랑이 말라버립니다. 가인은 시기심으로 사랑해야할 아우를 죽였습니다. 사울은 시기심으로 충신이요 사위인 다윗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시기심은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본성이 우리의 피에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이 시기심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경쟁자가 망하면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 하면서 마음으로 고소해 합니다. 안서동에 농가마트와 하모니 마트가 있습니다. 하모니 마트에 불이 나서 많은 손실이 났습니다. 주인은 마음이 많이 아팠을 것입니다. 농가마트 주인도 마음이 아팠을까요? 우리가 농가 마트 주인이라도 겉으로는 안 됐다고 위로하면서도 속으로는 좋았을 것입니다. 하모니 마트가 망하여 일년 동안 농가마트는 많은 수입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시기심을 극복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전에 말한 것처럼 요한이가 취업이 되지 않았는데 친구 아들이 한국타이어에 취업했다고 전화가 오니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시기심을 극복할 수 없을까요? 할 수 있습니다. 성령에 의지하여 이 시기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시기심 대신에 우리의 마음에 따뜻한 사랑을 주십니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 박수를 치고 고통하는 사람을 보면 함께 슬퍼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이렇게 시기심을 극복한 사람들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가자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신랑이 아니요 신랑의 친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 갇혔는데 비방자들이 시기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는 것으로 기뻐하였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은 요셉만 채색옷을 입자 시기하여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러나 회개한 후에 베냐민에게 다섯 배를 주어도 그들은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베냐민이 잡혔을 때는 함께 고통하여 유다가 대신 갇히고자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시기심을 극복해야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윤현주 자매는 용준이를 잘 모릅니다. 그런데 용준이를 생각하며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제는 피자도 사다주고 용준이는 정말 해맑게 웃으며 먹었습니다. 성령께서 현주 자매 마음에 사랑을 주시는 것입니다.
(한 가운데 일어서라)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고소하고자 하는 시기심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손마른 사람에게 일어나 한 가운데 서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엿보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한손마른 자를 한 가운데 서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숨겨진 바리새인들의 시기심의 손을 한 가운데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는 길은 예수님의 빛 앞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둠은 빛 앞에 드러나면 없어집니다. 우리가 우리의 숨은 죄를 자백하면 예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게 하십니다. 죄를 없애는 것은 감추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운데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앞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죄는 외상이라면 숨은 죄는 속병과 같습니다. 속병은 내시경을 하고 조직 검사를 해야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위 내시경을 했는데 위궤양이 있습니다. 약을 2달 먹고 다시 내시경을 해보아야합니다. 그렇게 속병은 아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속의 죄를 아십니다.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는 숨은 우리 생각의 죄를 한 가운데 드러내고 회개해야합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
“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손마른 자가 한 가운데 일어나 서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어느 것이 율법에 맞는가 물었습니다.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을 통하여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이 무엇인가 가르쳐주셨습니다. 안식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안식하는 날입니다. 이런 안식일의 개념이 이사야서에 보면 선을 행하는 날로 좀 더 발전됩니다. 안식일은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고, 생명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는 날입니다. 한 손 마른 자를 고치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배고픈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 배부르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자신이 안식을 누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안식을 누리게 해야합니다. 우리는 안식일날 말씀을 듣고 심령이 살아나야 합니다. 안식일날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합니다. 안식일에 말씀을 통하여 병을 치료받아야 합니다. 안식일날 마음에 사랑이 회복되고 기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안식일 날 병을 많이 고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38년된 병자를 고친 것도 안식일이고 날 때부터 소경을 고친 것도 안식일입니다. 공관복음에 보면 한 손마른 자를 고친 것도 안식일이고 허리가 꼬부라진 여인을 펴신 것도 수종병 든자를 고친 것도 안식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안식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을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에게 죄와 병에서 온전한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성령으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의 피 한 방울이 나에게 떨어지고 성령의 손이 나를 어루만질 때 우리는 참안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참안식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네 병든 손을 내밀라)
“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의 시기심을 회개하도록 도전하신 후에 손마른 사람을 고치고자 하셨습니다. 손마른 자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병자는 순종하여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손이 회복되어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냥 말씀만으로 손을 고치실 수 있도 있는데 왜 그에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손을 내밀라고 하셨을까요? 부끄러운 치부를 내놓게 하셨을까요? 첫째 예수님은 그의 내면을 치료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손을 치료하는 것도 있지만 그 마음을 치료하여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대부분 손이 마른 사람들은 긴팔옷을 입고 손을 주머니에 넣고 감추고 다닙니다. 그들은 그런 생활이 오래되면 자의식이 생기고 가식적이 됩니다. 예수님은 숨긴 손을 드러내서 자의식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윗도 죄를 짓고 1년 정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죄를 숨기며 살았습니다. 그때 그는 종일 신음하므로 뼈가 쇠하였고 주의 손이 주야로 누름으로 여름 가뭄에 마름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죄를 고백하고 죄의 손을 내밀었을 때 주님은 그의 죄를 사하여주셨습니다. 그는 죄사함을 받은 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1.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고”(시편 32:1) 우리가 숨은 죄를 고백하고 죄사함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한 것은 이제 거짓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든 속을 뒤집어도 나는 떳떳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11년 동안 숨겨 둔 죄를 회개하고 이런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처음으로 일대일 목자 앞에서 발표하였을 때 눈물이 한 시간은 흐르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병도 부끄럽지만 드러냈을 때 치료되었습니다. 요즘에 청소년 성병이 심각합니다. 그들이 병이 났을 때 바로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면 되는데 부끄러워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치질 같은 병이나 정신적인 질환도 부끄러워 병원을 늦게 가서 병을 키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부끄러운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주님과 신뢰하는 사람에게 내 놓을 수 있어야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사랑의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병을 고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병을 치료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치시기 전에 먼저 믿음을 원하십니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을 믿을 때 가능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자신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무릎쓰고 안식일날 고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믿었을 때 용감하게 손을 내밀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순종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해야합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신뢰해야 하니다. 그래야 우리는 용감하게 믿음으로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손, 순종의 손을 내밀고 기도의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의 손을 내밀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에 우리의 마른 것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2020년에는 성령께서 일하실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일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손을 내밀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절대 기도의 손을 내밀어 우리 가운데 회복의 역사가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다)
“11.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에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물었습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한 손마른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질문을 통하여 안식일날 예수님을 죽이고자하는 악을 행하는 죄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시기심의 죄를 인정해야합니다. 시기심의 팔을 내 밀어야합니다. 시기심의 죄를 드러내고 회개해야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들을 치료하여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귀하게 사용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책망하신 것은 그들에게 소망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성경의 지식이 풍부합니다. 인간 기초가 된 성실한 사람들입니다. 이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변화되면 사도바울처럼 아주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시기심의 죄를 내밀고 사도바울처럼 귀하게 쓰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손을 더 깊숙이 감추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생각하다가 회개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려면 오직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 나를 보아야합니다. 다윗처럼 모든 체면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자 그들의 마음은 더 딱딱해졌습니다. 그들은 이제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더 악한 죄를 짓고자 하였습니다. 실제 이들이 시기심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점점 더 악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보고 바로 회개해야합니다. 다윗처럼 “내가 주께 죄를 범했다” 내 책임이다. 라고 하는 사람이 멋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한 손 마른 사람을 고치려다가 죽음의 위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양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결론_네 손을 내밀라)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처음의 모습으로 건강하게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회복으로 끝나지 않으십니다. 새로운 창조를 이루십니다. 에덴 동산보다 더 좋은 새하늘과 새땅을 주십니다. 우리의 몸보다 더 좋은 부활의 몸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회복시켜주실 뿐 아니라 새롭게 창조해 주시기 위해서 네 손을 내밀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온전히 회복시켜주실 뿐 아니라 새 창조를 이루어주십니다. 우리가 회복된 후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요? 윤복희의 여러분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만약 내가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여러분” 에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외로운 분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예수님을 외롭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님과 함께 사는 가운데 우리가 예수님의 좋은 찬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한마디) 마른 손을 내밀자
천안ubf 12-2 주일메시지
누가복음 6장 깅헤 이부 네 손을 내밀라
말씀 누가복음 6장 6-누가복음 6장 11절
요절 누가복음 6장 10절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